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물구나무] 지하철 역사, 상업광고가 ‘찜’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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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 
바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하는 지하철!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지하철과 역사 곳곳에서 ‘날 좀 봐 달라!’며 아우성치는 상업 광고의 몸부림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오히려 광고에 무감각해지는 것일까.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쳐 버린 한 장면이 어느 날 문득 내 시선을 고정시켰다.



지하철 역사 벽면, 철길 사이, 기둥면, 차단막, 스크린 도어 등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가 동원되어 넓혀질 대로 넓혀진 광고 공간. 그런데 요즘 광고 신청이 잘 들어오지 않는지, 군데군데 비어있는 광고 공간이 부쩍 늘었다. 그리고 비어있는 광고 공간에는 광고신청 문의를 알리는 공고문만이 애처롭게 붙어있다. 광고비를 내면 어떤 내용이든 광고가 가능하되, 광고비를 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광고를 할 수 없는 양, 광고가 채워질 때까지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애초 이 공간은 광고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하철 역사는 단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요충지이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다. 그렇다면 지하철 역사는 지역민과 다중에게 ‘유익한’ 공공정보가 흘러넘쳐야 마땅하지 않을까? 지역단체가 동네잔치를 벌이니 지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한다는, 독거노인을 위해 무료로 도시락을 배달하는 곳이 어디라는, 지금 보건소에서 어린이 예방접종이 실시되고 있다는, 지역의 난개발이 왜 문제인지 토론회가 열린다는 등등. 정부 정책이나 국회 입법에 반대하는 대중 집회의 안내 정보도 가능할 것이다.

어차피 광고 신청이 들어오지 않아 텅 비어져 있는 공간이라면, 지역민과 다중에게 도움이 되는 공공정보로 채우든지, 아니면 게시판 자체를 없애서 사람들의 시선을 쉴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아니, 광고 신청이 쇄도해서 광고 공간이 모자란다 하더라도, 일정 비율 이상은 공공정보를 붙일 수 있도록 비어두어야 할 것이다. 지하철 역사는 상업광고가 ‘찜’ 해둔 공간이 아니기에…….
인권오름 제 8 호 [입력] 2006년06월13일 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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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6-21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 역사가 굳이 공공의 공간인가에 조금 의문이 생겨요. 상업광고로 뒤덮이는 게 좋다는 게 아니라, '공공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래야 한다는 좀 다르니까요. 당위의 전제가 어색하니, 비약처럼 느껴지는걸요. 그렇게 따지자면 공공의 공간이 아니었으면 좋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TV도(물론 공익광고도 나오지만) 온통 상업광고로 뒤덮여 있는데.
 

 

 

“산꼭대기 향한 경쟁 아닌, 들판에서 어울리는 교육을”

공공연대 연속 인터뷰](1) -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함께 7월 총력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공공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이 함께 하는 공공부문노조연대회의(공공연대)는 ‘사회공공성강화, 한미FTA저지, 공공부문 노동3권 쟁취’를 공동의 목표로 설정하고 6월 말 7월 초에 걸쳐 총력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공공연대 참가 노조 위원장을 연속으로 만나 각 노조의 현안에 대한 입장과 투쟁계획,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이 갖는 의미 등을 들어본다. 첫 번째로 장혜옥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났다.


장혜옥 위원장은 지난 9일부터 △성과급 차등 지급 반대 △최대 개념 표준수업시수 법제화 △방과후학교 즉각 중단 △교장선출보직제 도입 △사학법 재개정 반대 등 5대 교육현안 해결을 촉구하며 교육부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전교조는 5대 교육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6월말까지 교육부 앞에서 지부장과 지회장이 참여하는 중앙 집중 릴레이 농성과 학교 현장 투쟁을 진행하고, 7월 8일 예정되어 있는 공공연대 총력투쟁까지 집중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교육차별 방치하는 정부, 사사 건건 개입하고 전면적 투쟁할 수 밖에“

이정원 기자

노숙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장혜옥 위원장은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전교조가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밝혔다. 장혜옥 위원장은 “지금 정부의 교육정책은 교육자체를 시장에다 맡기겠다는 것이며 교육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전부 돈벌이로 내몰고 있다”며 “돈에 따라 형성되고 있는 차별적 교육조건을 정부가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교조는 사사 건건 개입하고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현재의 조건에 대해 밝혔다.

전교조는 교육사안 뿐 아니라 이리 저리서 튀어나오고 있는 악선동 때문에 더욱 힘들어하고 있다. 얼마 전 전교조 조합원이기도 했던 김진경 前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이 전교조에 대해 “이익집단”, “전무 아니면 전부식의 투쟁” 등의 말을 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혜옥 위원장은 “지금 정부의 교육정책들은 아이들을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마치 희망이 있을 것처럼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전교조는 들판에 나가 함께 어울리고 서로 다른 것을 통해 자기 가치를 받는 교육을 해보자는 것”이라며 “지향이 다른데 어떻게 전부 반대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공공연대 투쟁, 사라진 공공성을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제기하는 것“

7월에 앞두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총력투쟁에 대해서 장혜옥 위원장은 “한국에서는 공공성이라는 말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라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사회의 공공성을 더욱더 확대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기하기 위함이며, 흩어져있던 투쟁의 요구를 모아 거대 산별의 개념으로 대정부 교섭을 진행하자는 것”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개방화, 시장화를 기조로 하고 있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교육자체를 시장에다 맡기겠다는 것이 그 중심이다. 공공 영역으로서의 교육이 가져야 할 인권교육, 의무교육, 무상교육 등의 가치는 사라진 채로 재정능력에 따라 벌어지고 있는 교육차별을 점점 더 가속화 시키고 있다. 현재 공교육비가 20조 수준인데, 사교육 30조 규모다. 이 중 영어교육에만 10조정도가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교육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전부 돈벌이 영역으로 포함되어 버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서 정부는 공교육 자체에 사교육을 넣으려고 하는 ‘방과후학교’ 것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교육, 의무교육이라는 공교육을 지키려고 하는 전교조는 그야말로 사사건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5대 교육현안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살펴보자. 첫째로 성과급 차등지급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후 교사 구조조정으로까지 연결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한가

이정원 기자

비정규직이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직 사회에도 등급별로 성과급을 차등지급해 노동조건을 불안정하게 만들려 하는 것이 바로 성과급 차등지급이이다. 성과급 차등지급은 지난 2001년 전교조가 전면적으로 성과급 반납투쟁을 전개해 10%로 정리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때의 약속을 깨고 차등지급되는 성과급을 5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입장이다. 성과급이라고 하면 보너스라고 알고 있는데, 교사는 총액임금제이기 때문에 보너스가 아니라 임금을 고정시켜놓고 이 사람 것 빼서 이 사람한테 주면서 차등지급 하겠다는 것이다.

차등지급을 하려면 등급을 나누기 위한 평가가 필요할 것이며 평가의 기준은 성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교사와 학생 그리고 교육과정 자체가 성적이라는 잣대로 경쟁하게 되고 서열을 정하게 될 것이다. 이는 바로 교원평가의 도입과 연결되는 것이다. 교육의 권한이라는 것은 교사로서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인정하는 것인데 성적을 잣대로 진행되는 평가는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를 파탄 낼 것이다. 교육은 오로지 성적만 남고 기본적인 인성교육 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또한 이러한 평가는 교사들의 노동조건을 당연히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며 학교에도 비정규직 교사가 넘치게 하는 수순이다.

표준수업시수 법제화는 전교조가 오랜 기간 요구한 것인데

전교조는 적정수업시수를 일주일에 초등 20시간, 중등 18시간, 고등 16시간으로 제안한 바 있으며 이를 위한 교사 충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교사수는 법적정원의 83%밖에 안 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은 수업과 행정업무, 담임업무 등으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는 교원 충원은커녕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평균수업시수를 도입해 충원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미 2번의 단체협상을 통해 합의 된 것인데 정부는 이를 추진하지 않고 있어서 이를 법으로 만들라는 것이 전교조의 요구다.

교장선출 방식을 두고 2기 교육혁신위가 파탄이 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교조는 ‘교장선출보직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 내용은 어떠한가

2기 교육혁신위는 교원의 승진제도를 개선하겠다며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개념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교사로서 다 자기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데 ‘승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도입될 수 있는가. 교육부는 승진의 욕구가 생겨야 교사들이 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판이다. 중요한 것은 학교 내 모든 주체들이 평등하게 권력을 나눠가져야 하는 것이다. 교장이 인사권, 예결산권, 채용권, 퇴출권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그대로 둔 채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다고 열어 놓는 것은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권력을 분산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층층이 올라가려는 경쟁만 심해지고, 무한 경쟁에서 오히려 권력을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전교조는 ‘교장선출보직제’와 동시에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모임의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자신의 권력을 조금 더 넣을까를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나눠가짐으로서 민주주의를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방과 후 학교’를 둘러싸고 김진경 씨가 “소외된 지역의 우수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고민인데, 입시교육으로 가니 안 된다고 하는 전교조의 반대논리는 전부 아니면 전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해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전교조에서는 즉각 중단을 외치고 있는데 어떠한가

이정원 기자

아마 김진경 씨가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노무현 정권도 힘을 실어준 것이 ‘방과 후 학교’였던 것 같다. 일단 개념부터 잘못된 것이다. 방과 후 인데 학교는 무슨 학교나 ‘방과 후 활동’이 맞는 것이다. 전교조는 ‘방과 후 활동’에 대해서는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과 함께 입법발의까지 해놓았다.

우리가 얘기하는 ‘방과 후 활동’은 보육의 개념이다. 저소득층 자녀, 맞벌이 자녀 같이 어려운 아이들 모아서 돌보자는 것이다. 원래는 사회 인프라가 구축이 돼서 학교가 아닌 도서관, 문화회관, 스포츠 센터 등에서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방과 후 학교’는 뜬금없게 ‘사교육비 경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학원에서 10만원 주고 하는 거 2만원 주고 학교에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냥 싸구려 사교육을 학교로 들여오겠다는 것이고 더 좋은 사교육을 들여오려니까 오히려 점점 더 비싸지고 있고, 이를 채우기 위해 교사 용역회사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 공부 잘하는 애들만 모아서 교육시키는 황제교육이 되거나 일방적으로 전원에게 보충수업을 강요하기도 한다. 주객이 전도되어서 입시위주의 교육을 방과 후에도 학교에서 하는 것이 지금의 ‘방과 후 학교’ 이다. 이런 방과 후 학교는 100% 실패한다. 현장의 감각으로 알 수 있다.

이런 요구를 가지고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함께 공동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정원 기자

교사, 공무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요구는 모두 공공성의 문제와 만날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IMF 이후 공공성이라는 말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의 공공성을 확장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먼저 나서자는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사회의 공공성을 더욱더 확대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기하기 위함이며, 흩어져있던 투쟁의 요구를 모아 거대 산별의 개념으로 대정부 교섭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전교조는 이 속에서 5대 교육현안과 더불어 교육시장화, 개방화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은 외국교육기관특별법 등 자발적 조치들로 개방화,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한미FTA로 인해 이는 더 가속화 되고 있다. 우리가 싸워서 이기면 공공의 영역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이는 사적영역까지 넓혀지면서 더욱 안정된 노동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는 이런 투쟁을 통해 내부를 정비하고 국민적 여론을 형성해 하반기 교원평가 반대 투쟁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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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선비, 붓을 잠시 놓고 劍을 뽑다
[조선일보 2006-05-02 03:03]    
‘武의 문화’ 보급 나선 동문선 출판사 신성대 사장
인문서적만 만드는 뚝심의 출판인 사무실
한켠에 무예수련장 만들고 국군전통의장대에 십팔기 가르쳐

[조선일보 조민욱기자]

“칼로 싸우다 지면 깨끗이 승복하는데, 말(言)로 지면 앙금이 남습니다. 요즘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입니다. ‘문(文)의 문화’가 대세가 되면서 ‘무(武)의 문화’의 장점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찾아야 합니다.”

서울 인사동의 중견 출판사 ‘동문선’의 신성대(辛成大·52)대표는 괴짜들이 몰려든다는 인사동에서도 터줏대감이 되기에 손색없는 ‘왕괴짜’다. 그는 600여 종의 인문서적을 줄기차게 펴낸 출판인으로도 이름 있지만, 여기까지만 알았다면 그를 반도 못 안 것이다. 신씨는 37년째 전통무예 십팔기(十八技)에 정진하고 있는 무인(武人)이기도 하다. 그는 출판사 대표인 동시에 ‘십팔기 보존회장’이며 ‘동양무예연구소장’이다.

출판사 사무실 한쪽엔 아예 무예 수련공간을 꾸며 놓고는 종종 칼을 들고 수련한다. 4년 전부터는 십팔기 시범단을 만들어 전국을 돌고 있으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90여 차례 공연한 공로로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외부 활동도 문무 두 영역을 넘나든다. 어느 날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출판·편집 실무’를 강의하고, 또 다른 날엔 국군전통의장대 무예십팔기 지도사범 자격으로 병사들을 호령한다.

남이 쓴 책을 출간만 해 주던 그가 생애 첫 책을 써 냈다. 최근 나온 ‘무덕(武德)-무(武)의 문화, 무의 정신’(동문선)은 한마디로 그가 무예를 통해 무엇을 깨닫고 얻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신씨에게 무예 수련이란 단순한 신체단련의 차원이 아니다.

그는 “문이 사유(思惟)하는 철학이라면 무는 행동하는 철학”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을 숭상하고 무를 푸대접함으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국민성을 형성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씨는 “가령 옛날 500원 지폐엔 이순신 장군 초상과 거북선이 있었지만, 요즘 우리 돈에는 세종대왕·퇴계·율곡 등 문(文) 쪽의 인물 일색 아니냐”고 했다.

“특히 현대사에서 군사독재의 어두운 역사 때문에 ‘무’(武)가 더 폄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 변함없는 항심(恒心), 신의(信義) 등을 특징으로 하는 무의 정신과 에너지는 이어받을 가치가 큰 것입니다. 한강의 기적은 선비 정신이 만든 게 아니라 우리 혈관 속에 흐르는 기마민족의 진취적인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닙니까?”

그는 “내가 돈 안 되는 인문서적을 고집스레 출판하는 것도 무인의 뚝심 때문”이라고 했다. 굴곡 많은 인생길을 헤쳐온 힘도 무예로 닦은 정신력이다. 경남 마산에서 상경한 10대 시절의 신씨는 무예는커녕 동네 왈짜패들에게 괴롭힘을 받던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싸움 기술이나 익혀 보려고” 도장을 찾았다가 십팔기의 유일한 전승자인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을 만나 평생 제자가 됐다. 젊은날엔 전공(해양대 부설 전문대 기관과)을 살려 외항선 마도로스가 되어 오대양을 누비기도 했으나, 한 친구의 동업 제의로 출판에 뛰어들었다. 첫 작품으로 이외수씨 책을 낼 땐 동업자가 신씨 돈을 갖고 잠적해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다행히 이외수씨가 사정을 듣고는 ‘쓰다가 버린 파지’라며 건네준 원고가 ‘말더듬이의 겨울 수첩’이라는 베스트셀러 산문집으로 히트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말라카 해협서 해적을 만났을 때, IMF를 맞아 출판사가 부도 직전에 갔을 때에도 저를 버티게 해준 것은 무예입니다. 칼날 위를 걷는 심정으로 한순간 한순간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살 길이 생긴다고 믿었죠.”

그가 무예 대중화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십팔기는 어느 한 문중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만든 무예로 세계에서 유일한 것입니다.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이 무인으로서의 저의 사명입니다.”

(조민욱기자 [ mw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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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21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후안무치해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이 사람은 그런 점에서는 질적 비약을 이룩한 사람인 듯 ...

이런 인사가 책 냈다고 인터뷰 기사를 실어주는 곳이

어디인가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조선일보였다.

물론 한겨레도 만만찮다. 한겨레의 뛰어난 균형 감각!

http://news.empas.com/show.tsp/cp_hn/20060501n06527/?kw=%BD%C5%BC%BA%B4%EB+%BD%C5%BC%BA%B4%EB+%BD%C5%BC%BA%B4%EB+%7B%7D

 


퍼그 2006-06-2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상대로 '너무나' '특이한' 분이네요.ㅎㅎ "동武선"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

balmas 2006-06-2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문선은 원래 있던 출판사인데, 이 사람이 아마 중간에
인수한 게 아닌가 싶어요. (확실치는 않지만 ...)
그나저나 한겨례가 정말 놀랍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기사를 떡하니 실어주는지 ... -_-+

에로이카 2006-06-2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웬일로 발마스님께서 악명높은 동문선 기사를, 그것도 조선일보 기사를 퍼왔나 했습니다. 동문선이 프랑스 서적들 번역출판권을 입도선매해서, 그지같은 번역으로 책 망쳐놓고, 저작권 계약 없이 다른 곳에서 나온 번역서들 거둬서 다 소각시키기로 유명하더군요.

balmas 2006-06-2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문선은 후안무치하기가 이를 데 없는 출판사죠.
저는 동문선에 기생하면서 알토란 같은 프랑스 서적 정보들을 제공해주고
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 우울하고 안타깝더군요.
동문선을 통해서 나오기도 전에 죽어버린 책들, 그것도 하나같이
귀중하고 값진 책들을 생각하면 ...

불어 깨나 하고 프랑스에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많다는 우리나라
프랑스 학계 교수들은 뭐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저 같으면 프랑스 출판사들에게 편지를 쓰고 하소연을 해서라도
이런 사태를 막아보겠는데 ...

포월 2006-07-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장님이 선원도 하시고 이력이 화려한 분이예요. 빛더미에 올라앉아 있던 동문선을 인수해서 그 빚 다 갚았다던데. 세상에 대한 빚은 언제 다 갚을런지...

balmas 2006-07-0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이력이 다양하더군요.
왜 그런 이력을 가지고 출판계에 뛰어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더군요. -_-
 

 

 

축구가 지배하는 세계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7) - 축구가 안내하는 것, 기다리는 것

 

완군(문화연대) ssamwan@jinbo.net

땀구멍이 열리는 순간의 따끔따끔한 감촉, 하나의 허벅지가 낯선 허벅지와 엉켜 창조적 공간을 열어가는 역동성, 한계를 뛰어넘는 생동적 몸짓의 정점에 축구가 있다. 축구는 혁명적 신체, 전복적 신체을 향해 한계를 모르고 달려간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축구를 열광하는가? 또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이 복잡하고 대책없는 질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축구, 그 자체에 답이 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아주 어린 시절 둔탁한 공의 궤적을 따라 걸음마를 배웠고, 쉬는 시간 10분동안 쏜살같이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공을 찼으며, 수능을 앞두고서는 텔레비전 앞에 납작 엎드려 숨죽이며 월드컵에 열광했었다. 축구는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 재미를 보장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축구는 “시장과 민족국가, 기술의 통합”되어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재미의 총체이다.

짧게나마 대학물을 먹고, 민가를 배우고 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난데없이 2002년이 도착했다. “지루한 일과, 피곤한 인간관계, 반복되는 사물과 상품, 늘상 해결되지 않는 돈과 욕구” 등등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그것은 궁핍과 부족함의 반복이었고, 억압과 비루함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해결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무엇. 그것은 바로 일상이었다. 사람들은 어렴풋하나마 완고한 일상이 모든 실험과 혁명을 삼켜버렸음을 알고 있었다. 완강히 지속되는 일상, 그것은 실로 거대한 위대함이다. 또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의 삶이 영원히 지속되는 한 일상성은 땅에 뿌리를 박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2002년의 난데없음을 둘러싼 체계를 따지려고 했으나 하나 같이 실패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맛보는 일탈을 정치적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을 경멸했으며, 일탈의 체계를 분석하려드는 지식 권력을 단호히 거부했다. 또 다른 이들은 난데없음의 우연성을 필연화 하려는 시도들을 했다. 광장과 축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열정과 욕망에 관한 찬사가 난무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붉은 티를 입고 거리를 점령하고 소리를 지르고 술을 마셨다. 때마침 메인무대에 올라있는, ‘태극전사’라고 명명된 ‘영웅’들까지 승승장구했다. 세상이 모든 질서와 이데올로기에서 한 발짝 비껴선 듯 했다. 그 모든 것을 축구가 만들었다고 선전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축제이든 모험이든 혁명이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일상성의 완고한 지속성과 거대한 위대함이 2002년에만 살짝 사라졌을 리 만무했다. 붉은 기운에 도취되어, 아스팔트의 해방감에 망각되었을 뿐이었다. 2002년의 기쁨과 쾌락은 또 다른 일상의 확인이었다. 사람들은 조금 늦게서야 ‘국가’와 ‘민족’에서 ‘자본’과 ‘소비’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거대한 지배구조가 본격적으로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음을 이해했다.

사람들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세계화’의 실체를 확인했다. 무역 장벽이 무너지고 기술 발전으로 세계가 동네가 되고 있다는 말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상호의존적 세계 혹은 제국 의존적 세계 질서에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렇게 IMF는 극복됐고, WTO체제는 진화하며, FTA는 순항중이다. 브라질의 호나우두, 프랑스의 지단, 잉글랜드의 베컴을 인식하고 그들이 자본의 지휘아래 ‘레알마드리드’에서 함께 뛰는 것보다 더 극적으로 ‘세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는 없다. 여기에 기술의 발전까지 더해졌다. 실로 눈 시린 광경이다.

그렇게 2002년은 그리고 축구는 하나의 지향이 되었다. 우리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또한 세계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심장한 약속이 이뤄졌다. 우리는 그 전환적 순간을 축제로 만들었고 대체로 흥겨웠다고 기억하고 있다. 신화는 현실이 되었고, 꿈은 이뤄진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럴까?

한국 사회에서 축구는 확실히 신체 감수성의 확장, 몸으로 느끼는 재미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중동에서 축구가 억압적 가부장 질서를 깨고 나가는 서구식 자유를 상징하듯, 유럽에서 축구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져가는 지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듯, 미국에서 축구가 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프로그램을 상징하듯이, 한국에서 축구는 초국적자본의 지배 속에서 대한민국은 부강할 것이며, 한민족의 번영과 소비의 만개를 경험하는 개인의 등장을 상징한다.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모두가 동시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술이다. 지배와 피지배, 계급간의 착취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강력한 환상이다. 달콤하되 불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현대사회의 일상성과 소비사회의 도래라는 복잡한 인과관계와 다층적 욕망을 ‘국가의 계급적 본질, 즉 그것이 독점자본의 지배도구라는 사실’이라는 쾌쾌한 한 문장으로 독해하려는 이들을 보는 일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철지난 유행가가 그럴싸한 훈계와 계몽으로 둔갑 되는 한 결코 축구가 지배하는 세계에 도전할 수 없으며, 돌파할 수도 없다.

2006년 월드컵은 참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것은 결코 축구의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를 통한 정치적 우민을 양산하는 국가계급의 소박한 불량함을 훌쩍 넘어서는 도발적 질문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축구는 손가락일 뿐이다. 축구가 가리키는 달을 봐야한다. “문화적으로 억눌린 동시에, 욕망하는 한편, 자본에 의해 조작되는 대중”을 월드컵이 호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세계화’를 구매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축구일 뿐이라고 선전되고 있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개인으로 호명됐던 이들을 열혈 민족주의자로 변모시켰던 축구이다. 그 퇴행속에는 근대적 억압과 지배구조의 자가발전이 있었다. 그리고 축구가 지금 다시 조건 없는 경쟁, 예외 없는 개방, 시장 우위의 사회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국가주의 장치로서의 월드컵, 구식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게임으로서의 축구를 훌쩍 뛰어넘어 2006년 월드컵이 도착했다. 자본이 깔아놓은 전지구적 꽃비단 길을 따라 신자유주의가 만개를 기다리고 있다.

완군 님은 문화연대 활동가로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고정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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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꽤 많네 ... -_-;;

우선 갈레아노의 [축구, 빛과 그림자]

스테판 지만스키,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

프랭클린 포어,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리처드 줄리아노티, [축구의 사회학]

등이 읽을 만할 것 같은데,

줄리아노티의 책은 번역이 별로 시원치않은 듯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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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6-1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쟈게 많군요. 저 책들의 출판일자를 확인하고픈 욕구가...
요즘은 뭐든 '축구'만 들어가면 다 팔린다고 한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