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호주제 대체 1인1적제로”
대법원이 다음달로 예정된 국회의 호주제 폐지에 발맞춰 호주제를 대신할 새로운 신분등록제를 마련해 국회에 내기로 했다. 대법원이 이번에 확정한 새 신분등록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들의 신분변동 사항을 기록했던 기존의 호적과 다른 이른바 ‘1인1적’안으로, 사람마다 자신의 인적사항을 담은 하나의 신분등록부를 갖는 형태다.
대법원은 10일 “이번에 마련한 새 신분등록제는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국회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대법원이 호적사무 관장기관인 만큼 오랜 연구와 각계의 의견을 종합해 양성평등의 이념과 신분정보 보호 취지에 맞춰 확정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이번에 확정한 1인1적제는 개인의 출생과 혼인 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담은 개인별 신분등록부에다 배우자와 부모, 자녀의 신분정보를 담은 ‘가족부’ 성격을 혼합한 형식이다. 여기에 개인의 결혼과 이혼 내역을 담은 ‘혼인이력 사항’과 자녀를 입양하거나 파양한 내역을 담은 ‘입양이력 사항’도 신분등록부 기재사항에 포함됐다.
특히 대법원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출생부와 혼인부, 사망부 등을 따로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혼인이력과 입양이력만을 따로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의 전체 정보를 담은 신분등록 등본은 본인 외에는 철저한 허가를 거쳐야 발급하도록 할 방침이다.
한편, 대법원처럼 국회의 대안 마련 요청을 받은 법무부도 10일 대법원과 행정자치부, 여성부 등 관련부처 관계자들과 변호사, 법무사, 법대교수 등이 참여하는 신분등록제 개선위원회를 두어 호주제 폐지에 따른 대안 마련을 시작했다. 법무부는 이미 대법원이 확정한 1인1적안과 함께 부부 및 미혼 자녀를 기본단위로 하는 ‘가족부’안 두 가지를 놓고 논의를 벌인 뒤 최종적으로 정부안을 마련해 이달 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호적사무 총괄 기관이 대법원인데다, 1인1적제가 호주제 폐지와 개인정보 보호라는 취지에 맞아 여성부나 관련 단체 쪽의 지지를 받고 있어 국회에서도 최종적으로 1인1적제를 채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편, 국회는 이달 말 대법원과 법무부가 확정된 안을 제시해 오면 다음달 중으로 공청회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한 뒤, 임시국회에서 호주제를 폐지하고 최종안을 토대로 한 신분등록법을 제정할 예정이다. 국회는 새 신분등록제 시행을 호주제 폐지 2년 뒤로 잡고 있으나, 대법원은 새 제도 도입을 위한 시스템 정비와 현행 호적정보를 옮기는 데 2년6월 정도가 필요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1인 1적제, ‘호주’ 대신 ‘나’를 중심에
양성평등·정보보호 초점
■1인1적제 살펴보니
대법원이 10일 확정해 발표한 1인1적제는 호적을 대신해 자국의 국민임을 확인하고, 친족 사이의 법적인 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신분등록’ 제도다.
이번에 마련된 1인1적제는, 그동안 호주제가 남성과 가부장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규정하고 개인 정보를 너무 많이 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온 점을 고려해, 양성 평등과 신분 정보의 효율적 보호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평가된다.
◇ 1인1적제, 호적제와 뭐가 다른가= 1인1적제는 우선 그동안 ‘호주’ 중심이었던 신분등록제도가 ‘나’를 중심으로 바뀌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결혼한 여성이라도 신분등록 등본에는 자신의 신상정보를 중심으로 남편의 정보가 배우자 란에 표시된다. 남편 외에 가족 정보는 친부모와 자녀의 정보만 포함된다. 현 호적제도에서는 여성이 결혼하면 호적이 남편 쪽으로 옮겨가지만, 새 제도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배우자 정보가 추가될 뿐, 본적도 그대로 유지된다.
이밖에 이 제도가 시행돼도 당분간 구호적, 호주 등을 기록하게 되는데, 대법원은 “새 신분등록 정보가 완벽하게 완성되기 전까지는 과거 호적을 찾아볼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수십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혼땐 부모만… 결혼뒤 배우자·자녀정보추가
형제는 기록안해…혼인·입양등 분리발급가능
과도기엔 본적·옛호적·호주 표시란 남겨놓기로
◇ 개인정보 보호 특징, “가족해체” 비판도= 새 제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개인정보 보호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본인의 정보 외에는 부모와 배우자, 자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등 기초정보만 들어간다. 현 호적에는 호주를 기준으로 배우자와 부모, 자녀, 형제·자매 등 가족 구성원의 결혼, 사망 등 모든 신상 정보가 한꺼번에 담겨져 있지만, 새 등본에는 본인의 신상 변동 사항만 추가될 뿐 다른 가족의 변동 사항은 기록되지 않는다.
형제·자매의 정보는 아예 없다. 이 때문에 형제 사이의 재산 상속 분쟁 등이 일어날 경우, 형제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부모의 신분등록등본을 발급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본인의 신상정보 가운데 ‘혼인이력’이나 ‘입양이력’은 예민한 부분임을 고려해 따로따로 뜯어서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목적별 공부식 증명’이라는 유럽식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증명서 발급 목적과 관련이 없는 개인정보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마련했다.
한편, 대법원의 개인별 신분등록제는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옹호하는 쪽으로부터 “가족 관계를 증명할 수 없어, 가족 해체를 가속화 할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유림이나 보수층의 반발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하는 사안인 것이다.
또 본인 외에 가족의 신분 변동사항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없어 국민들이 당분간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앞으로 자신이 아닌 남의 신분등록을 발급받을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 그밖에 검토되는 가족부는?= 1인1적제와 함께 법무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가족부’제도는 보수층의 반발을 우려해 가족별로 하나의 신분등록부를 만들자는 안이다. 현재 일본이 채택하고 있는 이 제도는 부부 가운데 어느 한 쪽을 기준인으로 정해야 하는 점 때문에 호주제 폐지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방안은 본인과 가족 사이의 신분관계 파악이 쉽고, 편제방식이 현행의 호적과 비슷해 자료 정리가 쉽다는 장점이 있으나, 분가나 폐가, 일가창립 등 복잡한 호적업무 처리가 힘들고 개인정보 보호나 혼외자 차별 문제에 약점이 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