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알랭 바디우 밑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분을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나서 재미삼아 퀴즈를 하나 내봤는데, 예상외로 답변이 너무 쉽게 나와서, 썰렁하게 되었습니다. 책임지세요!^^
어제 대화 도중에 어떻게 Bergson 발음 및 표기에 관한 문제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보통 독자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혼란스럽죠. 최근까지 "베르그송"이라고 잘(??) 써오다가, 얼마전부터 "베르크손"이니 "베르그손"이니 하는 표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해서, 갑자가 Bergson에 대한 표기가 세 가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같은 자리에 있던 한 분(3명이 식사를 했는데)이 얼마전 학술회의에 참석하러 일본에 다녀오셨는데, 일본 사람들은 Bergson을 전부 "베르그송"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베르그송"이라는 표기는 사실은 일제 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부르던 어법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학위를 마치고 온 분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들은 전부 "베르그손"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반면 "베르크손"이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은 Bergson이 독일계이기 때문에, 독일식 발음을 따라 그렇게 표기해야 한다고 하지요.
Bergson 전공자도 아닌 주제에 이 문제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단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제 견해로는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면, 표기도 그렇게 바꾸는 게 옳은 게 아닌가 합니다. 제가 학부 다닐 때만 해도 Durkheim을 "뒤르켕"으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이후 이것도 "뒤르켐"으로 고쳐서 부르고 있으니까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어제 저희 세 사람은 "베르그손"이라고 부르는 게 합당하지 않냐고 나름대로 합의를 봤습니다. 물론 우리끼리만요.^^
이렇게 Bergson의 표기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프랑스인들의 발음 관습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가서 이런저런 철학자들, 예술가들, 작가들의 인명에 관한 일화들을 이야기하게 됐죠. "으젤"이니 "립니즈"니 "미셸 앙주"(미켈란젤로)니 "엔느"니 등등. 저도 프랑스 TV를 보다가 "로날도"(사실은 "호날도")라는 이름이 나와서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는데, 알고보니 "호나우두"더군요. 그런데 사실 "으젤"이라는 발음은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들한테서나 들을 수 있고, 보통은 다 "헤겔"이라고 제대로(헤겔이 고마워하겠죠^^) 불러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떤 이름이든 자기식대로 발음하는 프랑스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합니다만, 될 수 있는 대로 그 나라에서 부르는 대로 발음을 해주는 게 좋은 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표기법 원칙을 따르는 가운데에서 그렇게 해야겠지만요.
어제 들은 이야기 중에서 흥미로운 것 한 가지는 프랑스 고등사범학교(파리 윌름 거리에 있는)에 "현대프랑스철학 국제연구센터"(Centre International d'Etude de la Philosophie Française Contemporaine) 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오질비의 "라캉 주체 개념의 형성"에 대한 서평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알랭 바디우를 주축으로(그 분 말에 따르면 바디우가 파리 8대학에서 고등사범학교로 적을 옮긴 것은 이 센터를 주관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제 교수직에서는 은퇴하긴 했지만), 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 이브 뒤루, 베르트랑 오질비 같은 사람들이 관여해서 정규 세미나와 연구 모임, 학술 콜로퀴엄 등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센터의 이름처럼 베르그손에서 바슐라르, 구조주의, 들뢰즈 등에 이르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이 강의와 연구, 토론의 주제구요.
물론 아직 정식 학위과정이 아니라 "마지스테르Magistère"라는 특수학위과정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동안 프랑스 철학계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을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주목할 만한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정식 학위과정이 설치되고 재정적, 행정적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갖추어서, 훌륭한 연구자들을 많이 배출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알튀세리엥들이 들으면 반가울 만한 소식인데, 이 센터의 비공식적 명칭이 "알튀세르 센터"라고 합니다. 사실 약자로 하면 CIEPFC인데, 발음하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라서 관련 당사자들은 모두 "알튀세르 센터Centre d'Althusser" 라고 부른다고 하는군요. 앞으로는 이게 공식 명칭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알튀세르는 지금도 프랑스 학계에서는 금기시되는 인물이어서 학위주제로 삼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처럼 알튀세르에 관한 연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데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 센터가 현대 프랑스 철학만이 아니라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주의(사실 전자와 후자는 함께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연구에도 크게 기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국내 알튀세리엥들도 이제 좀 뭔가를 만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