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좌파의 반대라는 환상"
<누벨 옵세르바퇴르>지, 5월 5일자

불어 : http://www.nouvelobs.com/articles/p2113/a267899.html

영어 : http://print.signandsight.com/features/163.html



유럽의 통일은 오랫동안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추진되어 왔다. 시민들이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본 만큼, 그들은 그에 대해 더 말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유럽의 기획에 그것의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의석, 직위, 발언권...) 할당과 관련된 갈등에 직면한, 25개국으로 이뤄진 유럽에서, 그러한 수익을 통한 정당화는 더 이상 각자가 거기에서 그 자신의 몫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시민들은 관료적인 방식으로 지도되는 것에 싫은 기색을 내비쳤으며, 최고의 유럽 옹호국에서조차, 주민들이 유럽을 무턱대고 전부 받아들이는 경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독일 쌍두마차는 잠시 발이 안 맞고 있으며, 이제는 그 걸음의 방향을 결정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이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용기있게도 헌법안에 대한 비준을 국민투표에 붙였다. 독일인 – 독일인들은 그네들의 정치인들의 소심한 성격 때문에 모든 환상을 잃었다[실망했다] - 으로서, 나는 프랑스가 부럽다. 프랑스 공화국은 적어도 여전히 민주주의적인 기준에 대한 의식 - 공화국의 전통을 이뤄왔고, 그 기준 이하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식 - 을 가지고 있다. 헌법을 선택하는 행위는 양극화된 의견들과 불일치하는 목소리들의 대결 속에서, 그리고 시민들이 표현한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들이 축적됨으로써 성취될 것이다. 그래서 문제만 안 된다면, 우리는 라인강을 너머 우리에게 전달되는 프랑스 언론의 각계 각층의 담론들에 만족할 수 있었다.국경 너머 프랑스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헌법 역시 프랑스인들의 투표에 의해 실패할 위험에 처해있음을 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이나, 폴란드인들, 체코인들 그리고 여타의 다른 나라 사람들의 투표에 의존한다. 보통 한 인민은 그의 고유한 헌법을 공표하지만, 유럽 헌법은 유럽 시민 전체의 공통 의지가 아니라, 거기에 참여하는 25개국의 인민들의 투표에 의해서만 태어날 수 있다. 사실, 유럽의 공적 공간이나, 국경을 횡단하는 테마들, 그리고 공통된 토론이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투표는 각 나라의 공적 공간[공공 영역]의 경계 내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그러한 비대칭성은 위험한데, 왜냐하면 국내의 문제에 우선권을 부과하는 것, 예를 들어 시라크 대통령과 라파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유럽 헌법의 비준 혹은 거부가 제기하는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하는 시선을 변질시킨다. 적어도 다른 나라의 찬성과 반대들이 각 나라의 공공 영역 속에서도 한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내가 프랑스의 투표 논쟁 속에서 입장을 취하도록 초대된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교화시키기를 원하면서도, 유럽 헌법에 대해 반대를 표명한 좌파는 나쁜 시기에 나쁜 편에 서기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유럽 통일이 취해온 길을 비판할만한 여러 이유들이 있다. 자끄 드로(Jacques Delors)와 그의 정치 비전은 실패했다. 반면 공통의 시장을 만들고, 부분적으로나마 화폐 통합을 이뤄냄으로써 수평적인 통합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이해 관계의 역학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정치적 연합의 전망은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동학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시장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국경의 폐지가 사회적으로 원치 않는 결과들을 초래할 것이며, 그것은 국민-국가의 보호주의적 힘으로 회귀함으로써 피할 수 있다는 우파의, 외국인 혐오증적인 생각은 규범적인 이유에서 볼 때 의심스러운 관념일 뿐 아니라 더욱이 완전히 비현실주의적인 것이다. 이름값하는 좌파라면, 이런 종류의 퇴보적인 반응에 오염되도록 스스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국가의 조절 능력은 경제적인 세계화의 양가적인 결과들을 완충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오늘날 '사회적 유럽 모델'이라고 우리가 추앙하는 것은, 유럽의 틀에서조차 그것의 정치가 시장의 높이에까지 이를 수 있는 한에서만 방어될 수 있다. 유럽의 수준에서만, 국가의 수준에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정치적 조절 능력의 전부 혹은 부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U의 구성국들은 오늘날 안보 정책(사법, 형법, 이주)에 속하는 분야들에서 그네들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 정치에 적극적이고 통찰력있는 좌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경제, 조세 정책 영역에서도 더 큰 조정을 해야함을 주장해왔다.

이와 관련해서, 유럽 헌법은 적어도 그러한 조건을 창출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동쪽으로 더 확장된 이후에도 유럽 연합의 행동 능력은 유지될 것이다. 헌법안은 바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5개국의 유럽 안에서, 니스에서 결정된 절차들에 따라 분산된 이해 관계들을 조정하는 일이 남아있다.왜냐하면, 15개국으로 이뤄진 유럽은 적당한 때에 정치적 구성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헌법안을 거부한 이후 그 상태로 머무르게 된다면, 유럽 연합은 분명 통치불가능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은 부동성과 우유부단함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그네들의 꿀로 만들 것인데, 그네들의 의도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다[영역 : 신자유주의들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그네들의 목적을 이미 이뤘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 대항하고자 하는 좌파라면 유럽 너머를 내다보아야 한다. 워싱턴의 지배적인 콘센서스에 맞서, 좌파는 유럽이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한에서만,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민주주의적인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 선거와 자유 시장을 결합하며, 그 시각을 세계적인 수준에서 부과하려하는 - 홀로 그 일을 해야한다면, 무기를 가지고 할 것이다 - 헤게모니적인 자유주의에 맞서, 유럽은 한 목소리로 대외 정책을 낼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조지 부시는 유럽 구성(헌법)의 실패를 두고 기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헌법은 유럽이, 전지구적 질서에 대한 신보수주의적인 시각에 대한 대립 그리고 미국에 대한 대립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히 부드러운 힘(soft power)을 이용하는 공통의 대외, 안보 정책을 전개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세계 정부 없이 정치적으로 구성된 세계 사회(공동체)를 위해, UN 및 국제법을 발전시키는 데 우리의 공통된 이해가 있다. 여타의 세계 열강들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부시 행정부의 힘의 정치를 모방하기 전에, 우리는 국제 관계를 진정으로 법적인 틀 안에 집어넣는데 이르러야 한다.

우리가 이해가능한 주민의 불안들을 포퓰리즘적인 방식으로 이용하지 않고, 유럽을 강화하는 한에서만, 우리는 단절 중인 세계의 도전과 위험들에 대해 공격적인 방식으로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일부 우파의 반동적인 반대와 좌파의 반대가 연립하게 된 것은 좌파의 환상에 기초한 비극적인 노트일 뿐이다. 그러한 비극적 노트는 사실상 프랑스에서의 반대가 필연적으로 다른 EU 성원국들이 유럽 헌법에 대한 협상을 다시 하도록 만드리라는 환상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이것을 기다리는 것은 이중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모든 여타의 국가들의 관점에서, 프랑스의 반대는, 만일 그렇게 된다면, 특정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 국민은 독일과의 화해에서 폭넓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동시에, 유럽 통합을 추진했던 것도 바로 프랑스 국민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 통합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어왔다. 교차로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프랑스가 지금까지 쫓아온 길로부터 이탈하게 된다면, 어떤 침체 현상이 전 유럽을 덮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이것이 내가 거의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결말이다. 프랑스는 사실 영국이 아니다. 만일 헌법에 대한 영국의 국민 투표가 반대로 이르렀다면 – 물론, 나는 그러지 않길 바라는데 – , 적어도 내 생각에는, 대부분의 다른 성원국들이 그냥 무시하는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다. 계속해서 망설이다가, 헌법에 반대를 표시하는 나라에, 우리가 « 지금이 다시 없는 기회다 ! »라고 답하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반대는 유럽을 지속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결정은 유럽의 모든 다른 나라들에게 어떤 신호의 가치를 갖는 것이며, 빈약한 상태에 있는 공적 의견이 각양각색의 국민국가적이고 주권론적인 유럽 혐오주의자들에게 호의적인 방식으로 역전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신자유주의자들 – 그들에게 유럽의 헌법은 현재의 헌법의 경제주의 속에서 그것의 충만하고 전체적인 표현을 발견한다[영역 : 그들에게 유럽 헌법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경제적 헌법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 에게 호의적인 방향으로 역전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좌파의 반대 옹호자들이 하는 것처럼, 프랑스의 반대의 도착적인 연립이 몇몇 유럽찬성론자들 – 그들에게 정치적 통합은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 에게서도 발견된다는 핑계로 헌법이 재협상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기괴한 과대평가이다. 거기에 두 번째 환상이 있다. 만일 프랑스가 헌법안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헌법안에 대한 재협상을 야기시킬 것이며, 이는 반대로 헌법안 타협이 더 멀리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승리가 된다라는 환상. 그 결과는 전혀 유럽의 제도들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간정부주의를 강화하는 것에로 이를 뿐이다.

여하튼 나는 프랑스의 좌파가 스스로에게 충실한 채로 남으리라는 희망, 좌파는 감정에 굴하기 보다는 논쟁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Christian Bouchindhomme 이 독일어에서 불어로 옮김.

(양창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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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프랑스에서 있었던 유럽 연합 헌법 투표를 전후해서 프랑스 및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이

다양한 입장을 표명하고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결국 투표는 부결됐지만, 정말 중요한 정치적, 지적 토론과

활동은 이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가장 중요한

국제적인 쟁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이 문제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했는데, 마침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한 분이 주요한

지식인들의 대담과 성명서, 신문 기사 등을 번역해주셨네요. 발리바르, 네그리, 바디우, 하버마스, 월러스틴,

라자뤼스 등 정말 쟁쟁한 지식인들의 입장을 볼 수 있는 좋은 글들입니다. 번역하느라 수고해주신 그 분에게

감사드리면서, 주요 기사와 대담을 퍼왔습니다.

출처는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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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기에 굉장히 잘 쓰여진 글이고, 또 중요한 글이다. 논증이 굉장히 미묘한고로, 이해를 위해 [ ]를 많이 사용했다. 독해에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기를...
** 지난번에 올렸던 네그리나 벤사이드의 글들과 같이, 토론회에서 있었던 발언을 정리한 것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제목 역시 이처럼 구어적으로 붙여진 것 같은데, 제목 붙이는 데 늘 취약한 본인으로서는, 마땅히 다른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대로 놔두었다.


에띠엔 발리바르, "그래,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Oui mais...non car)"
<리베라시옹>, 2005년 5월25일

원문 : http://www.liberation.fr/imprimer.php?Article=298808


그 점에서 복음서의 가르침("너희는 그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만 하여라".[마태복음 5장 37절])을 따르자면, 국민 투표는 오로지 두 가지 대답만을 허락한다. [국민 투표를 둘러싼] 사전 논쟁들 역시 결국에는 찬성이냐 반대냐로 이르는 데 쓰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소통 수단에 대한 시민들의 불평등한 접근으로 인해 지나치게 [논쟁이] '완곡해지지'만 않는다면, 그 논쟁은 그 자체로 이점이 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오로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박빙의 승부가 되리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리라는 것.

이번 선거 운동의 첫 번째 획득물은 처음에 예상했던 한계를 넘어서는 논쟁의 발전이다. 이것은 '정치를 한다(faire de la politique)'는 것에 필수적이다. 우리가 '헌법'이라 세례명을 부여한 텍스트와 관련해서는 최소한 이 정도는 했어야 한다. [유럽 헌법 같은] 그런 텍스트는 단순히 '등록'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제헌 권력의 무대에 오르는 한에서만 그것은 정당성을 갖는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한 걸음 내디뎠다. 텍스트의 준비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배타적으로 테크노크라트적인 특성을 띠었으며, 정부간의 최종적인 흥정으로 결론이 났다. 현재의 논쟁 - 토대의 문제, 특히 구성중인 유럽이 '자유주의적'으로 가야하느냐 '사회(주의)적'으로 가야하느냐와 관련된 문제를 표면에 드러내고 있는 - 은 그 텍스트에 민주주의적인 시정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잠시 자제해야 한다. 교환되고 있는 많은 논증들(그리고 그 밑에 깔려獵?동기들은 더욱더)은 순전히 '프랑스적(franco-français)'이다. 유럽 시민권과 현 세계에서 유럽의 자리라는 주요한 문제는 그 문제가 방향을 틀었을 때(예를 들어 터키에 대한 가능한 [EU 가입] 승인을 '헌법'에 반대하는 반박-논증으로서 사용할 때) 기껏해야 살짝 건드려질 뿐이었다.

내 관점에서, [EU 헌법안에] 찬성표를 던져야 하는 본질적으로 세 가지 적극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각각의 이유는 엄격한 제한 조건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조건들은 그 [긍정적] 이유를 거의 취소하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EU 헌법이, 20세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유럽의 내전'이라고 불릴 수 있던 것에 의해 둘로 나뉘었던 유럽의 재통일을 비준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 재통일은 그것을 정당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엄청난 잔해들을 남긴다. 재통일은 자연적으로 공통된 이해 관계라는 환상 하에서 지금 있는 문화적, 사회적 적대들을 은폐한다. 그 환상은 과거에 다른 초국가적 집합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그것이 새로운 증오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몰이해의 씨앗을 낳는다. 두 번째 이유는 오늘(미국)과 내일(중국)의 거대한 제국주의들에 대해 '공통의 역량'을 대립시켜야 할 필요성에 있다. 그러나 이 의지는 유럽의 기획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유럽-역량'이라는 관념 속에 암암리에 기록된 수단들은 구 제국주의에 의해서는 너무 많이 지배를 받으면서도, 더 평등적이고, 덜 갈등적인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탐구에 의해서는 불충분하게 지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는 이전에 [유럽]연합을 지배했던 기능상의 절차들과 관련해서, [현재의] 헌법안은 상대적으로 더 민주화될 뿐 아니라, '기본권(droits fondamentaux)' 헌장이라는 형태로 [그에 대한] 명시적인 보장을 도입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획득물들이 [찬성에 표를 던져야할 정도로] 결정적일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현재의 상황이 요청하는 것에 비해 제한적으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결정 절차의 민주화는, 그것의 무력함을 근본적으로 시정하지도 않은 채, 유럽 위원회와 유럽 회의에 권력이 극도로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아주 약간 수정할 뿐이다. 기본권 헌장에 기록된 일반 원칙은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다지 강제력이 없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20세기 해방 운동의 어떤 전진을 등록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또한 사회적 권리의 후퇴를 승인하며, 소통 수단의 집중 및 정보화, 혹은 안보 정책들의 발전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자유의 장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프랑스에서부터 말을 하자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찬성에 표를 던져야 하는] 본질적으로 소극적인 이유가 남아있다. 혹시라도 있을 반대의 승리는, 어떤 대안적 기획도 갖고 있지 못한, 극우에서 극좌에 이르는 잡다한 연립, 그리고 그것이 '국가 우선(préférence nationale)' 옹호로 귀착될 강력한 주된 위험, 혹은 유럽 헌법(구성) 자체에 대한 거부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신파시스트 후보자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2위에 올랐던 나라에 있으며, 좌파든 우파든 정부가 끊임없이 (예를 들어 이민 규제를 통해) 포퓰리즘을 부추겼던 나라에 있음을 잊지 말자. 하지만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반대의 승리가 대륙의 수준에서 유럽 건설을 보다 진보적이고 보다 민주주인 토대 위에서 재개시키는 '도약'을 야기할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적어도 반대가 국가주의적인 반동의 증식을 조장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이제 나는 반대에 투표하도록 만드는 이유들로 되돌아오겠다. [반대편에서] 가장 자주 내세우는 주장은 '자유주의적 유럽'이라는 슬로건에 요약되며, [헌법안의] 3부가 경제적 자유주의의 규칙들을 '헌법화'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이런 형태 하에서라면, [반대편의] 논증은, 비록 그것이 어떤 논거들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하더라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그 텍스트는 또한 그와는 반대 방향의 지시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 결과가 실제로는 [텍스트에] 정식화된 것보다는 세력 관계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의 관계에 의존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 그러나 이것이 나를 가장 결정적인 측면으로 인도한다. 결정적인 것은 말해진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전제에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말해질 필요가 없[다고 간주되]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유럽 중앙 은행의 지위 및 목적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것들은 사실상 금융 권력을 주권이나 예외의 상황에, 즉 법률이나 대다수 시민들의 결정 위에 위치시키며, 동시에 견고한 통화주의적 도그마에 그것을 굴복시킨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경제, 정치, 문화 영역이 서로 밀접하게 침투되고 있는 시대에, 이것은 모든 사회적 발전, 모든 집단적 혁신, 모든 공격적인 정치 경제를 비좁게 속박하는 데로 이른다.

[내가 헌법안의] 기획에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러한 '주권'의 문제를 넘어선다. '헌법'이 유럽 전체에 진정으로 부여하고 있지 않은 것, 즉 헌법에서는 진정으로 새로운 시민권을 창조해내지 않고 있다는 문제. 우리는 헌법의 기안자들이 이 문제를 가장 조심스레 피하고자 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유럽 연합 시민권(citoyenneté de l’Union)'의 정의는 이런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 정의는 기존 국가의 시민권을 유럽 수준으로 연장하는 것, 즉 2차 시민권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며 (그리고 그것은 부대적으로 유럽의 아파르트헤이트, 즉 '[유럽을] 설립하는 [나라의]' 국적을 갖지 않은 거주자들로부터 시민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영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거기에는 거대한 초국적(supranationale) 관료제의 출현을 상쇄하는 데 적합한 탈집중화된 참여 메커니즘이 부재하다. 이 모든 것은 이전의 소속들을 횡단하고 그것을 상대화시키는 초국적(transnationale) '시민 공동체' - 분명 전혀 다른 수준에서이긴 하지만, 클레이스테네스가 당대에 행정구역(영토적 경계) 등록을 위해 제네(부족) 소속을 상대화했던 것과 같은[역자 :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의 행정구역을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네 부족 대신 지리적 단위인 열 개의 데모스로 바꾸었다] - 의 출현을 방해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물론 [헌법안 거부에 따른] 유럽 시민권의 좌절이 국가 시민권의 보존에 상응하리라는 것도 전혀 확실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세계화 시대 그리고 세계화로 인해 각 영토의 거주자들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는 거대한 불평등의 시대에, 국가를 위한 연대, 정치 토론, 문화의 기능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분명히 '제국들'이 아닌, 보다 광범위한 집합들에 그것을 통합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시민 없는 시민 공동체, 마찬가지로 국가 없는 국가 건설을 갖게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책임 있는 정치적 태도는 법적으로 헌법을 신임하기보다는, 헌법안 거부가 가져올 수 있는 비판적 혹은 심지어 극적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그 헌법의 환상을 거부하는 것에 있을 수 있다.

내가 쏠려있는 방향에서, 이것은 위엄과 일관성에 대한 고민의 발로라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시민으로서 협박(만일 우리의 지배 계급이 짜놓은 시나리오를 우리가 흐트러뜨린다면 일대 혼란이 우리를 엄습할 것이다라는 협박)을 거부해야 한다는 위엄. 그리고 특히 '사회 계약'을 재정초함에 있어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원칙이 신중하게 취해져야 하며, 제도적인 결과들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일관성. 내가 그러한 선택에 포함된 위험들(위기의 위험뿐 아니라 도착 및 방향 전환의 위험) 및 그것이 부과하는 책임에 대한 예리한 의식 없이 그것을 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또한 이해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이런 위험들을 참고하는 결과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수용해야하며, 그러한 참조는 그것의 도달점보다는 갈등의 정치 과정의 출발점을 형성하는 행운을 가져올 것이다.

(양창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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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6-2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만쉐이~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시리즈는 저를 위한 '선물'이라고 믿슴다. ㅋㅋㅋ
낼롬 가져가겟슴다....(__)

balmas 2005-06-26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마냐님 생각해서 퍼왔답니다. (ㅋㅋㅋ 믿거나말거나 ... )
이렇게 좋아해주시니 보람이 있군요. ^_________^

청년도반 2005-06-26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잠깐 여행을 다녀온 사이에 유럽헌법 논쟁과 관련한 중요한 글들이 다수 번역되었네요.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그리고 글 퍼가겠습니다. ^^;

balmas 2005-06-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미있게 잘 보라구. ^-^
 

* 텔레스트리트의 기원 및 의의에 관한 글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시길.

아래 주소에서 퍼왔습니다.

http://www.mediact.org/web/research/apply.php?mode=emailzine&flag=emailzine&subno=758&subTitle=공동체라디오%20/%20TV&keyno=769

 

 

길거리에 TV 방송국을 세우다:

이탈리아 공동체TV 운동


김 희 정( ACT! 편집위원 )



#.

2002년,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 생산업체인 피아트(FIAT)의 한 사업장. 대량해고로 파업이 계속되던 이 현장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연일 파업의 폭력성과 해고의 불가피성을 들먹이는 주류 미디어의 작태에 분노한 활동가 대여섯 명이 <텔레파브리카(Telefabrica)>라는 이른바 해적 텔레비전 방송국을 만든 것이다. 방송국 장비라 해봐야 송신기와 안테나, 텔레비전이 전부였지만, 이곳에서 이들은 파업현장 소식과 노동자들의 입장을 담은 인터뷰 영상을 최소한의 편집만으로 인근 텔레비전 채널에 방송했다.


 

낯설지 않은, 새로운 경향: 텔레스트리트

 

2002년부터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이탈리아 해적 TV 운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텔레파브리카의 사례는 텔레비전 채널을 저항 미디어로 새롭게 활용한 흥미로운 시도였다. 비록 3일간의 방송을 끝으로 당국에 의해 폐쇄당했지만 이곳에서의 실험은 전국의 수많은 해적 방송국이 벤치마킹하면서 게릴라전을 시도한 기폭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미디어 운동의 한 양상인 텔레스트리트(Telestreet) 운동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소출력 공동체 방송국을 통칭하는 말이다. 스트리트 텔레비전(street television), 다시 말해 길거리에 세워진 텔레비전 방송국을 의미의 이 용어는 자본의 집결체인 ‘방송국’이라는 물적 토대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권력과 법의 테두리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와 저항의 의미를 담보하는 ‘거리’의 미디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소규모 독립 공동체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이자 합법의 영역을 벗어난 해적 방송국으로서의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는 텔레스트리트, 현재 그 수가 전국적으로 수백 곳에 이른다고 하니 어림잡아 동네마다 이른바 방송국이 한두 개쯤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탈리아 해적 방송의 역사


사실 이탈리아 미디어 운동사에서 해적 방송국의 역사는 상당히 뿌리가 깊다. 70년대 이탈리아를 주축으로 전개되었던 아우또노미아 운동의 한 영역이었던 독립 미디어 운동 속에서 이미 미미하나마 해적 채널은 시도되었다. 최초의 스트리트 TV는 1972년 이탈리아 북부, 비엘라(Biella)라는 마을에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송이 채 정착되기 전인 73년에 당국에 의해 폐쇄되었고, 이 사건을 기화로 가속화된 표현의 자유 논쟁은 74년 법원으로부터 당시까지 미디어 영역을 장악하고 있던 공영방송 RAI의 독점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은 이후 해적 채널의 수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게 된 원인이 되었으며, 90년 대까지 <La TV del Pratello>(볼로냐), <OffLineTv>(로마 등), <BoicoopTV> 등 다양한 소출력 방송국이 지역에서 공동체 방송 운동을 시도했다.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본격적인 네트워크 운동으로 확대된 것은 2002년 볼로냐에서 <오르페오(Orfeo) TV>가 개국하면서 부터이다. 70년대부터 해적 라디오 방송으로 유명했던 <라디오 앨리스(Radio Alice)> 채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오르페오 TV>는 작은 송신기 하나와 안테나, 텔레비전 한 대로 지역방송국을 실현할 수 있음을 좀더 현실적으로 증명해보였다. <오르페오 TV>의 사례는 이후 여러 공동체의 모방 견본이 되어, 파업 현장에 방송국을 연 <텔레파브리카>를 비롯, 장애인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 디스코 볼란테(Disco Volante)>, <텔레오트(TeleAut)>와 같은 수많은 방송국이 문을 여는 계기가 된다. 2005년 현재까지 이탈리아에는 200여 곳의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존재하며, 이들은 전국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www. telestreet.it)를 이루고 정기적인 전국 모임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소출력 방송국은 실제 어떻게 만들어질까? <오르페오 TV>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대강 이렇다.


 

텔레스트리트 방송국 만들기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을 실현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은 3가지다. 일단 저렴할 것, 설치가 쉬울 것, 다른 송신 장비나 사용자를 가능한 한 방해하지 않을 것.

 

a. 장비와 비용, 채널

우선 필요한 장비는 앞서 언급한 대로 안테나와 케이블, 송신기가 전부이다. 송신 범위를 좀더 확대하고자 할 때는 여기에 (전파) 증폭기 정도가 더 필요하다. 주로 인근 전파상에서 구할 수 있는 이런 장비는 이탈리아 물가로 약 500유로(65만 원)에서 1000유로면 마련할 수 있다. 보통 건물 옥상에 설치하는 안테나로 송신할 수 있는 범위는 150m 이내에 불과하지만, 좀더 비싼 송신기와 증폭기를 부착할 경우, 지역에 따라 약 1킬로미터 이내에서 여건이 좋을 경우 3킬로미터까지 송신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주파수는 주류 방송국의 송신시설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활용했다. 이를테면 건물이나 언덕, 산과 같은 자연지리적인 장벽 때문에 생기는 이른바 ‘음영 지역(shadow zone)'에 소규모 송출기를 세워 주류 방송의 신호가 잡히지 않는 빈 채널로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식이다.


b. 제작 주체와 컨텐츠

텔레스트리트 채널을 생산하는 주체나 컨텐츠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초기에는 미디어 활동가 학생이 주축이 되었지만, 현재는 이주노동자나 장애인 그룹, 노동조합 등과 같은 특정 목적을 띤 운동세력뿐만 아니라 동네 반상회 같은 일상을 소개하는 주민들의 채널 또한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부 기독교 집단까지 공식적으로는 불법인 소출력 해적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으니 해적 방송의 대중화를 짐작할 만하다.

방송 시간이나 편성 또한 천차만별이다. 극소수의 방송국만이 24시간 방송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하루 몇 시간, 혹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방송을 한다. 물론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게릴라 채널을 지향하며 비정기적으로 게릴라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곳도 다수다.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


한편, 텔레스트리트 방송국이 현 시점에서 더욱 난립(?)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이탈리아의 기형적인 미디어 시장구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한 1974년 법원의 판결, 즉 공영방송의 미디어 독점이 위헌이라는 결정은 독립 미디어 방송의 활성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지만, 상대적으로 자본이 풍부한 사영방송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 이탈리아 총리이자 정,재계 실권자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유망한 사업가였던 베를루스코니가 미디어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은 80년대 중반, 이때부터 그는 주요 사영 채널 4곳 중 3곳인 <카날레 5>와 <이탈리아 우노>, <레테 파트로> 등을 사들였고, 이를 ‘미디어세트(Mediaset)'라고 칭하면서 사영방송 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재력과 미디어 권력을 바탕으로 94년 총선에 승리하면서 베를루스코니는 최초의 재벌 총리가 되었고, 권력을 바탕으로 이후 국영방송인 RAI(1,2,3)까지 장악하면서 전국 시청자층의 90% 이상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게 되었다. 잦은 실정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2001년 5월,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여론조사를 조종할 수 있는 그의 미디어 장악력 때문이다.1)

 

지상파 방송을 베를루스코니가 장악하고 있다면 이탈리아 유료 위성채널은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 전세계 미디어 시장을 독식하면서 이미 소유한 미디어 채널만으로도 전 지구인의 1/4이 그의 미디어를 소비해야 하는 머독의 미디어제국은 이탈리아에도 이미 그 세력을 뻗쳤다. 국내 가장 큰 유료 텔레비전 채널 두 곳, 즉 가장 규모가 큰 Stream의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으며 또 다른 유료 채널인 Telepiu도 최근 인수했다. 여기에 베를루스코니와 머독의 암묵적인 공조체제가 더욱 공공해지고 있으니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을 황폐화는 시간 문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텔레스트리트 운동은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의 구조적 모순에서 잉태된 필연적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과 권력의 미디어가 더욱 상업적이고 폭력적으로 변질되면서 사람들은 볼거리를 잃어갔고, 권력과 결탁한 정치적 공세에 물리기 시작했다. 질적으로 하락한 방송과 눈과 귀를 막는 정보 편중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점차 스스로의 미디어 생산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가능성, 실험은 계속된다

 

세계화가 가속화될수록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더욱 성장하고, 이와 맞물려 미디어와 권력, 자본과의 결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때문에 정보의 정치가 중요해지면 질수록 자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인프라 구축과 대안적인 정보 배포를 통한 대응전략이 요구된다. 최근 텔레스트리트 네트워크는 단순히 실험적인 방송국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 방송 컨텐츠를 더욱 안정적이고 유기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미디어 액티비즘이 단순히 대안적인 정보를 생산해내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커뮤니케이션 이슈를 만들고 대립 지점을 부각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때 각 지역의 이슈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운동이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하는 주체의 정체성이나 컨텐츠의 내용, 방송에 대한 시각의 측면에서 볼 때 현 시점에서 텔레스트리트 운동을 급진적인 미디어 운동 영역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의 유혹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탈리아 미디어 구조 속에서 영상세대 시청자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수용자 입장에 머물기 거부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류 미디어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 생산과 배포를 거부하고 정보 공유와 소통을 통한 대안적인 내러티브 생산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다음은 이러한 텔레스트리트 운동의 한 경향을 대변한다.

 

#.

로마 외곽의 산 로렌조(San Lorenzo) 지역, 빈민가로도 유명하며 전통적으로 급진적인 사상이나 예술 운동이 많이 일어났던 이 지역 일대에서 최근 미디어 재벌 머독의 뒤통수를 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은 이탈리아 챔피언십 경기가 열리던 날 밤, 유로 채널인 <스카이 이탈리아>(머독 소유)에서만 독점으로 중계되어야 할 결승 경기가 이 일대 빈 채널이었던 UHF 21번에서 무료로 전송되었다. 주범은 바로 TeleAut를 비롯한 이 일대 텔레스트리트 그룹, 이들은 경기가 열리기 얼마 전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위성방송의 신호를 해독, 재송신하는 방식으로 지역 전체에 경기를 무료로 방송해버렸다. 더욱 재밌는 것은 중간중간 광고 타임에 머독의 미디어 독점체제를 비판하는 광고와 지역투쟁 소식까지 곁들였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동시에 머독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이 사건은 다음 날 온 나라의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이탈리아에서 챔피언십 경기는 온 국민의 눈을 사로잡는 이벤트다. 관람 티켓은 불티나게 팔리고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상파 중계에 목을 매I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디어재벌 머독이 소유한 <스카이 이탈리아>가 축구 중계권을 손에 넣으면서 TV로 축구를 보기 위해 최소 47유로를 내고 유로채널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난한자들은 스포츠를 즐길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날 산 로렌조에서의 텔레스트리트 방송은 이러한 자본과 권력의 현실에 대한 파괴를 꿈꾸는 유쾌한 실험이었다. 어찌되었건 텔레스트리트는 더욱 대중화되었고 사람들은 축제를 즐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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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미디어 장악은 비단 방송국 채널만이 아니다.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잡지 <파노라마>, 최대 출판업체인 <몬다도리>, 인터넷 미디어 그룹 <뉴미디어>, 최대 상영관 매체인 <시네마 5>, 비디오 대여 체인인 <블록버스터>, 그리고 명문 축구단인 <AC 밀란> 등을 포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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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6-24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죠??

해적오리 2005-06-2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에는 없나 봐요.

MANN 2005-06-2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balmas 2005-06-24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나리님, 핫! 정말,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MANN, 오랜만이네, 이제 좀 한가하겠구만.

릴케 현상 2005-06-2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케이비에스1,2랑 엠비시,이비에스 이 네 프로만 있던 시절 이후에는 거의 티뷔라는 걸 가진 적이 없어서(사실 그전에도 내가 가진 건 아니겠지만) 케이블이나 유선방송 자체에 대해 감이 안와요(오늘 물어보니 케이블과 유선은 같은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으려면 유료방송이 전제되겠죠? 유료방송이 감이 안오는 산책임다-_-

balmas 2005-06-2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블과 유선은 유료잖아요.
가령 박찬호 야구경기 중계를 보려면 케이블이나 유선방송을 신청하고
다달이 얼마씩 돈을 지불해야 하니까,
이것도 유선인 셈이죠. :-)

릴케 현상 2005-06-2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게 유료라고 하더군요^^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 감이 안 온다는 얘기죠? ㅋㅋ 가격이 얼마 정도 하나요?

balmas 2005-06-25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격은 저도 잘 모릅니다. ^^;;;
저희집은 유선방송을 보내는데, 한 달에 한 3천원 정도 하나 ...
 

* 아주 재미 있는 기사가 있어서 [미디어 참세상]에서 하나 퍼왔습니다.

 

텔레스트리트 : 이탈리아 해적 TV 운동
    
제작: 앤드류 로웬탈

이탈리아는 수상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상업 채널 4개 중 3개와 공영 채널을 소유하고 있다.
이 숨막히는 미디어 독재 상황 하에 이탈리아에서 유난히 발달한 저항 미디어 운동이 있으니,
이것이 텔레스트리트다.

"로마 외곽의 산 로렌조(San Lorenzo) 지역, 빈민가로도 유명하며 전통적으로 급진적인 사상이나 예술 운동이 많이 일어났던 이 지역 일대에서 최근 미디어 재벌 머독의 뒤통수를 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은 이탈리아 챔피언십 경기가 열리던 날 밤, 유로 채널인 <스카이 이탈리아>(머독 소유)에서만 독점으로 중계되어야 할 결승 경기가 이 일대 빈 채널이었던 UHF 21번에서 무료로 전송되었다. 주범은 바로 TeleAut를 비롯한 이 일대 텔레스트리트 그룹, 이들은 경기가 열리기 얼마 전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위성방송의 신호를 해독, 재송신하는 방식으로 지역 전체에 경기를 무료로 방송해버렸다. 더욱 재밌는 것은 중간중간 광고 타임에 머독의 미디어 독점체제를 비판하는 광고와 지역투쟁 소식까지 곁들였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동시에 머독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이 사건은 다음 날 온 나라의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이탈리아에서 챔피언십 경기는 온 국민의 눈을 사로잡는 이벤트다. 관람 티켓은 불티나게 팔리고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상파 중계에 목을 매I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디어재벌 머독이 소유한 <스카이 이탈리아>가 축구 중계권을 손에 넣으면서 TV로 축구를 보기 위해 최소 47유로를 내고 유로채널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난한자들은 스포츠를 즐길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날 산 로렌조에서의 텔레스트리트 방송은 이러한 자본과 권력의 현실에 대한 파괴를 꿈꾸는 유쾌한 실험이었다. 어찌되었건 텔레스트리트는 더욱 대중화되었고 사람들은 축제를 즐겼을 뿐이다." - 액트 19호 중에서 (아래 자료 참고)

 

 

 

http://www.newscham.net/news/trackback.php?board=international_media&id=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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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6-2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balmas 2005-06-23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죠? 해설 기사도 한번 읽어보세요. ^_____^

해적오리 2005-06-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어요.

마냐 2005-06-2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퍼감다. ^^
 
 전출처 : balmas님의 "책 안내-트랜스토리아 2005년 상반기호"

그렇죠. 스피노자 철학에서도 "esse"라는 용어가 드물게 사용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 용어가 당대의 철학 어휘로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지, 스피노자

자신이  이 용어를 중시하거나 이 용어에 대해 독창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닙니다.

 

esse는 원래 중세철학,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existentia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까(그리고 그와 함께 perfectio라는 의미도 수반되죠) 이걸 본질로

이해할 수는 없겠죠. 반면 스피노자는 esse라는 단어보다는 realitas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고, esse를 realitas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피노자가 "서구 형이상학에 맹점을 만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하이데거의 서양 형이상학의 계보의 한 가지 맹점을 보여주는" 철학자라고

했죠. 제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 심지어 그 이전의 철학자들

로부터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 그리고 칸트 및 독일 관념론을 거쳐

마르크스와 니체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모든 철학이 "존재"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보고 있죠.

 

그런데 스피노자는 "존재"의 문제,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자로서의 존재자"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이 "존재"에 해당된다고 하는 건 순전히 견강부회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제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형이상학/철학의 중심 대상으로 간주한 철학적 계보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계보는 서양 철학사의 <한 가지 계보>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의 철학 계보에는 오캄 같은 유명론자나 홉스, 로크, 흄 등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경험론 전통은 들어설 자리가 없죠. 이러한 철학 계보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영향력이 떨어진다고는 전혀 이야기할 수 없는데 말이죠. 반면 스피노자는

소위 대륙 합리론의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이긴 하지만,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와는 달리

하이데거가 거의 연구하거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철학자이죠. 이는 하이데거 자신도

스피노자 철학이 자신의 철학사 계보의 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얼마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방증해주는 한 가지 증거로 볼 수도 있겠죠. 또 사실이 그렇구요.

 

그러니 아무 철학자에 대해서나 "esse"나 "존재"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고, 또 그게

철학사를 이해하는 바람직한 방식도 아니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하이데거의

철학이나 1930년대 신토마스주의(자크 마리탱, 에티엔 질송)의 영향이 그만큼 후대의

서양 철학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

철학계는 일제시대부터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컸으니까, 대륙 철학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철학도들이 이러한 철학사적 관점을 거의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이제 비판적 거리를 두고 볼 필요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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