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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자세’를 잃다

 

 

내 보기에 노무현 정부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는 줄곧 우회전해 왔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보수층은 그 왼쪽 깜박이마저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가 보다.

하긴 왼쪽 깜박이가 계속 켜져 있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 좌회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진보진영에 속한다는 사람은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보수층은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요즘 보수층이 느끼는 불안은 과도한 것이다.

‘할 말을 하는 신문’이라 주장해온 <조선일보>가 막말하는 신문이 된 것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난 7월 말에 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사설의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보면서부터다. “이제 이 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우리의 아들 딸들은 조국의 부끄러운 모습만 집중적으로 교육받고, 6·25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사람 목숨을 앗아간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활동을 학습하고, 미국 등의 동맹국이 추악한 나라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대한민국의 ‘신(新) 국민’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 나라 학교는 ‘인간개조(改造) 공장’이 된다는 이야기다.” 시쳇말로 ‘오버도 한참 오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8월 초에는 시민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을 문제 삼다가 우스운 꼴을 당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아둔한 기사라는 걸 깨달았음을 자인하는 듯이, 며칠 뒤에는 “NGO에 대한 국가지원은 정당하며 우리의 경우 액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론을 실었다. 코메디 아닌가.

국보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조선일보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다시 꺼내 읽은 것 같았다. 현재를 내전의 전야라 우기고 우익 총궐기를 외치는 듯한 글귀들이 지면 여기저기에 등장했고, 급기야는 전두환 빼고는 얼추 다 모인 것 같은 5공인사 중심의 선언문을 70, 80년대 독재에 항거하며 발표되었던 시국선언의 전통에 연결하는 창의력을 보이기까지 했다.

8월에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과거사 진상규명법이 “나라 전체가 남의 족보를 뒤지고, 자기 족보를 점검하느라 고문서 더미를 헤치고, 때론 이 나라를 강탈했던 일본 국회의사당 서고까지 찾아가 일제의 헌병 명단과 순사 명단을 챙기며 6·25 부역자 재판기록을 다시 읽는 이 시대착오의 참담한 국가파괴 행위”라고 몰아부쳤다. 그리고는 9월 들어서 그들이 그려준 가계도만 보아도 가족사적 아픔이 적지 않았을 김희선 의원 집안의 내력을 대문짝만하게 기사화함으로써 자신들이 과거사 진상규명법을 비판하며 예단했던 폐해를 몸소 실천하기까지 했다.

이런 조선일보를 두고, 증오심이
기승을 부려 예전의 교활함과 노회함을 잃었다고밖에는 달리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전의 조선일보는 신중함에 더해 신속함을 가지고 있었고 의뭉스러움과 독살스러움을 겸비했으며 그 양면을 내보임에 있어 솜씨 있고 자재로웠다. 그러나 지금 조선일보는 포효하고 있기는 하되 덫에 걸린 짐승처럼 보인다. 한 마디로 스탠스를 잃었다.

조선일보의 이런 허둥거림은
오래 전 예고된 것이었다. 조선일보가 80년에 ‘올인’했던 전두환 독재정권이 87년 민주항쟁으로 물러났던 바로 그때 조선일보의 정오는 이미 지나 버렸다. 89년 베를린 장벽과 함께 냉전이 무너져 내리고 더불어 자신을 나라를 세운 세력으로 참칭할 수 있게 해준 반공이라는 깃발이 세계사적 문맥을 상실했을 때, 조선일보의 시계는 늦은 오후 시간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호적인 국가권력에 이어 의회권력마저 잃게 되자 오래된 불안과 초조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자라났고 그것이 지금 조선일보가 내비치는 흥분과 공격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거니와, 이렇게 공격성을 무분별하게 표출한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몰락의 진행을 증거한다고 할 수 있다.

김종엽/한신대 교수·사회학 [한겨레신문, 200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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