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전문 번역가인 후배와 함께 존 버거의 최근작인 [스피노자의 스케치북]이라는 책을 함께 번역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원제는 Bento's Sketchbook인데, 알다시피 Bento는 스피노자의 어릴 적

이름입니다.)

번역이 다 끝나고 이제 교정을 보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존 버거가 워낙 뛰어난 소설가, 산문가여서 재미도 있거니와,

사람과 세상을 보는 존 버거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도 여전해서

아주 재미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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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지구적인 폭정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얼굴이 없다는 점이다. 총통도, 스탈린도, 코르테즈도 없다. 오늘날 폭정의 작동은 대륙마다 다르고, 양식은 해당 지역의 역사에 따라 변형되지만, 전체적인 패턴은 동일하다, 순환하는 패턴.


가난한 자와 상대적으로 부유한 자의 구분은 하나의 심연이다. 전통적인 제약이나 권고는 모두 산산조각 나버렸다. 소비주의는 모든 질문하는 행위를 소비해버린다. 과거는 쓸모없는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자아를,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적을 정하고, 찾아내기 시작했다. 적은 - 종교적, 혹은 민족적으로 붙여진 이름이 뭐든 - 항상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나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순환적 패턴은 사악한 것이 된다.


이 체계는 경제적으로는 부를 생산하면서, 가난을 더 많이, 집 없는 가족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새로 생겨나는 가난한 자들의 무리를 배제하고, 결과적으로는 제거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조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경제적인 순환이 오늘날 인간의 상상력을 무력화해버리는, 잔인함에 대한 능력을 키운다.



현장에 가서, 지켜보고, 조사하고, 기록하고, 수정하고, 최종 글을 완성한다, 글이 출간되고, 널리 읽힌다 - 어느 정도가 ‘널리’이고 어느 정도가 ‘좁게’인지는 절대 알 수 없지만 - 문제 작가가 되고, 협박을 받고, 또한 지지도 받고, 수 백 만 명의 남자, 여자, 아이들에 대해 쓰고, 누군가를 경멸했다고 욕을 먹고, 계속 써나가고, 더 거대하지만 피할 수도 있는 비극으로 이어질 힘 있는 자들의 다른 계획들을 까발리고, 기록하고, 대륙들을 오가고, 명백한 절망을 목격하고, 쉬지 않고 책을 내고, 반복해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매달 쉬지 않고 싸우고, 그 달들이 모여 몇 해가 된다. 아룬다티 당신을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가 경고하고 맞서 싸우는 대상은 검증도, 반성도 없이 계속 된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계속 된다. 마치 묵인된, 깨지지 않는 침묵 속에서처럼 계속 된다. 거기에 대해 그 누구라도 단 한 마디도 쓰지 않은 것처럼 계속 된다. 그래서 자문한다. 말이 중요한 걸까? 이런 대답이 분명히 돌아왔을 것이다. 여기서 말은 손이 묶인 죄수를 강물에 던져 넣기 전 주머니에 채워주는 돌멩이 같은 거라는.


분석해 보자. 깊이 있는 정치적 저항은 부재하는 정의에 호소하는 것이고, 미래에는 그 정의가 세워질 거라는 희망과 함께 한다. 하지만 이 희망이 저항이 이루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아니다.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은 저항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모욕적이고, 너무 왜소해지고, 죽은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은(바리케이드를 세우고, 팔을 들고,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인간 사슬을 만들고, 소리 치고, 글을 쓰는 것) 미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저항은 영(零)으로 떨어지는 것, 강요된 침묵을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항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만약 이루어진다면, 작은 승리가 있다. 그 순간은, 다른 순간들처럼 지나가겠지만, 지울 수 없는 가치를 얻는다. 그 순간은 지나가지만, 이미 출력이 되었다. 저항의 본령은 어떤 대안, 좀 더 공정한 미래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아주 사소한 구원이다. 문제는 이 사소한 이라는 형용사를 안고 어떻게 시간을, 다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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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12-03-05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첫문장 부터 마음에 들더니...결국 끝까지.^^ 감사합니다.아...그리고 푸코 세미나 참관기도 잘 읽었습니다. 우연히 서점에서 사카이 다카시의 <통치성과 자유>가 눈에 들어와서 가방에 넣어왔는데..ㅎㅎ 이 주제에 어떤 애정이 느껴지며 왠지 엮일 것 같은 생각이..푸코의 강의록 이외에 다른 추천 책들 생각나실 때 언급해주세요.ㅎㅎ 봄이네요.대학가는 풀잎처럼 파릇 파릇한 새내기들로 흥청거리겠군요..곧 입에 풀칠하기 위해 파리해지겠지만.

balmas 2012-03-13 14:29   좋아요 0 | URL
드팀전 님/ 흥미롭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푸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네요. 아마 푸코 강의록이 좀더 번역되면 국내에서도 훨씬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푸코의 맑스]라는 책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푸코와 이탈리아 기자의 대담집인데, 재미있는 책이니까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그린비 블로그에 가시면 아주 상세한 푸코 연표와 통치성에 관한 외국 학자들의 글이 몇 편 번역돼 있으니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바벨의도서관 2012-03-0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는 여자이므로 그가 아니라 그'녀'라고 하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

balmas 2012-03-09 00:25   좋아요 0 | URL
예 그러고보니까 그렇군요. 최종 교정 볼 때 바꾸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