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금요일 국제비교한국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원고입니다.
아직 완성된 글이 아니고 초고인데, 이 글이 현재의 정세를 다루고 있어서 여기에 올려둡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고 의견 주시면, 앞으로 이 글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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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다: 12.3 친위쿠데타 이후 증언의 민주주의
1. 머리말: 증언과 민주주의의 이율배반
먼저 오늘 귀중한 발표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국제비교한국학회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10여 년 전에 이 학회에서 발표하고 좋은 토론 및 논평의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오늘 다시 한 번 보기 드문 기회를 얻게 되어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고 반갑게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이 발표의 자리를 보기 드문 기회의 자리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역사의 매우 드문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 3일 밤 느닷없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함으로써 발생한 사건, 45년 만에 이루어진 친위쿠데타의 사건이자 시민들의 저항으로 쿠데타를 저지한 사건이기도 하고, 국회에서 세 번째로 대통령 탄핵 소추가 의결된 사건이자 극우 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이 전개되고 있는 사건, 따라서 내란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 이 사건에 관해, 탁월한 역량을 지닌 동료들과 더불어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 살아가면서 몇 번 가질 수 없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점에 관해 이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저를 초청해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오늘 제 발표를 경청하고 또 아마도 좋은 질문과 논평을 제기해주실 여러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이 기회가 제게 특별히 더 의미 있게 여겨진 것은, 이 학술대회가 “증언”을 주제로 하는 대회라는 점 때문입니다. “증언으로서의 문학과 문화예술”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12.3 친위쿠데타 이후 탄핵 정국의 한 가운데서 개최된다는 점이 제게는 아주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양자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할지 몰라도,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증언이라는 주제만큼 현재의 정국에서 시의적절한 주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증언이라는 주제, 증언이라는 개념 또는 증언이라는 문제야말로 오늘날, 현재의 정국에서 우리가 직면한 난제들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우리가 피해야 할 위험은 무엇이고 우리가 감히 무릅써야 할 또 다른 위험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친위쿠데타 이후 전개되는 탄핵 운동과 그것에 대한 거센 반동의 국면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헌법을 어떻게 재발명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시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증언이라는 개념, 증언이라는 문제는 그만한 역량을 품고 있지 않을까요?
오늘 제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서두에서 길게 우회하기보다는 오늘 제가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논점을 몇 가지 명제의 형태로 제기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명제는,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 없는 증언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명제는, 역으로, 증언이 없는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명제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명제는, 그러나 증언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이율배반의 관계 또는 아포리아의 관계이며, 이러한 아포리아의 관계를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민주주의를 재정의할 수 있고 따라서 재발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많은 분들이 이 명제들 비웃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적어도 그 설득력에 대해 매우 미심쩍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 발표문을 준비하면서 과연 이것들이 성립 가능한 명제들인지, 이것들이 타당성은 고사하고 얼마간의 설득력이라도 있는 것인지, 더욱이 명제라는 형식이 증언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해명하기에 적합한 형식인지 등에 관해 깊이 고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과연 제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오늘 학술대회에 참여해줄 것을 처음 요청받았을 때부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순간까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증언과 민주주의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이라는 화두, 따라서 역설적이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증언과 민주주의 사이의 이율배반적인 관계라는 화두가 강렬하게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부디 오늘 이 학술대회가 마칠 때까지 저를 사로잡고 있는 이 유령(들)이 저를 잘 인도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2. 첫 번째 명제와 두 번째 명제: 증언과 민주주의의 비대칭성
첫 번째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 없는 증언은 불가능하다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자명합니다. 1987년 민주화가 없었다면 “광주사태”가 “광주항쟁”이 되는 것, 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제주폭동”이 “제주4.3사건”이나 “제주4.3항쟁”이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여순반란이 “10.19 여순사건”이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아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노근리 학살사건”이나 “하미 학살”, “퐁니-퐁넛 학살”은 그 사건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또는 구 사회주의 국가들이었던 동유럽에서 각각 나름대로의 민주화 과정이 시작된 이후에 비로소 구체제에서 이루어졌던 다양한 형태의 국가폭력에 대한 조사 및 증언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프리실라 B. 헤이너, 국가폭력과 세계의 진실위원회, 주혜경 옮김, 역사비평사, 2008.] 그렇다면 민주주의 없이 증언은 불가능하다는 첫 번째 명제는 타당성과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명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을 갖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이후, 민주화 이후에 비로소 증언이 가능하다고 해도, 따라서 민주주의, 곧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자신의 본질적 요소 중 하나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에는 증언을 가능하게 하는 역량이 본래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과연 증언에 그런 힘이 있을까? 증언에는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본래적인 역량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증언을 가능하게 하듯이, 민주주의 없이는 증언도 없듯이, 역으로, 대칭적으로, 증언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증언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두 번째 명제는 민주주의와 증언 사이에서 모종의 대칭성을 설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처럼 민주주의와 대칭적인 지위를 가질 만큼 증언이 중요한 것인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증언이 중요한 것이기는 해도, 그것을 민주주의와의 대칭적 관계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증언은 국가폭력이나 사회적 폭력 또는 홀로코스트와 연결시키는 것이 적절한 것이 아닌지, 또는 여성이라든가 성소수자 아니면 이주노동자나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과 본질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문제들은 분명 민주주의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로 포함될 수 있는 문제들은 아니며,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또는 민주주의와 얼마간의 관련성은 맺고 있다고 해도, 그 본령은 사실 민주주의 그 이상이거나 그 이전의 것인 문제, 인간의 존엄성이나 근본악의 문제, 인종주의나 민족주의, 성차별주의, 비장애인중심주의에 대한 고발의 문제라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증언의 본령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 이 문제들을 민주주의와의 대칭적 관계 속에 위치시키게 된다면, 오히려 이 문제들의 고유성이 잠식되거나 평면화되는 것은 아닐지 염려스러운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곧 증언의 문제는 지금 열거한 이 쟁점들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사실 그것을 증언의 본령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오히려 증언의 본령은 기억의 문제에 있을 것이고, 기억과 언어적 소통의 관계 ― 그것이 서사이든 법정에서의 증언이든 아니면 단순한 말하기, 그것도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정서-문장”(phrase-affect)라고 부른 바 있는,[Jean-François Lyotad, Misère de la philosophie, Galilée, 2000.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쟁론은 사실 증언에 관한 가장 중요한 철학서 중 하나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쟁론, 진태원 옮김, 경성대학교 출판부, 2015. 이점에 관한 좋은 연구로는, 조지환, 리오타르의 쟁론에서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증언과 철학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논문, 2022) 참조.] 문장 아닌 문장들로 이루어진 말하기이든 간에 ― 기억과 언어, 기억과 말하기의 관계에 있을 터인데, 증언을 민주주의와의 대칭적 관계 속에 위치시키는 것은 기억을 법적인 틀, 행정적인 틀 속에 가두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요? [이점에 관한 흥미로운 고찰로는 송혜림, 「법은 국가폭력에 대한 사법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가: 제주 4.3 재심청구 2차 재판을 중심으로」, 동방학지 제201집, 2022 참조.]
저는 이런 문제제기에 한 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동의하는 이유는, 분명 증언의 문제는 민주주의와의 대칭적인 관계 속에서 해소되지 않으며, 그것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증언은 민주주의 그 이상의 문제이자 그 이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증언이 민주주의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러한 관계는 대칭적 관계라기보다는 오히려 비대칭적인 관계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민주주의와의 비대칭적인 관계 때문에, 증언은 민주주의의 문제와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맺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증언의 비대칭성은 바로 증언이 민주주의 또는 민주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본질적인 요소 내지 동력이며, 따라서 증언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두 번째 명제의 토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대칭적인 관계,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해 과잉이면서 동시에 과소의 관계를 맺는 증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실천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한계와 더불어 그 한계로 소진되지 않는 또 다른 민주주의, 도래할 민주주의(자크 데리다)일 수도 있고 야생의 민주주의(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 미겔 아방수르Miguel Abensour)일 수도 있는 어떤 것, 또는 뒤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무정부주의 내지 아나키즘으로서의 민주주의(자크 랑시에르, 카트린 말라부Catherine Malabou, 에티엔 발리바르)일 수도 있는 것의 잠재력에 호소하면서 또한 그것을 선취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앞에서 민주주의 없이 “광주사태”는 “광주항쟁”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이 될 수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1987년 그리고 그 이후의 민주화 운동은 5.18 광주에서의 증언이 없었다면, 5.18 이후 목숨을 걸고 5.18을 증언하려는 증인들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라고 말한 윤상원 열사의 유언, 또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이 소중한 역사에 대해 증언을 해야 되지 않겄냐”는 말을 남기면서 도청에서 목숨을 던진 “그 애리디애린 것들”[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엮음, 광주, 여성: 그녀들의 가슴에 묻어둔 5.18 이야기, 후마니타스, 2012, 112쪽.]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5.18 광주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동력으로서 작동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의 유언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기록하고,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증언들에 변용되고 정서적으로 감화되어 그들을 직접 만나지도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광주 및 광주 사람들과 아무런 지연적ㆍ혈연적 관계가 없었으면서도 광주를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끌어안고 고민하고 싸웠던 수많은 5.18 광주의 후예들이 없었다면, 그래서 스스로 실천으로서 5.18을 증언했던 이들이 없었다면,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었던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날 영위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증언의 양가성
그런데 5.18의 증언은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의 5.18과 5.18의 증언은 때로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천에 대해 촉매로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를 잠식하거나 축소하는 규제의 원리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5.18의 증언은 민주주의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 증언은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실천하고 있고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민주주의 그 이상의 것이자 그 이전의 것이라는 듯이, 5.18의 증언은 5.18 열사, 5.18 당사자의 기억과 입을 떠나 자신의 고유한 삶, 더욱이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한 사례가 5.18과 퀴어운동의 갈등입니다. 김올튼 선생은 최근 한 논문에서 문제의 이 측면을 잘 보여준 바 있습니다. 선생의 전언에 따르면 2018년 제1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즈음에 광주기독교단 협의회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와 성적으로 문란한 물건들을 전시 판매하는 행태를 보여 시민들로 하여금 수많은 법적, 도덕적 논란을 야기”[김올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차별을 넘어: 광주지역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5.18 정신 퀴어링하기」, 인권연구 6권 2호, 2023,]한다는 이유로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했으며, 더 나아가 5.18 정신의 이름으로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같은 단체 김준희 사무총장은 “5・18 민주광장은 민주화를 위해 (광주시민들이) 피를 흘린 성스러운 곳이자 사적지인데 이런 장소에서 시민 대다수가 공감하지 않는 행사를 여는 것은 잘못”[같은 글, 299쪽]이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5.18 당사자들 중 하나인 5・18구속부상자회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민주 성지의 중심 5・18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퀴어축제는 오월 영령들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저지르는 패륜적 문화행사”[같은 글, 288쪽.]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비판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오월 항쟁 = 성스러운 것 대 퀴어문화축제 = 퇴폐스러운 것이라는 이원화된 등식”[같은 글, 299~300쪽.]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반면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5월 광주가 “모두가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대동 세상을 위해 피 흘리며 쓰러져간 오월영령이 잠든 곳”임을 강조하면서 “광주는 특히나 공동체 속의 모든 소수자를 아우르고, 함께 나아가야할 당위가 있다”[같은 글, 309~310쪽.]는 점에 입각하여 성 소수자들을 아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오월 정신임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5.18의 증언은 단일하지 않으며, 더욱이 어떤 5.18 당사자(들)의 증언은 5.18을 성역화하면서 성스러운 것의 이름으로 성적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또 다른 형태로도 나타납니다. 2023년 2월 19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대한민국특전사동지회가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문」(이하 공동선언)을 광주에서 발표한 바 있습니다.[박경섭, 「5·18과 용서: 용서의 (불)가능성과 죄, 책임, 정의」,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16차 콜로키움 발표문, 2024, 3쪽.] 여기에 대해 오월정신대책위원회를 비롯한 다수의 시민들이 비판과 문제제기를 하자, 여기에 대하여 5·18공법단체 구성원 중 한 사람은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겠다는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 계제가 아니라고 반발한 바 있습니다. 이 당사자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가보훈부가 주관한) 행사에서 대한민국특전사동지회와의 용서와 화해를 진행하는 것이 5.18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며, 따라서 5.18 정신에 대한 증언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어떤 자격으로서 5.18 당사자의 이 증언을 비판하고 반박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또 다른 당사자만이 그런 자격과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5.18은 더욱 신격화되고 5.18 당사자의 범위 역시 축소되면서, 5.18은 당사자들만의 문제, 또는 당사자들과 국가만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비슷한 맥락에서 김영희 선생은 5.18이 지닌 양가성의 다른 측면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김영희, 「‘5·18 광장’의 ‘애국’ 담론과 ‘여성’의 비가시화: 청취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여성’ 발화의 장소」, 경제와 사회 126호, 2020.] 선생은 5.18이 국가의 민주화운동으로 공인되고 법제화되는 것 자체, 따라서 5.18의 증언이 국가의 토대의 지위로 인정받고 승격되는 것 자체가 고유한 국가폭력을 함축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경우 국가폭력은 이중적인 측면에서 진행됩니다. 첫째, 이처럼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법제화하고 인정함으로써 국가는 애초에 5.18 학살의 주체였던 자기 자신의 폭력에 대하여 면죄부를 부여하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그러한 학살의 폭력성과 그 피해자의 민주성을 심판하고 공인하는 자리로 위치시킨다는 점입니다. 둘째, 바로 이러한 초월적인 지위에 입각하여 국가는 피해자들의 적격성 여부를 심판하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합니다. 그리하여 누가 5.18 유공자의 자격을 받을 만한지, 그 자격의 정도와 등급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 기준을 설정하고서 피해자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고 입증해보도록 요구하며,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과 부합하지 않는 이들을 판별하여 포함하고 배제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합니다. 이는 결국 국가가 5.18의 기억 및 증언의 권리를 독점하는, 적어도 법적ㆍ제도적 차원에서 독점하는 결과를 산출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5.18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비당사자는 누구인지, 유공자의 등급은 어떻게 나눌지, 어떤 기억과 어떤 증언들이 신뢰할 만하고 참된 것인지 결정할 권한은 국가에게 귀속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문제의 이 측면이 중요합니다. 증언은 민주주의와 일의적이고 순탄한 관계,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뿐더러 때로는 민주화 이후에도 더 많은 민주주의,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하면서도 때로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힘으로 퇴락하도록 만드는 촉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왜 증언은 이러한 양가성을 지니게 되고 그리하여 민주주의와 이율배반적인 관계를 맺게 될까요?
4. 이율배반이란 무엇인가: 데리다의 논의를 경유하여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율배반 개념에 관한 약간의 철학적인 논의를 우회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양 고대로부터 전승된 “이율배반”(antimomy, anti + nomos)이라는 용어에 대해 독자적인 철학적 논증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한 사람은 이마누엘 칸트였습니다. 칸트에게 이율배반 개념은 그가 “독단적 선잠”(dogmatischer Schlummer)에서 깨어나게 해줄 만큼 중요한 문제였고,[이점에 관해서는 이엽, 「이율배반: 칸트 비판 철학의 근본 동기」, 칸트 연구 26집, 2010 참조.] 그는 순수이성 비판의 2부 「초월론적 변증론」에서 네 가지 이율배반을 제시함으로써 그 이후 독일 관념론의 전개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 바 있습니다. 현대 철학에서 칸트의 이율배반 개념을 독자적으로 계승하여 변형ㆍ발전시킨 철학자는 무엇보다 자크 데리다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법의 힘이나 환대에 대하여, 용서하다 같은 저작들에서 아포리아 및 이율배반이 정의와 환대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음을 드러내면서 탈구축(déconstruction)에 함축되어 있는 실천적 차원을 명료하게 드러낸 바 있습니다.
환대에 대하여 다음 대목은 데리다가 이해하는 이율배반의 한 측면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은 마치 환대가 불가능한 것처럼 나타난다.① 마치 환대의 법이 이러한 불가능성 자체를 정의하는 것처럼, 마치 그러한 환대의 법이 위반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마치 절대적인, 무조건적이고 과장된 환대의 법 자체(la loi)가, 마치 환대의 정언명령이 모든 환대의 법들(les lois),② 곧 남자 주인들과 여자 주인들에게, 환영을 받아들이는 남자들과 여자들만이 아니라 환영을 선사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에게도 부과되는 조건들, 규범들, 권리들과 의무들을 위반하도록 명령하는 것처럼 나타난다.③ 역으로 모든 것은 마치 환대의 법들(les lois)이 한계들과 권력들, 권리들과 의무들을 표시함으로써, 도래자(arrivant)에게 조건 없는 환영을 제공하라고 명령하는 환대의 법 자체에 도전하고 그것을 위반하는 데서 성립하는 것처럼 나타난다.”④ [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이보경 옮김, 필로소픽, 2023, 113쪽. 강조는 원문의 것이고 번역은 다소 수정했음.]
여기에서 데리다는 환대의 두 가지 법 사이의 갈등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아포리아 내지 이율배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환대의 법 자체”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환대, 과장된 환대를 정언명령처럼 요구합니다. 환대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환대의 대상이 되는 타자에게 이런저런 조건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진정한 환대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타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대하는 것입니다. 그가 테러리스트일 수 있어도, 그가 성폭력 범죄자이거나 금융 사기꾼 또는 모종의 사회적 위험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조건적인 환대이고, 이것만이 진정한 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진정한 환대는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는 가운데서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② 하지만 역으로 복수로 표현된 “환대의 법들”은 일정한 조건과 규범, 절차들에 따라 환대를 수행하려고 합니다. 조건적 환대를 뜻하는 이러한 환대는 사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시행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공항에서 항구에서 또는 육상의 국경선에서 타자를 받아들일 때 대개의 경우 이름과 국적, 직업 및 입국 목적 등을 물어보며, 그가 우리나라 또는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경우 그의 입국을 허락합니다.
③ 따라서 두 경우 모두 “환대”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서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환대의 절대적인 법은, 조건적인 환대의 법들이 제시하는 조건과 절차, 규범들을 무시하고 환대를 진행할 것을 명령합니다. 환대에 대해 이런저런 조건들을 붙이는 것은 진정한 환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④ 역으로 조건적인 환대의 입장에서 보면, 도래하는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은 환대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을 잠식하고 그리하여 환대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환대를 받은 타자가 자신을 환대해준 주체 내지 주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심지어 그를 제거하는 일은 언제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리다의 이율배반은 이처럼 두 가지 상이한 주장이 서로 양립 불가능하거나 갈등을 빚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율배반 개념의 진정한 핵심은 서로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반된 두 가지 입장이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 자신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각각 다른 입장을 전제한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고 서로가 서로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서로가 양립할 수 없는 갈등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데리다가 이율배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대의 법들의 저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환대의 무조건적인 법 자체는 환대의 법들을 필요로 하고 법들을 요청한다. 이러한 요구는 구성적이다. 만약 환대의 무조건적인 법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규정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 만약 이것이 마땅히 존재해야 함(devoir-être)으로서 그것의 존재가 아니라면, 그 법은 실제로 무조건적인 법이 아닐 것이다. 환대의 무조건적인 법은 추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이며 미망적인(illusoire) 것이 될 위험, 따라서 자신의 반대물로 전환될 위험을 겪을 것이다. 환대의 무조건적인 법이 그 자신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법 자체는 법들을 필요로 하지만, 그러나 이 법들은 법 자체를 부정하고, 어쨌든 그것을 위협하며, 때로는 그것을 타락시키거나 도착되게 만든다. 그리고 법들은 항상 그렇게[무조건적인 환대의 법 자체를 부정하고 타락시키거나 도착되도록]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117쪽. 번역은 약간 수정.]
무조건적인 환대가 무조건적인 환대로 존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 무조건적인 환대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으로 조건적인 환대가 환대로 존재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조건적 환대 자체를 타락시키거나 도착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데리다가 환대의 문제에서 발견한 이율배반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법과 정의의 관계에서도, 또한 무조건적 용서와 조건적 용서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5. 증언과 민주주의의 이율배반 I: 주디스 버틀러의 분석
우리가 증언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다루면서 이율배반에 관한 논의를 우회해야 하는 이유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증언과 민주주의 양자의 관계에서도 이와 동일한 이율배반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살펴보기 위해 주디스 버틀러의 논의를 고찰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디스 버틀러는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7장에서 증언이 지니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측면을 빼어나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Judith Butler, Parting Ways: Jewishness and the Critique of Zionism,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양효실 옮김, 시대의 창, 2016. 이 번역본은 번역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원문을 꼭 함께 참조해야 한다. 이하에서 번역본을 인용할 때 발표자가 수정해서 인용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버틀러는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서사학자인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의 프리모 레비에 관한 논문을 참조하면서,[Hayden White, “Figural Realism in Witness Literature”, Parallax, vol. 10, no. 1, 2004.] 홀로코스트 증언문학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프리모 레비가 보여주는 증언의 이율배반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버틀러의 핵심 논지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프리모 레비의 정치적 곤경
첫째, 버틀러는 레비가 직면한 정치적 곤경을 지적합니다. 한편으로 레비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억과 증언을 ‘그저 이야기들’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고 그 신빙성을 부정하려는 수정주의자들에 맞서 “과학적인 엄격함의 층위에 도달할, 명확하고 투명한 언어를 추구”[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342쪽.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레비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산출하는 결정화(crystallization) 효과를 경계합니다. 여기에서 결정화 효과란, 증언을 전달하는 서사가 원래의 출처였던 증언과 (상대적으로) 독립하여 자신의 일관된 시퀀스를 유지하는 작용 및 그것이 산출하는 효과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결정화로 인해 서사는 원래의 기억과 분리되어 자신의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며, 원래의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상이한 효과를 산출하며 또 상이한 목적들을 위해 활용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버틀러는 쇼아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의 군사주의를 정당화하고 “역사의 착취를 정당화”[같은 책, 343쪽.]하는 문제를 언급합니다. 여기에서 버틀러는 “언어 속의 어떤 것이 이들 두 가지 정치적 궤도 – 레비는 둘 다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에 저항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이 문제는 특히 정치적 쟁점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함의를 갖습니다. 한편으로 이 문제는 수정주의의 문제와 결부돼 있습니다. 수정주의는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것을 상대화하려고 하는 세력으로서, 이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기억 및 이야기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문제 삼음으로써 홀로코스트의 실체를 부정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기억이나 이야기는 그 홀로코스트와 연관되어 있는 세력들, 특히 이스라엘 국가에 의해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본질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라는 문제는 그것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하지만, 그것의 진실성 내지 실체성을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세력과도 거리를 두고 싸워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됩니다.
2) 증언의 이율배반
레비의 정치적 딜레마는 증언의 이율배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레비가 제시하는 증언의 이율배반은 어떤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할 때 거기에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간극이라는 문제로 나타납니다. 우선, 어떤 사건과 자신이 경험한 그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기억 사이의 괴리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잘못된 도구”로서의 기억이라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죠. 더 나아가 당사자의 기억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 사이의 괴리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양자 간의 차이는, 기억이 여전히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당사자에게 직접 속하는 것인 반면,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그 당사자의 소속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생겨납니다. 특히 이야기가 당사자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존속된다면, 또는 오히려 당사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억을 보존하는 특권적인 방식 중 하나가 이야기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데리다는 이것을 문자로서의 기록(écriture, writing)의 고유성 중 하나로 간주하는데, 문자로서의 기록은, 그 기록의 주체의 부재를 전제하며, 따라서 기록은 정의상 “유고”(posthumous)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Jacques Derrida, “Signature, événement, contexte”, Marges de la philosophie, Minuit, 1972; 김우리 옮김, 「서명, 사건, 맥락」, 문화연구 9권 1호, 2021]
레비는 나치 수용소에서 해방된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홀로코스트에 대해 증언을 해왔지만, 갈수록 과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또 자신이 쓴 이야기들이 자신의 기억을 충실하게 전해주는 것인지, 자신이 겪은 외상이 기억을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됩니다.
“어쩌면 나치는 그 사건을 말할 수 없고 서술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서술이 온전히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나치의 성공담인 것인가? 우리는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서사 안에 있을 서사의 오류 가능성을 보호할 수 있을까? 서사의 오류 가능성, 바로 서사의 붕괴를, 외상 자체를 증명하는 흔적으로 고려할 방법이 있을까?”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352쪽.]
보다시피 이 마지막 문장이 버틀러의 핵심 논점을 전달해줍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생존자가 그 사건에 대해 지닌 기억이 불가피하게 불완전하고 여러 가지 정서 및 감정들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본래적인 변질 가능성, 왜곡 가능성, 오류 가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 더욱이 이야기에 고유한 특성으로 인해 그 기억을 전달하는 이야기는 또 다른 오류의 가능성을 추가로 가질 수밖에 없다면, 이것은 홀로코스트 및 국가폭력에 대한 기억과 증언의 신뢰 불가능성, 따라서 재현 불가능성이라는 결론을 낳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기억과 서사에 고유한 오류 가능성, 그리고 그로 인한 모종의 재현 불가능성이 바로 그 자체로 일정한 증언 및 증거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앞에서 언급한 “결정화”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고통에 대한 기억은 이야기로서 “결정화되는” 방식을 갖게 되며, 이렇게 일단 이야기가 결정화되면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준거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화된 이야기에서 기억은 스스로 재구성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기원적인 기억이 상실될 만큼 기억을 바꾸는, 고통의 기억에 대한 결정화를 수행한다. 따라서 이야기는 기억 자체를 희생하고서 도래하는 삶을 떠맡게 된다. 역설적이고 고통스럽게도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기원적인 고통이 기억에서 상실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같은 책, 353쪽. 강조는 인용자.] 레비 자신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자주 환기되고 이야기 형태로 말해진 기억은 상투형으로 고정되고, 곧 결정화되고 완벽해지고 추앙받은 경험의 검증된 형식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기억은 원료 기억의 자리에 대신 들어가서 그것을 희생시키고 성장하게 된다.” [같은 책, 353쪽에서 재인용.] 이것은 곧 “이야기는 자신이 중계하는 사건을 대체하려고 위협하고, 결정화는 바로 그런 대체의 수단”[같은 책, 354쪽.]이 될 수 있는 위험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대체는 사건을 희생한 대가로 도래한다. 따라서 어떤 엄격한 설명 가능성이 적용되는 것일 수 있다. 곧 마치 생존자들의 목숨이 죽은 자들을 대가로 해서 도착한 것으로 해석되듯이, 이야기는 사건 자체를 희생한 대가로 구매된다.” [같은 책, 같은 곳. 강조는 인용자.]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홀로코스트의 진실에 도달할 수 없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 서사는 홀로코스트의 진실, 그 사건 자체를 배반하게 된다는 결론, 홀로코스트는 재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요? 버틀러는 이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버틀러는 또 다른 홀로코스트 증언자 중 한 사람인 샤를로트 델보가 그의 저작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에서 감각 기억(심층 기억, mémoire des sens)과 외적 기억(mémoire externe)을 구별한 것을 환기시킵니다. 여기서 외적 기억은 “사건을 말하기 위해 사건을 다시 살지 않는 기억”[같은 책, 356쪽.]을 가리킵니다. 만약 저자가 당시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경험하는 감각 기억의 방식으로 사건을 제시하게 되면, 저자는 사건의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다시 경험하기 때문에 그 사건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버틀러는 여기에서 “이것은 말하기가 항상 다시 살기로부터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둔 채로 떨어져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증언은 기억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기억은 전송되고 지속되기 위해 이야기에 의존한다.” [같은 책, 357쪽.]
여기에서 버틀러는 헤이든 화이트의 논지에 의거하여 레비에게 증언은 “지시체(reference)를 생산한다”[같은 책, 358쪽.]고 주장합니다. 이 말을 통상적인 상대주의나 회의주의의 표현으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화이트의 논점은 “만약 그 사건들이 듣는 이에게 전송되어야 한다면 사건들은 우리를 위해 지시체를 생산하거나 편곡할 수사적 용어, 그것을 명료하게 만들고 의미를 부여할 수사적 용어로 중개해야 한다는 것이다.”[같은 책, 같은 곳.] 다시 말해 화이트는 우리가 지시체를 생산하고 실제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문채(figure)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것은 리얼리즘적인 입장에서 보면 엉뚱한 주장일 수 있겠지만, 화이트는 레비가 리얼리즘적인 서사를 외면했으며, 이러한 외면을 통해 불가능한 홀로코스트의 진실에 더욱 다가가려는 자신의 노력을 지속했다고 본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언어를 통해 사건의 지시성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버틀러는 이러한 작용은 두 가지의 다소 역설적인 함의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1) 우선 지시체를 보존하려면 우리는 “지시체에 영향을 끼쳐야(act upon)” 하는데, 왜냐하면 “지시체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기록이 보존될 수 없”[같은 책, 같은 곳.]기 때문입니다. (2) “실재가 소통될 수 있으려면 ... 언어는 사실이 포착 가능한 실재로 생산될 수 있도록 영향을 끼쳐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전혀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실재를 소통할 형식을 찾아내는 것―수사법적이면서 동시에 지시적이기도 한 과제―을 뜻하기 때문이다.”[같은 책, 359쪽]
버틀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건, 주체와 독립해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지시체로서의 사건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우리가 그 사건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에 맞서 그 사건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려고 할 때 우리는 주관적 판단이나 개입과 독립해 있는 객관적 실체 내지 지시체로서의 사건을 전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버틀러는 그런 전제는 우리가 리얼리즘적인 입장을 전제할 경우에만 성립하는 잘못된 전제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어떤 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악하고 추구하는 것은, 그 사건을 보존하는 것, 기록하는 것을 전제하는데, 특히 그 사건이 먼 과거의 사건이거나 홀로코스트와 같이 참혹한 고통과 외상을 유발하는 사건일수록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방금 말했던 (1)과 (2)의 측면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는 사건이란 사후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그 사건의 진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밝혀야 하는 과제, 어떻게 보면 서로 모순적이거나 이율배반적인 과제를 제기합니다.
이것을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문제는, 서사를 통해 사건을 반복하는 것은 일종의 “외상적인 반복강박”[같은 책, 360쪽.]의 특성을 띤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반복강박인 이유는, 홀로코스트와 같이 외상을 낳는 사건을 다시 돌이키고 추체험하는 것은 목격자나 체험자에게, 심지어 간접 체험자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주체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서 그 외상적인 사건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버틀러는 이러한 반복적 서사가 “엄밀하게 결정된 것(decided)이 아니라 차라리 강제된 것”[같은 책, 359쪽.]이라고 말합니다. 더 문제는 이처럼 반복강박적인 외상적 사건의 반복, “이미 말해진 이야기의 담론적 사용을 우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같은 책, 360쪽.]는 점이죠. 사건을 직접 경험한 누군가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담론화하게 되면, 그것은 1차적인 주체의 기억을 대체하면서 이야기로서 담론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특히 그 사건이 강한 외상을 유발하는 사건이라면 “외상의 효과는 ―그 외상과 함께 온 의지의 위기와 함께 ― 전송되지만, 기원이 갖고 있던 목적으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 있다.”[같은 책, 같은 곳.] 다시 말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담론은 그 사건을 활용하려는 다양한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방향으로 굴절될 수 있으며, 이것이 다시 사건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담론, 더 나아가 그 사건의 지시성에 역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버틀러는 여기에는 이중의 위험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우선 “결정화는 기록 보존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위험이고, 따라서 수정주의를 반박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것 같다.”[같은 책, 같은 곳.] 더 나아가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결정화의 과정이 설명 가능성의 예민한 의미(acute sense)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쇼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착취하려는 움직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버틀러는 이것을 “결정화의 또 다른 치환(permutation)”[같은 책, 361쪽.]이라고 부릅니다. 그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이제 쇼아 담론이 기억을 대체하게 되면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산출합니다.
“죄를 완전히 (그리고 무한히) 외면화시키고, 그럼으로써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을 완전히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타자를 구성하는 비난”을 가하기 위해 활용된다. 뒤에서 더 자세히 논의하듯이, 예컨대 이제 이스라엘 국가나 시온주의자들은 쇼아를 저지른 범죄자를 히틀러와 같은 나치즘에 국한하지 않고, 그것을 현재의 상황으로 확장하여 자신들이 반대하는 세력(팔레스타인, 아랍 무장단체 등)을 쇼아를 다시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함으로써 그 세력에 대한 자신의 대응 및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가 지나간 것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외상적 시간성을 지속하고, 그때와 지금 사이의 역사적 거리를 무색하게 만든다.”
곧 홀로코스트는 지나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의 사건으로,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현재의 문제로 되살아나며, 자신의 타자들을 파시즘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자신들의 대응 및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현재의 목적을 위해 착취당하는 것입니다. 버틀러는 “정서의 전이 가능성(transferability of the affect)과 외상의 전달 가능성(transmissibility of the trauma)”이 이처럼 한 정치적 실재에서 다른 정치적 실재로의 역사적 변위에 본질적이라고 지적합니다.
3) 증언의 이율배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버틀러에 따르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당한 활용은 반드시 시온주의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한편으로 평화 정착 과정에 참여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다시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려고 하는 자로 비난받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행동을 나치 체제를 모방적으로 반복한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버틀러는 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은 사실 홀로코스트를 부당하게 활용하는 동일한 방식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버틀러는 “홀로코스트를 잊고 현재를 사는 것”[같은 책, 366쪽.]이 홀로코스트 착취에 대한 해법이라는 생각에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들에게 역사 자체가 바뀌었고, 홀로코스트가 부인할 수 없는 실재의 힘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떤 것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버틀러는 오히려 중요한 것은 홀로코스트에 의해, 그리고 그것의 활용과 착취에 의해 역사가 변화하게 된 방식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그는 쇼아가 활용되는 이중적 방식을 주목합니다. 한편으로 쇼아로 인해 “이스라엘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이들의 이름보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죽은 자의 목소리가 되었”[같은 책, 367쪽.]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쇼아는 일상적으로 전쟁을 합리화하고 이스라엘을 방어적 희생자의 입장으로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면서 동시에 유대인 학살의 교훈이 인권의 정치를 위한 일반적 교훈으로 확장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쇼아와 비교되고, 쇼아에 의해 작아지고, 따라서 모든 것―장벽, 봉쇄, 공중폭력, 통행금지령, 식량과 급수 제한, 설명 없는 살해―이 허용된다.”[같은 책, 같은 곳.]
따라서 이는 결국 두 가지 정치 사이의 차이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한편에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세력이든 아니면 그것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홀로코스트 외상을 환기하고 활용하려는 정치가 존재합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폐제하는(foreclose) 데 어떤 정치적 조건이 필수적인지 성찰하는 정치”[같은 책, 372쪽.]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버틀러가 옹호하는 것은 당연히 이 후자의 정치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때’가 ‘지금’을 대신하고 흡수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 따라서 현재에 대한 맹목, 현재 속에서의 맹목을 계속 생산하게 될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는 쇼아를 지나간 과거로 만듦으로써만 그 경험을 토대로 삶과 땅에 대한 존중, 평등과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버틀러는 “그것은 결코 잊지 않으려는 다른 방식일 것”라고 덧붙입니다. 이것은 과거를 지나가지 않는 불멸의 과거로 계속 현재 속에 남아 있게 하지 않으면서 그 과거를 성찰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버틀러는 레비가 말년에 이르러 “유대 민족의 ‘디아스포라적’ 조건이 더 나은 대안임을 고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아렌트의 정치적 견해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레비의 말로 표현됩니다.
“나는 이점에 대해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다. 중심은 디아스포라에 있고, 중심은 디아스포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 나는 유대주의의 중력의 중심이 이스라엘 바깥에 머무르는 게 더 좋다. ... 나는 최선의 유대 문화는 다중심적으로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에 묶여 있다고 말하겠다. ...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이지만 이민족간 교환과 관계의 역사, 다시 말해 관용을 가르치는 학교이기도 했다. ......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유대인이다. 그리고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유대인이다.” [같은 책, 374~75쪽.]
6. “빨갱이”라는 잉여
지금까지 다소 길게 홀로코스트 증언이 함축하는 이율배반에 관한 버틀러의 분석을 살펴봤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특히 두 가지 측면이 중요해 보입니다. 여기에서 버틀러가 홀로코스트 증언에 관하여 말한 것은 우선 “빨갱이” 담론과 특히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5.18이 국가의 공식 민주화운동으로 지정되고 또한 제주 4.3에 관한 특별법도 제정되었으며, 또한 10.19 여순사건 역시 2021년 특별법이 제정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으로 5.18에 관한, 제주 4.3에 관한, 그리고 10.19 여순사건에 관한 기억의 문제나 증언의 문제, 회복적 정의의 문제가 종료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무엇보다 국가폭력에 관한 국가의 공식적 인정 및 피해 보상, 신원 회복 등에 관한 이러한 절차가 “빨갱이”라는 존재를 배제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오늘날에도 “빨갱이”라는 담론은 여전히 무소불위의 배제 담론으로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은 5.18 당시 파견되었다고 하는 “광수”로 제기되기도 하고, 그것을 빌미로 5.18 전체, 광주ㆍ전남 전체를 배제하기 위한 담론으로 기능합니다. 또한 그것은 차별금지법이나 학생인권조례 등을 주장하는 이들을 비난하기 위한 담론으로 동원되기도 합니다. 인권, 성소수자 담론, 노동조합 등은 모두 빨갱이로 매도됩니다. 더욱이 12.3 친위쿠데타 및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 이후 거세게 전개되고 있는 극우파의 탄핵 반대 운동에서 이제 빨갱이의 본산은 북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국으로 제시됩니다. 그리하여 중국 = 민주당 = 탄핵 찬성 = 빨갱이라는 막무가내의 등식이 성립하고, 이것은 그 비논리성과 반민주주의적, 반헌정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막강한 위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왜 이처럼 빨갱이 담론이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일까요? 제가 볼 때 그것은 기억의 힘, 그리고 증언의 힘, 증언에 대한 서사가 산출하는 결정화 효과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아랍 세력을 악으로 규정하기 위해 홀로코스트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것처럼, 극우파 세력은 1945년 이후 수많은 국가폭력 및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 및 그 후손들임에도 불구하고,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빨갱이” 담론을 민주화 투쟁에 맞선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기본법이 제정되고 그것에 입각한 진실화해위원회의 공식적인 활동이 이루어진 이래 민주화운동에서 빨갱이 담론에 대한 투쟁은 점점 더 약화되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더 이상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사회운동의 공식 의제로 제기되지도 않고 있고, 사회운동에서는 “반인권적 담론”으로 비판하는 것 이외의 투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인권 담론과 “빨갱이” 담론을 서로 맞세우는 결과 역설적이게도 인권 담론 = 빨갱이 담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인권 = 헌법을 강조함에도, 일단 인권 담론 = 빨갱이 담론이라는 등식이 작동하게 되면, 그것은 더 나아가 우리가 극우파의 탄핵 반대 운동에서 보듯이 헌법재판소와 사법부, 더 나아가 헌법 및 헌정 자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으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 이것은 1987년 이후 민주화 운동의 한계, 그리고 2000년대 전개된 과거사 청산 작업의 한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한계는 무엇보다 과거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빨갱이”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민주화, 그리고 과거사 청산 작업에서 “빨갱이”는 한편으로 양민 내지 민간인이라는 범주로 치환되거나 다른 한편으로 희생자라는 범주로 치환되어 왔습니다. 이것을 특히 잘 보여주는 것이 제주 4.3사건의 처리 과정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제주 4.3사건에 관한 2001년 헌법재판소 판결인데, 이 판결에서 헌법재판소는 제주4.3특별법의 적용을 앞두고 4.3봉기의 불법성을 전제하면서 봉기 주도 세력에게 희생자의 지위를 거부한 바 있습니다. 요컨대 “수괴급 공산무장병력지휘관 또는 중간간부로서 군경의 진압에 주도적·적극적으로 대항한 자, 모험적 도발을 직·간접적으로 지도 또는 사주함으로써 제주4·3사건 발발의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 기타 무장유격대와 협력하여 진압 군경 및 동인들의 가족, 제헌선거관여자 등을 살해한 자, 경찰 등의 가옥과 경찰관서 등 공공시설에 대한 방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자와 같은 자들은 '희생자'로 볼 수 없다.”[이점에 관한 비판적 토론으로는 고성만, 「4.3과거청산과 ‘희생자’: 재구성되는 죽음에 대한 재고」, 탐라문화 38호, 2011을 참조하고,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비평으로는 이경주, 「‘제주4.3특별법 의결취소’에 관한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적 고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편, 민주법학 22호, 2002 참조.]고 명기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이재승 선생처럼 미군정의 “점령이 한갓 권력사실이 아닌 법적 현상이라는 통찰”[이재승, 「제주4.3항쟁론과 자결권」, 건국대학교 법학연구소 편, 일감법학 49호, 2021, 325쪽.]에 입각하여 그러한 점령 공간을 존 롤스의 표현을 따라 “원초적 상황”(original position)으로, 곧 “누구든지 또는 어떠한 정치세력이든지 사회의 설계과정에 동등한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계약적 상황”[같은 글, 같은 곳.]으로 파악하자는 제안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주의의 성립 조건을 표현하는(따라서 미국 정부 및 미군정이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상 규범적으로 전제해야 하는) 이러한 원초적인 규범적 가정에서는 계약에 참여하는 세력들 사이의 근본적 평등이 가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평등의 가정이 없이는 원초적 상황이라는 조건 자체가 성립할 수 없고 따라서 사회계약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렇다면 미군의 점령이 나타내는 “원초적 상황”에서 한국민의 평등한 주체성을 “해방 공간에서 한국민이 자결권이라는 집단적 권리를 자율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법철학적 전제에서 출발하게 되면, 제주도민의 항쟁은, 헌법재판소가 당시에는 성립하지 않았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는 기준을 소급적용함으로써 국제법적 쟁점들을 봉합한 것과 달리, “1946년 가을 이래로 남한 전역에서 미군정의 우경화정책에 맞서 일어난 민중항쟁의 마지막 국면으로 이해할”[같은 글, 331쪽.]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요컨대 미군정은 세 가지 측면에서 원초적 상황에 놓여 있던 한국민의 자결권을 침해했으며(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자결권의 침해, 남한 정치질서 형성과정에서 공산당과 좌익정당을 배제함으로써 범한 정치적 자결권 침해, 경제적 생존권과 자결권 침해), 제주 4.3은 이러한 자결권 침해에 맞선 제주도민, 따라서 한국민의 정당한 저항권(당시까지 국제법에서 폭넓게 인정되고 있던)의 발로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재승 선생의 작업은, 기존의 과거청산의 작업이 제주4.3을 한편으로는 국가폭력의 역사로 포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희생 담론’ 내지 ‘희생 서사’에 입각하여 애도할 만한 이들과 애도해서는 안 되는 이들, 애도 가능한 이들과 애도 불가능한 이들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선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국가를 정상적이면서 초월적인 국가로 승화하는 것을 전제하는 데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면 어떻게 희생자와 무장대, 양민과 빨갱이의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지, ‘민간인’ 내지 ‘국민’이라는 기준으로 그러한 위계적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뚜렷하고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시해주지 못한 것을 넘어서려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승 선생은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는 4.3 당시의 미군정이나 한국 정부, 그리고 2001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내세워 봉기주도자들의 희생자 지위를 배제한 헌법재판소 모두 여전히 절멸적인 적대 정치에 입각하여 봉기 세력을 배제하려고 했다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화해와 상생의 차원에서 보자면 제주4⋅3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은 좌우를 떠나 모두 4⋅3사건의 희생자로 애도 받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역사를 지나간 대로 역사화하면서 평화와 화해를 이루게 된다.”[같은 글, 359쪽. 강조는 인용자.] 이처럼 제주 4.3에 참여한 이들은 정치적 이념 여부를 떠나 모두 “희생자”로서 애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2001년 헌법재판소 판결이나 제주4.3특별법에서 좌익 관련자를 희생자 범주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디스 버틀러가 말한 바와 같이,[주디스 버틀러, 비폭력의 힘,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21.]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애도 받을 만한 사람과 애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을 분할하고 위계화해온 관행을 탈구축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러나 고성만 선생이 2021년 개정된 제2기 제주4.3특별법 체제에 대해 비판한 것에 준거하면, 이재승 선생의 이러한 탈구축 작업은 여전히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고성만 선생은 개정된 특별법에서도 여전히 좌익 봉기자들이 애도의 대상에서 배제됨으로써 “‘희생자’는 토벌대와 주민만을 포괄하는 한편, 무장대를 제외하는 개념으로 재구성”[고성만, 「2기 4.3 특별법 체제의 쟁점과 난점」, 통일인문학 88집, 2021, 204쪽.]되는 역설적 결과를 문제 삼습니다. 이것은 학살의 주된 실행자였던 토벌대를 ‘희생자’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당사자들의 체험 및 증언과 모순된다는 측면에서만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민과 토벌대가 유일하게 공식화의 대상이 되는 구조는 과거청산의 논점에서 무장대가 상징하는 항쟁의 역사를 후경화시키고 저항의 기억을 말소시키는”[같은 글, 206쪽.]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재승 선생이 말하듯 “제주4⋅3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은 좌우를 떠나 모두 4⋅3사건의 희생자로 애도 받아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만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때는 폭력과 학살의 주체였던 국가(와 미국)를 이번에는 가해자와 희생자, 애도 가능한 사람과 애도 불가능한 사람을 구획할 수 있는 전권을 쥐고 있는 초월적 주체의 위치로 숭고화하는 결과만을 낳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7. 증언과 민주주의의 이율배반 II: 민주주의를 전환하는 증언
1) 아곤주의의 한계
이러한 한계는 이재승 선생이 아곤주의(agonism) 정치를 자신이 정치철학적 기초로 삼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상이한 세력들 사이에서 평화로운 정치질서가 정착하려면 적대 정치 대신에 아곤주의(agonism) 정치가 필요하다.”[이재승, 「제주4.3항쟁론과 자결권」, 앞의 글, 358쪽.] 고대 그리스어로 “경합” 또는 “갈등”을 의미하는 아곤(agon)이라는 용어가 현대 철학에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푸코가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전략적 게임으로서 권력관계를 특징짓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부터입니다.[Michel Foucault, “Sujet et le pouvoir”(1982), in Dits et écrits, vol. II, Gallimard, 2001; 「주체와 권력」, 정일준 엮음,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새물결, 1994. 참고로 국역본은 원래 논문의 부분 번역이다.] 아곤주의 정치는 급진 민주주의 이론가인 샹탈 무페가 영미 자유주의 전통에 대한 대안적 정치철학으로서 급진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 이론을 제창하면서 그것을 계급 적대(class antagonism) 모델과 구별되는 ‘아곤주의’ 또는 (국내의 일반적인 번역어에 따르면) ‘경합주의’ 모델로 규정한 이후부터 영미 정치철학계의 유력한 이론적 흐름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Chantal Mouffe, Return of the Political, Verso, 1994; 샹탈 무페, 정치적인 것의 귀환, 이보경 옮김, 후마니타스, 2007; The Democratic Paradox, Verso, 2000; 민주주의의 역설, 이행 옮김, 인간사랑, 2006; Agonistics: Thinking the World Politically, Verso, 2013; 경합들: 갈등과 적대의 세계를 정치적으로 사유하기, 서정연 옮김, 난장, 2020.]
선생이 아곤주의 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적대 정치가 경쟁자를 적으로 만들어 산으로 올려 보낸다면, 아곤주의 정치는 적을 경쟁자로 순치하며 도시로 내려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곤주의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쟁하는 세력조차 정치의 구성부분이라고 상정”하는 정치이며, 선생은 해방 정국에서 아곤주의를 대표했던 인물이 좌우합작을 추구했던 여운형과 김규식이라고 봅니다. 아곤주의는 두 가지 태도로 특징지어집니다. “정치적 경쟁에 참여하는 자는 반대파를 절멸할 권리를 보유하지 않으며 자신을 하나의 역할 수행자로 절제한다. 아곤주의는 외적 행위에서도 폭력을 배제하고 내면의 영역에서도 이질성을 정치의 조건으로 수용한다.”[이재승, 앞의 글, 같은 곳.] 따라서 선생이 이해하는 아곤주의는 정치에서 궁극적 해결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정치입니다. “아곤주의자들에게는 어떠한 질서도 미래를 향하여 잠정적 타협이다. 두 개의 분단국가들도 통일이라는 정치적 미래를 고려하는 한에서 서로에게 정치적 잠정태다.” [이재승, 앞의 글, 같은 곳.]
요컨대 선생은 한국전쟁 전후 벌어졌던 상호파괴적인 적대적 투쟁, 서로가 서로를 절멸하려고 했던 극단적 투쟁이 제주4.3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핵심 원인이라고 간주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철학적 대안을 아곤주의 정치에서 찾고 있는 셈입니다. 그가 이해하는 아곤주의의 강점은, 갈등이나 투쟁, 따라서 이질적인 세력 및 이념을 환원 불가능한 정치의 기본 요소로 이해하면서도 그러한 갈등이나 투쟁을 절멸적인 투쟁으로 극단화하기보다는 “적을 경쟁자로 순치”하는 정치라는 점입니다. 이는 “폭력을 배제하고 내면의 영역에서도 이질성을 정치의 조건으로 수용”하는 정치입니다.
이재승 선생의 제안은, 절멸과 독재, 전쟁과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그리고 적대적인 분단체제가 고착되고 민주화 이후에도 끊임없는 반동의 시도가 전개되는 한반도의 상황을 고려하면 직관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이 말하는 아곤주의 정치는 한편으로 보면 너무 이상화된 정치이며, 지배세력과 민중 사이의 정치적 비대칭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일찍이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차이를 귀족들 내지 지배자들은 지배하기를 욕망하는 데 반해, 민중은 “지배당하지 않는 것을 욕망한다”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그것이 이상화된 정치인 이유는, 적대적인 정치는 지배세력의 착취와 억압에서 생기는 것이지 대칭적인 두 세력 사이의 적대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는 점, 따라서 아곤주의 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배세력의 강력한 억압의 힘을 제어하거나 적어도 견제할 수 있는 민중의 역량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재승 선생은 “적을 경쟁자로 순치”하는 계기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이러한 비대칭성의 문제는 제외하거나 적어도 약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상생과 화해를 위한 아곤주의 정치는 사실 지배적인 질서를 수용한 가운데 그 규칙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따라서 사실은 순치된 정치에 그칠 염려가 있습니다. 이재승 선생이 말하는 아곤주의는 사실은 롤스 식의 자유주의 정치철학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2) 소수자들의 연대의 정치: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다
12.3 친위쿠데타 이후 전개되고 있는 탄핵과 탄핵 반대의 치열한 경합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각각 “남태령 대첩”으로 표현되는 운동과 “서부지법 침입”으로 표현되는 운동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자는 2024~25년 탄핵과정이 어떤 측면에서 2016~17년 탄핵과정과 차이를 지니는지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2016~17년 탄핵 정국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승리감에 도취해서 “촛불혁명”이니 “촛불시민혁명”이니 하는 아름다운 수사법으로 자화자찬하기에 바빴습니다. 저는 한 번도 이런 표현들에 동의한 적이 없고, 이런 표현들을 쓸 경우에는 항상 중립적인 태도를 표현하기 위해 인용 부호를 붙여서 사용했지만,[진태원, 「서문」,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참조.] 당시에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언론과 지식인들, 특히 진보적인 지식인들조차 너무 쉽게 “촛불시위”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촛불시위의 승리를 “우리의 승리”로 간주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탄핵 정국은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정체를 더 정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우리의 승리”로 간주되었지만, 사실 그때의 “우리”는 여러 소수자들을 배제한 가운데 성립한 “우리”였습니다.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했겠지만, 그 당시의 촛불 무대에서 소수자들이 발언권을 얻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발언권을 얻는다고 해도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그것이 비정규노동자이든 여성이든 성소수자이든 장애인이든 간에)을 드러내려고 하면 곧바로 야유를 받거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일단 탄핵을 하고, 일단 민주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저런 소수자들의 과제는 나중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해결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이번 탄핵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소수자들이 집회에서 활발하게 발언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태령 대첩”이 보여주듯 다른 소수자의 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연대하려는 움직임, 요컨대 각각의 특유한 정체성과 동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약소한 이들, 곧 을 중의 을들과 동일시하려는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투쟁과 동일시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누구도 자신들의 투쟁을 증언해주지 않아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증언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이제 서로가 서로의 외로운 투쟁에 대한 증인으로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탄핵 집회에 나서는 여러 발언자들이 이를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는데, 저는 특히 두 가지 발언에 주목해보고 싶습니다. 청년 여성 농부인 한 시민은 이렇게 말합니다.
“계엄이라는 충격으로 감수성의 각성이 일어나며 시야가 넓어지면서 발견하게 된 ‘이웃으로서의 농민’이라는 존재가 공권력 앞에 좌절당했을 때,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느끼며 타자화, 혹은 피상적인 공감이나 연민을 뛰어넘은 초공감, 양심과 정의감, 책임감의 발동이 일어났다. 접점이 없을 것 같던 타자와 나의 가장 비슷한 점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순간적인 동기화가 체감되는 것이다. 농민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며 내가 그동안 당해왔던 차별과 혐오들이 이웃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혹은 모르고 있던 민주주의의 주권, 인권, 권력의 균형, 연대, 시민의식, 평등, 자유, 저항, 평화 등 수 많은 개념들이 몸을 통과하고 그 개념들이 연대의 그물로 연결된 그 군중 전체를 통과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앎이 결국 체화되어 거대한 정동을 일으킨다. 정동은 뜨거움으로 감각된다.” [김후주, 「남태령에서 다시 만난 세계 - 광장만이 줄 수 있는 연대감, 민주주의 체화의 경험」, 황해문화 2025년 봄호.]
이처럼 다른 이들의 문제에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공통의 문제에 대한 자각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연대하는 것을 그는 남태령 대첩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현재의 탄핵 운동의 성취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장애인 시민은 이번 탄핵 집회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끌고 있는 측면, 곧 20~30 청년 세대들이 대중음악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응원봉을 들고 나와서 집회를 마치 축제와 같이 즐기고 있는 장면에 관해 이 청년들의 열성적인 집회 참여를 “이전까지 대체로 사회에 무관심하고 목소리 내지 않았던 이들이 계엄령에 충격받아 마침내 정치에 관심을 두고 민주주의의 장으로 진입하는 동기를 갖게 되었다거나, 이전까지 공동체의 과제에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결국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오히려 그는 “청년 장애인인 나의 눈에 이들은 언제나 저항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번 탄핵 정국 국면에서 새롭게 드러난 존재처럼 주목받기 시작한 이들은 오랜 기간 정치 바깥 영역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마침내 나서기로 결심한 인구 계층이 아니라, 한결같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민주주의 이념을 실천했던 사회 구성원의 일부다. 그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이유는 이제야 거리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라, 마침내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는 다른 몸과 사연을 가진 이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셈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삶의 가장자리 어디선가 펼쳐진 간절한 분투와 해방의 목소리를 그간 듣지 않고 보지 못한 채 외면해 왔다.
한국 민주주의에서 공식적인 ‘우리’로 대표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과제는 ‘다음’의 존재들을 계몽시킴으로써 ‘우리’의 경계를 무작정 확장하는 작업이 아니라 오랫동안 온전한 우리로 이해하지 못한 채 소수자의 배제와 탈락을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운동의 특징으로 여겨 온 과거에 대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다. 즉, 새롭게 주목받는 ‘다음’의 존재들을 어떻게 ‘우리’ 민주시민으로 육성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기성의 ‘우리’는 왜 인식할 수 없는 존재들을 ‘다음’의 이름으로 호명되게끔 만들고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는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 [변재원, 「우리는 서로의 일부」, 황해문화 2025년 봄호.]
3) 아나키즘 민주주의의 아포리아: 랑시에르와 말라부
이런 소수자들의 연대와 상호 증언의 연대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요? 어떤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어떤 실천이 이러한 증언에 호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최근 몇몇 유럽 정치철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아나키즘으로서의 민주주의가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국내에도 널리 소개되어 있는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13(수정 재판);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옮김, 도서출판 길, 2015; 왜 민주주의는 증오의 대상인가, 허경 옮김, 인간사랑, 2011. 이 마지막 번역본은 번역에 주의해야 한다.] 랑시에르는 어떤 측면에서는 아나키즘을 철학적으로 복권한 현대 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역사적 현실태로서의 아나키즘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지만, 그의 철학 자체는 매우 아나키즘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가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는 서양의 정치철학을 아르케(arkhe)의 철학으로 간주하고, 반대로 자신이 옹호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안-아르케(an-arkhe, anarchy), 곧 아르케 없음을 기반으로 삼는 정치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이점에 관해서는 특히 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및 불화: 정치와 철학 참조.
] 그리고 이처럼 안-아르케, 아나르키아(anarkhia)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에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정체는 치안(police)으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이 때의 치안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partage du sensible)에 기반을 두는데, 감각적인 것의 나눔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행위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감각적인 것들의 짜임입니다. 그리고 서양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정치체들은 모두 소수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과두제 정체이며, 과두제 지배는 바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차원에서 지배와 피지배관계를 확립함으로써 유지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체제가 존속되는 한, 대통령이 누가 되든 국회 의석을 얼마를 차지하든 또는 심지어 사회주의 체제이든 자유주의 체제이든 상관없이 모두 치안에 속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점입니다. 물론 그는 치안들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치안은 치안이라고 주장합니다. 오직 “몫 없는 이들의 몫”에 입각한 정치적 실천만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랑시에르는 안-아르케로서의 민주주의에 걸맞은 제도는 선거제가 아니라 추첨체라고 주장합니다. 선거제는 현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요소로 널리 인정받지만, 랑시에르는 그것이 본성상 귀족정에 걸맞은 제도라고 규정합니다. 그것은 더 유능한 이, 더 많은 미덕을 갖춘 이 등과 같이 통치의 자격이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기 때문입니다. 반면 추첨제는 말 그대로 “아무나”의 정치입니다. 누가 공직에 선출될지 여부를 우연에 맡겨두기 때문에 그것은 아르케에 기반을 둔 통치의 논리로 환원되지 않고, 또한 아르케의 논리가 정당화하는 과두제 체제를 자연적인 것으로 존치시키지도 않습니다.
제가 소수자들의 연대와 상호 증언의 연대에 부응하는 민주주의가 이러한 의미의 아카니즘적인 민주주의, 아르케 없음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이 “몫 없는 이들”(sans part)의 연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랑시에르는 정체화(identification, 정체성의 할당)와 주체화(subjectivation)를 바로 이런 의미에서 구별합니다. 전자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 따라 규정되는 사회 내의 몫들의 분배의 질서를 가리킵니다. 왕은 왕이고 신하는 신하이고 농민은 농민이고 장사꾼은 장사꾼이고 학생은 학생이고 여성은 여성이다라는 일련의 지정된 정체성들의 연관망을 지칭하는 것이 바로 정체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랑시에르는 주체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주체화 과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자기(soi)가 아니라, 하나의 자기와 타자(autre) 사이의 관계인 하나(un)를 형성하는 것이다.”[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140쪽. 번역은 약간 수정.] 이러한 정의는 주체화는 이미 정해져 있는 어떤 정체성을 갖춘 두 존재자 내지 자기가 맺는 관계가 아니라 관계론적인 구성 과정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며, 주체화와 정체화를 세 가지 측면에서 대비하고 있습니다. 첫째, “정치적 주체화의 논리는 하나의 정체성에 대한 단순한 긍정이 아니”라, “치안 논리가 고착시키고 타자가 부과하는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자크 랑시에르, 같은 책, 143쪽.] 둘째, “정치적 주체화의 논리는 하나의 증명”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주체화의 논리는 단순히 적대적인 타자를 부정하고 배제하고 제압하는 절멸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공통 장소를 구성하는”[자크 랑시에르, 같은 책, 같은 곳.] 데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랑시에르적인 정치적 주체화에서 중요한 쟁점은 이처럼 공통 장소를 구성하는 것이 어떻게 대화나 합의의 구성과 다른지 보여주는 일입니다. 셋째, “주체화의 논리는 언제나 불가능한 동일시를 내포한다.”[자크 랑시에르, 같은 책, 같은 곳.]
이 세 번째 측면에서 랑시에르가 “불가능한 동일시”라고 부르는 것은, 예컨대 그 사회에서 가장 핍박받고 차별받는 존재와의 연대의 형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이나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라든가, 여성 장애인, 우리 사회의 “빨갱이” 같은 존재들이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몫 없는 이들과의 불가능한 동일시의 연대 운동이 랑시에르가 곧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고 부르는 민주주의의 공간을 열어놓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남태령이나 한강진 또는 여의도에서 형성되는,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는 상호 증인의 연대야말로 랑시에르적인 주체화 운동의 주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카트린 말라부는 [도둑이야! 아나키즘과 철학]이라는 저작에서 랑시에르가 진정한 의미의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비판한 바 있으며, 흥미롭게도 그 이유를 랑시에르에게는 증언이라는 개념이 부재하다는 데서 찾고 있습니다.[Catherine Malabou, Au voleur! Anarchisme et philosophie, PUF, 2022.] 말라부는 아나키즘이라는 프리즘으로 6명의 현대 철학자들(라이너 슈어만(Reiner Schürmann), 에마뉘엘 레비나스,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 자크 랑시에르)을 해부하면서, 아나키즘이라는 주제가 현대 철학의 중심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왜 이들 모두가 스스로 아나키스트로 자처하지 않는지, 다시 말해 왜 이들은 모두 아나키의 철학과 정치에 관해 깊이 탐구하지만 결국 그 핵심을 온전하게 밝혀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는지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 아나키스트로 자처할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이들의 철학이 온전한 의미의 아나키즘 철학일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는 이들의 실패의 핵심을, 이들이 각자 나름대로 “통치할 수 없는 것”(ingouvernable, ungovernable)에 관한 탐구에는 이르렀지만, 그것과 엄밀하게 구별되고 또한 구별되어야 마땅한 “통치일 수 없는 것”(non-gouvernable)[Catherine Malabou, Ibid., p. 36.
]에 관한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습니다.
이 저작에 관한 상세한 분석은 제가 다른 글에서 이미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진태원, 「마르크스주의 또는 아나키즘: 카트린 말라부의 최근 저작에 관하여」, 국가, 권력, 아나키즘: 대한철학회ㆍ한국아나키즘학회 공동학술대회 발표 자료집, 2024. 11. 9.] 여기에서는 그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말라부의 랑시에르 비판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랑시에르는 리오타르에게 “잘못”(tort)이라는 개념을 가져오고 있지만, 리오타르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 개념을 이론화하고 있습니다. 리오타르에게 “잘못”이란 법적인 의미에서의 “손해”와 구별되는 어떤 것으로, 요컨대 “손해의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한 손해”[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쟁론, 23쪽.]라고 정의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다른 이에 의해 손해를 겪고 이에 관해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는 원고가 되겠지만, 잘못의 경우에는 자신이 손해를 겪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잘못을 겪은 이는 원고가 아니라 피해자 내지 희생자가 됩니다. 리오타르가 [쟁론]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논의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잘못에 대해 법적인 의미에서의 계쟁을 벌일 수 없고 그것에 관해 법원이 만족할 만한 (객관적)증거를 제출할 수는 없어도 그것을 잘못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철학과 문학, 정치의 쟁점은 “쟁론을 위한 개별어(idiomes)를 발견하여 쟁론을 증언하는 것”[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쟁론, 36쪽.]입니다. 하지만 쟁론은 “문장으로 씌어져야 하는 어떤 것이 아직 씌어지지 못하고 있”는 “언어의 불안정한 상태이자 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경우에는 증언이 “현시 불가능한 것(imprésentable)을 위한 유일한 기회”[Catherine Malabou, Au voleur! Anarchisme et philosophie, p. 265.]가 됩니다. 요컨대 증언이란 “객관적 규칙, 증거, 중재, 해법, 협상이 실패하는 곳에서 말하고 발명하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개별어”인 것입니다. 따라서 리오타르에게 증언이란 현시 불가능한 것, 이미 죽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회적으로 배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가 이미 확립된 규칙들과 기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언어 및 논리가 부재하여 원래 그 모습 그대로, 현존 그대로 나타날 수 없는 어떤 것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됩니다.
그런데 랑시에르는 리오타르가 증언을 현시 불가능한 것을 위한 (유일한) 언어이자 정치로서 간주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 하나는 미학적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이유가 존재합니다. 첫 번째 미학적인 이유에 따르면, 현시 불가능한 것이나 재현 불가능한 것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증언은 이것들을 위한 고유한 언어도 아니라는 것입니다.[자크 랑시에르, 「5강. 재현 불가능한 것이 있는가」,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그는 실제로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문학 작품 중 하나인 로베르 앙텔므의 [인류]와 플로베르의 [보부아르 부인]은 동일한 “병렬적(parataxique) 글쓰기”를 전개하고 있으며, 전자처럼 인간이 가장 극한적인 상태에 처했을 때의 경험을 서술하기 위한 언어 양식, 곧 증언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자크 랑시에르, 같은 책, 219~22쪽.] 둘째, 정치적 이유에 따르면 “오직 치안에 대해서만 증언이 존재한다”[Catherine Malabou, Au voleur! Anarchisme et philosophie, p. 267. 강조는 말라부.]는 것입니다. 꽤 난폭한 이 주장은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의 한 장면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가스실로 들어가는 희생자들의 체모를 깎아주는 일을 맡았던 아브라함 봄바라는 이발사는 자신이 했던 일에 관해 차마 증언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에게 란츠만은 “말해야 합니다” 하고 종용을 합니다. 랑시에르는 이 장면에 주목하면서, 여기서 란츠만은 봄바를 상대로 마치 지도자가 부하에게 하듯이, 또는 선생이 학생에게 “내 말 알아들었어?”[랑시에르는 불화의 2장에서 “내 말 알아들었어?”라는 이 문장을 사용하여 치안이 부과하는 복종의 명령이 어떻게 역설적이게도 평등의 논리를 전제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봄바는 지도자나 선생의 명령에 복종하듯이 결국 란츠만의 강요에 못 이겨서 증언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말라부는 바로 이 대목에서 랑시에르 민주주의론, 아르케 없음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아직 아나키즘에 이르지는 못한 그 민주주의론의 한계를 발견합니다. 우선 말라부는 랑시에르가 봄바가 증언을 주저하는 이유, 그가 차마 증언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봄바가 증언을 주저하는 것은, 증언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타자가 아니기 때문에, 곧 증언을 해야 할 유대인 희생자 본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타자를 대신하여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랑시에르가 간과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말하는 타자”와 “사람들이 말하는 타자”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Catherine Malabou, Au voleur! Anarchisme et philosophie, p. 267.]가 존재하며, 리오타르는 이 무한한 거리로 인해 현시 불가능한 것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랑시에르 민주주의론의 한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평등의 공리에 입각해 있는 랑시에르는 두 가지 평등 사이의 차이를 식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는 랑시에르가 주의를 기울이는 사회적 불평등과 다른 하나는 “타자성으로서의 불평등”[Catherine Malabou, Ibid., p. 268.]인데, 그는 이 후자를 전자로 환원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자성으로서의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오히려 “불평등 자체의 불평등”[Catherine Malabou, Ibid.]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컨대 랑시에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주체들이 또는 사회적 집단들이 서로 아무리 평등하다고 해도,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타자라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말라부는 언급하지 않지만, 랑시에르에 대한 말라부의 비판은 사실 데리다의 레비나스 비판과 유사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성적 소수자, 장애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이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각각 서로에 대해 타자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타자성은 상호 증인 연대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또한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데리다는 레비나스의 타자론, 대문자로 된 타인 개념에 의거하여 “타인과의 관계, 곧 정의”라고 규정하는 그 타자론에 차연(différence)을 도입하고 싶어 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데리다가 [죽음을 선사하기]에서 도입한 유명한 한 문장입니다.[Jacques Derrida, Donner la mort, Galilée, 1996.] “Tout autre est tout autre.” 이것은 겉보기에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사실은 아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며, 따라서 프랑스어와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불가능한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먼저 “전혀 다른 타자는 전혀 다른 타자다”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이 문장은 동어반복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된 문장은 레비나스의 타자론을 잘 표현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레비나스는 자신이 말하는 타인은 존재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며, 어떠한 상대적인 타자(곧 독일인에 대한 유대인처럼, ~에 대하여 타자인 타자)와도 동일하지 않은 타자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곧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인은 존재론에서 제시되는 타자들과는 다른 전혀 다른 타자이며, 그것은 오직 전혀 다른 타자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또한 “전혀 다른 타자는 모두 다르다”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될 경우 이 문장은, “전혀 다른 타자는 하나가 아니라 각각 모두 다른 타자들이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전혀 다른 타자가 이처럼 모두 다른 타자들이라면, 과연 이중에서 어떤 타자가 진정한 타자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 모두 다른 타자들 가운데 어떤 것이 진정한 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는 타인 개념의 애매함이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데리다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닫힘(closure)이 본질적입니다. 만야 내가 어떤 것 내지 어떤 이 또는 어떤 상황을 긍정하기를 원한다면 (...) 독특성이 존재해야 하는데, 독특성은 어떤 닫힘을 의미합니다. 곧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준다면, 그런 한에서 나는 어떤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을 포기하는 셈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환대를 베풂과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는 내 집 문을 닫게 됩니다. 그것이 유한성입니다. 유한성 없이는 선물이나 환대도 없습니다. 따라서 유한성은 선택을 의미하며, 선택은, 내가 “예”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어떤 형태의 닫힘이 개입돼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예라는 것이 긍정되기 위한 조건입니다. (...) 우리는 그저 여러 가지 가능한 열림들과 닫힘들 가운데에서 선택해야 하며, 이것은 전략의 문제입니다. [Jacques Derrida, “The Tragic, the Impossible and Democracy: An Interview with Jacques Derrida”, International Journal for the Semiotics of Law, vol. 23, no. 3, 2010. 이 인터뷰는 원래 1999년에 이루어졌다.]
이 인터뷰에서 데리다는 레비나스를 거론하지 않은 가운데, 레비나스의 타인 개념이 지닌 애매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데리다에 따르면 절대적 타자로서의 타인이란 하나가 아니라 다수이며, 심지어 무한하게 많습니다. 이처럼 타인이 무한하게 많은 이유는 우리가, 또는 주체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곧 내가 타인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그를 환대하기 위해서는 나는 다른 타인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야 합니다. 또는 적어도 내가 이 무한한 타인들 모두에 대해서 무한한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 나는 어떤 타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주거를 마련해주고 일자리를 알아봐줄지 선택해야 하며, 이러한 선택은 다른 타인들에게는 그러한 환대를 베풀지 못한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더 나아가 타인들 가운데는 선량하거나 우호적인 타인들이 존재하지만, 또한 개중에는 나의 선의를 배반하고 나를 위협하며 심지어 나의 목숨을 겨냥하는 타인들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고 타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나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들에 대해서까지 고분고분 순종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어떤 근거 때문일까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레비나스의 타인의 윤리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데리다는 레비나스가 열어놓은 타자의 윤리학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되, 그것이 지닌 애매성을 정정하고 보완할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환대의 이율배반이나 용서의 이율배반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면, 말라부는 랑시에르의 아나키즘적인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모든 아나키스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 인용자] 증인들이다”[Catherine Malabou, Au voleur! Anarchisme et philosophie, p. 269,]라고 말합니다. 이는 무엇보다 아나키즘이 그 자체로 트라우마적이라는 것을 함축합니다. 왜냐하면 아나키즘의 핵심은 아르케 없음이라는 것, 우리는 아르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지배와 예속, 명령과 복종의 위계질서 없는 삶도 가능하다는 것임에도, 아나키스트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이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래 전부터 아나키스트들이 존재해왔으며 그들이 수많은 투쟁과 활동을 통해 아나키즘의 존재 이유를 알리고, 마르크스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급진적인 사유와 정치, 삶의 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음에도, 아나키즘은 부정과 배제, 또는 부인의 명칭으로만 존재해온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아나키즘은 오랫동안 “정치의 한계 경험”을 이루어왔으며, 아나키스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증인으로 남아 왔다는 것이 말라부의 논지입니다.
말라부의 감동적인 문장들은 그가 말하는 아나키즘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도 도처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음을 일깨워줍니다. 스스로 아나키즘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빈곤하고 모욕당하고 배제되고 차별받는 이들이 스스로 전개하는 투쟁들, 예컨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이나 성소수자들의 투쟁, 재난 참사를 경험한 유가족들의 투쟁, 이주노노동자들의 투쟁, 또는 밀양 탈송전탑 탈핵 투쟁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의 경험은 아나키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증인으로 존재해왔던 투쟁이고 삶이고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태령에서, 여의도에서, 한강진에서 탄핵 집회의 참가자들이 보여준 상호 증인의 연대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아나키즘적인 것, 또는 아나키즘적인 민주주의의 표현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마지막으로 아나키즘 민주주의의 아포리아를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상호 증언의 연대는 과연 제가 지금까지 논의해 왔던 증언과 민주주의의 이율배반을 해명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해주는 것일까요? 저는 이점에 대해 얼마간 회의적입니다. 적어도 랑시에르나 말라부가 전개하고 있는 아나키즘적 민주주의론이 그 이율배반을 풀어낼 수 있는 철학적 실마리를 충분히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극우파 운동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강고한 지배 세력 때문입니다. 이들은 해방 이후 80여 년 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국가권력을 비롯한 사회적 권력을 장악하고서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해왔습니다. 과거에는 국가권력과 사회적 권력을 강고하게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굳이 대중운동이 없어도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이은 당선 및 2017년 탄핵은 이들이 독자적인 극우 대중운동을 요구하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등장하게 된 것이 2017년 탄핵 정국의 “태극기 부대”이고, 이번 탄핵 정국의 극우파 대중운동입니다.
아마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판결이 이루어지고 조기 대선에서 야당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고 해도, 우리가 이미 2017년 이후 경험해온 것처럼, 극우파 세력이 몰락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세력이 호락호락 약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들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 권력을 상실한다고 해도, 이번 탄핵정국에서 보듯이, 공안권력이나 행정부의 권력, 재벌을 비롯한 경제적 권력, 언론과 학계의 문화적 권력 및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 권력, 그리고 기타 다양한 사회적 권력에 이르기까지, 랑시에르가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라고 부른 바 있는 것에 기초를 둔 과두제 지배 체제를 구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재의 제도권 야당들도 이러한 과두제 지배 체제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것의 재분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나키즘적 민주주의 및 그것을 구현하는 상호 증언 연대의 운동은 그 자체로 본다면,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과두제 세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실천을 수행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아나키즘적 민주주의 및 그 운동은 모든 과두제에 반대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국가권력 자체, 그리고 법 자체를 과두제의 표현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앞에서 본 것처럼 김영희 선생은 5.18이 국가가 공인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 잡은 이후 전개되는 국가폭력의 양상들을 비판하면서 “5.18을 국가폭력으로 재사유한다는 것은 ...... 국가라는 경계를 벗어난 기억과 애도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질문”[김영희, 「‘5·18 광장’의 ‘애국’ 담론과 ‘여성’의 비가시화: 청취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여성’ 발화의 장소」, 앞의 글, 121쪽.]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민중운동으로서의 5.18과 국가를 서로 대립시키는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은 특히 진보적인 입장을 택하고 민중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들, 공생과 돌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관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나 법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과두제적인 것으로서 설정하게 되면, 굳이 애써서 국가나 법을 민주화할 필요가 없게 될뿐더러, 국가나 법이 실제로 과두제적 권력의 준거로 활용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방치하게 되지 않을까요? 민중운동과 국가/법이 서로 적대적인 대립 관계로 설정되고, 민주주의가 국가/법과 무관한 아나키즘적인 것과 동일시될수록 아마도 이렇게 될 개연성이 더 증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 사회의 지배 세력은 국가나 법을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쟁취하고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4) 이율배반의 민주주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극우 파시즘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민주 세력이 일치단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신진욱, 「윤석열이 열어젖힌 파시즘의 문」, 한겨레 2025. 2. 12.] 제가 보기에는, 필자의 의도가 어떤 것이든 간에 이런 주장의 실천적 귀결은 2024~25년의 탄핵을 2016~17년 탄핵의 도돌이표로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거대 야당에 표를 몰아주고 선량하고 유능한 대통령을 뽑아서 거대 극우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이런 주장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지적한 바와 같이 레닌주의에서 발원한 2단계 혁명론(two steps strategy)의 자유주의적 변종에 불과합니다. 혁명의 첫 번째 단계는 부르주아 계급에게서 국가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이러한 권력을 바탕으로 사회 체계를 변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착취와 억압을 행사하는 체계를 더 평등하고 더 민주주의적인 체계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의 장악이 필수적인 과제가 됩니다. 이것은 비단 마르크스주의 또는 레닌주의에 고유한 전략은 아니며, 아마도 2017년에 문재인 정부(그 이전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 역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2단계 혁명론에 전제되어 있는 생각은, 국가란 중립적인 통치의 도구이며, 정의로운 목적을 지닌 선량하고 유능한 엘리트들(레닌이나 마오, 또는 노무현이나 문재인 등.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세종이나 정조와 같은 ‘성군’이 필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하죠)이 국가권력을 갖게 된다면, 이러한 통치 도구를 정의로운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2단계 전략을 고수하는 한, 늘 약소자들, 을들에게는 대의를 위해 희생할 것이 요구됩니다. 지금 당장 각각의 영역에서, 각각의 조직에서, 각각의 실천에서 을들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대신, 먼저 갑의 권력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단결하고 통일해야 하고, 선차적인 목표와 부차적인 목표를 구별해야 하며, 전자를 위해 후자는 포기되거나 지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는 먼저 적폐 세력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극우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누가 압도적인 여당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소수 정당 대신 특정한 야당이나 여당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소수 정당에게 투표할 수 있는 기회는 결코 나타나지 않으며, 약소자들, 을들의 몫을 위한 정치의 시간은 도래하지 않습니다.
2017년의 선택의 결과는 5년만에 “촛불혁명”의 결과를 고스란히 넘겨주고 패퇴한 것이었는데, 새로 도래한 탄핵 정국에서 2017년의 선택을 되풀이하자는 주장은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자는 주장이 아닐까요? 더욱이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탄핵 여론이 80퍼센트를 넘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당시 지지도 84퍼센트가 넘었고 임기 마지막에도 50퍼센트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결국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탄핵 찬성율이 60퍼센트가 되지 않고 반대하는 비율은 40퍼센트를 넘는 것이 현실이죠. 따라서 이재명 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지지율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고, 아마도 훨씬 더 혹독한 환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상호 증언의 연대에게 필요한 민주주의는 국가 바깥의 민주주의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국가의 민주주의 또는 국가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민주주의 내지 민주화는 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조화롭거나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데리다가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의 이율배반, 정의와 법의 이율배반에 관한 논의에서 이 양자 사이에서 이율배반 관계가 성립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 바깥의 민주주의와 국가 내부의 민주주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자는 이율배반의 관계를 모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율배반 관계를 불운한 숙명으로 사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데리다가 강조한 바와 같이 이러한 이율배반은 법이나 국가가 개혁되고 진보하기 위한 조건이자 동력이며, 또한 국가 바깥의 민주주의가 막연한 유토피아에 머물지 않고 현실성을 얻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율배반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그것의 가능성과 한계를 어떻게 사고해볼 수 있을까요? 이것은 다른 기회에 좀 더 다뤄봐야 할 주제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