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죄송하다' 말하기 그렇게 어렵나?"
  [기자의 눈] '생명공학의 중요성' 말하기에 앞서 할 일
  2006-06-30 오후 5:51:26

 

   "기술이 아니라 마술입니다.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습니다. (…) 감동에 몸이 떨릴 만큼 감전됐습니다." (2003년 12월 10일 황우석 박사 실험실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반년 만에'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29일 대전에 있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생명공학 산업은 우리 한국에 딱 맞는 경쟁력이 있는 분야"라며 생명공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황우석 사태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도 몇 마디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가 다 나서면 잘 될 것 같지만 정부가 나서서 도움이 안 되는 분야도 있다"며 "이 분야는 정부의 절제와 역할이 많이 필요한 분야"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또 "황우석 사태를 보니 영웅은 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며 실험실의 수직적 위계질서도 언급했다.
  
  정부가 특정 과학자나 특정 분야를 '찍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점이나 '실험실 민주화'의 중요성을 노 대통령은 아주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알게 된 모양이다. 뒤늦게나마 교훈을 얻었다고 고백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사태에 대해 '교훈'을 언급할 때인가? 조금 철 지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연초의 기억을 들춰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긴 '침묵'…핵심 관련자들은 모두 다 '면죄부'
  
  온 나라가 수 개월에 걸쳐 찬·반으로 나뉘어 격렬한 갈등 양상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계속됐고 심지어 한 사람이 분신자살해 생명을 잃기도 했다. 수 년간 지원한 수백억 원의 국민 혈세가 공중으로 날아갔고, '줄기세포 스캔들'은 결국 역사상 유례 없는 '과학 사기극'으로 규정되면서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2005년 12월 5일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며 사실상 진실 규명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한 후 진실이 상당 부분 밝혀진 지금까지 노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평소 '설화'를 몰고 다니던 노 대통령의 체질을 염두에 두면 기이한 일로 보이기까지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입만 다물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박기영 전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경질 여론이 비등할 때도 계속 그를 감싸다 1월 23일에야 박 전 보좌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때도 청와대는 "박기영 보좌관이 공식 업무 수행에 지장을 느껴 사표를 제출해와 본인의 뜻을 존중해서 처리하게 됐다"며 표면적으로는 '박 전 보좌관이 잘못한 것도 없고 청와대도 책임을 물을 의사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박 전 보좌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순천대로 복직했다.
  
  노 대통령은 박 전 보좌관뿐만 아니라 황우석 사태에 책임이 큰 다른 이들에게도 '면죄부'를 줬다. 정부 내의 비공식적인 황우석 박사 지원모임 '황금박쥐'의 핵심 멤버였던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총리 하마평에 오르다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제 교육 부총리 임명의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또 다른 '황금박쥐'의 멤버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다 낙선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심지어 1월 사의를 표명한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에게도 "아주 폭넓은 안목, 강한 비전과 추진력을 가지고 과학 행정을 이끌어주신 오명 장관님께 감사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명 전 장관이야말로 황 박사 감싸기에 앞장섰으며 검증 안 된 연구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 부은 당사자인데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말인가?
  
  '황우석'에 감전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황우석 사태에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황우석 띄우기'에 나섰던 사건의 핵심 당사자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2월 10일 황우석 박사의 실험실을 처음 방문하면서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 느꼈다", "동북아 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실히 발견했다", "감동에 몸이 떨릴 만큼 감전됐다"는 극찬을 늘어놓으며 황 박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말 많던 '최고과학자 연구지원 사업'을 만들어 황 박사를 지원하기로 한 것도 바로 그의 아이디어였다. 박기영 전 보좌관은 2005년 4월 25일 청와대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에서 "최고과학자 연구지원 사업은 노 대통령이 처음 제안했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위해 아이디어도 직접 말해 줬다"며 "황 박사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노 대통령"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2005년 10월 19일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해 간 연설 원고 내용까지 즉석에서 수정해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 가지 논란이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은 압권이었다. 오죽하면 이 발언에 대해 한 원로 생명윤리학자가 "한국이 야만국임을 세계에 알린 망언"이라고 개탄했겠는가?
  
  노 대통령은 더 나아가 진실을 가리려는 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했던 12월 5일 '이만 덮자'는 식의 진실 은폐를 위한 선동까지 감행했던 셈이다. 이미 한 주일 전인 2005년 11월 28일 <PD수첩>의 취재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던 김형태 변호사가 김병준 전 정책실장을 만나 관련 내용을 전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노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발언을 했는지 그 속사정이 궁금할 따름이다.
  
  "죄송합니다", 말하기가 그렇게 어렵나?
  
  노무현 대통령의 '긴 침묵'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비롯됐다. 박기영 전 보좌관, 김병준 전 정책실장, 오명 전 과기부 장관 등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것도, 선뜻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논평을 할 수 없었던 것도 본인의 '원죄'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 스스로 '황우석 띄우기'에 앞장선 마당에 그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겠는가?
  
  이제 '망각의 마술'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난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다시 한 번 분명이 말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죄송합니다" 하는 사죄가 먼저고 그 다음에 교훈을 언급해야 했다.
  
  노 대통령은 틈만 나면 일본 측에 과거사와 관련해 진정한 사과와 그에 합당한 실천을 요구해 왔다. 왜 노 대통령은 일본에게 그토록 당당히 요구해 온 일을 본인은 실천하지 않는 것일까? 평소 역사와 대화를 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다는 노 대통령이 '무능'한 데에다 '거짓말'에도 능했던 지도자로 기억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노 대통령은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해야 할 발언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수순이 틀리면 모든 것이 잘못되는 법이다. 이것만은 결코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니다.

   
 
  강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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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7-02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만이 아니라 다른 관료들이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황우석을 지지했던 사람들치고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을 못봤다.
(마***님은 예외 ... ^^;;;)

waits 2006-07-02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강양구 기자님, NO 대통령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군요...;;;

balmas 2006-07-02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사과를 하든 안하든 어쨌든 이런 얘기를 한번은 해줘야죠. 사실은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서 속이 시원합니다. ^-^

중퇴전문 2006-07-02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사 문제와 황우석-노무현 문제는 사건의 주체와 현재 시점에서의 진행 여부가 좀 다른 문제겠죠. 서울 한복판에 사창가를 용인하면서 일군 위안부를 윤리적으로 비난할 자격이 있냐는 식으로 묻는 일본의 우익과 한국의 일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처럼요. 본문의 주제와는 벗어난 지적이지만, 기사 후반부에서 무리하게 대비를 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waits 2006-07-02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훌륭한 발마스님, 반어법이었사와요..^^;;;
요즘 '침묵과 열광' 보고서 강양구 기자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몇 있길래..ㅎㅎ

balmas 2006-07-02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퇴전문님/ 흐흐, 그런가요? 강 기자는 아마도 수사법적으로 강한 대조 효과를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겠죠.^^
나어릴때님/ ㅎㅎㅎ 그러셨군요.

딸기 2006-07-0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은 죄송하다 말하기가 어려운게 아니라 죄송하다는 마음이 진짜로 하나도 없는 듯해요. 모든 일에서요.

로드무비 2006-07-0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일 괘씸한 게 이 부분이랍니다.
석연치 않고.

balmas 2006-07-02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대통령이 되려면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
로드무비님/ 두 말하면 입 아프죠, 진짜.
 

 

 

<대안연대칼럼>

 

'탈정치'와 '정치과잉'

 

진보진영에 정치 프로그램의 공개를 제안한다

 
20여년전 '열혈학생'이던 시절, 집안 제사가 끝나면 으레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필자였다. 전두환, 이순자에 대해 온갖 독설로 시작되는 필자의 정치선동(?)은 "너는 공부는 안 하고 웬 정치에만 그렇게 관심이 많으냐"는 어른들의 지청구를 듣고서야 마무리되곤 했다.

조합원은 탈정치, 조합간부는 과잉정치

▲ 이해관 전 KT노조 부위원장. 
ⓒ 매일노동뉴스
20년이 지난 오늘날, 그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요즘 제사를 마치면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집안 어른들이시다. 물론 노무현 정권에 대한 성토 일색이다. 서로 앞다투어 한마디씩 들은 비난과 험담을 옮기시는데. 그 내용이란 차마 글로 옮기기에 너무도 민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북한에 너무 퍼줘서 남한 경제가 어려워졌다’, ‘좌파정권이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해서 경제가 붕괴되고 있다’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노무현 정권의 잘못은 잘못이고 울컥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런 심경을 알고 계신지 집안 어른들이 필자를 챙기신다. “그래도 우리 집안에서는 정치하면 네가 전문가인데, 너는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냐?” 그럴 때 필자의 난감한 답변. "저 정치에 관심 없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여년전, 필자가 전두환 독재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끌어내기 위해 학생운동에 대한 온갖 집안 어른들의 비판을 수용했듯 지금은 어른들이 그렇게 하신다. 20여년전, 집안 어른들이 ‘학생들이 화염병 던지는 행동은 너무 과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라도 하시면 필자는 매우 겸손한 태도로 ‘학생운동도 잘못하는 게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나라가 잘 되려면 전두환이를 하루 빨리 끌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대화로 전두환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이끌었다.

그러한 정치적 역할도 이제는 집안 어른들의 몫이 되었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너무나 부패한 집단 아니냐’며 필자가 한마디 하면 집안 어른들이 거꾸로 ‘맞다, 한나라당 문제다, 하지만 나라가 잘 되려면 노무현이가 하루 빨리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유도한다. 20년만에 필자는 집안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반전두환 전선의 정치적 견인 주체에서 반노무현 전선의 견인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것이 지난 20년 필자가 주변에서 가장 가깝게 느끼는 정치의 변화다. 5·31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달이 넘었다. 도대체 지금의 결과가 정치적으로 노동운동의 패배인가 승리인가! 우리는 그런 정치적 평가조차 못하고 있는 반면, 현실에서 대중의 정치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압승의 결과는 지역주의의 부활도, 박근혜 피습에 따른 어부지리도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어설픈 개혁에 실망한 정치의식이 부족한 대중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온 수구정당의 어이없는 승리도 아니다. 수구세력들이 신자유주의 양극화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의 민심 이반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반노무현정권 정치투쟁을 전개한 데 따른 승리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속에서 대중은, 특히 빈곤에 시달리는 하층 대중의 생활상의 좌절과 분노는 높아져 왔다. 그리고 그러한 불만이 기존의 신자유주의 하에서 완화되거나 체제 내로 수렴되지 못함에 따라 계속 정치적 방향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대중의 정치화를 초래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정치화된 대중을 결집하며 일관된 정치투쟁을 전개한 것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이었다. 동네 노인정에서 탄핵 지지 서명운동에 이어 행정수도 반대 서명운동이 전개될 정도로 대중의 정치화는 진전되고 있었지만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이러한 대중의 정치화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대중의 생활상의 불만이 정치화로 진전되는 동안 진보진영은 정치를 의회감시운동, 사법감시운동 등의 권력감시와 이른바 실현가능한 정책 대안이라는 이름의 의회주의적 정책경쟁으로, 그리고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노동운동가들의 공직 진출 정도로 퇴보시켜 왔다. 그래서 대중의 정치적 결집은 표 모으기와 당 후원금 확보의 문제로 치환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외형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져 의회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는 데 성공하고 민주노총과 산하 연맹들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가 보장되었지만, 노동운동이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해내는 능력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대중의 탈정치화를 동반한 노동의 정치세력화로 귀결된 것이다.

당신의 정치 방안을 떳떳하게 호소하라!

한편, 이러한 대중과의 관계에서 탈정치화와 정반대로 활동가 사이에서는 과잉정치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입만 열면 좌파니 우파니 세력을 나누는 데 활동가들은 익숙해져 있다. 당의 별 시시껄렁한 이야기조차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정치 이슈로 비약되기 일쑤다. 이러한 대중적 탈정치화와 활동가 수준의 과잉정치가 빚어낸 운동질서가 바로 정파 갈등과 '쪽수'를 통한 의사결정이다.

대중의 탈정치화로 대중적 정치 토론이 실종되면 될수록 활동가들의 과잉정치화에 따른 정파 간 패권 다툼은 심화되었고, 그 귀결은 사안을 가릴 것 없이 표결에 의한 의사결정, 즉 '쪽수' 대결이었다. 노동운동의 의사결정이 정치토론이 아닌 '쪽수' 대결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대중의 정치화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 노동운동이 해야 할 것은 제대로 된 정치논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즉 지금의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초래하는 위기에 대한 정치논쟁을 대중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노동운동 내 일각에서 20년 민주화운동의 귀결이 파시즘의 복귀로 나타날 우려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무능함이 파시즘을 부를 가능성은 매우 현실적 우려를 자아낼 만하며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동지들은 은연중 김근태씨를 포함한 개혁진보연합 세력을 결집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고민들을 ‘개량주의’라는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동지들은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이러한 정치프로그램을 대중에게 제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이러한 노선에 반대하는 동지들도 더이상 뒷골목에서 ‘운동 내 특정세력이 김근태랑 손을 잡을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당이 쪼개질 것’이라는 문제제기만 할 게 아니라 지금의 위기에 대한 운동진영의 정치 프로그램을 제출해야 한다. 87년 투쟁으로 형성된 정치질서가 개헌논의와 정계개편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드는 현실에서 노동운동이 취해야 할 정치전술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출했으면 한다.

신자유주의로 촉발된 위기는 대중의 정치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정세적 긴박감과 무관한 일반화된 정치세력화 경로는 아무런 대중적 호소력이 없다. 그저 열심히 지역에서 발로 뛰자는 주장은 사실상 진보정치를 포기하자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치열하게 진행될 개헌 논쟁과 정계개편은 단지 부르주아 내부의 권력 다툼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심화되는 대중의 분노의 정치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 정치 위기에 대한 진보진영의 해답이 대중적으로 제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대중적 정치토의의 부활에 기초한 대중의 정치화 과정일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승리야말로 진보진영의 정치 위기에 대한 무능력의 귀결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 진보진영에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이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위기에 대한 정치적 타개책을 대중적으로 논쟁하는 것이다. 이 정치 위기를 노동자 대중의 변혁적 정치세력화의 기회로 만들려고 한다면, 이 위기를 남 탓을 통해 자기 정파의 정당화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 모두 각자가 준비한 정치위기의 해법을 대중적으로 제출하자.

각자의 준비된 해법이 대중적 논쟁으로 발전 할 때 노동운동 위기의 대안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설지 모를 일이다.
 
이해관  
     
2006-06-30 오후 1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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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7-02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자유주의로 촉발된 위기는 대중의 정치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정세적 긴박감과 무관한 일반화된 정치세력화 경로는 아무런 대중적 호소력이 없다. 그저 열심히 지역에서 발로 뛰자는 주장은 사실상 진보정치를 포기하자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경청할 만한 제안이다.

waits 2006-07-02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청할 만한 제안이지만, 이 글 역시 어떤 방도를 생각하는지는 없는 것 같아 아쉽네요. 다들 자기 인생 바친 사람들이라 그런지, 쪽수투쟁이나 정치토론이나 목숨 걸고 갈라설 것 같은데... 전 같은 사무실에 있는 생협 보면서(강고한 '소비자' 정체성과 연대를 걸친 이기주의는 별롭니다만;;;) 차라리 그들처럼 마을모임 같은 거 일주일에 한 번씩 하면서 설득하는 거라도 해야되는 거 아닐까 싶어 한숨이 나오더라구요.

balmas 2006-07-02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이런 제안을 내놓고, 분위기를 보자는 거겠죠. 뭐 나름대로 어떤 방안 같은
것도 있을 텐데요, 아마도 응수타진이겠죠. ^^;
 

사회화와노동
2006.06.30 |316호

저출산ㆍ고령화 위기담론은 민중의 의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야기한 사회위기의 본질


…신자유주의 시대 성장잠재력의 확충이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포함한 투기의 활성화와 노동유연화라고 했을 때,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과제가 민중의 요구와 부합될 수 있는 것인가. 우선, 출산율 저하가 왜 문제가 되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분명히 하자. 우선, 출산에 대한 회피는 여성에게 이중적 억압을 제공해온 가족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며, 일차적으로 여성을 우선해고대상, 비정규직으로 삼아 공격해온 노동유연화의 파괴적 결과이다. 여성이 출산을 하지 않는 절대적인 이유는 자녀양육의 경제적 부담과 소득ㆍ고용의 불안정 문제로 드러난다. 출산을 기피하고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남성가구주 빈곤가구 비율의 두 배에 달하는 여성빈곤가구주율과 배우자가 있을 때 100%, 없을 때 136%에 달하는 여성 빈곤율을 보아도 그렇다. 가부장제와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가족과 남성 생계부양자에 의존하게 하는 한편, 노동자들을 ‘바닥을 향한 경주’에 몰아넣는 촉진 매개로 기능하게 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은 ? ㅓⅠ냘?과정에서 여성인력활용방안과 가족강화정책을 임금 억제와 사회 위기 책임의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배세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민족 단위의 인구집단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국민적 의무로 포장하면서 출산을 기피하고 가족을 거부하는 현상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운운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은 이미 소득수준이 하락하고 있는 가정을 지탱하고 지극히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여성들을 남김없이 쥐어짜겠다는 것이다. 또한 ‘저출산ㆍ고령화’ 위기 담론은 고령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 역대 정권의 억압적 출산억제정책과 의료 기술의 발전, 평균 수명 연장 등이 원인이 된 고령화 문제는 이를 해결할 사회정책의 부재와 공백을 드러내는 요소일 따름이다. 고령화의 진정한 문제는 노인이 가난하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의 노동을 통해 스스로 혹은 공동체가 노후를 보장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고령화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 정부와 각 기업의 접근법은 노인대상서비스의 확대, 이른바 실버산업의 활성화나, 역모기지론의 도입 등 각종 빈곤층과 무관한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실제로 노인층을 부양할 노동자민중의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성이 이에 호응하기 어려울뿐더러 가족 위기 상황과 노인인구 전반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문제를 정부는 미래사회의 일인당 노인부양인구가 늘고 있다는 인식에서 노인 일자리 확대정책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 각 계층, 계급을 분절화 하여 상대적 취약계층을 일차적인 목표물로 지정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이 노인인구를 빗겨갈 것이라 사고한다면 오산이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노인 일자리 창출과 출산 장려 정책이라는 쌍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심화되는 빈곤을 개별가족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또, 고령화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출산률 제고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미래사회에 대한 ‘투자’라는 과제에 구성원들의 재생산에 대한 선택의 권리, 노동의 권리를 종속시키겠다는 엄포에 불과한 것이다.…[자세히]


사회진보연대 7월 집중 행동 제안


[자세히보기]


7월 1일(토) - 7월 8일(토) 여름 빈민현장활동 (* 사회진보연대는 6-7일 일정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참가 문의는 011-763-1669)

7월 1일(토) 한미 FTA 저지 활동가 토론회 (15:00, 대학로 서울대 보건대학원)

7월 5일(수) - 6일(목) 한미 FTA 저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

7월 5일(수) - 9일(일) 평택평화순례(* 사회진보연대는 5일, 8일 일정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참가 문의는 016-363-5825)

7월 11일(화) 한미 FTA 저지 총궐기투쟁 전야제 (19:00, 장소 미정)

7월 12일(수) 한미 FTA 저지 2차 범국민대회 (14:00) (* 사회진보연대는 12일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참가문의는 016-655-9674)

7월 13일(목) 한미 FTA 5적 규탄 대회

7월 14일(금) 한미 FTA 2차 본협상 결과 규탄 집회

7월 22일(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4차 범국민대회 (가안)





한미 FTA 관련 자료 총정리

지금까지 한미 FTA와 관련하여 각계 각층에서 제출된 자료를 총정리해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연결가능한 자료는 링크를 걸어놓았으니 바로 내려받으시면 됩니다.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하도록 하겠습니다. 널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회진보연대
http://www.pssp.org | pssp@jinbo.net
(140-801)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48 신성빌딩 4층
TEL:02-778-4001~2 | FAX:02-778-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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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님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singular라는 말은 자연/신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말이죠. 그것은 자연 사물들,

유한한 실재들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입니다.

스피노자가 신에 대해 적용하는 단어로는 "unicus", 곧 "유일한"이라는 게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신의 유일성, 유일한 신 등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유일하다"는 말은 아주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대략 두 가지 

방식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모델의 여러 가지 사례, 또는 표본에 대해

이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 우표는 지구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우표다"

라고 말할 때, 이런 의미로 쓸 수 있겠죠. 이 경우에 이 우표의 유일성은 우표의 본성에서

따라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우연적인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이 우표는 본성상

유일한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원인들의 결과(다른 우표들은 모두 화재로 불타

버렸다든가 하는)로 유일한 것이죠. 

반면에 신 또는 자연의 유일성은 신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결과, 또는

스피노자 자신의 용어법대로 하면 "특성"(proprietas)으로서의 유일성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유일성"이라는 것은 그밖의 다른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 다시 말해

또다른 신, 또다른 자연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유일성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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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6-06-30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내가 미친 건가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 같아요^^ 착각인가

balmas 2006-06-3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니 미치긴 왜 미치십니까?
잘 이해하셨을 것 같은데 ... ^^;;
 

 

 

[특별 좌담] ‘월드컵 유령’을 잡고 흔들다

월드컵을 어찌할 것인가, 활동가 5인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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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석진 
결국 한국 축구팀이 월드컵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뜨거웠던 월드컵에 대한 전국민적 열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16강 진출이 좌절되자마자 급격히 식어버렸다. ‘축구와 월드컵을 사랑한다’던 그 많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버린 것일까. 이제야말로 수준급의 전세계적인 축구 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는 판인데 사람들이 떠난 광장은 휑하기만 하다. 광화문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던 온갖 월드컵 상징 조형물들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어색하게 자리잡고 있고 대형 빌딩들을 가리고 있던 붉은 색 대형 현수막들은 서울 한복판의 ‘붉은 깃발(적기)’만큼이나 ‘쌩뚱맞다’.

그렇지만 이대로 순순히 2006년 월드컵을 놓아줄 수 없다는 활동가 몇 명이 모였다. 월드컵은 2010년에도 또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쏟아지는 월드컵에 대한 문제점들에 동의하긴 했지만, 어떤 이는 월드컵에 대한 화려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했고 또 어떤 이는 축구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한편 어떤 이는 ‘자신은 축구에 일말의 관심도 없노라’고 ‘용기내어 고백’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그들. 그들이 모여 월드컵에 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 월드컵, 기억, 현재

(용석) 어렸을 때부터 월드컵 진짜 좋아했어요. 98년 월드컵 때에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만날 거리에서 뛰어놀았어요.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 때에는 완전히 무관심했고, 올해엔 문화연대와 함께 월드컵에 문제제기하는 캠페인을 했어요.
완 - 축구를 사랑하고, 월드컵 기간 중 집나간 이성을 찾으러 다니기도 했던 문화연대 활동가
(완) 나도 월드컵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90년 월드컵도 거의 다 봤어요.
(용석) 그 때가 언제였지?
(완) 초등학생. 86년 월드컵도 기억나요. 원래는 유로2000을 좋아했는데 당시엔 할 일이 없어서 모든 경기를 다 보며 전력분석표까지 그리고…. 하하하. 2002년 월드컵 때엔 군대에 갈까 말까 하던 중이었는데 티셔츠 장사를 했어요. (“돈 좀 벌었다면서요?”) 허허. 그땐 지금처럼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사회 분위기가 달라서였을 수도 있고…. 근데 올해엔 적극적으로 월드컵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였어요. ‘월드컵 기간 집나간 이성을 찾습니다’와 같은 캠페인 스티커도 붙이고 각 방송국의 월드컵 ‘도배’ 방송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조직하기도 했죠.
(꽃맘) 2002년까지는 월드컵이라는 게 내 사고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붉은악마가 ‘난리를 치면서’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죠. 여성들이 월드컵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다고 봐요.
(재훈) ‘이중적 자아’ 외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축구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태국 킹스컵, 박정희가 만든 한국의 박스컵 등 간혹 새벽에 축구를 하기도 했는데 그 때부터 잠을 안자고 볼 정도로 축구를 아주 좋아했어요.
(경내) 2002년 월드컵 때에는 당시 국제민주연대에 있으면서 축구공 꿰매는 아동노동 관련캠페인도 하지 않았어요?
(재훈) 그러면서 밤에는 월드컵 보고…. 하하하.
(꽃맘) 이제까지 살면서 축구를 딱 한 번 해봤어요. 여자와 남자가 짝지어서 손잡고 하는 짝축구.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손에 이끌려서…. 진짜 재미없었어요.
(경내) 난 이제까지 살면서 축구를 딱 두 번 해봤어요. 농활 가서 마을 청년들과 축구를 했었는데 재밌었어요. 내 기억 속에 축구는 항상 북한과의 경기, 일본과의 경기처럼 국위 선양, 국력을 과시하는 장으로서의 경기들로만 뜨문뜨문 채워져 있어요.
(재훈) 3년 동안 조기축구를 했었는데, 축구라는 운동 자체에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축구는 11명이 다 같이 하는데 발이 맞는다 싶은 순간이 있어요.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패스를 잘 해서 골로 연결되고 그러면 희열 같은 게 느껴지죠. 그 때 같이 축구를 했던 동네 형님들은 붉은악마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이었어요. 그거 다 미디어에서 조장하는 거 아니냐, 우리는 아무도 안 알아줄 때 축구장 지켰다….
(완) 한국사회에서 남자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축구일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성들은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죠. 2002년 월드컵 때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게 됐는데 여성들은 축구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퇴행적으로 김남일의 터프한 모습 같은 것들에 더 열광한 거죠.


# ‘무서운 월드컵’, 실체를 파고들다

(완) 월드컵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세계화의 대표적 표상과도 같은 월드컵이라는 창을 통해서 자본의 세계화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죠.
(용석) 세계화 자체가 다 그렇긴 하지만 월드컵은 더 그런 것 같아요. 모든 나라의 우수한 선수들은 다 유럽에 가서 뛰어야 하고 잘 하는 나라도 다 유럽이고 다른 운동에 비해 유독 백인이 더 활약하는 것도 사실이고…. 월드컵은 특히 유럽-백인 중심적인 것이 있죠.
(완) 월드컵이 98년 이후에 급팽창하게 된 이유는 그때부터 미국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이거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 것 같아요.
(경내) 원래 월드컵이 유럽, 남미 중심인데 그야말로 ‘월드’컵이 되기 위해서 지역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아시아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하고 다음 월드컵도 아프리카에서 하잖아요. 축구와 함께 자본이 전세계적 시장을 개척하면서 ‘월드’컵이 되어가고 있는 거죠. 월드컵은 세계화의 한 표상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 속에서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철저히 공명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국가 대항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흡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상품과 월드컵을 조금 더 다르게 보게 만드는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재훈) 축구를 좋아하고 월드컵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월드컵 문제가 과연 축구 때문이냐는 반론이 있는 것 같아요. 성차별.백인중심주의.기독교 중심관.서구 중심 등 세상이 다 그런데, 축구가 그런 것들을 조장하고 더 촉진시키는 게 아니라 세계가 원래 그렇기 때문에 축구에 반영되는 것일 뿐이라는 식으로….
용석 - 축구도 야구도 좋아하지만 강요만 하는 국가는 싫어하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용석) 자본주의에 살면서 그렇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마는 월드컵이 가장 심한 것 같기는 해요. 효과적으로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퍼뜨리죠. 축구 잘하는 나라들, 진짜 나쁜 나라들 아니에요? 하지만 보는 순간에는 나쁘다는 게 잊혀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정부를 그렇게 싫어하다가도 축구경기를 볼 때엔 또 한국에 열광하게 되죠. 견제해야 할 국가가 친숙하고 착한 모습으로 다가와요. 굉장히 효과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들을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시키고 있죠. 그래서 월드컵이 무서워요.
(꽃맘) 국가라는 건 그 자체가 남성이고 축구도 남성, 표상하는 것도 남성이에요. 남성으로 표상되는 축구에 여성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월드컵의 태생이나 이런 것들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월드컵이 국가주의, 애국주의 등 남성적인 모습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에 반대하는 거예요. 어느 스포츠는 안 그렇겠냐마는 축구가 더 심하죠. 지금도 ‘어떻게 이 대화에 끼어들까’하는 고민이 들어요. 축구나 월드컵 그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이 없는 거죠.
(경내) 월드컵은 국가주의를 연습시키는 장이기도 하고 그 힘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월드컵이 단지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가 아니라 실제로는 4년 내내 준비하는 거대한 시스템 아닐까요.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기간을 고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월드컵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좀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발언하면 찍힌다?

(경내) 월드컵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단지 해석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가 고민이 돼요.
(완) 대부분의 사회단체들이 월드컵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을 저어하는 게 여전히 있는 것 같아요. 월드컵이란 게 한국 사회에서 큰 규정력을 갖고 있는데도 왜 사회단체들은 대응을 하지 않는지, 그걸 분석해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모두가 월드컵에 대해 발언해야 하는 건 아니래도.
재훈 - 조기축구회 회원으로 다음 월드컵 땐 전혀 다른 해설을 해보고 싶다는 ‘경계를 넘어’ 활동가
(재훈) 한국에서는 전체주의가 가장 큰 문제 아닐까요. 월드컵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데도 관심을 가질 것을 조장하고, 다른 목소리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고, 24시간 내내 미디어에서는 월드컵 이야기만 하고…. 국민들의 상당수가 월드컵에 빠져들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한 대안을 내놓고 각자 어떠한 입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완) 월드컵이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상업자본의 마케팅 장이다…, 이런 거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 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너무 모범적이고 추상적인 답을 내놓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 않을까요. 개인은 수없이 많은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원칙들만 갖고서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죠. 다른 한편으로 운동단체 역시도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히기를 원하지 않는 곳도 있어서 입장 내놓기를 어려워 하고….
(꽃맘) 월드컵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지 실천적인 방법이 안 보여요. 어떠한 실천이 가능할까?
(용석) ‘월드컵은 이것이다’라고 하나로 정의내리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월드컵은 누구에겐 국가주의의 첨병이고 누구에겐 축제의 장이고 또 누군가에겐 거대한 시장일 수 있는데…. 월드컵에 대해 거대하게만 생각하기보다는 월드컵을 자기 일상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 거리응원과 붉은악마, 그 이면의 진실

(경내) 또 다른 한편으로는 월드컵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아직까지 합의된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속에서 헷갈리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 같고. 지금까지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도 이런 데 있지 않을까요?
(완) ‘2002년을 살아서 건너오지 못한 운동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현상’을 지지하면서 ‘살아 건너오지 못한’ 거죠. 문화연대 내에도 살아 건너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월드컵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변화의 기점인 것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부족했기 때문에 붕 떠버린 것 같아요. 좀 더 세분화되고 자기 관점에 기반한 논쟁이 필요해요.
(재훈) 월드컵과 여성의 관계를 살펴보면, 여성들 자체가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거리응원을 보면 실제로 상당수가 여성들이죠. 제 어머니도 호나우지뉴 팬인데 호나우지뉴를 보며 “쟤 이빨 정말 귀엽지 않냐”는 식의 농담도 하세요. 하하하. 축구는 전쟁과 가장 유사한 형태인데 여성들이 어떻게 이런 영역에 대해 열광하고 젖어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져볼 만하겠죠.
꽃맘 - 축구에 대해 전혀 관심은 없지만 월드컵과 여성주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활동가
(꽃맘) 여성들이 축구나 운동 전반에 대해서 접근하기 힘든 조건들이 있었죠. 사회화 과정도 그렇고…. 2002년 이후 온 국민이 열광하는 상황에서 여성들도 열광하게 되었지만 여성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하는가에 대해서는 다르게 봐야할 거라고 생각해요. 방송국에서는 응원할 때 예쁜 여자들만 앞에 내세워서 잘 보이게 하죠. 일종의 ‘섹스심벌’처럼. 오히려 여성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고 운동을 하면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방식은 뭘까...이런 게 개발되어야 한다고 봐요.
(완) 실제로 프랑스전 끝나고 붉은악마들의 심각한 공격성이 드러나기도 했죠. 당시 서울 일부에서 ‘차 강간놀이’라는 게 유행했는데, 차 위에서 선동을 하는 사람이 ‘저 차 잡아라’라고 하면 군중들이 차 위에 올라가고 흔들고…. 차 안에 있는 사람은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죠. 또 성추행, 성폭력 사건이 많이 발생했고…. ‘훌리건과 붉은악마는 다르다’고 그렇게 강조했지만 결국 다른 게 없잖아요?
(경내) 2002년 당시 한신대에서 사회학 하는 김종엽 씨 해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더라구요. 2002년에는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에게 도덕적 계몽이 끊임없이 이뤄지기도 했고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주최국 시민이 갖춰야 할 자세를 외부에 보여주는 게 시급했기 때문에 흔히 응원문화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이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었다는 건데…. 이젠 4년 만에 ‘아시아의 프라이드’가 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틈새들이 열리면서 일상에 존재했던 폭력성이 응원공간에서도 좀더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죠. 앞으로는 더 커지겠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조차 월드컵에 맞춰서 태극기 그리기 시키고 꼭지점 댄스 연습시키고 그러면서 어린이들에게 국가주의 학습이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교육과정에 대한 개입이 필요해요.
(꽃맘) 붉은악마들의 응원문화에는 그동안 억눌려있었던 여성들의 욕망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할 수도, 여행을 할 수도, 외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억눌림의 분출구가 된 거죠.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되어 있던 여성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속에서 응원문화가 있었죠.
(경내) 맞아요. 하지만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뛰어나온 것이 남성과 동일한 욕구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여성에게 거리는 위험한 곳, 사회적 성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스쳐지나가는 공간에 불과했었죠. 그런데 그 거리로 여성들이 나오는 건 하나의 시민으로서 시민성(시민됨의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열광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또 여성들이 실제 축구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제한된 ‘재미’라는 것에 길들여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죠. 탄탄한 근육질의 남성들이 초스피드하게 치고 빠지는 경기가 주는 마력 같은 거…. 최고의 운동 엘리트들의 재간에 빠져들게 되고 거기에 몰입하게 되는 거죠. 그게 감성으로는 재미지만, 그 재미 속에 강요되고 정당화되는 질서라는 것에도 주목해야 해요. 단지 국가주의,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더 능력있는 사람들을 뽑아다가 스타로 만드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거니까. 더 많은 엘리트선수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축구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식의 성과주의적인 욕망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것 역시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용석) 그런 성과주의적인 욕망은 한국이 특히 심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일상이 축제같고 즐겁다면 무언가 하나에 그렇게 열광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재훈) 축제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인데 팍팍한 일상에 찌들어 있는 곳일수록 축제의 의미가 있죠. 마치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처럼. 축제가 일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잠시나마 일상의 문제들을 잊고 한번쯤은 즐기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겠죠. 그것을 월드컵이 제공해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예요. 문화연대의 이번 ‘월드컵 반대 캠페인’ 활동이 정치적으로는 맞지만, 놀 때 너무 이성적으로 놀면 재미없지 않아요? 실제로 축제를 할 때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데 재미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고 봐요. 너무나 엄격한 도덕적, 계몽적 잣대를 갖고 현상을 정답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봐요. 그래도 2002년에 비해서는 사람들이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고 보는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들이 사람들 내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 ‘월드컵 반대운동’을 상상한다

경내 - 붉은 물결 속 생동하는 국가주의와 폭력성이 몹시도 불편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경내) 월드컵에 이런 면도 있다, 월드컵 때문에 이런 사안들이 묻힌다 등과 같은 이면에 대한 반대를 넘어 월드컵 자체에 대한 반대 운동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육식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하고 채식이라는 실천을 통해 대량사육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재훈) 나는 도덕적, 정치적으로 옳은 것만 남은 무균실과 같은 사회를 바라지는 않아요. 월드컵과 축구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지만 월드컵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갈등을 했죠. 축구를 좋아하지만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까 축구를 이대로 봐도 될지….
(완) ‘월드컵 반대’와 같은 슬로건만으론 별로 의미없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실천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겠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입장에 대해 물어봐요. 너는 월드컵에 반대하는 것이냐…. 반대냐 아니냐 하는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월드컵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면을 알려내고 조직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슬로건과 같은 입장으로써 조직되는 게 아니라 월드컵의 다양한 측면을 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과의 일치를 통해 동의를 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용석) 정치적인 구호로 월드컵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천적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완) 2006년을 거치면서 영국의 경우는 공중파 방송 편성 비율을 경우에 따라 정부가 통제하기도 해요. 우리나라에선 거의 하루 종일 월드컵 방송을 했는데 영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또 옥외광고도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공공장소에서 광고를 안볼 수 있는 권리도 있는 거니까. 이런 것들도 운동으로 추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재훈) 다음 월드컵 땐 거리응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월드컵에 반대하는 사람들,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아동노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될 수 있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 되면 좋겠네요.
(경내) 소수자들은 월드컵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겠어요. 응원과정에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그나마 올해 사회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응원 속에 온 국민이 하나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걸 설득력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용석) ‘월드컵과 병역거부’와 같은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네요.
(경내) 그러한 문제들이 단체에서 조직적으로 제기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다음 2010년 월드컵 때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인권오름 제 10 호 [입력] 2006년06월28일 9: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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