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01일 (수)
제 2646 호
발행처 : 인권운동사랑방

 

평준화 해체하면 종교의 자유 보장?

'국회인권포럼', 사립학교 '권리' 지키느라 학생 '인권'은 뒷전

강의석 학생으로부터 시작된 '학내 종교의 자유 보장'에 대한 논의가 '평준화 해체' 논의로 둔갑해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인권포럼'이 '사립학교와 종교의 자유'라는 주제로 31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개최한 토론회가 바로 그것.

이번 토론회의 주 발제를 한 손봉호(전 서울대 사범대 교수) 씨는 "자신은 이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토론을 원활히 하기 위해 발제를 준비했다"며 토론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어서였을까. 손 씨는 '종교재단에 의해 설립된 사립학교에서 계속되어 왔던 종교의 자유 침해 행위'에 대한 논의를 뒤로한 채 다짜고짜 '평준화 해체'가 그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손 씨는 "시민사회에서 궁극적으로 '개인'이 종교나 교육 등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여 입학하게 되는 기독교 사립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예배 참석을 강요해도 문제가 될 수 없다"며 평준화 정책에 책임을 돌렸다. 또한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학교 예배나 종교과목에 대한 강력한 거부가 공식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없었던 것은 기독교학교가 '예배 참석을 의무화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리 사회가 묵시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배경내 활동가는 "평준화에 대한 논의는 집이 무너져 사람이 깔려죽게 생겼는데 사람을 구할 생각은 안하고 새로운 설계도면을 내미는 것과 같다"며 "고통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지금 당장 보장할 수 있는 방안부터 논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배 활동가는 "사립학교 내 종교교육의 권리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며 "종교교육을 원하는 학생에 한해 교육을 실시하고 그 시간에 다른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체 교과를 개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대 송기춘 법학과 교수도 "종교의례참석을 강요하는 것은 거짓고백을 강요하는 것으로 결국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꼴"이라며 "'평준화 해체'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종교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다른 생각과 다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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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9-0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봉호 교수는 깨끗한 생활과 곧은 성품으로 주위의 많은 사람들한테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는데, 사회적 쟁점들에 관해서는 차라리 침묵하고 있는 편이 낫겠다 싶은 때가 많더군요.

심상이최고야 2004-09-0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내 종교의 자유 보장을 평준화 해제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참 어의 없네요. 평준화 해제를 통해 나타날 그 많은 부작용들은 생각지 못하나 봅니다. 안타까워요. ㅜ.ㅜ

balmas 2004-09-0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상이 좀 ... 그렇죠??
보수적인 사람들 중에는 과거 비평준화 시절의 명문 전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평준화 해제에 대한 집요한 요구는, 그런 향수병과, 기득권 유지와 강화를 원하는 엘리트 집단들의 욕구가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겠죠. 위의 주장도 결국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상이 아닌가 합니다.
 
 전출처 : 바람구두 > <한국의 출판기획자>(5)시인 최승호

출판코너를 채우기 위해 그간 나름대로 찾다보니 "문화일보"에서 괜찮은 기획을 진행했었더군요. 기획 제목은 "한국의 출판기획자를 찾아서"인데, 출판에 있어 기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을 겁니다. 책을 구해 읽다보면 작게는 단행본 한 권의 기획, 크게는 총서나 전집과 같은 시리즈 기획물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편집을 "선택과 배제"의 원칙에 따른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는 직접 글을 써서 자신의 의중을 전할 때도 있지만 이렇듯 "선택과 배제"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의중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 현대 출판 100여년의 역사에서 '기획'은 가장 뒤늦게 발견된 분야이기도 합니다. 70년대말에야 비로소 기획자란 이들이 등장한 셈이니까요. 많은 이들이 나름대로 기획이 무엇인가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기획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이 시리즈를 읽다보면 저절로 문리가 트이지 않을까 하는 궁리를 하면서 새로운 시리즈의 퍼 나르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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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출판기획자>(5)시인 최승호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kr 
 
“편집자는 인연을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경우 어떤 기획을 할때 옆에서 도움을 준 좋은 인연이 참 많았어요. 내가 한 것은 시점의 선택 정도라고 할까요.”

시인 최승호(47)씨는 출판기획자로서 자신의 모든 공로를 함께 일한 선·후배 등 주변의 동료들에게 돌렸다. 출판계에서 이미 그의 기획으로 소문난 작품들에 대해서도 동료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자신이 이들에게서 받은 도움에 감사해할 뿐이었다. 반면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듣고(이재룡 숭실대교수) 후배 편집자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켜준 ‘큰 스님’ 같은 분(함정임 전 세계사 편집장)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 편집자 최승호는 대단히 낯설게 보일 수 있다. 이는 최승호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가 한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한 것은 혼자 있는 명상의 시간과 시를 쓰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불안과 갈등 때문이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편집자로서의 정체성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그러나 “시인보다 기획자쪽에 가깝다고 생각될 정도로 출판기획자로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겼다”(정홍수 문학동네 편집장)는 평가를 받을 만큼 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기획물을 많이 내놓았던 것이 또한 바로 그였다.

무엇보다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편집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와 함께 일했던 후배 편집자들이 지금 우리 출판계를 이끌고 있는 전문편집자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최승호씨가 출판기획자로서 가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영준 전 민음사 주간, 박상순 민음사 주간,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정홍수 문학동네 편집장, 함정임 전 세계사 편집장, 이상희 전 고려원 편집장 등 이른바 ‘최승호 사단’으로 불리는 면면을 보면 그로부터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편집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출판계의 평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강원도 정선과 사북 등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던 최씨는 82년 4월19일 민음사가 공모한 제6회 ‘오늘의 작가상’에 ‘대설주의보’외 49편의 시를 응모한 뒤, 교직 의무연한이 끝나는 4월30일 사표를 던지고 서울로 올라온다. 그때부터 ‘전업 시인’인 동시에 출판기획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해 5월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최씨가 직장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박맹호 민음사 사장과 심사위원이었던 김우창·유종호·최인훈 씨 등이 상의 끝에 홍성사에 소개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금성출판사에서 몇달간 아동학습백과 만드는 일을 하다가 춘천으로 내려갔던 그는 다시 서울에 올라와 1년 정도 KBS 출판부에서 단행본 교정을 맡기도 했다.

최씨가 기획편집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85년부터 3년반 남짓 고려원에서 편집주간을 맡으면서부터. 잡지 창간을 유달리 많이 했다는 그의 경력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춘천교대 시절 은사였던 이승훈 한양대교수와 함께 창간한 계간 ‘현대시사상’을 통해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인들의 작품과 외국 시론 등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현대시사상’외에 세계사의 계간 ‘작가세계’와 민음사의 ‘민음동화’, 현재 일하고 있는 환경운동연합의 계간 ‘함께 사는 길’ 등이 그가 참여해 만든 대표적인 잡지들이다.

이중에서 88년 최씨가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만든 세계사에서 89년 창간한 ‘작가세계’는 매호 선정된 국내작가 1명을 특집으로 집중조명하는 방식을 통해 화제가 됐던 기획이다. 현재 거의 모든 문예지들이 이같은 포맷을 흉내내고 있을 정도다. 세계사의 경영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90년을 전후해 1년 정도 머물렀던 민음사에서 창간한 ‘민음동화’는 비록 단명에 그쳤지만 민음사의 자회사로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비룡소가 만들어진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교와 선(禪)의 대중화에 기여한 고려원의 ‘다르마 총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리즈로 평가받았다. 나중에 세계사의 ‘마음글방’시리즈로도 연결된 데서 알 수 있듯 시세계나 출판기획자로서의 최씨의 경우 불교를 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외모나 행동거지, 말투를 보면 가사만 안입었을 뿐 구도의 길을 걷는 선승(禪僧)을 생각나게 할 정도다.

75년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할 당시부터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시인에게 불교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여러 출판사에서 불교 관련 총서를 출간하고 있지만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신도가 아닌 일반대중의 욕구까지 충족시켜주는 기획물이란 전무했던 점에서 ‘마조어록’‘임제록’‘조론’‘장자’ 등 선사어록과 경전류를 한글세대가 친숙하게 읽을 수 있게 풀어낸 ‘다르마 총서’는 해인사 장경각에서 나온 ‘선림고경총서’등 이후 출간된 유사한 시리즈들의 전범이 됐다.

최씨는 당시 해인사 성철스님의 문도에게 불교책 출판의 중흥을 위해 종파를 초월한 큰 출판사를 만들어 같이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할 정도로 이 분야에 애정이 컸다.

최씨의 기획은 당시 출판기업을 지향하고 있었던 고려원이 문학적 향기를 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작가 박영한·조성기·이윤기씨등의 작품이 최씨의 기획으로 고려원에서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기업적 풍토에 잘 적응못한다는 평가도 있으나 고려원 시절 홍성유의 장편소설 ‘인생극장’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않자 ‘장군의 아들’로 제목을 바꿔 베스트셀러로 만든 일화가 출판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대중적인 출판감각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출판기획의 본령은 세계사 시절 ‘세계사시인선’이나 프랑스·독일의 외국문학 번역을 통해 보여준 안목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00권을 돌파한 ‘세계사시인선’은 최씨가 기획을 맡았던 초창기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인들의 작품을 출간하면서 창작과비평사·민음사·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들과 비교될 정도의 성가를 얻었다. 이연주·김언희·이수명·성미정·박상순 등이 ‘세계사시인선’을 통해 발굴된 대표적인 시인들이다. 불문학자인 이재룡 숭실대교수와 함께 르 클레지오, 장 필립 투생 등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프랑스 소설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것도 우리 문학계를 풍요롭게 한 기획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승호 사단으로 분류되는 후배 편집자들 가운데서도 박상순·정은숙씨는 최씨가 발굴하고 키운 대표적인 사람에 속한다.출판인으로서 양식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최씨는 작품이 좋으면 책이 안팔려도 출판해야 한다는 소신을 보여줬다. 박상순씨에게 북디자이너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데서 알 수 있듯 최씨는 작가나 작품을 보는 안목뿐 아니라 책의 디자인이나 장정, 광고카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후배 편집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출판기획자로서 선·후배 작가를 예우하고 후배 편집자들을 격려하는데 언제나 한결같고 빈틈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현재 환경운동연합에서 스스로 자기 월급을 깎아가며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선승(禪僧) 같은 그의 몸가짐이다.


출처: 문화일보 200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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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을산 > 마립간님께 - 2

마립간님,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어제 오후는 다른 일로 차분히 글을 읽거나 쓸 수가 없어서 답글이 늦어졌습니다.

1. 우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저는 토론이라는 것은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상대방과 생각을 교류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거나 상대를 나의 생각과 같게 교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이나 수학의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명백하게 진위를 밝혀낸다는 것이 무척 어렵고, 그 주제가 ‘가치’와 관계될 때에는 하나의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런 생각을 언어라는 도구로 소통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구요.

2. 제가 지난 번 마립간님의 글에 답글을 단 이유는 ‘이타적인 행위’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이타적인 행위는, 즉 좀더 큰 ‘우리’를 위한 행위의 필요성에 의해 우리 본성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2.1 사회생물학

사회생물학 논쟁을 촉발시킨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보면, 윌슨은 ‘이타주의’에 책의 한 chapter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타적인 행위는 한 개체에는 불리하지만 인간이라는 공동체에는 이익이 되고, 이 때문에 실재로는 이타적인 것도 이기적인 본성의 발로라고 합니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장과 주부가 가족을 위해 일하느라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 국가가 위기에 놓였을 때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현재에도 한 개체의 희생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확대하는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2.2 종교와 본성.

세계의 주요 종교들을 볼 때, 그 가르침에서 이른바 ‘원시 종교’와 다른 주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 그것도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입니다.

악의 퇴치와 기복의 차원을 넘어선,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 자신의 깨달음을 중생들과 나눈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이런 이타적인 메시지는 작은 공동체보다 더 보편적인 인류 차원의 포용을 가르치는데, 이것이 인류 역사에 뿌리내렸다는 것은 이런 메시지에 공명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설사, 제국의 성립시기에 부족적인 기복을 넘어서는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에 의해 선택된 종교라 하더라도, 그 메시지에는 분명 보편성이 있고, 우리에게는 그 메시지에 공명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3.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문명을 이루게 된 주요 요인으로 - 불의 발견 이외에 - 농경의 시작과, 레비 스트로스가 지적했듯이 ‘근친결혼 금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의 공통된 특징이 미래를 위해 당장의 이익을 유보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마립간님께서 예로 들으신 모아새 뿐 아니라 많은 생물들을 멸종하게 한 우를 범한 반면, 농경과 가축을 발명해 냈습니다. 즉, 식량이 되는 식물과 동물을 지금 베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잘 익을때까지 기다리는 것, 당장의 식량이 부족하더라도 내년의 농사를 위해 열매의 일부를 남겨 겨울을 나는 것은 인간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입니다.

사회에 성적 도덕이 문란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배우자 이외의 대상에 대한 성적 욕망을 억제하고, 특히 가까운 친족간의 결혼을 금기로 하는 것은 어떤 미개한 부족사회를 가더라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인간사회의 특징입니다. 이 역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당장의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사회와 종족의 보존에 더 유리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숙제나 공부 같은것, 물론 밀리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현재의 노동력을 공부에 투자함으로써 미래의 더 큰 생산성을 바라보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미래의 이익을 위해 당장의 욕망 혹은 이익을 보류하는 인간의 특성에서 나오는 인간의 독특한 행위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두고 농경을 발전시킨 면을 볼 것인지, 동물들을 멸종시킨 면을 볼 것인지,
교육이라는 문화를 볼 것인지, 아니면 숙제와 공부를 미루는 심리를 볼 것인지,
결혼과 근친결혼 금기를 볼 것인지, 아니면 문란한 성도덕과 범죄행위를 볼것인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공중도덕의 존재를 중시할 것인지, 새치기 하는 사람의 존재를 중시할 것인지에는 각자의 시각차가 있겠습니다.

단, 앞부분의 특성을 무시했을 때, 인간이 인간으로서 현재와 같은 문명을 건설할 수 없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인간의 도덕성은 더 강하게 진화가 될 것인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인간들이 현재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현재의 시스템으로 얼마나 더 문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다고 봅니다.

4.1 의사 결정 과정의 문제

인간은 인간 역사의 90% 이상을 부족사회로 지내왔습니다. 부족 단위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의사 결정 과정이 비교적 공정하고, 빈부격차도 크지 않습니다. 집단 내의 동질성도 큽니다. 그런데 인류가 점점 큰 단위의 공동체와 국가를 이루어 살게 되면서 집단 내의 동질성도 떨어지고, 의사결정 과정이 상층부의 권력계층에 집중되게 됩니다.

이런 새로운 변화에 의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로 사람들은 민주주의니, 사회주의니, 대의제니, 대표 소환제, 지방자치제, 이익집단의 등장 등, 점차 정교한 사회 시스템을 고안해 왔습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개인이나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대중’으로서의 의사결정이 매우 미숙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기적인 비젼을 제시하고 이끌 지도자는 키워지지 않고, 그때그때의 여론에 정치가 휩쓸리는, 그리고 그것을 잘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편, 의사 결정의 문제에서, 한 지역의 현안울 결정할 때 그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배재한 채, 중앙정부에서 밀어붙이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새만금 간척사업, 부안의 원전폐기물 저장소 건설 문제, 천성산 공사 문제 등은 그 사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당사자의 의견을 소외시켰기 때문에 부작용이 컸습니다. 필요한 일은 진행하되, NIMBY 현상을 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아직 우리는 고안해내지 못했습니다.

4.2 인간의 얼굴을 한 시스템

부족시대에는 부족원들의 친족관계도 동질성이 있었고, 사회의 빈부격차가 있어도 한 공동체 내에서 소외되어 죽어가는데 한쪽에서는 그런 계층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채, 혹은 알더라도 무시한 채 지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했다고 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이 없도록 시스템을 복원해야 합니다. 최소한 인간적인 삶과 죽음을 영유할 수 있는 사회는 그 수혜자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갈등과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도 줄일 수 있습니다.

계층간의 언어와 세계관과 가치관이 요즘처럼 갈라지고 갈등이 커지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데 이런 일이 오히려 심화되는 것은 시스템이 거대화 되어가면서 ‘인간적인’ 면을 잃어가기 때문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보지 않고 ‘자본가’와 ‘노동자'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으로, ’빨갱이‘와 ’보수 꼴통‘으로 보면 인간적인 면을 잃어가는 겁니다.

이제는 ‘발전’이라는 단어의 뜻을 ‘인간의 얼굴’을 찾아가는 것과 동의어로 바꾸었으면 합니다.

4.3 자본주의, 그 경쟁력!

이런 사회와 시스템의 물적 바탕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입니다.

금년 초(2월 9일)에 올린 페이퍼 “발자국 - 북방계와 남방계 - 오늘날은?” 에 설명한 대로, 현재의 경제사회체제는 인간이 가장 살기 좋은 체제라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가장 경쟁력이 있는 체제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분명히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장경제가 인류의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한 바가 크고, 원시부족사회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주객이 전도된 듯 합니다. 인간의 생명보다도 자본의 이익과 특허권이 존중되고 있고, 수백 수천년 한 곳에서 살아온 부족이 지구 반대편에서 사는 기업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납니다. 분명히 재생가능한 에너지체제가 실현 가능한데도, 석유/자동차 산업계와 원자력 산업의 로비가 더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체제를 이루면서도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삼켜지지 않을 대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실천으로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한 개인이나 집단, 심지어 몇몇 국가의 힘으로도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제연합이나 WTO 등의 초국적 시스템을 만들었던 인류이니만큼, 초국적 대안운동도 가능하기를 희망합니다.

5. 그간의 마립간님의 글에서 보수적 - 아버지의 원리 - 사고가 지배하는 것은 익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종교적으로 개신교이신 것과 일맥 상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신교에도 상당히 진보적인 분들도 많습니다만.... )

분석적 사고는 타고난 것일 것이고, 종교는 어려서 주어진 것이든지, 본인의 선택이겠지요.

개신교에 따라 보수적 원리를 따른다기보다는 마립간님의 보수적인 성향이 개신교를 선택하게 했고, 개신교의 성향이 그 보수성을 강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선택해 주셨다’고 하시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립간님의 과학적, 분석적 사고의 틀과 개신교는 어쩐지 묘한 부조화를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 아직 종교 - 개신교 - 가 마립간님의 분석적 사고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의외입니다.

6. 자발적 가난과 녹색당..... ^^ 먼 길을 돌고돌아 의외로 또 일치점이 생기는군요.

저도 지속가능한 인류의 문명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재화의 생산과 소비에 바탕을 두지 않은 가치관과 사회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정치적 성향도 - 원래 회색분자라 자처하지만 - 굳이 정당을 선택하자면 녹색당에 가깝습니다.

글이 좀 길어졌네요.

서늘한 밤입니다. 평안하세요.


가을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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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프랑스 책을 싸게 구하는 노하우를 질문하셨는데, ㅎㅎ
이렇게 좋은 정보를 공짜로 얻으려고 하시다니요???^^

제가 프랑스 책을 구입할 때 자주 이용하던 서점은
"Furet du Nord"라는 프랑스 릴(Lille)시의 서점에서 개설한 인터넷 서점으로,
주소는 www.furet.lalibrairie.com입니다.
이 서점은 다른 프랑스 인터넷 서점들과 달리 배송료가 10유로(원화로 하면 14,000원 가량)로 정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권을 주문하든 백권을 주문하든 똑같이 10유로를 받습니다. 그래서 저같이 책을 매달 여러권씩 사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리하지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제는 이 서점을 이용하기가 좀 어려울 듯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존 같은 데 책을 주문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다른 인터넷 서점들은 주문과정 및 결제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서점의 주문시스템, 특히 결제 시스템은 문제가 많아서 에러가 자주 발생합니다. 특히 문제는 국가를 입력할 때 아무리 "남한Coree du Sud"라고 입력해도, 서점측에서 받아볼 때는 "France"라고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국가주소가 잘못 나오게 되면, 주문한 책이 무사히 모두 입고되어 결제를 마치고 발송을 해도, 당연히 결국 서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주문은 취소가 됩니다.

그러면 원래 주문했던 금액은 이미 카드결제가 다 끝난 상태여서, 최상의 경우 다음달에 카드로 다시 상환되거나, 아니면 나쁜 경우에는 프랑스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가 집으로 날아옵니다. 이렇게 수표가 오면 현금으로 바꾸는 절차도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은행 수수료를 별도로 물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손해지요. 제가 이 서점과 거래한지가 벌써 5년 정도 되는데, 이전에 몇번 이런 문제가 있어서 석달만에 주문한 책이 도착하는 경우들도 있었고, 수표를 받은 적도 몇번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점에 대해 벌써 이메일로 여러번 지적을 했고, 전화도 한번 한 적이 있는데, 전혀 시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얼마전에는 그 서점에서 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제는 이 서점과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서점에서 몇 번 주문해보려고 했던 다른 후배들은 위에서 말한 국가입력의 문제점 때문에 계속 주문취소가 돼서, 결국 책을 주문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책을 구입하는 최선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듯합니다. 첫째는 영우무역(http://www.book24.co.kr)이라는 회사를 통해 구입하는 방법입니다. 이 회사는 프랑스와 독일 서적을 전문 수입해서 판매하는 회사인데, 개인 주문도 수시로 받고 있습니다. 한 권이든 열권이든 원하는 대로 주문할 수 있는데, 다만 1유로당 환율을 정상적인 경우보다 10-20% 정도 더 받는 것으로 알고 있고, 배송료는 3천원 정도 되는 것 같더군요. 기간은 4-6주 정도 걸리고, 구하기 힘든 책은 2달 정도 지나야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고판 책 같은 경우는 이 회사를 통해 구입하는 게 아마존 프랑스 등을 통해 구입하는 것보다 더 싼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아마존 프랑스를 통해 구입하는 방법입니다. 아시다시피 아마존 프랑스는 기본 배송료 외에 권당 배송료를 받지만, 대신 모든 책을 10% 할인해주지요. 그래서 좀 가격이 비싼 책들은 아마존 프랑스를 통해 구입하면, 상대적으로 배송료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몇 군데 서점들이 더 있는데, 다 비슷비슷한 배송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프랑스인들의 불친절 때문에 불쾌감을 덜 가질 수 있는 아마존 프랑스를 선택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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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보안법 폐지는 '보수'의 과제다

[손석춘 칼럼] 진보-보수 대결로 호도말라

 

국가보안법. 보수와 진보의 '한 판'이란다. 부자신문의 부추김이다. 심지어 학자라는 자들까지 거든다. 폐지 주장을 빨갛게 물들이는 작태를 서슴지 않는다. 윤똑똑이들은 부르댄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정반대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없애야 옳다. 누가 뭐래도 민주주의란 사회 구성원들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밑절미를 둔 까닭이다. 표현의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조차 없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있다. 바로 그 점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진보의 과제가 아니다. 보수세력이 나서야 마땅한 숙제이다.

더러는 남북대치 상황을 든다. 하지만 그 또한 억지다.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다. 한국의 보수적 법조인들이 존경하는 초대 대법원장이 있다. 누구인가. 가인 김병로. 그는 한민당 창당에 깊숙이 관여한 만큼 누구도 그를 진보로 분류하지 않는다. 가인은 1953년 4월에 형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초안을 내놓으며 말했다.

"특수한 법률로 국가보안법 혹은 비상조치법, 이러한 것이 국회에서 임시로 제정하신 줄 안다. 지금 와서는 그러한 다기다난 한 것을 다 없애고 이 형법만 가지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 또는 장래를 전망하면서 능히 우리 형벌법의 목적을 달할 수가 있겠다는 고려를 해보았다. 지금 국가보안법이 제일 중요한 대상인데, 이 형법과 대조해 검토해 볼 때 형에 가서 다소 경중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이 형법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지 않는가 하는 그 정도까지 생각했다."

가인의 생각은 분명했다. 실제로 형법 여러 조문에 내란죄와 외환죄, 공안을 해하는 죄를 포괄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살아남았다. 그 명분도 차라리 순진했다. "전시의 치안 상태 및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이었다.

그랬다. 보수주의자 가인 김병로의 발언이 나온 것은 '전쟁 상황'(1953년 4월)에서다. 자칭 보수주의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도 이 지점이다. 가인. 그가 진보인가. 더구나 지금이 과연 '전시'인가. 가인이 살았던 시대와 전혀 다르지 않은가.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마치 나라가 결딴날 듯 떠드는 자들이 있다. 저들이 반세기 넘도록 초·중등 교육에 신문과 방송으로 '세뇌'한 결과 적잖은 구성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여론 조작'에 나선 부라퀴들에게 찬찬히 들려주자. 그것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요, 민주시민에 대한 모욕이다.

더러는 '민주주의론'으로 밀리는 탓인지 '시장 경제론'까지 들먹인다. 이 또한 희극이다. 시장경제의 논리를 존중한다면, 당연히 사상도 시장에 맡겨야 하지 않은가.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법만이 아니다. '사상의 시장'을 제한하는 법이다. 그래서다. 과연 이 땅에 참다운 보수는 있는가. 거듭 묻고 싶은 까닭은.

물론 이 땅의 보수세력을 애도하며 이미 장송가('한국보수주의의 장송곡' 2004년 1월 14일)를 불렀기에 부질없는 질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회' 아닌가. 가인 김병로에서 끊어진 보수세력이 부활을 선언할 수 있는.

그래서다. 저질연극판을 벌이는 수구정당의 정치모리배들이나 수구언론인, 그리고 그들에 부닐고 있는 '먹물'들은 그렇다고 치자.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개정론과 대체입법론 따위가 흘러나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저들이 국가보안법 논쟁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몰아가는 깜냥은 무엇일까. 케케묵은 악령을 내세워 기득권을 '사수'하고 싶어서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빨갛게 색깔을 덧칠할 속셈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국가보안법은 더더욱 폐지해야 옳다. 정권은 물론이고 국회에 과반의석을 지니고도 그 '보수의 숙제'조차 풀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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