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한국의 출판기획자>(5)시인 최승호

출판코너를 채우기 위해 그간 나름대로 찾다보니 "문화일보"에서 괜찮은 기획을 진행했었더군요. 기획 제목은 "한국의 출판기획자를 찾아서"인데, 출판에 있어 기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을 겁니다. 책을 구해 읽다보면 작게는 단행본 한 권의 기획, 크게는 총서나 전집과 같은 시리즈 기획물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편집을 "선택과 배제"의 원칙에 따른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는 직접 글을 써서 자신의 의중을 전할 때도 있지만 이렇듯 "선택과 배제"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의중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 현대 출판 100여년의 역사에서 '기획'은 가장 뒤늦게 발견된 분야이기도 합니다. 70년대말에야 비로소 기획자란 이들이 등장한 셈이니까요. 많은 이들이 나름대로 기획이 무엇인가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기획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이 시리즈를 읽다보면 저절로 문리가 트이지 않을까 하는 궁리를 하면서 새로운 시리즈의 퍼 나르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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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출판기획자>(5)시인 최승호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kr 
 
“편집자는 인연을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경우 어떤 기획을 할때 옆에서 도움을 준 좋은 인연이 참 많았어요. 내가 한 것은 시점의 선택 정도라고 할까요.”

시인 최승호(47)씨는 출판기획자로서 자신의 모든 공로를 함께 일한 선·후배 등 주변의 동료들에게 돌렸다. 출판계에서 이미 그의 기획으로 소문난 작품들에 대해서도 동료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자신이 이들에게서 받은 도움에 감사해할 뿐이었다. 반면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듣고(이재룡 숭실대교수) 후배 편집자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켜준 ‘큰 스님’ 같은 분(함정임 전 세계사 편집장)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 편집자 최승호는 대단히 낯설게 보일 수 있다. 이는 최승호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가 한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한 것은 혼자 있는 명상의 시간과 시를 쓰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불안과 갈등 때문이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편집자로서의 정체성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그러나 “시인보다 기획자쪽에 가깝다고 생각될 정도로 출판기획자로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겼다”(정홍수 문학동네 편집장)는 평가를 받을 만큼 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기획물을 많이 내놓았던 것이 또한 바로 그였다.

무엇보다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편집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와 함께 일했던 후배 편집자들이 지금 우리 출판계를 이끌고 있는 전문편집자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최승호씨가 출판기획자로서 가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영준 전 민음사 주간, 박상순 민음사 주간,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정홍수 문학동네 편집장, 함정임 전 세계사 편집장, 이상희 전 고려원 편집장 등 이른바 ‘최승호 사단’으로 불리는 면면을 보면 그로부터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편집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출판계의 평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강원도 정선과 사북 등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던 최씨는 82년 4월19일 민음사가 공모한 제6회 ‘오늘의 작가상’에 ‘대설주의보’외 49편의 시를 응모한 뒤, 교직 의무연한이 끝나는 4월30일 사표를 던지고 서울로 올라온다. 그때부터 ‘전업 시인’인 동시에 출판기획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해 5월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최씨가 직장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박맹호 민음사 사장과 심사위원이었던 김우창·유종호·최인훈 씨 등이 상의 끝에 홍성사에 소개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금성출판사에서 몇달간 아동학습백과 만드는 일을 하다가 춘천으로 내려갔던 그는 다시 서울에 올라와 1년 정도 KBS 출판부에서 단행본 교정을 맡기도 했다.

최씨가 기획편집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85년부터 3년반 남짓 고려원에서 편집주간을 맡으면서부터. 잡지 창간을 유달리 많이 했다는 그의 경력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춘천교대 시절 은사였던 이승훈 한양대교수와 함께 창간한 계간 ‘현대시사상’을 통해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인들의 작품과 외국 시론 등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현대시사상’외에 세계사의 계간 ‘작가세계’와 민음사의 ‘민음동화’, 현재 일하고 있는 환경운동연합의 계간 ‘함께 사는 길’ 등이 그가 참여해 만든 대표적인 잡지들이다.

이중에서 88년 최씨가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만든 세계사에서 89년 창간한 ‘작가세계’는 매호 선정된 국내작가 1명을 특집으로 집중조명하는 방식을 통해 화제가 됐던 기획이다. 현재 거의 모든 문예지들이 이같은 포맷을 흉내내고 있을 정도다. 세계사의 경영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90년을 전후해 1년 정도 머물렀던 민음사에서 창간한 ‘민음동화’는 비록 단명에 그쳤지만 민음사의 자회사로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비룡소가 만들어진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교와 선(禪)의 대중화에 기여한 고려원의 ‘다르마 총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리즈로 평가받았다. 나중에 세계사의 ‘마음글방’시리즈로도 연결된 데서 알 수 있듯 시세계나 출판기획자로서의 최씨의 경우 불교를 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외모나 행동거지, 말투를 보면 가사만 안입었을 뿐 구도의 길을 걷는 선승(禪僧)을 생각나게 할 정도다.

75년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할 당시부터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시인에게 불교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여러 출판사에서 불교 관련 총서를 출간하고 있지만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신도가 아닌 일반대중의 욕구까지 충족시켜주는 기획물이란 전무했던 점에서 ‘마조어록’‘임제록’‘조론’‘장자’ 등 선사어록과 경전류를 한글세대가 친숙하게 읽을 수 있게 풀어낸 ‘다르마 총서’는 해인사 장경각에서 나온 ‘선림고경총서’등 이후 출간된 유사한 시리즈들의 전범이 됐다.

최씨는 당시 해인사 성철스님의 문도에게 불교책 출판의 중흥을 위해 종파를 초월한 큰 출판사를 만들어 같이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할 정도로 이 분야에 애정이 컸다.

최씨의 기획은 당시 출판기업을 지향하고 있었던 고려원이 문학적 향기를 내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작가 박영한·조성기·이윤기씨등의 작품이 최씨의 기획으로 고려원에서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기업적 풍토에 잘 적응못한다는 평가도 있으나 고려원 시절 홍성유의 장편소설 ‘인생극장’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않자 ‘장군의 아들’로 제목을 바꿔 베스트셀러로 만든 일화가 출판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대중적인 출판감각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출판기획의 본령은 세계사 시절 ‘세계사시인선’이나 프랑스·독일의 외국문학 번역을 통해 보여준 안목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00권을 돌파한 ‘세계사시인선’은 최씨가 기획을 맡았던 초창기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인들의 작품을 출간하면서 창작과비평사·민음사·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들과 비교될 정도의 성가를 얻었다. 이연주·김언희·이수명·성미정·박상순 등이 ‘세계사시인선’을 통해 발굴된 대표적인 시인들이다. 불문학자인 이재룡 숭실대교수와 함께 르 클레지오, 장 필립 투생 등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프랑스 소설가들의 작품을 소개한 것도 우리 문학계를 풍요롭게 한 기획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승호 사단으로 분류되는 후배 편집자들 가운데서도 박상순·정은숙씨는 최씨가 발굴하고 키운 대표적인 사람에 속한다.출판인으로서 양식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최씨는 작품이 좋으면 책이 안팔려도 출판해야 한다는 소신을 보여줬다. 박상순씨에게 북디자이너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데서 알 수 있듯 최씨는 작가나 작품을 보는 안목뿐 아니라 책의 디자인이나 장정, 광고카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후배 편집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출판기획자로서 선·후배 작가를 예우하고 후배 편집자들을 격려하는데 언제나 한결같고 빈틈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현재 환경운동연합에서 스스로 자기 월급을 깎아가며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선승(禪僧) 같은 그의 몸가짐이다.


출처: 문화일보 200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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