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노부후사 >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 이해영

[시론]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경향신문 2004-10-25 17:42] 

 

〈이해영 한신대 국제평화인권대학원장〉

 

자신의 안전을 타인에게 의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말한 이는 마키아벨리다. 그래서 스스로의 안전을 스스로가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위험’하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되새김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 대선의 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 때문이다.

 

부시와 케리 중 누가 우리에게 더 나은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조건이 계속된다면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하는 데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조건 가운데 역시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안전을 타인, 곧 미국에 의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는 현실, 바로 그것이 ‘위험한 사회’ 한국의 존재조건이다.

 

부시=전쟁’ ‘케리=평화’식의 사고 역시, 너무 단순한 현실인식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북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 ‘대화’를 시작한 것은 아버지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었고, 이 문제로 북폭을 계획한 것은 우습게도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었다. 더군다나 1999년 북한 대포동미사일을 놓고 벌어진 위기상황에서 재차 북폭론이 제기되었을 때, 여기에 반대한 사람은 미 네오콘의 우두머리 울포위츠였다. 그가 보기에도 북폭은 한반도의 전면전을 불러올 것이고, 그것은 완전한 파멸을 의미할 뿐이다.

 

- ‘부시냐, 케리냐’ 무의미 -

 

9·11 이후 미국 외교노선을 네오콘이 쥐락펴락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오래전부터 이라크전쟁을 디자인해 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 민주당내 계파 중 이른바 ‘리버럴 매파’는 사실상 네오콘과 별 차이가 없다. 또 민주당 케리와 에드워즈 모두 이라크전쟁을 지지하고 있고, 심지어 케리는 이스라엘의 극우 리쿠드당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네오콘의 전략은 전쟁이라기보다 소위 ‘공격적 봉쇄’이다. 쉽게 말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에는 ‘때려 죽이기’를 택했다면, 북의 김정일 정권에는 ‘굶겨 죽이기’ 전략을 펴겠다는 말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의 어린이들이 플루토늄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전법은 최근 ‘북한인권법’으로 구체화되었고, 그 기본발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네오콘이 주장해 온 그대로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쟁쪽으로 기울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북한의 결사적 버티기와 남한의 부전(不戰)의지가 확고하다면 그 가능성은 실상 높지 않다. 더군다나 갈수록 인플레되고 있는 북의 핵무기는 우습게도 그 자체가 전쟁억지 요인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물론 과장되기는 했지만 북이 ‘정말’ 핵을 갖고 있고, 유사시 그것을 사용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인간에게 알려진, 최대로 효과적인 권력자원은 바로 공포이다.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한 것도 실은 그 깊숙한 데에 미국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고, 북의 핵도 사실은 대미 공포의 결과물이다. 부시건 케리건 남과 북 모두에 대해 공포의 국제정치를 구사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가 그 뚜렷한 실체를 증명하기 어려운 전쟁 공포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미국은 아마 곶감 빼먹듯 ‘실리’를 챙길 것이다.

 

- 美에 의탁 한국상황이 문제 -

 

물론 여기에는 영어가 국교(國敎)가 되고, 친미는 정책을 넘어 중독이 되어버린 바로 그 국내적 조건이 중요하다. 한·미간 경제현안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빼먹을 실리의 리스트는 이미 공개되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투자협정(BIT), 농산물, 자동차, 스크린쿼터, 반도체, 지적재산권 등. 공포를 바탕에 깔고 한손에 북핵, 다른 손에 실리, 여기에 우리 외교관료의 무능함이 가미된다면 나는 그것을 ‘망할 쾌’라고 본다.

 

어떤 현명한 이가 말하길, 미국은 우리의 팔을 비틀더라도 아주 부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라 했다. 팔이 비틀리더라도 견뎌낼 맷집을 키우면서, 여태껏 미국이 대신해준 그런 국제정치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국제 ‘정치’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큰집 제사상만 바라보다가는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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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에릭 로메르 회고전

에릭 로메르 회고전
(Eric Romher Retrospective)
감독 : Eric Romher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공연시간 및 요금
일정 : 2004/10/22 ~ 2004/11/04         1회 11:20 2회 1:40 3회 4:00 4회 6:20 5회 8:40 (11월 1,2일 4회,5회 상영없음)

작품소개
동숭아트센터"하이퍼텍 나다"와 시네마테크 부산, 광주극장은 현존하는 누벨바그의 거장이자 성찰적인 심미주의자 에릭 로메르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영화제를 개최합니다.1959년 장편영화 <사자자리 Signe du lion>로 감독 데뷔 후 2004년 <삼중 스파이 Triple Agent>에 이르기까지 약 45년에 이르는 활동 기간 동안 총 51편(단편·TV 제작물 포함)의 작품을 발표한 로메르는 프랑스 영화의 질적인 변화와 새로운 영화의 도래를 이끌었던 누벨바그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영화세계를 창조해냈고, 20세기 최후의 대가 감독이자 최후의 누벨바그라고 알려질 만큼 현재까지 가장 지속적으로 누벨바그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감독입니다.

"마음의 풍경을 사려 깊게 담아낸 영화철학자"

이번 에릭 로메르 회고전에서는 감독으로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매김 시킨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포함해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도덕이야기’ 연작 6편과 80년대부터 일상의 낯익은 격언을 토대로 삶의 교훈을 전하는 ‘희극과 격언’ 시리즈,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생을 반추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계절 이야기’ 연작, 2001년과 2004년에 발표한 최근작 <영국여인과 공작>과 <삼중 스파이> 등 로메르의 대표작 총 17편이 소개됩니다. 발자크, 스탕달, 헨리 제임스 등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에릭 로메르의 작품을 통해 오랜 프랑스 영화의 전통과 품격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에릭 로메르 회고전] 10월 22일~11월 4일
일반 7,000원/회원 3,500원/연장회원만 동반 1인 1,000원 할인
작품: 총17편 - 몽소 빵집의 소녀(26분),수잔느의 경력(52분),수집가(90분),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10분),여름 이야기(113분),오후의 연정(95분),해변의 폴린느(94분),아름다운 결혼(97분)녹색 광선(90분),봄 이야기(112분),겨울 이야기(114분),클레르의 무릎(105분),가을 이야기(110분),영국 여인과 공작(125분),보름달이 뜨는 밤(102분),내 친구의 남자친구(102분),삼중 스파이(115분)
*** 에릭 로메르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7편 중 16mm는 2편으로, <녹색광선>과 <해변의 폴린느>입니다.
*** 수잔느의 경력,녹색광선,보름달이 뜨는 밤,영국 여인과 공작,여름 이야기,가을 이야기 - 6편의 영화는 영어 자막이 있습니다.

10월 22일(금)
11:2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1:40 수집가/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여름 이야기/ 8:40 오후의 연정

10월 23일(토)
11:20 해변의 폴린느/1:40 아름다운 결혼/4:00 녹색 광선/6:20 봄 이야기/
8:40 겨울이야기

10월 24일(일)
11:20 클레르의 무릎/1:40 가을 이야기/4:00 영국 여인과 공작 /
6:20 보름달이 뜨는 밤/8:40 내 친구의 남자친구

10월 25일(월)
11:20 삼중 스파이/1:4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4:00 해변의 폴린느/
6:20 여름 이야기/8:40 수집가

10월 26일(화)
11:20 아름다운 결혼/1:4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4:00 가을 이야기/6:20 녹색광선
8:40 영국여인과 공작

10월 27일(수)
11:20 클레르의 무릎/1:40 봄 이야기/4:00 보름달이 뜨는 밤/6:20 오후의 연정
8:40 삼중 스파이

10월 28일(목)
11:20 겨울이야기/1:40 내 친구의 남자친구/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8:40 아름다운 결혼

10월 29일(금)
11:20 봄 이야기/1:40 해변의 폴린느/4:00 수집가/6:20 영국 여인과 공작
8:40 여름 이야기

10월 30일(토)
11:20 클레르의 무릎/1:40 보름달이 뜨는 밤/4:00 겨울 이야기/
6:40 내 친구의 남자친구/ 8:40 녹색광선

10월 31일(일)
11:20 오후의 연정/1:40 삼중 스파이/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아름다운 결혼 /8:40 봄 이야기

11월 1일(월)
11:20 가을 이야기/1:40 영국 여인과 공작/4:0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
6:20 봄 이야기 /8:40 오후의 연정

11월 2일(화)
11:20 수집가/1:40 녹색 광선
6:20 해변의 폴린느 /8:40 여름 이야기

11월 3일(수)
11:20 삼중스파이/1:40 내 친구의 남자친구/4:00 클레르의 무릎/
6:20 보름달이 뜨는 밤 /8:40 겨울 이야기

11월 4일(목)
11:20 여름 이야기/1:40 오후의 연정/4:00 가을 이야기/6:2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8:40 클레르의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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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20세기, 야만의 얼굴을 한 평화 - 국지전

20세기 세계의 국지전 그 뿌리와 결과
-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중심으로
 
글쓴이 :  바람구두

*이 글은 제가 지난 2002년 계간 황해문화 봄호(통권34호) 특집 "전쟁없는 21세기를 위하여"에 총론 성격의 글로 쓴 글입니다. 책을 보시면 실명을 확인하실 수 있겠지만... 구태여 이곳에 실명으로 올릴 필요는 없을 듯 해서요. 6-7회 정도로 나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세기, 야만의 얼굴을 한 평화 - 국지전
 
  전쟁을 기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정된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이라는 국지전의 사전적 정의에 맞게 지역별로 대표적인 국지전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전 -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 베트남전

  추축국 동맹의 일원이었던 일본의 패망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확고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은 중국에서 장개석을 지원함으로써 공산당의 정권 장악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의 막대한 물량 지원에도 불구하고 제2차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1949년 중국 본토를 장악하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고 패전국 일본을 재건해 아시아의 군사·경제적 거점으로 삼고자 한다. 미국은 한국전쟁(1950-1953)이 발발하자 1951년 서둘러 일본과 안보조약을 맺고 승전국으로서의 배상 취득을 포기하고, 일본의 반성 없는 주권 회복을 인정한다.

  이후 미국의 일본을 이용한 중국 봉쇄 정책은 현재 일본의 재무장화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의 전략적 패배와 1949년 소련의 핵폭탄 실험 성공은 미국의 냉전적 사고에 더욱 불을 당겨 50년대 초에는 미국 전역을 매카시즘이라는 마녀사냥에 휩싸이게 한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는 베트남 지역을 전후에도 지속적으로 통치하고자 한다. 앞서 베트남 민족지도자 호치민의 편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베트남의 민족지도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통해 그들의 독립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기대를 품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호치민을 비롯한 베트남의 반제민족해방 세력은 프랑스 식민정부와 연합하여 일본에 대항했다.
 
  1945년 3월 9일 일본은 베트남에서 불편한 공존관계를 지속하던 프랑스 식민정부와의 관계를 끊고 무력으로 이들을 굴복시켰다. 80년간 계속되던 프랑스의 식민통치가 잠시나마 종결되었으나 일본은 베트남에서 자신들을 대리할 세력으로 이미 오래 전에 무력화된 우옌 왕조의 바오다이 황제를 즉위시킨다. 인도차이나 공산당은 일본의 베트남 왕정 복원이 결코 베트남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간파하고, 연합군과 협력하여 베트남에서 일본군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한다. 8월 6일 일본에 핵공격이 가해지자 일본의 패망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깨달은 베트남독립동맹(Viet Nam Doc Lap Dong Minh, 越盟)은 즉각적인 총궐기를 선언하고, 8월 19일에는 하노이, 같은 달 25일엔 사이공을 장악하고,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에서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후 연합군은 베트남의 독립 열망을 저버린 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북위16도선을 경계로 영국과 중국의 군대를 진주시키고, 뒤이어 프랑스가 식민정부를 복원시키면서 독립은 깨졌다.
 
  베트남 전쟁은 크게 3개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1945년부터 1954년까지 프랑스와의 전쟁, 제2기는 1954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 제3기는 미군 철수 후인 1973년부터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기이다. 미국이 완전한 자주 독립을 원한 베트남보다 프랑스를 지원한 까닭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불확실한 민족주의 세력보다는 유럽에서 점증되는 냉전 체제의 확고한 우방인 프랑스를 지지하고, 이들에게 전비를 지원8)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이 확실해질 때까지 그들로 하여금 대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대만, 필리핀, 일본, 남한을 연결하는 태평양 연안의 군사적 요충지를 차지하고, 인도차이나의 풍부한 자원을 지배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의 패권 장악을 노렸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민족해방 세력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의 패전으로 독립을 쟁취할 듯이 보였던 베트남은 1954년 프랑스와 제네바 협정을 맺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임시 분할되고 협정에 의거하여 남북베트남간에 총선거를 실시하도록 했다. 예상되는 선거 결과는 호치민 정부의 승리9)였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이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CIA를 통해 베트남에서 여러 비밀 공작들을 수행하여 조약을 파기하고, 고딘 디엠 정권이 수립되도록 했다. 고딘 디엠 정권은 태생적 한계와 실정, 부패로 인해 국민의 신임을 잃었고, 결국 1963년 CIA의 공작에 의한 쿠데타로 제거된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행한 일련의 정책들은 미국이 다른 제3세계 국가에서 수행한 일련의 정책들 중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한편으로 댐과 병원, 학교를 건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전역에서 소모한 폭탄의 2배 이상을 남·북베트남 구분없이 골고루 투하했다.(참고로 남베트남은 미국이 지원하는 정부가 통치했고, 북베트남은 국제법상 독립국가였다.) 이 시기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한 다이옥신 등 각종 화학무기를 실험한 것은 물론 CIA의 피닉스 공작을 통해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했다.

  닉슨 대통령 시절에는 북베트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와 시간을 벌기 위해 남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공급기지를 파괴한다는 명분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침공했다. 그러나 미국이 대외에 선전한 것은 낙후되고, 식민지 경험을 가진 제3세계의 빈민국가에 문명의 혜택(?)을 전하는 전도사였다. 이런 미국의 교만한 정책은 결국 밀라이(My Lai)10)에서 347명의 민간인을 학살한다. 이런 미국의 군사전략은  피해당사자였던 제3세계 민중은 전세계의 양심적 지식인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1967년 버트란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 아이작 도이처 등과 같은 세계의 지식인들이  '베트남전쟁범죄에 관한 국제재판소'를 조직해 베트남에서 미국의 행위가 민간인들에 대한 광범위한 무차별 대량 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side)라는 전쟁범죄를 포함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이 재판소에서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들의 증언을 청취했고, 베트남 민간인들의 증언을 들었다. 사르트르는 최종적인 평결문에서 당시 국무장관 딘 러스크(Dean Rusk)가 "(베트남에서)우리는 우리를 방위하고 있다"고 한 말에 주목하며 베트남에서 미국의 전쟁 목적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런 군사적 목적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허명을 내세워 베트남 민간인들에 대한 제노사이드라는 의도적인 무차별 살상 즉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만장일치로 결론지었다.11)

  1975년 4월 29일. 베트남 전쟁은 미군 58,000명의 전사자, 153,000명의 부상자를 내며 끝났지만 베트남 민중의 인적·물적 손실은 계량화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미국이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의 교사'를 자청하며 일으킨 결과였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게 된 원류는 메이플라워호가 신대륙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신대륙에서 발견한 원주민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인디언들을 몰살시키는 방법을 택했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인디언들이 가꾸고 생육하지 못한 땅을 자신들이 문명화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그와 똑같은 논리로 1848년엔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 텍사스, 유타 등 서부 지역을 빼앗았다. 신의 축복을 받은 미국은 세계를 미국식 민주주의로 문명화시키기 위해 계속 팽창해야 하고, 그것은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12)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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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50년까지 미국은 인도차이나 전체의 프랑스군을 무장시킬 수 있을 만한 분량인 약 30만 정의 소형무기와 기관총, 10억 달러의 군사비를 프랑스에 지원했다. 미국은 프랑스의 전쟁 비용 중 약 80%를 부담했다.

하워드 진, 조선혜 옮김, 「베트남전쟁」, 『미국민중저항사2』, 일월서각, 1986, 220쪽

9) CIA의 전신인 OSS의 윌리엄 도노반 국장은 소련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는 유럽에서 소련은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철학이라는 대단히 강력한 카드를 제시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과 영국은 소련만큼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정치적, 사회적 철학이 없다." 10여 년 뒤 아이젠하워와 덜레스도 이와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았으며, 인도차이나 사태가 악화됐을 당시에도 미 정부 당국자들은 같은 심정을 토로하곤 했다. 노암 촘스키, 오애리, 「남-북, 그리고 동-서」,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2000, 이후, 121쪽에서 재인용. 그리고 이런 불안은 과테말라 아르벤즈 정권의 토지개혁 과정과 쿠바 혁명의 성공이 제3세계 민중들 사이에서 하나의 가능성있는 시도로 보이는 것 자체를 불안 요소로 여기고 미리 차단하려는 반혁명, 예방혁명 시도로 이어진다.

10)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국내 TV뉴스에서는 영국 BBC방송의 한 프로듀서가 미 국방부 문서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노근리를 포함한 전지역에서 미군에 의한 조직적 민간인 살상에 대한 명령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이 소개되고 있었다.

11) 이삼성, 「미국의 세기와 베트남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한길사, 1998, 211~212쪽에서 발췌 인용

12)) 이 말은 1837년 멕시코와의 전쟁에 즈음해서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존 어 설리반(John L. O'Sullivan)이 쓴 신문 사설에서 멕시코는 "앵글로 색슨족의 월등한 기력에 융합되거나 굴복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패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남긴 말이다.  최웅, 김봉중, 「해외팽창」, 『미국의 역사』, 1997, 조합공동체 소나무,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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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2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직 [법의 힘]을 안 사셨단 말씀입니까? 이런, 섭섭해라 ... ^^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는 당연히 독어본을 번역했지요. 물론 불역본에서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영역본은 오역이 더러 있는데, 데리다가 [법의 힘]에서 준거로 삼고 있는 불역본은 아주 번역이 정확하더군요)^^.
그런데 수업에서 좋은 글들을 많이 다루네요. 좀 너무 많은 걸 다룬다 싶기도 하지만 ...
인세에 보탬을 주신다면, 언제든 환영이죠. ㅋㅋ
 
 전출처 : 노부후사 > <퍼온글> [인터뷰] 유인종 전 서울시 교육감

▲ 유인종 전 서울시 교육감.
ⓒ2004 권우성

"서울 강남의 경우 엄마, 아빠가 세니까 애를 꽉 채워서 대학에 보낸다. 더 들어갈 여지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풍선에 바람이 덜 차 쭈굴쭈굴한 학생이 온다. 어느 쪽이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서울시 교육감을 지낸 유인종 건국대 석좌교수(72)는 20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풍선론'이라는 재미있는 논리를 펼치며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대학들을 비판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풍선에 바람이 꽉 차 더 이상 들어갈 여지가 없는 강남학생보다 바람이 덜 찬 강북이나 지방학생이 더 발전가능성이 많다.

유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학력은 국·영·수 성적으로 줄세우는 학력이자 입시준비를 위한 테크닉에 다름 아니다"라며 "대학은 자꾸 수능점수가 높은 학생만 뽑으려고 하지 말고 보통사람을 선발하더라도 잘 가르쳐 내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학생선발 패러다임의 변화'를 대학쪽에 요구했다.

유 교수는 '강남의 H고 1등과 전남 H고 1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미국에서는 시골이든 도시든 내신 1등 학생은 무조건 받아주는 사립대가 많다"며 "사회정의 차원에서 전남 H고 1등 학생을 우대해줘야 옳다"고 답했다.

유 교수는 일선 고교의 내신부풀리기에 대해 "소문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문제가 있다면 상대평가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3불정책의 법제화' 주장에 대해선 "법제화를 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일관성있게 정책을 수행하면 해결될 것"이라며 정부의 의지를 강조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는 엘리트단계와 대중화단계를 거쳐 보편화단계에 와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성향 언론과 인사들이 엘리트단계나 대중화단계에서 교육문제를 논하고 있어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4년제 대학이 160여개 정도 되는데 그중에 고교서열화에 찬성하는 곳은 10개대 이내일 것"이라면서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며 사회를 지배하는 게 문제다, 정부가 흔들리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대학선발권 논쟁과 관련해 "지금도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다 주고 있다"며 "그럼에도 그걸 이용하지 않고 자꾸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뽑으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반박했다. 수능폐지론에 대해서는 "수능은 실시하되 그 반영비율은 대학자율에 맡기면 된다"며 "경우에 따라선 수능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내신만 가지고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특히 "현재 사립대가 90% 이상인 상태에서 대학평준화를 당장 실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대학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적절하게 통제하는 '컨트롤 위드 서포트'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학평준화로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지난 8월 퇴임한 이후 건국대와 서울교육대 대학원에서 교육철학과 교육정책을 강의하고 있다.

다음은 유인종 석좌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매스컴이 교육언어를 함부로 써... '평준화'가 아니라 '보편화'

ⓒ2004 권우성
- 일부 대학들의 고교등급제 적용 논란을 어떻게 보나.
"저는 평준화라는 말을 안쓴다. 보편화(universalization)라고 말한다. 매스컴이 교육언어를 함부로 쓴다. 매스컴이 평준화란 말을 썼는데 정부가 따라 썼다. 그러니 하향평준화니 상향평준화니 하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수쪽은 하향평준화라고 얘기한다.

고교등급제는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진 것이다. 등급제를 할 수 없는데도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고교등급제는 두가지 면에서 불가능하다. 하나는 고교를 자유롭게 선택한 게 아니라 배정돼 간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걸 차별하면 어떡하나. 모순이다. 또 우리나라는 법규에 따라 일정기준을 충족할 때 고교를 인가해준다는 점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안전문제만 해결하면 정부에서 강제하는 항목은 몇개 안된다.

서울의 경우 질적인 면에서 거의 균형이 잡혔다. 강북은 학교규모가 작고 강남은 크다. 세칭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수는 강남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학교규모를 고려한 명문대 진학) 비율은 강북도 적지 않다. 그리고 대학이 자꾸 수능점수가 높은 학생만 받아서 자랑하는 경향은 없어져야 한다. 대학은 수능점수가 좋은 사람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보통사람을 받아 잘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시골학생들 턱걸이해서 들어와도 잘한다. 서울학생들은 풍선이 꽉 차서 발전성이 없다. 국·영·수 성적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팀웍과 창의력, 학습의 자기주도성이 진정한 경쟁의 요소다. OECD에서 발표하는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가 과학에서 1·2등 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우리가 꼴찌 하는 부분은 팀웍과 창의력, 학습의 자기주도성이다. 언론에서 이런 걸 보도한 적이 없다.

세칭 일류대의 경우 자기대학 출신비율이 90%가 넘는다. 미국의 대학은 14~15%밖에 안된다. 학사는 자기대학에서 하고 석박사는 다른 대학에서 한다. 오늘날의 미국이 존재하는 것은 그렇게 다양한 사람이 와서 대학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동종번식을 하는 경우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좋은 학생 받는다는 S대학도 세계 몇백등 아니냐."

- 대학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고교간 학력차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빌리티(ability: 능력)보다 퍼텐셜리티(potentiality: 잠재능력)가 중요하다. 서울 강남의 엄마, 아빠는 세니까 애들을 꽉 채워서 보낸다. 바람이 더 들어갈 여지가 없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바람이 덜 차) 쭈굴쭈굴한 놈이 온다. 어느 쪽이 더 발전가능성이 있겠는가. 후자가 더 발전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어느 나라든 국가시험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최대화해서 평가하는 나라는 없다. 즉 수능점수 같은 것은 최소화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버드대에는 5가지 선발기준이 있다. SAT와 리더십, 스포츠, 사회봉사, 그리고 지역안배다. 수능으로 변별력이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이 나올 수 없다. SAT 점수를 받은 한국학생이 하버드 의대를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항의하니까 교수들이 '당신은 기본적으로 의대에 지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며 '의사는 봉사하는 직업인데 고교와 대학의 사회봉사란이 공란'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게 진짜 변별력 아닌가.

신학대 학생은 지식이 아니라 교회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등을 가지고 뽑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나라는 신문에서 크게 떠들면 수능을 어렵게 내거나 쉽게 내거나 해마다 왔다갔다 한다. 수능은 무조건 쉽게 내고 만점이 많이 나와도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

"사회정의 차원에서 전남 해남고 1등을 우대해주는 게 옳다"

ⓒ2004 권우성
- 한국사회에서 '학력'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영·수 성적으로 줄세우는 걸 학력이라고 한다. 입시준비를 위한 테크닉이라고 할까. 나이가 든 분들은 지금 학생들을 보고 한문도 제대로 못하는 게 대학생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분들한테 컴퓨터 줘봐라. 이미 교육의 내용과 정도가 달라졌다. 지식반감기가 지금은 3년으로 단축됐다. 그렇게 변하는 지식을 아이들은 배우고 있다. 전통적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 예를 들어 강남의 현대고 1등과 전남 해남고 1등이 똑같은 대학의 수시모집에 응시했다고 한다면 두 학생을 어떻게 대접(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미국은 도시든 시골이든 내신 1등은 무조건 선발하는 대학이 많다. 수능점수와 상관없이 내신으로만 선발하는 것이다. 포항공대를 한번 취재해 봐라. 내신 좋은 사람이 압도적이다. 왜 포항공대가 한국의 넘버원 대학이 됐는지 생각해보라. 서울대처럼 했다면 결코 넘버원 대학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지능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있어야 영재다.

하버드대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와 공부를 잘하는 학생 두명이 지원했다고 했을 때 학교는 어느 학생을 뽑을까. 하버드대는 정치적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왕자를 선발할 것이다. 수시모집의 취지는 잠재력을 발굴하자는 것 아닌가. 사회정의 차원에서 전남에서 올라온 학생을 우대해줘야 옳다.

일본의 한 유치원에서 원생을 뽑는데 낮은 시렁과 높은 시렁에 있는 물건을 빨리 집도록 했다. 빨리 하는 아이도 있고 늦게 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과연 누구를 뽑았을까. 늦게 하는 아이를 뽑았다. 빨리 하는 아이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게 교육철학이다."

- 그럼에도 대학측은 고교간 학력차가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대학의 임무는 잘 가르쳐 내보내는 것이다. 그런 혁명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 고교등급제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지자 대학들은 일선 고교들이 내신을 부풀리고 있다며 관련자료를 일부 언론에 흘리며 맞서고 있는데, 실제 일선 고교들의 내신부풀리기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나.
"소문처럼 심하지는 않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상대평가를 통해 보완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 사회가 신의사회라면 절대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불신의 사회이기 때문에 상대평가를 가미할 수밖에 없다."

- 대학들은 일선 고교에서 내신부풀리기를 하기 때문에 고교등급제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과거에는 수능성적으로 변별력을 판단했다. 그런 시대는 갔다. 총점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총점으로는 변별력이 안나온다. 미국의 한 배우 아들이 하버드대 수석을 했다고 해서 학교에서 사과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는 수석이란 있을 수가 없다. 영역이 수천개인데 어떻게 수석이 나올 수 있나. 특정분야가 특출하다는 평가만 있을 뿐이다."

ⓒ2004 권우성

"비평준화지역이 평준화지역보다 학력이 높다는 근거는 전혀 없어"

- '3불정책'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법제화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일관성있게 정책을 집행하면 해결될 수 있다. 기여입학제의 경우 미국에서도 일부 사립대에서만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전체인양 얘기하면 안된다. 한국은 돈으로 바꿔치기하니까 사회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학의 수업료가 한계에 도달했다. 한 학기 등록금이 4백~5백만원이다. 언제까지 올릴 것인가. 여기서 국가가 개입해줘야 한다.

일본도 사학재정의 50%를 국가에서 지원해준다. 국가가 개입하면 기여입학제는 실시할 필요가 없어진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립이라도 중학교까지 100% 국가에서 지원받는다. 고등학교도 70~80%로 지원받는다. 이것이 대학으로까지 올라갈 차례다."

-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3불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하며 학생선발권을 완전히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지금도 대학에 학생선발권 다 주고 있다. 대학에 자유가 다 있는데 그걸 이용하지 않고 자꾸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뽑으려고 하는 게 문제다."

- 대학의 자율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나.
"현재 절충형으로서 거의 인정되고 있다. 입학문제는 사회정의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다음은 커리큘럼 운영이 중요하다. 그것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지 않나. 교육방법 개선 등 잘 가르치라는 자율권은 100% 인정하고 있다. 정부가 본고사를 없앤 이유는 일선학교에 서울대반, 연세대반, 고려대반, 이화여대반 등이 생기면 초중고의 교육과정이 비정상화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초중교까지 특목고반이 있다고 하더라."

- 정 총장은 평준화가 계층간 이동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평준화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준화기 때문에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오는 게 자유롭다. 평준화 전에는 몇백만원 줘야 전학갈 수 있다. 또 평가를 해보면 평준화지역이 비평준화지역보다 학력이 높다.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평준화지역의 학력이 평준화지역보다 높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평준화지역 전체와 비평준화지역 일부 학교만 비교해서는 안된다. 전체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 30년 동안 평준화를 실시하는 동안 사회가 많이 변한 만큼 재검토해야 하다는 의견도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취학율과 관련 엘리트단계(elite stage: 0∼15%)→대중화단계(mass stage: 15∼50%)→보편화단계(universal stage: 50∼100%)를 거친다. 엘리트단계는 귀족주의, 대중화단계는 능력주의, 보편화단계는 평등주의다. 우리는 엘리트단계와 대중화단계를 벗어난 보편화단계다.

서울의 경우 취학율이 104%다. 대학진학율은 72%로 세계 최고다. 문제가 있다면 보편화단계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되돌릴 수 없다. 그런데 일부 보수성향 언론이나 인사들은 우리가 보편화단계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트단계나 대중화단계에서 교육문제를 논하고 있다. 논설을 쓰는 분들이 이런 틀에서 교육문제를 논하니까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보편화단계에서 모든 헌법은 기회균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학도 모두 평등주의다. 여기에서 고교를 분리하느냐 통합하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있는데 통합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고교에 계층이 형성되기 때문에 고교를 제도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 영국도 64년 의회의 명령으로 통합했다. 대신 통합한 다음 커리큘럼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통합되면 이동의 자유가 생긴다. 문제는 학교을 선택할 것이냐 커리큘럼을 선택할 것이냐다. 커리큘럼을 선택하면 기회가 많다. 예를 들어 수학을 더 많이 교육하는 학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커리큘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교장과 교사를 리모델링해야 한다. 그래야 변별력문제도 해결된다."

"수능은 실시하되 그 반영비율은 대학에 맡기자"

ⓒ2004 권우성
- 지난 2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학벌타파를 위해선 대학평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는데.
"15년 정도 후에 국가가 자신 있을 때 할 수 있다. 현재 사립대가 90% 이상인 상태에선 불가능하다. '컨트롤 위드 서포트'(control with support), 즉 돈을 주면서 통제하는 방법이 있고, '서포트 위드아웃 컨트롤'(support without control), 즉 돈은 주되 통제하지 않은 방법이 있다. 후자는 미국식인데 우리는 전자로 해결해야 한다. 지원을 늘리면서 적절히 통제도 해야 한다. 대학의 평준화가 지금은 시기상조이지만 앞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

- 대학의 서열화를 타파하지 않는 한 어떤 입시제도안도 한국사회에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4년제 대학이 160여개 정도 되는데 그중에 고교서열화에 찬성하는 곳은 10개대 이내일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사실 고교서열화에 반대한다. 자기들 학교에 바로 영향을 미치니까 그렇다. 사실 문제가 되는 학교는 몇개 안된다.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며 사회를 지배하는 게 문제다. 정부가 흔들리면 안된다."

-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수능은 실시하되 반영비율을 대학자율에 맡기면 된다. 경우에 따라선 수능은 아예 반영하지 않고 내신만 가지고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가장 바람직한 학생선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신과 거기에 수능을 보태고, 특기적성을 개발해 선발하면 충분하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발했으면 수능과 연계시켜서는 안된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인터뷰를 하면 되지 않나. 그런데 요즘 인터뷰가 형식적이다. 면접관이 최소한 너댓명은 들어가야 하는데 두세 명 정도만 들어간다.

80년대에 싱가폴의 한 대학에 간 적이 있다. 여기 의대와 법대는 무시험이다. 이곳 판검사들의 인격이 엉망이다 보니 정부가 결심을 해서 의대와 법대는 지필고사 대신 인터뷰로 학생을 선발했다. 인터뷰에는 7명의 면접관이 들어간다. 이렇게 인터뷰를 실질적으로 해야 변별력을 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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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4-10-24 0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감동했어요. 제 서재와 블로그에 퍼갑니다. =)

balmas 2004-10-24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인종 교수 같은 분이 좀 많이 계시면 좋을 텐데 말이죠 ...
 
 전출처 : 노부후사 > <퍼온글>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이 정권의 큰 착각 하나는 자신이 한나라당과 비대신문의 수구 신성동맹으로부터 영일(寧日) 없이 두드려 맞는 이유가 여권과 신성동맹 사이의 이념적ㆍ정책적 차이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최근 생뚱맞은 물타기로 개혁 법안들을 멀겋게 만듦으로써 그런 시각을 또렷이 드러냈다.

그러나 웬걸, 신성동맹의 공세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신성동맹이 여권을 두드려 패는 이유는, 적어도 결정적 이유는, 이념이나 정책 층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과 올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겼더라도, 지금까지 현정부가 펼쳐온 정책과 크게 다른 처방을 선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회창 정권’인들 무슨 수로 지금 정부보다 더 화끈하게 대미 종속과 가진 자 옹호를 실천하겠는가. 정권 출범 당시에야 여권과 신성동맹 사이에 이념 차이가 없지 않았겠지만, 이 정부는 지난 한 해 반 동안 그 차이를 실천으로 입증한 바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신성동맹은 왜 여권에 끊임없이 말의 팔매질을 해대는가? 여권의 존재 자체가 그냥 싫기 때문이다.

마땅히 자기들이 꿰차야 했을 자리를 잇따른 선거 패배로 빼앗긴 것이 짜증스럽고, 게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평소에 깔보아왔던 무지렁이들이라서 더욱 짜증스러운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정권이 같잖다는 것이다.

여권에 대한 신성동맹의 감정은 맞수에 대한 미움에도 미치지 못하는 멸시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가당찮은 멸시의 감정이야말로 멸시하는 주체의 천격(賤格)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접어두자. 아무튼 신성동맹이 바라보는 현 정부는 프랑스 왕당파 귀족들이 바라보았던 제1제정과 비슷하다.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 역시, 코르시카의 미천한 신분 출신 황제처럼, 근본 없는 집안 출신의 ‘왕위 찬탈자’에 지나지 않는다.

신성동맹이 여권을 지칭하며 애용하는 ‘좌파’라는 말도 ‘그냥 싫은 놈’이라는 뜻일 뿐이다.

신성동맹이 이런 알량한 귀족주의로 여권을 대하고 있는 이상, 이 정부가 설령 가상의 한나라당 정권 이상으로 우향 돌진한다고 해도 이른바 ‘상생’의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여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신성동맹이 싫어하도록 내버려두고 제 갈 길 가는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정권은 출범 이후 지지자들 심정에는 아랑곳없이 신성동맹 눈치를 살피느라 끊임없이 우경화의 길로 매진함으로써 제 지지기반을 허물어왔다.

그러다가 사면초가다 싶으면 사소한 ‘껀수’를 잡아 온 나라가 들썩이도록 신성동맹과 각을 세우며 지지자들을 규합하는 방식의 조잡한 정치공학을 되풀이해 왔다.

여권이 무슨 일을 하든 신성동맹이 거기 딴죽을 걸 준비가 돼 있는 한, 신성동맹의 영향 아래 있는 보수적 유권자들이 여권의 새로운 지지자로 충원될 가망은 거의 없다.

여권이 살 길은 정권 출범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에 박차를 가하며 두 차례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들의 뜻에 부응하는 것이다.

게다가 출범 이래 줄곧 좌파 정권이라는 ‘욕’을 들어온 바에야, 본때 있는 좌파는 못 되더라도 좌파 흉내쯤은 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개혁 피로증? 만약에 그런 물건이 있다면, 그것은 신성동맹의 악선동 때문만이 아니라 아무런 실천 없이 허공에 지겹게 난무하는 여권의 개혁 담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개혁은 개혁이라는 구호 안에 있지 않다.

지금 개혁 법안이라고 불리는 것도 무슨 대단한 공사가 아니라 그저 우리 사회를 정상화하는 최소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여권이 이 정도 일을 하면서 입으로 개혁 유세(有勢)를 떨어 덤의 반발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언어는 온건할수록 좋고, 실천은 어기찰수록 좋다.

지난 대선 때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2007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후보 찍을까 아니면 기권할까 고민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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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4-10-2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이 머리속의 논리로 풀수 없다는것을 알면서 점점 괴롭게 되는군요.
지난 토요일 일로 강남 기득권자라고 할까(서울대 나오고 의사로, 제 기준에 이정도면) 한분과 애기하는데 내년쯤 체제 변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더군요.
이런 분들 애기들으면 밖에서 보면 이너써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다들 경기, 서울고 나와 서울대 나온분들 모임에서 이런애기저런애기하는게 이런것인데 이분들 현실인식이 이렇더군요. 그리고 이런분들이 현실적인 힘인 권력과 돈을 쥐고 있고.
애기를 듣는순간 암담해지더군요.
답이 없어보입니다. 실천이라는것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도 맘대로 못하는것이 참.
정말 내년에 김정일 하수를 받아 체제변혁이 일어날것인지.
무얼해야할지

balmas 2004-10-2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의 기득권자들, 특히 상류층 지식인들의 지적, 도덕적 능력이 터무니없이 허약하다는 점은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들은 지난 50여년 동안 미국과 군부독재의 호위 아래 온갖 편의와 특혜 속에서 풍요를 누려왔지요. 문제는 자신들의 풍요를 가능하게 했던 그 조건들(미국과 군부독재)이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반민족적인 것이라는 점을 성찰하고 교정할 만한 능력을 이들이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자기인식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는 그 조건들이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조건이라고, 곧 민주주의적인 것(이 때의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풍요의 자유 보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이라고 판단하게 되고, 이런 판단 위에서는 이 조건들을 개조하고 교정하려는 노력들은 모두 반민주주의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런 노력들은 모두 좌파적인 것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행태들을 단순한 전술적 선동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그들 스스로가 이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체제전복의 위기의식을 느낄 만하지요. 전문지식은 갖추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특히 한미관계나 남북관계에 대한)은 초중등학교 수준을 넘지 못하는 고급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오늘의 남한사회죠.
그렇다고 노무현 정권처럼 여기에서 타협하게 되면 아무것도 안되고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싸우고 깨뜨리고 사회적 조건들을 개조해야죠.

릴케 현상 2004-10-2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무속인 협회에서 노무현은 내년에 급살 수가 있다고 했댑니다. 그리고 미국선거는 부시 당선으로 점치더군요

balmas 2004-10-2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무속인 이야기를 들으니까, 동국대 정치학과 황모 교수가 생각나는군요. 80년대에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로 자처하다가 90년대에는 비판적 하버마스 연구자로 나서고, 다시 00년대에 와서는 김대중 대통령 자문 교수의 한 사람으로 속해 있다가, 최근에는 점성술 정치학으로 돌아서서 대통령의 사주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고, 올해에는 대통령 탄핵안을 이론적으로 기초했다가, 결국 조선일보 칼럼의 필자로 등단한, 그 황모 교수 말이죠.
암만 해도 무속인들이 황모 교수의 이론적 뒷받침을 받고 있는 듯 ... 아니면 그 반대인가???

릴케 현상 2004-10-2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 교수가 그렇게 재주가 많은 줄은 몰랐군요

biosculp 2004-10-2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모교수는 사상의학을 정치학에 적용한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주워들은 견문으로는 이분이 일급의 맑스정치학자라고 들었었는데 배우고 아는것과 늙어가면서 처신하는것이 이렇게 괴리가 되나 그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김문수 한나라당의원을 봐도 사는게 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배우고 행동하는것 그리고 늙어서 추하게 되지 않는것 참 힘들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