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의혹' 해결 못하면 세계 과학계 '왕따' 된다"

[기고] "과학엔 '한계'없지만 과학자에겐 '규제'있어"

  2005-11-17 오후 3:10:05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윤리 문제가 연일 제기되고 있다. 황우석 교수팀과 일부 국내 언론은 "섀튼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 노하우를 충분히 섭렵했기 때문에 '독자 노선'을 걷기 위해 결별한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한국적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적 연구 윤리를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는 등의 여론몰이를 연일 시도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 연구원을 역임했고 현재 피츠버그 의대에 재직 중인 이형기 교수는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 교수는 "만약 국제적인 연구윤리 관행을 황우석 교수팀을 비롯한 국내 과학자들이 무시하고 있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진다면 더 이상 세계적인 과학·의학 잡지들은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를 싣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논란을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한다면 5000년만에 찾아온 '바이오 강국'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저버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황 교수가 파스퇴르를 인용해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언급한 것을 빗대 "과학에는 '한계'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규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편집자>

  과학에는 '한계'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규제'가 있다
  
  피츠버그는 현대 의학사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내 도시다. 의료인들에게는 무엇보다 현대적인 장기이식의 새 장을 연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피츠버그 의대의 스타즐 이식 연구소는 여전히 이 분야의 지평을 개척해 가는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의학과 공중보건 영역의 또 다른 부문에서 인류에 큰 -더 정확하게 말하면 '훨씬' 큰- 기여를 했다. 바로 50년 전인 1955년 피츠버그 의대의 소크 교수팀이 최초로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을 이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뒤에는 흔히 '피츠버그 소아마비 개척자(Pittsburgh polio pioneer)'라고 불리는 수많은 임상시험 자원자들 -대부분은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어린 학생들- 의 헌신과 참여가 있었다. 오늘날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동물 실험자료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받았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질병통제 사례라고 일컬어지는 소아마비 백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피츠버그 소아마비 개척자들의 예는 새로운 예방 또는 치료법을 개발할 목적으로 실시하는 임상실험에 참여하는 자원자들의 헌신이 인류 전체의 건강 증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 준다. 동시에 이 예는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헌신의 짐을 조금씩 나누어 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도 함께 말해 준다.
  
  섀튼 결별,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의학계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바로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는 그 대표적인 예다. 언론이 연구 결과를 매우 극적으로 전달했고 일반 대중이 이를 거의 종교적으로 확대 재생산한 것에 힘입어 황우석 교수팀은 바야흐로 우리나라가 생물의학 산업의 거목 국가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주도적 견인차로 부각됐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도 함께 증폭됐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이 분야 연구자들이 한국에 줄을 대기 위해 애쓰는 반가운 진풍경도 연출됐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한때 호형호제하던 피츠버그 의대 섀튼 교수가 돌연 황우석 교수팀과의 공동연구 결별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작년에 처음 발표돼 전 세계를 흥분시킨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한 성인 여성의 난자 제공 과정에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었던 것이 주된 이유로 알려졌다.
  
  필자는 섀튼 교수와 일면식도 없지만 우연히 같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빌미로 결별 소식이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발표된 다음에 이메일을 보내 추가 정보를 줄 수 없는지 문의했다. 답신은 바로 왔지만 섀튼 교수가 아닌 피츠버그 의대의 홍보 책임자가 보낸 것이었다. 요점은 섀튼 교수가 어떤 인터뷰나 추가 질문에도 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언론에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공식적인 자료의 전문을 보내 왔다.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자료에는 왜 섀튼 교수가 갑작스러운 결별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나와 있었다. 예를 들어 새튼 교수는 이렇게 진술했다.
  
  "유감스럽게도 난자 제공 과정과 관련해 허위진술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정보를 어제 접수했다. 정보의 특성상 비밀이 보장돼야 한다. 대학 및 규제기관들의 관계자와 이 정보를 의논한 결과 황우석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얻는 과정에서 윤리적 원칙을 위배한 것에 대한 우려와 (황우석 교수가) 신뢰를 어긴 것이 이러한 결별 결정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아직은 섀튼 교수도 황우석 교수도 더 자세한 해명을 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관계에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필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대단한 학문적 업적을 갖고 있는 황우석 교수와 관련 연구팀들이 아무쪼록 이 위기를 잘 넘겨, 국민들의 기대를 이어 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섀튼 교수의 자료와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모든 문제는 난자 제공자로부터 '적법하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동의서를 받았는가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하려는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난자 채취 과정 및 합병증,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투여 받는 배란촉진제의 장·단기 부작용 등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는지, 그리고 최종 결정이 암묵적인 강제 하에서 내려지지 않도록 충분히 자율성을 부여받았는지 등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또한 황우석 교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임상 연구를 실제로 수행한 의사들과 이들이 속한 병원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가 사전 및 사후에 어떤 방법으로 연구의 윤리적 측면을 최대한 보장했는지 공개돼야 한다. 필자가 피츠버그 의대 병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10여 건의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자원자들은 먼저 연구 간호사로부터 약 1시간에 걸쳐, 그리고 참여 의사를 밝힌 다음에는 의사, 즉 필자와 함께 보충 질의나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한다. 이 과정은 사전에 피츠버그 의대 병원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로부터 까다로운 심의를 받아야 하며 사후 실사를 대비해 기록도 남겨야 한다.
  
  섀튼이 '독자 노선' 위해 결별했다고?
  
  하지만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에 이어 일반인은 물론 의료계, 심지어는 황우석 교수팀이 보여 준 반응과 대응은 매우 염려스럽다.
  
  우선 섀튼 교수가 이제는 알 만큼 알았기 때문에 비겁하게 다른 이유를 대 공동연구를 파기했다는 반응이다. 주로 일반인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은 정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자체 병원에서 실시되는 임상 연구뿐만 아니라 소속 의사(교수)나 연구원이 공동 연구자로 참여하는 다른 나라 또는 다른 기관의 임상 연구도 자체 기관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로부터 심의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임상 연구 수행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돼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나 보건성의 감사를 받고 그 결과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면 해당 병원은 일정 기간 동안 어떠한 임상연구도 실시할 수 없고, 당연히 정부나 외부기관으로부터 오는 모든 연구비 지원은 일시에 중단된다. 피츠버그 의대는 미국 내에서 국립보건원이 주는 생의학 연구비를 6번째로 많이 받는 곳이다. 따라서 새튼 교수의 결정은 피츠버그 의대의 입장에서는 학교와 병원의 연구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적절한 조치다.
  
  과학 윤리에 '한국적 특수성' 내세우다가는 '바이오 강국' 꿈 날라가
  
  필자가 더 염려하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의 특수성을 내세워 비록 윤리적인 하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서구적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주로 줄기세포에 관련된 연구팀에서 보이는 반응이다. 그러나 임상 연구에서의 윤리적 기준과 잣대는 더 이상 특정 지역에만 적용되는 국지적 규정이 아니다.
  
  이 분야에서 과거 10여 년 동안 진행돼 온 범세계적 조화 및 일치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병원에서 실시되는 임상 연구도 모두 동일한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선 지 이미 오래다. 만일 이 전제가 만족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세계의 유수한 의학 잡지들은 우리 손으로 실시한 임상 연구의 결과를 게재해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한국적인 특수성을 말함으로써 지금 당장 배포는 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전략적인 실패라는 것이다.
  
  "과학에는 '한계'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규제'가 있어"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이 말은 황우석 교수의 어록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동시에 필자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과학에는 규제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법의 한계가 있다."
  
  소아마비 백신의 개발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피츠버그의 어린 학생들과 그들의 결정을 지지한 부모들은 '자율적으로' 임상시험 참여를 결정했는지 일일이 질문을 받았다. 50년이 지난 지금 난자를 제공한 연구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얻을 것인가?

   
 
  이형기/미국 피츠버그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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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11-1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처] "사설"에서도 한국 정부가 황우석 교수를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네.
황우석 교수가 문제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사태가 계속 확산되는 듯 ...

가시장미 2005-11-1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거 어려운 문제네요. ㅠ_ㅠ 요즘 계속 생각을 하고 있는 부분이긴 한데요.. " 과학에는 한계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규제가 있다 "는 말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듭니다. 과학과 과학자를 분리시켜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데 가능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_= 황우석박사에 대한 책이 학원에 있는데 계속 미루고 못 읽고 있지요. 계속적인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 같아요. 넘 어려워요.

페일레스 2005-11-17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이거 좀 나찌스러운 문구 아닙니까? 뭐 누구에게나 조국은 있겠지만서도...

balmas 2005-11-17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에 대한 댓글 중에 다음과 같은 게 있던데,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인 듯하다.

 

최근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를 떠나서 그 걱정의 시선이 "황우석"박사와 "조국"에
머무는것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프레시안 찌라시와 같은 일부 언론처럼 침소봉대하지도 않고,선정적이지도 않아

읽는 독자로서 이해의 지평이 넓어 지는것 같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의구심은 남습니다

1)미국은 절차를 엄격히 지키는가..당위가 아닌 현실을 반영한 것인가..

미국의 예를 드신건..본인께서 직접 생활하시는 곳이고 모든 부분에 있어
규범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겠죠..(그것이 먼저 시작하는 국가의 이익
인지 국가 자체가 가진 힘의 우위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
니 다만....)

박사님께서 드신 예는 아주 일반적인 예인지..아니면 아주 모범적인 예인지..

이 글을 통해서는 알지 못하겠군요.미국에 대해서 가진 일반적 인식과 현실과의 괴리는

 최근 몇년동안 여러번 나타납니다.대표적으로
부시와 앨고어와의 대선 상황에서 벌어진 민주적 절차와 선거법의 유린
은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죠..그 상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설마
미국에서 그럴리가..라고 생각한 것이 일반적 인식이었습니다..


의학관련 현장에서도 매뉴얼대로...박사님의 기대대로..이글에서 쓰신
대로 잘 적용되고 있는지는 다시 확인해 보는게 맞는 순서 인것 같습니다

규정을 지키고 규정을 어김으로써 받는 페널티는 한국에도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그것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느냐의 문제겠죠.

2)한국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논쟁의 여지없는 "악"인가...

한국의 특수성이라고 말하신게 정확히 어떤건지 나오지 않습니다만..

안규리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난자 기증에 대한 한국과 미국과의 정서는

조금 다르나 국제 윤리규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며 단지

생명윤리법이 제정되기 전 한국과 미국의 다른 정서를 설명한 것"라는 내용을

말씀 하시는 것 같군요.

결국 새튼교수가 문제삼는것은 "연구원의 난자 기증이 있었고,그것이

상위 연구자의 암묵적 강요나 하위연구자의 결정에 자율성이 훼손 되었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황박사팀은 "연구원의 난자 기증은 없었고,만약에 있었던 걸로 전제하더라도 그것이

순수한 기증일 경우는 과학자의 윤리규정에 어긋나지 않다라는 것" 인데..

여기서 정서의 차이가 나타날수 있겠죠..의학 실험에서 연구 주체의 자발적 헌신은

서양에서도 많이 있었던걸로 아는데요..

"자발적 헌신"과 "강요에 의한 선택"이었는지의 입증 책임은 먼저 문제를
제기한 쪽에 있는게 상식적이지 않나요..?

이른바 한국의 특수성이라는게 지탄받을 짓인가요..그것은 너무 단선적인 생각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3)새튼교수의 결별은 그저 순수하기만 했나?

새튼교수가 입수한 정보가 100% 정확하다면 새튼교수가 본인과 소속 대학에 대한

불이익을 염려하는것은 당연합니다.따라서 순수한 맘으로 황박사님과 결별했다는

것을 믿고 싶군요..그러나 새튼교수께서 결별전에 논의 하셨다던 이른바 "규제당국"

또한 순수했는지는 의심해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강압은 오히려 규제당국이

새튼박사한테 한게 아닐까요..


저의 몇가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의 글은 많은 공감을 갖게 합니다..

프레샹에서 모처럼 좋은 글을 보는군요...

강양구는 교수님께 글쓰는 법을 좀 배우기 바란다..

너의 글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너무 크다..

 


balmas 2005-11-1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 예, 헤헤, 좀 복잡한 문제인 것 같네요. 저도 뭐라고 딱 부러지게
할 만한 말이 없습니다. 겨울에 관련된 분야를 좀 공부해보려구요.
페일레스님/ 처음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그 말은 파스퇴르의 문구라고
하네요. :-)

싸이런스 2005-11-1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과에서도 줄기세포 시뮬레이션을 연구하고 있는데 담당교수가 Professor Hwang이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로 accused 됐다고 강한 의심을 보이더군요.

balmas 2005-11-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황교수가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