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란에 다른 사람의 번역글을 올리는 건 처음인데, 아주 좋은 연재글이 있어서 퍼옵니다. Mary Kaldor 의 New and Old Wars: Organized Violence in a Global Era라는 책의 번역인데, [평화 네트워크]에서 연재를 시작했군요. 반전평화운동을 위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서문] 연재를 시작하며


 

 

 

 

 

 

 

 

 

 

 

 

 

 

Mary Kaldor 의
『New and Old Wars』를 번역하기까지

적극적평화행동
(평화네트워크 회원 소모임)



우리가 ‘반전-대항지구화’라는 이름으로 모인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2004년 초에 인도에서 열렸던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겠다고 무턱대고 모였던 것이다. 우리가 처음 모였을 때, 공동의 화두는 막연한 ‘반전’과 ‘대항지구화’ 정도였다. 이라크 전쟁 반대와 세계사회포럼의 기본정신이라고 생각했던 아래로부터의 지구화, 그리고 전쟁과 지구화는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가 전부였다. 사회포럼에 그냥 구경만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 시작한 워크샵 준비는, 우리에게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워크샵 주제를 정하기에 앞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일회성 행사가 아닌 실천적인 국제연대를 만들어 보자, 한국의 문제를 지구적인 의제로 제시하자, 그리고 사회포럼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평화운동을 펼쳐보자는 것이 그것이었다.

동북아, 한반도에 일단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우리의 관심을 분쟁지역이 아닌,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곳으로 돌린 것이었다. 당장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곳, 전쟁을 가능케 하는 구체적인 준비가 이루어지는 일상이 우리의 초점이 되었다. 반전을 넘어서 전쟁과 폭력의 요소를 제거해나가는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을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고, 인도로 떠날 즈음 모임의 이름은 ‘적극적 평화행동’이라고 바뀌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원인을 제국주의,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전 세계적인 반자본주의 투쟁을 주장하는 논자들의 이야기는 환원론적으로 느껴졌고, 무엇보다 구체적 실천에 있어 공허했다. 결국 ‘MD(Missile Defense)와 북핵’이라는 주제로 워크샵을 준비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사회포럼 이후 한국에서는 30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추가파병을 막기 위한 파병반대 운동이 한창이었다. MD 문제에 대한 구체적 개입지점을 잡지 못하던 우리는 한국인 인질 살해 사건, 이라크 포로  수용소 학대 사건 속에서 파병반대 운동에 힘을 보탰다. 그러던 중 지속적인 세미나를 진행하며 Mary Kaldor의 『New and Old Wars』를 읽게 되었다. ‘지구화 시대의 조직화된 폭력’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지구화 시대의 전쟁과 폭력의 양상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일환이자 통치전략이라고 거칠게 정리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우리들로서는 더욱 그랬다. 영어 책 세미나 하는 김에 뭔가 성과물을 남기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세미나 겸 번역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많이 부끄러운 번역이지만, 이 글을 계기로 지구화 시대 새로운 전쟁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게 되기를 바란다.


이른바  ‘새로운 전쟁(New Wars)’

저자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주로 아프리카와 동유럽에서 나타난 ‘조직화된 폭력의 양상’을 ‘새로운 전쟁’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이전 문헌과 연구에서는 ‘저 강도 전쟁(low-intensity conflict)’ 또는 내전이라고 묘사되어왔다. 이러한 폭력들은 보통 국가간 무력 분쟁을 지칭하는 ‘전쟁’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범죄 또는 내부분쟁이라고 왜곡되어 왔다. 하지만 Kaldor는 ‘조직화된 새로운 폭력’은 매우 정밀한 정치-문화 이데올로기 속에서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다양한 세력들과의 연계로 치명적인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국가 내의 범죄나 내부갈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폭력의 양상들을 ‘새로운 전쟁’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범죄, 저 강도 전쟁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의미의 전쟁, 낡은 전쟁(Old Wars)과도 구분한다. 또한 그렇게 정의된 ‘새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분쟁들의 올바른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한 실천적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글의 후반부에 UN의 개입방법, 평화유지군의 역할 등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서술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전쟁은 목표, 전투방식, 전쟁경제에 있어 낡은 전쟁과는 다른 특징들을 보인다. 먼저 목표는, 분리적 정체성-국가, 언어, 종족, 종교-에 기반해 집단을 강화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비롯한 각종 이데올로기들이 식민지 해방이나, 국민국가의 건설을 추구하며 통합적인 방향으로 작동했다면, 새로운 전쟁은 분리적인 방향으로 정체성을 형성해나간다. 분리적 정체성에 기반해 집단을 강화하고자 하는 목표는 전투방식의 변화 역시 수반한다. 20세기의 세계대전이 가장 완전한 방식의 국가 간 총력전을 실현했다면, 다른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새로운 전쟁은 인종청소, 강제이주와 같은 방법들을 사용한 주민 배제를 이루어낸다. 따라서 새로운 전쟁에서는 국가나 집단 전체의 힘끼리 겨루는 총력전이 아니라, 소수의 무장집단에 의한 특정 지역의 주민 배제와 소거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폭력은 민간인을 겨누게 되며, 실제 전투 횟수와 참가 인원은 소수이다. 국가나 특정 집단의 모든 힘을 쥐어짜내는 총력전이 아닌 새로운 전쟁에서의 전쟁경제 역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상적인 경제활동, 사회조직이 붕괴된 ‘새로운 전쟁’의 사회에서는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자원이 생산될 수 없다. 따라서 전쟁경제의 자원은 대부분 외부로부터 들어온다. 국제기구를 통한 원조, 해외 집단을 통한 원조, 불법무역을 통한 이익이 전투 집단들의 자원이 되며, 전투가 격렬해지고 지속될수록 이들의 자원 역시 풍부해진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세계시민주의적 다문화주의를 옹호하며, UN, EU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개입방식이 평화유지에서 세계시민주의적 법-강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문의 국제 면에 자주 등장하는 크고 작은 분쟁들과, 끔찍한 인종청소에 경악했던 구(舊)유고 전쟁들에 대해 그 발생과 작동방식, 해결방향까지 일목요연하게 읽어낼 수 있었던 ‘새로운 전쟁’의 개념 설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문제는 ‘새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을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트랜스코카시아, 발칸, 구소련, 아프리카를 벗어나서 적용할 때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동북아(한반도) 위기 등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새로운 전쟁’의 특징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새로운 전쟁이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며 서유럽이나 북미의 대도시 내부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친절하지 않다. 더 이상 지정학적인 의미에서의 진영 구분이 불가능하며, 지구화의 물결은 지구 곳곳에서 넘실대고 새로운 전쟁의 요소와 특징들은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특정 지역을 넘어서는 다양한 사례 연구와 지구화 시대 폭력의 양상에 대한 일관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지구화 시대를 가로지르는 동시대의 비동시성

저자는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인권과 지구적 통치(Global Governence)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이자, 헬싱키 시민의회(HCA)의 의원으로 활동하는 활동가이다. 2차례의 세계대전과 동구권 붕괴를 거치면서 EU로의 통합을 가속화하고 있는 유럽의 상황과 그에 기반 해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의견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3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한국전쟁 이후 양 진영은 핵전쟁의 공포 속에 40여 년 동안 냉전을 치뤘으며, 한반도는 아직도 53년 정전협정 이후의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일본, 미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뇌관으로 자리 잡은 한반도는 분명 새로운 전쟁의 모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20세기 초중반의 군사적 대립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중국-대만 간의 군사적 긴장은 높아져 가고, 북한을 핑계로 미국-일본-한국을 한 축으로, 중국-러시아를 다른 축으로 전개되고 있는 군비경쟁은 이미 다른 의미에서의 전쟁인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지구화의 주도 세력과 배제된 부분, 세계시민주의 세력과 정체성의 정치 세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동북아시아의 모습은 상호 연결된 지구화의 주도 세력들이 정체성의 정치를 앞장서 펼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핵무기라는 큰 변수가 있지만, 유럽처럼 정치, 경제적 기능의 통합력이 상승하는 것이 곧바로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는 경제적 관련성만을 보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했으며, 현재 긴장이 높아져 가는 중국과 대만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경제교류를 하고 있다. 이처럼 동북아의 상황은 유럽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어떨까? 이 역시 국가 주권의 붕괴와 그에 따른 초국적 네트워크 속에서 진행되는 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모델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석유를 위한 제국주의적 전쟁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처럼 지구화의 주도 세력이자 세계시민주의와 친화성을 갖는 EU가 자리하고 있고, EU 주변의 발칸, 트랜스코카시아, 구 소련 지역 등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전쟁이라는 구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황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면 저자의 논의는 지역적 사안에 그치는 것일까. 저자는 새로운 전쟁은 분명 지구적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우리 역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양상에서 새로운 전쟁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분리장벽, 유대인 정착촌 건설, 주민 강제 이주 등은 인종적, 종교적 정체성에 기반한 새로운 전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라크라는 국가 간 전쟁의 외관을 띄었지만,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계적 네트워크 조직,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부시 행정부의 기독교 근본주의적 성격 역시 새로운 전쟁과 관련을 가진다. 또한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미군정이 이라크에서 각종 이권 배분을 통해 시아파, 수니파 갈등을 부추기고 종교 전쟁의 가능성을 언론을 통해 흘린 것은 전형적인 새로운 전쟁의 기반 만들기였다. 동북아시아의 경우 국가 간 대립이 당면 현상이지만, 장기적으로 중국 내 소수 민족 분쟁,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 주민과 남한 주민 간의 대립, 상당한 정도로 진척되고 있는 계급 간 분리 등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국가 권력, 치명적 폭력의 유무와 국제기구의 개입 여부 등이 새로운 전쟁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지구화 시대의 조직화된 폭력’은 지구화가 야기한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분리에 기반한 폭력으로 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지구화는 정치, 경제,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가장 먼저 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 붕괴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정치 경제적 변화에 직면했던 동유럽의 국가들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다음은 7, 80년대 선진국으로부터 무상원조, 차관을 제공받았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많은 나라들이 IMF나 World Bank 등의 원조를 받았고, 이는 국가의 긴축 재정과 개입력 약화를 불러왔다. 결국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나라에서 국가 기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종국에는 무장력의 독점이 깨지면서, 저자가 묘사하는 새로운 전쟁 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특히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석유와 각종 광물에 대한 이권 다툼 속에서 선진국의 자본에 의해 무정부 상태와 살육전이 조장 된다.1) 국가의 붕괴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지구화,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계급 간 분리, 갈등은 선진국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설 보안업체 직원이 경찰의 2배를 넘고, 세계 각지의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계급 간의 분리는 오래된 이야기이다.2) 하지만 저자는 지구화가 야기한 새로운 전쟁의 양상에 대해서는 대부분 생략하고 있다.


세계시민주의적 접근이 가지는 한계들

저자가 ‘새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바는 국제분쟁 해결방식의 혁신이었다. ‘새로운 전쟁’은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분쟁 당사자들이 협상자가 되는 모순, 그러한 협상 테이블이 그들을 더욱 성장시킬 뿐이고 폭력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사실, 현재의 방식대로 투여되는 국제원조는 오히려 전쟁원조가 되고 있다는 총체적인 문제제기를 가능케 한다. 저자는 대안으로 1)합법성의 재건 2)인도주의적 지원에서 재건으로 3)세계시민주의적 법 강제를 제시한다. 이 때의 합법성은 세계시민주의적이며 다문화주의적인 권력을 뜻한다.

이러한 대안의 문제는 먼저 실행주체에 있다. 세계시민주의 세력이 실행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저자가 현실적으로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은 UN, IMF, WB의 개혁이다. 하지만 이들이 바로 새로운 전쟁을 야기한 지구화의 주체이다. 결자해지의 원칙을 적용하기엔 상대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특히 당장의 비인도적 범죄와 폭력에 대해서는 UN이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인도주의적 지원을 재건으로 바꾸기 위해 IMF, WB가 자신들의 기조를 바꾸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는 지구화가 야기한 새로운 전쟁의 양상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자신의 결론과 배치되는 논거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평화유지에서 세계시민주의적 법 강제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면서, 평화유지군의 적극적인 행동, 특정 지역에 대한 신탁통치를 예로 들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수준의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UN의 위상이 훨씬 강화되어야 하지만, 이는 현재의 수준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강화된 국제기구는 반드시 그에 걸 맞는 민주적 절차와 통제, 참여가 가능해야 하지만 대안 세력의 힘이 약한 지금은 오히려 강화된 국제기구가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라크에서는 이미 ‘정체성의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돌리면, 그 평화유지군이 세계시민주의적 법-강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국제기구나 국제사회의 할 일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과 학살을 멈추도록 적절한 무력을 사용하고 그 지역의 자치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제한된다면, 세계시민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수립하는 것이 곧바로 서구적 가치를 이식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NGO나 시민단체가 주체가 되어서 그 지역의 ‘사람’들과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연계된다면? 하지만 좋게 말해서 법-강제이지, 사실은 더 압도적인 무력의 사용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개입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폭력의 사유화인데, 자치와 공동체만으로는 맞설 수 없는 상황이 있지 않은가? 무력이 개입된다는 것은 한쪽 편을 든다는 것이다. Kaldor는 무장개입이 가져왔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권관점에서 개입하지 않고, 그걸 벗어던지고 개입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가능할까? 무력에 무력으로 맞서는 것은 정당한가? 무장력으로 인한 분쟁에 대한 해답이 비폭력 투쟁일 수 있는가? 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이 ‘새로운 전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리는 많은 질문들을 안고 이 책을 읽었고, 여전히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이 지구화와 전쟁, 평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많은 질문들을 던지기를 바란다.



1)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단 다르푸르에서의 인종청소는 수단 남부에서의 유전개발에 투자하는 중국 국영석유공사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주거지역의 분류는 강남구 CCTV 설치, 타워팰리스의 요란한 보안절차와 같이 더욱 치밀하게 진행된다. 남미에서는 광범위한 부유층 납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헬기를 타고 다닌다. 사실상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릴케 현상 2004-09-2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퍼가서 나중에 읽을게요^^

chika 2004-09-2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

balmas 2004-09-2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러세요.
chika님은 처음 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