데리다의 꿈-어느 땐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자크 데리다가 마지막에 나의 발목을 잡는다. 데리다가 죽기 전에 계몽을 말하는 걸 읽는 건, 하이데거가 죽기 전에 신이 있을지 모른다고 고백했다는 소리를 전해듣는 것보다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후기 자본주의의 타락한 정신쯤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데리다를 변명하기 위해 기꺼이 잠깐 침묵을 깬다.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2004년 10월9일 숨을 거뒀다. 말년에 그는 지옥으로 향하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광야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기꺼이 앙숙인 하버마스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2004년 5월엔 높이 솟은 반세계화의 깃발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창간 50년 기념식에서 유언과도 같은 연설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말은 "비록 오랜 시간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어느 땐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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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 과거의 계몽과 앞으로 올 계몽(Enlightenment past and to come)
-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11월호

2004년 10월9일 숨진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작업은 최근 벌어진 일들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지난 5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창간 50년 기념식에 우리가 그를 초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행사는 그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그가 이날 행사에서 한 연설을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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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50돌을 맞아 그 무엇보다 국제적인 범위에서, 반 세계화의 깃발 아래 모인 사회 운동 세력들이 참고하는 핵심 매체가 됐다는 게 너무나 기쁘다. 물론 이 사건이, 냉전시대의 승리자들 (아이엠에프[국제통화기금], 오이시디[경제협력개발기구], 더블유티오[세계무역기구] 같은 사악한 약어들로 대표되는 것들)을 제거할 거대한 혁명이 눈앞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반 세계화 운동 세력과 전세계 일반 대중들의 지속적인 압력이 이들 기구를 약화시키고 개혁을 강제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와 똑같은 강도의 압력이 2차 세계대전의 승리자들 곧 유엔(국제연합)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같은 기구에도 개혁을 강제할 것이다.

1954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창간호 사설에서 위베르 뵈브-메리는 전통적이고 애국주의적이며 심지어 국수주의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말을 썼다. 그는 "국제 관계의 평화적인 진전에 힘쓴다"는 게 우리의 공통된 임무인 상황에서 "(여기에 봉사하는) 신문 (실제로는 잡지: 옮긴이)의 고향은 너무나 당연히 파리여야 하며 언어는 프랑스어일 수밖에 없다"고 썼다.

그 이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진정으로 국제적인 출판물이 됐다. 18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됐고 전세계에서 참고하는 잡지로 평가됐다. 그러나 여전히 이 잡지는 파리에 터를 잡고 있다. 나에게, 이 점은 뿌리깊은 유럽인 성향(Europeanness)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 또는 다른 대륙에서 이 잡지만큼 자유롭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잡지가 성공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상상이 안된다. 이는, 우리 유럽인들이 독특한 정치적 의식과 의무감을 갖는다는 걸 암시한다. 물론 이 말이, 이 잡지와 이 잡지가 지지하는 반세계화 운동이 유럽 중심적이거나 프랑스 중심적인 전망에 얽매여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보다는 도리어, 이 잡지는 반세계화 운동에서 유럽의 구실을 상기시키는 임무를 맡아야 한다.

미국의 헤게모니와 중국의 떠오르는 힘, 그리고 아랍/이슬람의 신권 정치 사이에 낀 유럽은 독특한 책임을 지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유럽 중심적인 지식인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지난 40년동안 나는 이와 정반대에 해당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믿는다. 한치의 유럽 국수주의도 없이, 그리고 우리가 지금 파악하는 모습으로서의 유럽연합에 대한 한치의 신뢰도 없이, 오늘날 유럽이 의미를 갖는 그 지점을 위해 우리가 싸워야 한다는 걸 말이다. 여기에는 계몽의 전통이 포함된다. 또 과거의 전체주의적인 범죄행위, 대량학살, 식민주의적 범죄행위에 대한 인식과 이 사실에 대한 겸허한 인정도 포함된다. 유럽의 전통은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세계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걸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우리는 유럽이라는 존재가 단지 단일 시장으로 축소되도록 그냥 둬서는 안된다. 단일 통화, 신국가주의적 집단 또는 군사 세력을 뜻하는 것이 되도록 그냥 둬서도 안된다. 하지만, 마지막 지점에 가면 나는 유럽이 공통의 방위력과 외교정책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동조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이런 힘은 유엔의 개혁을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유엔이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불량배 국가인 미국과 타협하지 않고, 미국의 일방적 편의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가운데 자신들의 결의를 실행할 수 있는 유럽에 기반을 둔 기구가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창간 50돌 기념호인 지난 5월호에 이그나시오 라모네(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주필: 옮긴이)가 쓴 사설 '저항'을 인용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이 지지하는 것, 반대하는 것 하나 하나에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게 한가지 있다. 시장에 덜 지배되는 유럽을 지지한다는 대목이다. 나로서는 이 말이, 단지 다른 초강국과 경쟁하는 데 만족하고 마는 유럽을 뜻하는 것도 아니요, 다른 초강국들이 원하는 걸 하도록 그냥 두고 보는 유럽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리는 유럽은 유럽을 반세계화의 요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헌법과 정치적 태도를 지닌 곳이요, 자신의 추진력과 대안 정신이 전세계로, 예를 들면 이라크 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도 뻗어나가는 근원지가 되는 곳이다.

과거 계몽 정신의 자랑스런 후손이자 새로 다가올 계몽의 전령으로서의 유럽은, 세계에 대해 자신의 정치가 단순한 이분법적 반대 이상의 어떤 더욱 세련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하리라. 이런 모습의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의 혐의를 받지 않으면서도 이스라엘의 정책, 특히 아리엘 샤론이 주도하고 조지 부시가 지지하는 정책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런 모습의 유럽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의 권리와 땅과 국가를 위해 벌이는 정당한 투쟁을 지지하는 게, 자살 폭탄 공격을 지지하는 걸 뜻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이 지지는, 시온의 장로들의 의례라고 할 형편없는 거짓말에 힘을 실어주는 (슬프게도 실제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유대 선전선동에 동의하는 걸 뜻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모습의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가 부상하는 것과 이슬람 혐오증이 떠오르는 걸 동시에 우려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샤론과 그의 정책들이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부각되는 데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이 현상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가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불러모으는 구실로 이 현상을 이용해먹고 있다고 믿는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이런 모습의 유럽에서는, 사담 후세인과 그의 정권에 동조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부시, 체니, 럼스펠드, 월포이츠의 정책을 비판하는 게 가능하다. 또 이런 모습의 유럽에서는, 용감하게 목청을 높이는 미국인,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연합한다는 것 때문에, 반미주의자라고, 반이스라엘주의자라고, 반팔레스타인주의자라고, 이슬람 혐오주의자라고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이 것이 내 꿈이다. 내가 이런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 내 꿈은, 라모네가 말한 것처럼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걸 꿈꾸는 데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내 꿈은 다른 세상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을 이룰 힘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이 꿈은 전세계 수십억의 여성, 남성과 내가 공유하는 꿈이다. 비록 오랜 시간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어느땐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영어 번역본: http://mondediplo.com/2004/11/06derrida
번역: 신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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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2-3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섭님이 번역하신 데리다의 연설문 하나를 퍼왔습니다.

데리다의 마지막 말로, 지난 한 해 동안 찾아주신 분들께 드리는 감사 인사와 새해 인사를 대신하고 싶은데, 데리다가 허락해줄지 모르겠네요.^^
 
 전출처 : stella.K >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

 

#사계

 

1. 고드름 낙수 소리

2.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3. 동굴 낙수 소리
4. 여름 폭포 소리
5. 몽돌 파도에 휩쓸리는 소리
6.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

7. 천둥 소리

8. 장마 비바람 소리
9. 우박 떨어지는 소리
10. 가시연꽃밭의 폭우 소리
11. 불어난 계곡물 쏟아져내리는 소리
12. 벼이삭 부딪히는 소리
13. 낙엽 지는 소리
14. 싸리비로 낙엽 쓰는 소리
15. 낙엽 밟는 소리

16. 바람에 낙엽 구르는 소리
17. 억새 부딪히는 소리
18. 갈대 부딪히는 소리
19. 눈보라 소리

20. 설피 신고 눈 밟는 소리
21. 겨울 얼음장 깨지는 소리

 

 

#향토

22. 할아버지 잔기침 소리
23. 달집 태우는 소리
24. 논두렁 태우는 소리
25. 소울음 소리
26. 소여물 먹는 소리
27. 가마솥 끓는 소리
28. 우시장 소울음 소리
29. 모내기하는 소리
30. 밭가는 소리
31. 장닭 우는 소리
32. 산나물 캐는 소리
33. 베틀짜는 소리
34. 시골장터 소리
35. 족타기로 벼 터는 소리
36. 탈곡기로 탈곡하는 소리
37. 키질하는 소리
38. 콩도리깨질 소리
39. 콩깍지 타는 소리
40. 멧돌 가는 소리
41. 절구 찧는 소리
42. 떡치는 소리
43. 어시장 경매 소리
44. 오징어 물 뿜는 소리
45. 숭어잡이 소리
46. 재첩 캐는 소리
47. 꼬막 잡는 소리
48. 해녀 숨비 소리
49. 연평도 풍어제 소리

 

 

#울림

50. 에밀레 종소리
51. 보신각 종소리
52. 가을 바람에 풍경 우는 소리
53. 법고 소리
54. 목어 소리
55. 운판 소리
56. 범종 소리
57. 성당 종소리

 

 

#추억

58. 학교종 소리
59. 풍금 소리
60. 아이들 전통놀이 소리
61. 가을 운동회 소리
62. 대장간 소리
63. 참숯 익는 소리
64. 노젓는 소리
65. 개울가 빨래 소리
66. 염전 수차 소리
67. 통방아 소리
68. 물레방아 소리
69. 디딜방아 소리
70. 다듬이질 소리
71. 마지막 비둘기호 정선선

 

#생명

72. 괭이갈매기 우는 소리
73. 가창 군무 소리
74. 둥지 떠난 새끼 제비들의 소리
75. 딱따구리 나무구멍 파는 소리
76. 보리밭 종달새 우는 소리
77. 백로 새끼 키우는 소리
78. 소쩍새 우는 소리
79. 둥지 떠난 꾀꼬리 새끼 어미찾는 소리
80. 큰유리새 새끼 키우는 소리
81. 삼광조 새끼 키우는 소리
82. 붉은배새매 새끼 키우는 소리
83. 파랑새 새끼 키우는 소리
84. 겨울 들판 두루미 구애하는 소리
85. 참매미 우는 소리
86. 쓰릅매미 우는 소리
87. 애매미 짝 찾는 소리
88. 왕소똥구리 경단 굴리는 소리
89. 토종벌 일하는 소리
90. 귀뚜라미 짝 찾는 소리

91. 여치 우는 소리
92. 방울벌레 노래소리
93. 베짱이 우는 소리
94. 긴꼬리 우는 소리
95. 누에 뽕잎 갉아먹는 소리
96. 개구리 울음 소리
97. 두꺼비 우는 소리
98. 맹꽁이 울음 소리
99. 섬진강 동자개 우는 소리
100. 남대천 연어 돌아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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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특별법 반대” 내건 인터넷신문 창간
 



지난 9월23일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실시된 가운데 성매매방지특별법 반대를 기치로 내건 내건 온라인신문 <한국인권뉴스>(www.k-hnews.com)이 창간돼 눈길을 끈다.

한국인권뉴스는 지난 18일 오후 2시 “인천옐로하우스 성노동자 대표, 한터여종사자연맹 성노동자 대표, 미아리 성노동자 대표, 기독민중연대, 성매매특별법을 반대하는 시민모임,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홈페이지 개통식과 출범식을 열고 “기층 민중들의 인권을 외면하는 언론계와 여성계에 저항하기 위해 한국인권뉴스를 창간한다”고 밝혔다.

한국인권뉴스는 최덕효 대표를 비롯해 취재와 편집기자 3명이 기사와 칼럼, 논평을 주로 담당하게 되며, 이를 통해 성노동과 관련된 왜곡된 보도와 시민사회단체의 성명의 허구성을 짚어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국인권뉴스는 현재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논객을 상대로 시민기자단을 모집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은 못배운 성노동자들의 인권 무시해 생존권 빼앗아는 악법”

최덕효 대표는 “한국인권뉴스는 기층 민중의 인권을 외면하는 현실에 저항하고 서민, 빈민의 인권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며 빈민인권의 한 분야로 성노동자 문제를 당면과제로 삼았다”며 “성매매특별법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한 것이 죄인 성노동자들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고 끝내는 생존권마저 빼앗아버리는 악법으로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여성단체에 대해 “성매매특별법을 제안하고 시행에 앞장 선 한국의 여성단체와 여성부는 한국사회 학벌 카스트의 최정점에 서있는 기득권층으로, 그들은 사회진보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진보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정치세력화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며 “이는 성노동자들의 여의도 단식농성장에 나타나지도 않고 그녀들의 애틋한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여성단체와 여성부의 자세에서 보듯 여실히 증명된 만큼 성노동자를 제1의 테마로 삼고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덧붙였다.

그 이유에 대해 최 대표는 “집창촌 1만명, 공식 33만명, 비공식 150만명의 성노동자들을 성매매 피해여성이라 일컬으며 그녀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여성계는 모든 정치권력을 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도록 했다”며 “성매매특별법 반대여론을 무시하는 여성계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유교적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어 융단폭격을 감행했고 결과는 성노동자들에게서 시민권과 노동권을 빼았았고 동시에 한국 남성들을 예비 성범죄자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한국인권뉴스는 창간에 맞춰 83개 성매매업소 28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응답자들의 55%(157명)은 집창촌에 오게 된 이유로 ‘순수 생계유지’를 꼽았으며, 그 다음으로 가족병원비 20.4%(58명), 빚청산 15.8%(45명), 가족학비 8.8%(25명) 등을 들었다.

한편 <한국인권뉴스> 창간과 관련해 여성단체 관계자와 성매매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굳이 논란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언급하기를 꺼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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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2-2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신문이 다 있군요 ...;;;

MANN 2004-12-26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이런... (욕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막다)



성매매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온존시키겠다고?

모모 2004-12-26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신문> 류인가 하고 클릭했더니, 이게 대체 무슨 꼴입니까 -_- 다른 단체들은 잘 모르겠고, 사회진보연대라니.. 정신이 나간 걸까.



성매매특별법에 한계가 있다.. 그거 알만한 사람들 다 아는 얘기 아닌가요 -_- 그럼 그 한계를 넘어설 생각을 해야지, 아예 법을 없애자고 날뛰다니요. 성매매특별법을 '성매매여성의 생존권 박탈'로 만드는 것은, 여성단체가 아니라 이 이상한 신문을 창간한 그 사람들 아닌가요. 어이가 없군요 정말..

balmas 2004-12-2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그렇게 일방적으로 매도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좀 모호하긴 하지만 홈페이지에 가서 보면 나름대로 경청할 만한 주장들이 있더군요.

MANN 2004-12-28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처음에 성매매 지지 또는 합법화의 움직임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질 정도가 되었나하고 화가 치밀어서 좀 흥분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 하지만 여전히 저런 방식(어법?)에는 동감할 수가 없군요.



첫 번째는, 포주와 남성 성구매자의 이해관계는 쏙 빼 버리고 성매매특별법과 관련된 대립을 '여성계'와 '성노동자'의 대립으로 몰고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구요. 두 번째는, 성노동자들의 인권을 오랫동안 침해해온 것은 바로 성매매 구조라는 사실은 삭제하고, 마치 지금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으로 인해서 침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처럼 쓰고 있다는 거죠. 그건 반대의 대상이 '성매매 구조'가 아니라 '성매매 특별법'이라는 데에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최원님은 '성매매 노동자들에게 싸늘한 눈길대신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신문을 지지하신다고 하던데... 그제서야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충분히 성매매 여성들을 범죄자로도, 수동적인 피해자로도, 잠재적인 반성매매 투쟁가로도 보지 않고 그녀들의 말을 들으면서 연대해 왔던 현장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최근의 성매매특별법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목소리가 들렸으면 최원님같은 사람들이 성매매 합법화론자들에게 지지표명을 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말이에요.



지금 논쟁에서 포주행위, 즉 여성들을 '고용'하여 남성구매자들에게 판매하고 거기서 이윤을 챙기는 행위와 자신의 성을 파는 행위가 모두 '성매매'라고 지칭되고 있는데, 제 생각엔 일단 그걸 분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의 성매매특별법은 포주행위를 금지하지만, 자신의 성을 파는 행위 역시 금지하지요. 포주행위에 의해 자신의 성을 팔게 된 경우만 처벌대상에서 제외되구요.



이런 모호함 때문에 성매매합법화론자들은 합법화하길 원하는 것이 어느 것인지 모호해지고 만다고 봐요. 저는, 그것이 성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에서 나온 것인 한에서, 성노동을 하되 적절한 환경에서 적절한 보상을 받으려는 운동도 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 신문을 만든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위 신문은 포주행위든 자신의 성을 파는 행위든 상관없이 '성매매만 온존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지지자로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위 신문을 보고 동지를 만났구나, 라고 생각했을 테지요.



비범죄화 노선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성매매 자체의 비범죄화'를 목표로 하는 것 같던데... 이것 역시 '성매매'라는 말때문에 모호해지는 것 같아요. 여기서 비범죄화한다는 것은 자신의 성을 파는 행위겠죠?

모모 2004-12-28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그 신문을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저도 이런 류의 주장을 처음 접해보는 건 아니고, 거기에 경청할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주장들이, 미약하게나마 제가 알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고통 -- 물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고통이겠지요 -- 을 해결하는 데 무슨 도움을 (당장은 아니라도) 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특별법을 반대한다’는 식의 이야기에 그들이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을 모르겠어요. 물론 성매매 여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 그런 말들이 최소한 일면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겠습니다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여성단체를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노동자/민중 자신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투쟁’이라는 멋지지만 종종 위험한 환상에 빠진 결과가 아닐까 싶군요.



게다가 “성매매특별법 반대여론을 무시하는 여성계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유교적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어 융단폭격을 감행했고 결과는 성노동자들에게서 시민권과 노동권을 빼았았고 동시에 한국 남성들을 예비 성범죄자로 몰아갔다”는 이젠 아예 클리셰로만 보이는 주장을 펼치는 건 우스꽝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네요. 한쪽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섹스에 환장한 여자들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유림들이라고 하니.. 대체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적어도 그들이 여성 단체의 주장을 비판하되 한국 사회의 마초이즘과도 대립각을 긋고 싶었다면, 방금 말한 저런 상투적인 주장을 하거나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논객을 상대로 시민기자단을 모집하”겠다는 순진한 발상은 재고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NA 2004-12-2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최원입니다. Mann님께 답변드리면, 다른 분들은 모르겠고, 제가 말하는 '성매매 그 자체의 비범죄화'는 성판매 여성은 물론이고 성구매 남성까지도 비범죄화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저도 성구매 남성들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단지 적대감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법적 처벌주의, 억압적 국가장치에 의한 처벌주의가 과연 답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고, 저의 답은 부정적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을 무시하자거나 혹은 국가 등에 의한 예방적 대항-폭력을 아예 고려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중심적인 해결방법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예전에 이탈리아에서 국민투표 발의를 통해서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강간범 등에 대한 형량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안을 발의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고 이에 대한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의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사회진보연대 기관지가 한 번 소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보복주의적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수는 없다는 쪽과 동의합니다). 따라서 성노동자들의 시민권, 무엇보다도 그녀들의 저항권을 인정하면서 단결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자신들을 극단적인 인권유린 행위들로부터 보호하게끔 지원하면서(그리고 국가에 의한 대항-폭력은 이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여성의 빈곤화에 대한 투쟁의 일주체로 함께 투쟁전선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한 편, 탈성매매를 원하는 분들이 탈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갖가지 지원을 해야하며, 경제적으로 대안이 될 수 있는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서 이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문제가 진정한 성매매의 궁극적 폐지라면 일방적으로 법령 하나 만들어서 접근할 수는 없으며, 매우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을 해야만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성매매를 허용한다면 무조건 지지한다는 멍청한 인간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에 즉자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성매매 특별법을 지지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한국정부는 이제껏 포주의 역할을 단단히 해왔습니다. 물론 노무현 정부야 그러한 한국정부의 유산을 단지 이어받았을 뿐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엄연히 국가권력으로서 역대 한국정부 전체의 연대책임입니다. 그런 한국정부가 성매매 특별법을 새로 만들었고 그것이 예전의 윤락행위 방지법에 대해서 아주 조금 진일보한것 같은 부분이 있는 법안이라고 해서 그것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저는 한국 인권 뉴스의 모든 글들과 내용에 대해서 긍정하거나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무엇보다도 저는 합법화론자가 아니라 형법적 판단 보류/유보라는 의미에서의 비범죄화론자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초로 그것이 성노동자들의 노조건설 및 시민권을 위한 투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지합니다. 그리고 이 분들의 투쟁은 정말 걸음마의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전술적으로, 또 활동상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는 점이 있다면, 냉소적으로 보기 보다는 따뜻하게 충고를 해주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balmas 2004-12-2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댓글들을 남겨 주셨는데, 간단하게 답글을 달려니 왠지 성의가 부족하다는 자책감이 들지만(^^;;;), 저로서는 아직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논쟁의 지형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한국인권뉴스]의 주장들에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워서요.

어쨌든 긴 댓글들을 달아주신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NA 2004-12-29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문제인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한국인권뉴스의 주장을 보면서 착잡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여성들 간의 연대가 생성되지 않고, 오히려 여성주의자 vs 성노동자 식의 왜곡된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아마 그 안에 결합하려고 하는 분들, 예컨대 사회진보연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올려주신 스피노자 관련 글도 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biosculp 2004-12-2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매매 관련법안에 대해 애기를 듣자면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애기만 나오는것 같군요. 실제적으로 성매매에 얽매인 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되어야 할텐데. 그런 부분은 글쎄요 라고 갸유뚱할수 밖에 없군요.

선배중 화류계에 발을 담근 분 애기로는 이번 성매매법안의 주된 타켓은 미아리와 용산의 집창촌이라고 하더군요. 미아리는 벌써 집창촌 주위로 아파트 촌이 들어선지 오래고 용산도 용산역의 개발과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그 자리에 시청이 옮기기로 되어있는데 이때 개발에 가장 껄끄러운 부분이 집창촌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밀어부치면서 집창촌을 집중으로 단속하는대신 강남이나 기타 성매매업소부분은 무풍지대로 남아있죠.

약간은 음모론적인 시각이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매매 특별법을 거론하기전에 기존의 법만 제대로 시행해도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력만으로도 충분이 제대로 잡을것은 잡을수 있을것 같은데. 그게 안되는것이 문제고 이것을 먼저 해결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

선배말이 술집에 잡힌 여자중 150만원에 묶여있는 여자들도 있다더군요.

이론적으로나가면 별로 와닿지를 않네요.

balmas 2004-12-3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아마 현장(?)에 직접 몸담고 있는 분들만큼 속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겠죠. 그 사정들을 잘 아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원칙에 관해서 논의해보는 것들도 의미가 전혀 없지야 않겠죠. 저야 두 가지 다 잘 알지 못하니까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

따우님은 오랜만에 오셨군요. 이제 방학이시니 홀가분하시겠습니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힘이 생깁니다”
국보법 폐지 단식 53일, 송현석 위원장

 

이태준 기자 ltj@digitalmal.com

 

12월 24일 성탄절 전날.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53일째 되는 날이다. 송 위원장은 지난 11월 2일부터 국회 앞에서 작은 컨테이너를 감옥처럼 개조해 그 안에서 지금까지 국보법 폐지 단식 농성을 벌여왔다. 22일에는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쓰러져서 결국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송 위원장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와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병원에서 그는 수액주사 한 방울조차 맞기를 거부하고 나왔다. 1평 남짓한 ‘감옥’에서 단식중에 있는 송 위원장을 찾아갔을 땐 밖에선 국보법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연대회의 사제들이 단식 농성단원들과 함께 성탄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바짝 말라있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나직한 어투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 살이 많이 빠졌다.
"이 얼굴이 내 대학교 때 얼굴이다.(웃음) 그때 얼굴로 돌아왔다."

- 쓰러졌다고 들었다.
"22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광화문으로 가던 도중 종묘에서 촛불점화하고 다시 걸으려 할 때 쓰러졌다. 정상인이라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날씨도 춥고, 아직 수액주사도 맞지 않았으니 체력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악으로 걷고 있던 거였다."

- 힘들지 않나. 50일 넘게 수액도 안맞고 단식을 하는 건 생명에도 위험한 거 아닌가.

"그렇게 물어보면 ‘힘들어 죽겠어요, 한 번 굶어보실래요?’ 할 수도 없고...그냥 겉으론 괜찮다고 해야지. 단식이 40일이 넘어가니 물을 마시기도 힘들다. 임계점에 다다른 거 같다. 단식한 뒤 40일이 지날 때 처음 누워봤다. 50일 전 까지 등을 땅에 댄 게 3번이다. 지금도 대부분 눕지 않고 앉아서 책을 본다. 버터야 한다는 생각이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미음을 먹으면서 끝낼 싸움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의사한테 '기본치료를 거부하겠으니 수액주사 놓지 말라'고 얘기했다. 의사가 피검사와 오줌검사를 하고 입원하라고 했지만 ‘생사를 초월한 문제니까 그냥 놔둬라’고 했다."

- 국보법 폐지 단식을 하는 취지를 말해달라.
“국보법 폐지가 갖는 의미는 우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미국은 2006년이면 동북아에서 미사일방어망과 군사재배치를 두 축으로 전쟁시스템을 완비한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는 근본요인이 분단체제다. 미국의 전쟁체제 구축을 막고 분단체제극복-한반도 평화구축-동북아평화체제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북 당국간 정치경제 교류, 민간 사회문화 교류, 그리고 한반도와 한반도 밖 사람들 사이 교류와 결합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결합을 위한 한 방법이 국가보안법 폐지다. 남북협력기금같은 건 상황에 따라 끊길 수도 있다. 남북 민간교류를 활발하게 만들려면 분단체제 자체를 뚫는 움직임을 북한에게 보여줄 필요도 있다. 그게 바로 국보법 폐지다"

   
▲ 12월 24일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 53일째인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
"국가보안법 폐지는 분단체제를 뚫는 움직임"

죽음을 무릅쓰고 국보법 폐지 단식을 잇는 까닭에 대해 그는 힘겹지만 길게 설명했다.

“민가협 자료를 보니 노무현 정부 들어 9개월 동안 300여명 정도가 국보법 때문에 구속됐다. 이 법은 민주화, 인권, 통일을 가로막고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1천만 이산가족이 교류를 못하게 가로막아 그들의 원한이 쌓여있는 법이다. 이 법은 지난 50여년 동안 통일, 민주, 사회균형을 얘기했던 사람들을 억압했다. 사람이 가진 생각을 자유롭게 나타내는 것도 억압했던 법이다. 이 법은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 연내 처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연내처리를 위해 정치적인 전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1000여명이 노상단숙을 하고 있다. 단식자 가운데 젖먹이 엄마도 있다. 이 사태를 두고 내년으로 넘어간다는 건 정치적 판단에 앞서 도덕적 판단의 문제라고 본다. 열린우리당이 이 사안을 내년으로 넘긴다면 정체성을 의심받을 것이다. 여야 모두 자기 함정에 빠지고 있다"

"이철우 의원, 비루했다"

- 이철우 의원 파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철우 의원이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심하게 말해 ‘비루했다’고 본다. 자기 입으로 민주화 운동 경력을 자랑스럽다고 했는데, 그럼 당시 군부독재 최고부역자 정형근이나 공안검사 출신 주성영한테 ‘군부독재에 붙어 민주주의를 유린한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서 입을 놀리느냐’고 단호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국민이 뽑은 입법기관이 그만한 배포와 사리판단이 없나. 기껏 조찬기도회에서 울면서 참회기도나 할 일인가.
그 사람이 과거에 맑시즘이건 주체사상이건 지금은 자유주의건 어떤 사상을 갖든 그걸 뭐라 할 수 없다. 차라리 유시민 의원처럼 ‘과거엔 그랬어도 지금은 나 자유주의자인데, 왜 안돼냐’하고 당당하게 굴면 된다. ‘그때 잘못했다해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게 축적돼서 지금 내가 있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면 될 일이다. ‘그 시간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당당하게 지켜야 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사람은 힘이 생긴다"

1평 남짓 좁은 공간엔 사회과학 책들이 많이 쌓여있었다.

"어제 응급실에 누워서 논문을 하나 읽었다. 그러다 <칼의 노래>를 보고 하룻 만에 1권을 다 읽었다. IMF가 내년도 경제계획과 관련해 자료를 쭉 내놓고 있는데 그것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의 리상호가 번역한 <열하일기>도 봤는데 번역이 예술이더라"

- 그 몸으로 책을 읽을 수 있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평소 원래하던 공부량이다.(웃음) 내가 원래 정책 쪽 일을 맡기 전까지는 ‘쇠파이프’를 잡던 ‘무관’ 출신이었다. 이 정도 기개는 보여 줘야...”

50여일을 넘게 단식을 한 사람치고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는 좋아보였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계속 힘이 없어서 빌빌거리고 있었는데 조금 전 대학교 후배들이 찾아왔다. 99-00학번이라 잘 알지도 못하는데,  힘이 나더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은 힘이 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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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2-2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목소리가 맑으시더라구요. 더 쇠약해지시기 전에 끝나야 할 텐데...

balmas 2004-12-2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강이 많이 걱정이 됩니다. 평소에 건강한 몸이었다 해도 말이 54일이지 ...

날도 추워지고 ...
 

첫날이 제일 힘든데 추운날 와서 어떻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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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겨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는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국민 단식농성당이 두 달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가자만 벌써 1천명이 넘었다. 오랜 배고픔과 함께 겨울의 찬바람을 비닐천막 하나로 이겨내고 있는 농성단. <오마이뉴스> 기자가 그들을 찾았다. 다음은 지난 20일~21일 1박 2일간 농성단과 함께 생활한 <오마이뉴스> 사회부 박상규 기자의 일일단식 동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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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수) 오전 10:00]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국민 단식농성당(단식농성단) 600여 명이 또 하루의 농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집회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때 차가운 겨울비가 내렸다. 농성자들은 하얗고 파란 비옷을 꺼내입었다.

그 대열에서 감잎차를 마시는 20대 젊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이름은 황임봉. 올해 스물여섯살. 부산여성회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지난 12월 6일 서울로 올라와 단식 농성단에 합류했다고 한다. 단식 열흘째를 맞는 황씨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배고픈 단계는 이미 지났고, 어지러워서 계단을 잘 오를 수가 없네요." 황씨는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당시 나는 단식농성단을 오전동안 취재해 기사 하나를 출고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황씨의 말 한마디는 당초 계획을 깨끗이 접게 만들었다.

열흘 동안 굶어 "어지러워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는 600여명의 사람들을 단 2시간 취재해서 기사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기자와 취재원이 아닌, 단식농성단 일원으로 황임봉씨와 같이 굶으며 생활한 내용을 쓰기로 결심했다. '일일단식' 체험기라고 할까. 그리고 닷새가 지났다.

[12월 20일(월) 밤 11:00] 천막없는 '비닐농성장'

'일일단식'에 들어갈 맘으로 단식농성단 천막이 있는 여의도에 도착한 건 20일 밤 11시. 이날따라 겨울 바람이 더 매섭게 귓전을 때렸다. 우선 상황실부터 찾아갔다. "아까 연락드린 박상규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사를 쓰다가..."라며 첫 인사를 건넸다.

담당자는 "첫날이 가장 힘든데 이렇게 추운 날 와서 어떡하느냐, 오는 날이 장날이네요"라면서 침낭 하나를 건넸다. 침낭을 들고 노동자 단체 소속 농성자들이 있는 천막으로 갔다. 그러나 천막 농성장에 '천막'은 없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막기 위해 농성장 사방을 둘러친 건 얇은 '비닐'이었다. 모두 18개 동의 '비닐농성장'에서 1천여 명으로 늘어난 단식농성단은 숙식이 아닌 '숙'만을 하고 있었다.

비닐농성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석유냄새가 확 몰려왔다. 모두 10개가 설치된 열풍기에서는 온기와 함께 매연, 굉음까지 나왔다. 곳곳에는 농성단의 빨래가 널려 있었고, 동 마다 하나씩 설치된 생수통 옆에는 소금과 감잎차, 마그밀(초기 단식 농성자들의 배변을 돕는 약품)만이 덜렁 놓여 있었다. 농성장 풍경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1시간여를 돌아다닌 뒤 잠자리로 돌아왔다.
 
▲ 농성자 대부분은 점심 시간에 주로 천막에서 잠으로 휴식을 취했다.
ⓒ2004 오마이뉴스 박상규


[12월 20일(월) 새벽 0:30]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람들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소등이 된 천막은 어두웠다. 몇몇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여의도 공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거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상황실에서 받은 침낭 속으로 몸을 넣고 누웠으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내가 쓰러지면 우리가 간다. 목숨 걸고 끝장낸다. 국가보안법 끝장내는 날 웃으면서 춤을 추리라". 벽에 붙어있는 '국보법 폐지 무기한 단식농성단의 노래' 가사를 보며 눈을 감았다. 이들이 웃으며 춤을 추는 날은 언제일까.

추위 때문에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되풀이했다. "모든 사람들이 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단식 16일차 김기호(울산 민주노동당원)씨의 말이 실감났다. 추위에 심하게 뒤척였는지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말을 건넸다. "우리 추운데 같이 붙어서 잡시다." 그래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단식동지' 옆으로 바짝 붙었다. 따뜻했다.


[12월 21일(화) 오전 7:00] "우린 이미 배고픔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단식농성단의 기상은 오전 7시. 주변 농성자들이 일어나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졸립고 추웠다. 그리고 석유냄새 때문에 머리가 무척 아팠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농성자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여의도 공원 인근 주민들이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식 농성자들은 맨손체조를 하거나 걷기 등으로 몸을 풀었다. 며칠씩 굶은 그들에게는 달릴 힘이 없다.

20분 정도 운동을 한 뒤 물이 나오는 가까운 화장실로 갔다. 농성자들이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있었다. 모두들 찬물에 세면하는 것이 익숙한지 말끔히 씻고 있었지만, 나는 얼음장 같이 찬 물이 엄두가 나질 않아 포기했다. 이만 닦고 화장실을 나왔다.

▲ 혈압을 측정하고 있는 단식단원,
ⓒ2004 오마이뉴스 박상규

 

[12월 21일(화) 오전 7:30] 출근길 선전전

잔뜩 움츠러든 몸으로 아침 출근길 선전전을 따라나섰다. 출근길 선전전은 릴레이단식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100여명은 매일 아침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과 영등포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국가보안법을 폐지합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홍보물을 일일이 나눠줬다.

일일단식을 위해 보건의료노조 강원본부에서 올라온 이현경(31)씨는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안녕하세요, 이거 좀 읽어보세요"라며 출근길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건넸다.

그러나 추운 날씨 탓인지 많은 시민들은 주머니 속에 들어간 손을 꺼내지 않았다. 출근길 선전전은 1시간 30여분 가까이 이어졌다.

[12월 21일(화) 오전 10:00] "배고픔보다 추위가 더 힘들어"

오전 9시 천막으로 돌아왔다. 오전 10시가 되자 농성단은 털모자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채 조별로 열을 맞춰 국회 인근 국민은행 앞 농성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각자의 침낭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중무장을 한다고 해도 추위와의 힘겨운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그리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매일 하루에 두 번씩 국회를 바라보고 앉아 농성을 한다. 농성 중에는 자유발언과 각계각층의 방문이 이어진다. 이날은 천영세, 노회찬 등 민주노동당 의원 5명과 이미경, 우원식 등 열린우리당 의원 12명이 차례로 농성단을 찾았다. 이들은 일찌감치 와서 농성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을 하며 돌아갔다. 과연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 농성자 대부분은 점심 시간에 주로 천막에서 잠으로 휴식을 취했다.
ⓒ2004 오마이뉴스 박상규
침낭으로 하체를 덮고 스티로폼 위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오전 농성을 하니 "배고픔보다 추위를 견디는 게 힘들다"는 단식농성자들의 말이 실감났다.

"굶은 지 5일이 지나면 배고프다는 감각은 없어집니다. 그 후부터는 추위 속에서 어지러운 증상을 이겨내야 합니다. 연내까지 꼭 폐지됐으면 좋겠는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웃음)." 단식 16일째의 임승관(36. 인천시민문화센터)씨가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한 말이다.

방학 이후 농성단에 결합한 대학생들은 아직 배고픔의 고통을 호소했다. 단식 5일째를 맞은 김연(한양대 3학년)씨는 일명 '김떡순'이 가장 그립단다. "김밥, 떡볶이, 순대가 제일 생각나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포장마차 옆을 지나갈 때면 거의 쓰러질 지경입니다. 그래도 여기 있는 어르신들하고 국보법 폐지의 순간을 함께 보고 싶습니다."

[12월 21일(화) 오전 11:30] 2시간 동안의 낮잠

낮 동안의 휴식을 위해 천막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깥의 찬 바람에 2시간을 있다가 천막에 들어오니 그나마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로 졸음이 몰려왔다.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농성자 대부분은 점심 시간에 주로 천막에서 잠으로 휴식을 취했다). 눈을 뜨자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깜짝 놀랐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12월 21일(화) 오후 2:00] 빠뜨린 침낭

국민은행 앞 농성장으로 급히 뛰어갔다. 다른 농성자들은 이미 열을 맞춰 앉은 채 농성을 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며 대열 맨 뒤에 끼어 앉았다. 앗차! 급히 나오다가 침낭을 빠뜨리고 나온 것이다. 큰일이다. 침낭 없이 이 찬바람을 어찌 견딜꼬. 배고픔도 잊은 채 추위 걱정이 앞섰다. 조용한 침묵과 함께 한 시간이 흘렀다.

[12월 21일(화) 오후 3:00] 황임봉씨 하혈로 병원에 실려가다

정적을 깨뜨리는 사회자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여왔다. 사회자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환자가 발생했다"며 "차량운전이 가능한 단식자는 앞으로 나와달라"고 당부했다. 오들오들 떨며 연단 천막 옆에 황임봉씨가 앉아 있었다. 오전 내내 보이지 않아 단식을 포기한 줄 알았던 황씨는 16일의 단식과 추위로 하혈을 하는 '위급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24시간 차가운 노상에서의 천막생활. 26세의 젊은 여성이 견디기에는 쉽지 않았을 터다. 결국 황씨는 자신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16일간 굶으며 투쟁한 농성현장에서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됐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21일 오후 3시의 일이다.

황씨를 병원으로 후송한 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4자 회담'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황씨 소식에 안타까워하던 농성단은 모두들 "저것들이 또 배신하는구나"라며 "너희들이 정말 우리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농성단은 바로 영등포구 당산동 열린우리당사로 향했다. 40여분을 걸은 뒤 열린우리당사에 도착했다.

[12월 21일(화) 오후 3:40] 우리가 가장 먹고 싶은 것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열린우리당사도 아니고, 한강의 겨울바람도 아니었다. 이미 200여명의 전경이 당사 앞을 가로막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성단은 '4자회담 중단'을 열린우리당에 촉구하며 지도부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묵무부답이었다. 3시간 넘게 시위를 벌였다. 자유발언도 하고 노래도 했다. 대학생들은 춤도 췄다.

지역별로 나와서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기도 했다. 부산 지역은 "오뎅 국물에 소주", 전라도 지역은 "삼겹살에 김치 구운 것", 경기지역은 "그냥 김치찌개", 강원지역은 "생태찌개" 대학생들은 "떡볶이, 순대와 김밥" 등을 꼽았다. 음식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미칠 것 같다"고 외쳤다. 며칠씩 굶은 사람들이 목청은 여전했다.

▲ 털모자와 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한 농성자들. 하지만 추위와의 힘겨운 싸움은 배고픔보다 더 어렵다.
ⓒ2004 오마이뉴스 권우성

[12월 21일(화) 저녁 7:00]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의 야합을 중단하라"

저녁 7시부터는 1시간 동안 촛불집회를 열었다. 평소에는 광화문 교보문고 앞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밤 9시에 조별 평가를 마쳐야 단식농성단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날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4자회담'을 규탄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한나라당과 야합을 중단하고 국보법을 폐지하라"는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날 단식농성자들은 오후 2시부터 밤 8시까지 6시간 동안 휴식 없이 추위 속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날 농성단을 찾은 민중가수 손병휘씨의 노래를 통한 격려는 큰 힘이 되었다.

[12월 21일(화) 저녁 8:00] 무거운 발걸음

밤 8시. 촛불집회를 마치고 여의도 농성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워 보였다. 특히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릴 때 힘차게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농성단 모두는 계단 중간에서 꼭 한 번씩 쉬었다. 단식 7일째인 황나은(23)씨는 "너무 어지러워 도저히 한번에 계단을 오를 수 없다"고 말했다.

[12월 21일(화) 밤 9:00] "국보법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게 더 괴롭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비닐농성장으로 돌아오니 병원으로 후송됐던 황임봉씨가 돌아와 있었다. 황씨는 "의사가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 거래요. 호르몬 주사 맞으니 단식을 더 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5시간 동안 밖에서 투쟁할 때 저는 이곳에서 쉬었잖아요"라며 미안해 했다.

황씨는 16일 단식을 하는 동안 5kg이 빠졌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미 배고픔도 사라졌다. 이젠 허리 통증과 손발 저림이 황씨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도 황씨는 "국보법이 끈질기게도 살아남는 게 더 괴롭다"고 했다.

"기자 아저씨는 괜찮아요? 내가 겪어보니까 하루 굶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처음이라 먹고 싶은 게 많이 생각나잖아요. 빨리 돌아가서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기자 아저씨는 좋겠네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니까요. 난 언제나 갈 수 있으려나...(웃음)" 황씨는 애써 웃어 보였다.

▲ 오마이뉴스 사회부 박상규 기자가 20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국가보안법 연내폐지 국민단식농성단과 함께 1일 단식체험을 하고 있다.
ⓒ2004 권우성
[12월 21일(화) 밤 11:00]

단식 끝나자 마자 밥 두 그릇을 해치우다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보고 기자는 단식농성단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밤 10시부터 1시간 정도 농성단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참의료실천단'에 대한 취재를 끝낸 것은 밤 11시.

여의도 농성장을 나서는 순간,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달려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혼자서 두부찌개를 먹으며 하루동안의 허기를 달랬다. 그날 공기밥 하나를 더 추가해 두 그릇을 먹었다.

[12월 22일(수) 오전 10:00]

1천여명의 농성단은 언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지금은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 따뜻한 사무실에서 난 이 글을 쓰고 있다. "국보법의 끝장을 보겠다"는 황씨와 1천여 단식농성단이 집으로 돌아갈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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