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예비평] 여름호에 수록될 원고 한 편 올립니다.
원래 60매 분량의 원고를 청탁 받았는데, 쓰다가 보니 120매나 돼버렸네요.
이 글에 관해 인용하거나 토론할 분들은 [오늘의 문예비평]에 실린 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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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친위쿠데타 이후 탄핵 정국에 관한 몇 가지 정치철학적 성찰
머리말
작년 12월 3일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에 대한 파면 선고가 이루어짐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12.3 친위쿠데타가 촉발한 또는 그것이 드러낸 문제의 한 측면을 마무리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문제가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어떤 측면들로 이루어져 있고 얼마나 깊고 넓은 문제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것은 윤석열이라고 하는,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분별한, 실로 폭군 아이와 같은 인간이 저지른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난동인가 아니면 위기에 처한 극우파 세력이 기도한, 실패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짜인 시나리오를 갖춘 정치적 반동인가?
사실 내가 보기에 12.3 쿠데타는 아직 그 이름을 얻지 못한 무명의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12월 3일에 일어난 사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에 관한 사건이며, 무엇을 촉발하거나 드러낸 사건인가? 그것은 단일한 사건인가 아니면 일련의 사건들 중 하나인가? 만약 이 후자라면 장기적인 그 사건의 시작은 언제이며 12.3 쿠데타는 그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이 질문들이 적절한 답변들을 얻기 위해서는, 아니 그 이전에 이 질문들이 그것들에 마땅한 질문들로서의 위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분명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탄핵 판결이 이루어지고 이제 조기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따라서 이미 무명의 이 사건이 이런저런 답변들의 흐름 속에서 그릇된 자명성을 지니게 된 시점에서,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이 사건의 거짓된 자명성, 사실 일정한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그 자명성에 대해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너무 늦기 전에.
2017년 탄핵 정국을 되풀이하기?
적지 않은 사람들이 12.3 쿠데타를 자명한 사건 또는 그 본질을 규정하기가 어렵지 않은 사건이라고 보는 듯하지만, 이중의 측면에서 그것은 착각이며, 12.3 쿠데타는 아직까지 무명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첫째, 12.3 쿠데타가 윤석열과 그 일당이 주도한 내란 사건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 이 사건에 대한 법적인 정의일 뿐이며, (명목적인 정의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상당히 표층적인 정의일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정의에 만족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윤석열과 그 일당 그리고 그들의 조력자들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되며, 그렇다면 그 핵심은 4월 4일의 헌법재판소 탄핵 판결 및 현재 진행 중인 사법부의 내란죄 사건에 대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12.3 쿠데타에 대한 엄정한 사법적 처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쿠데타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법적인 시각을 전제하는 순환적인 답변에 불과하다. 둘째, 이처럼 법적인 정의에 입각하여 사고하게 되면, 그에 대한 정치적 대응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12.3 쿠데타가 윤석열과 그 일당이 주도한 내란 사건으로 정의된다면, 그 주도자들에 대한 사법적 처리와 더불어 그것에 어떻게 정치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의 핵심 과제는 쿠데타 세력과 단절하는 새로운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거의 자동적으로 제시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관건은 6월 3일 치러질 조기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될 터이다.
이렇게 되면 12.3 쿠데타 이후 전개된 탄핵 정국은 2016~17년 탄핵 정국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결과를 낳게 되리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사태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2달 이내에 치러지는 조기 선거에서 거대 야당의 승리, 탄핵에서 드러난 민심 또는 국민의 의지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정부의 구성. 12.3 쿠데타가 촉발한 헌정 위기를 해결하는 데 이 세 가지 계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12.3 쿠데타 이후의 탄핵 정국이 온전히 설명될 수 없으며, 그것이 제기하는 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을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재명 씨의 선거 유세에서 하나씩 제시되는 공약을 보노라면, 향후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의 골자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국민주권=문재인 정부라는 등식으로 자신의 정당성의 토대를 제시했듯이, 새 정부의 새 대통령은, ‘위대한 국민’의 민주주의 투쟁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으며, 새 정부는 국민의 민주주의적인 열망을 대표하는 정부가 될 것이라는 다짐을 제시할 터이다. 둘째,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내세웠듯이, 새 정부는 ‘내란 종식’이라는 기치 아래 내란에 가담한 세력에 대한 숙청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정치군인들에 대한 인적 청산 및 군부에 대한 제도적 개혁일 것이며, 또한 이미 12.3 쿠데타 이전에 윤석열 정부가 ‘검찰독재정권’이라는 비판을 받게 만들었던(그 비판은 매우 타당한 비판이다) 검찰권의 부당한 남용과 오용에 대한 제도적 개혁, 실로 검찰 조직에 대한 해체 작업일 것이다. 아울러 셋째,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듯이, 새 정부에서는 ‘기업가적 정부’라는 기치 아래 한편으로는 AI 산업의 발전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노력을 전개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탄핵 정국에서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는 사회적 대개혁 및 개헌 이슈는 위의 세 가지 기조에 밀려 결국 유야무야될 공산이 높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개헌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듯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재명 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새 정부에서도 결국 개헌은 용두사미가 될 확률이 높다. 설령 개헌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비교적 여야합의가 무난한 4년 중임제 및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정도에 그치는 최소주의 개헌이 될 터이다. 차별금지법을 비롯하여 시민사회운동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왔던 개혁 입법들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나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더욱이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5년 단임제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력해도 이루기 힘든 과제인데, 이재명 씨는 한 번도 이 개혁 입법들에 대한 적극적 해결 의지를 표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12.3 쿠데타 이후의 정국은 2017년 탄핵 정국을 되풀이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하지만 강한 완력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나를 포함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작년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된 이후 반복해서, 이번 탄핵 정국이 2017년 탄핵 정국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2017년 탄핵을 정정하고 만회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곧 마땅히 2017년 탄핵에서 제기되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쟁점들이 제기되고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정국의 방향은, 마치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인 듯이, 그 길만이 가장 올바른 경로인 듯이, 2017년 탄핵 정국이 밟았던 길을 거침없이 뒤따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불안한 질문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과연 새로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5년 뒤 또 한 번 허무하게, 탄핵당한 세력에게 정권을 내주는 참담한 패배를 겪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간략하게나마 이번 탄핵 정국을 이루는 핵심 요소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 정부의 성공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극우파 운동의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12.3 쿠데타 이후 탄핵 정국의 세 가지 쟁점: 공화주의, 아나키즘, 사회주의
얼마 전 황해문화 「권두언」에서 나는 작년 12월 3일 사람들은 세 가지 놀람을 경험했다고 말한 바 있다.[진태원, 「권두언: 세 번의 놀람, 세 개의 질문, 세 가지 과제」, 황해문화 126호, 2025년 봄호.] 첫 번째 놀람이 12.3 쿠데타 자체라면, 두 번째 놀람은 “남태령 대첩”을 비롯한 일련의 시위에서 드러난, 소수자들의 연대 투쟁, 이를테면 “상호증언의 연대”였다. 오랫동안 서로 고립되어 외로운 투쟁을 전개하던 소수자들 또는 을들이 서로의 외로운 투쟁에 연대하여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된 이 투쟁들은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한 가지 분수령을 이룰 만한 아나키즘적인 사건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놀람, 여러모로 두 번째 놀람과 대조를 이루는 것은 1월 19일에 있었던 서부지방법원 폭동이었다. 윤석열 구속 결정이 촉발한 이 사건은 12.3 쿠데타에서 시작된 이번 탄핵 정국을 지난 2016~17년에 있었던 박근혜 탄핵 정국과 구별해주는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
12월 3일 늦은 밤, 시민들이 잠자리에 들 무렵 윤석열의 생방송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친위쿠데타는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여의도로 뛰어간 수많은 시민들의 용감한 저항,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비상계엄 해제 의결, 뜻있는 군인들의 항명과 태업 등으로 빠른 시간 내에 저지되었다. 하지만 작년 12월 14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이 이루어진 지 무려 4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인 4월 4일에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이루어진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번 탄핵은 지난 2004년 노무현 탄핵이나 2017년 박근혜 탄핵에 비해 더 힘겨운 과정을 거친 끝에 일단락을 맺을 수 있었다.
12.3 쿠데타 이후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이루어졌음에도 헌법재판소 탄핵 판결이 이루어지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그리고 아마도 짐작컨대 그 과정에서 한두 가지 요인(예컨대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관련 2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을 경우)이 잘못 작동했다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법 재판 내부에서 본다면 이런저런 절차상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이번 탄핵 정국이 박근혜 탄핵 정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쟁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공화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의 세 가지 쟁점으로, 또는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들 간의 이율배반이라는 쟁점으로 제시해보고 싶다.
한국의 공화정과 과두제 지배
윤석열 탄핵 정국의 첫 번째 쟁점은 공화주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12.3 쿠데타로 인해 드러난 한국 헌정 질서의 취약함과 견실함, 그리고 보완점은 무엇인가 하는 쟁점이다. 한편으로 12.3 쿠데타는,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믿었던 군사 쿠데타가 45년 만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한국 헌정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시민 씨를 비롯한 민주당계 지식인들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피를 흘리지 않고 단시간에 친위쿠데타를 제압하고 대통령 탄핵에 다시 한 번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번 탄핵 정국은 한국 민주주의 헌정의 회복력을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이른바 ‘선진국들’이 극우파의 부상에 따라 점점 더 민주주의의 퇴행을 겪고 있음에도 한국은 저 홀로 시민의 힘으로 군사 쿠데타를 평화롭게 제압할 만한 민주주의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뒤에서 더 밝혀지겠지만, 나는 이것이 상당한 착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12.3 쿠데타가 한국의 헌정 질서에 대해 제기한 핵심 문제는 극우파의 문제이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여부가 공화주의의 쟁점의 요체를 이룬다. 실로 12.3 쿠테타는 우리 헌정에 냉전 극우 세력이 참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명백히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윤석열 일당의 내란 시도에 대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주류가 단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박근혜 탄핵 정국과 이번 탄핵 정국의 일차적인 차이점을 이룬다. 친위쿠데타로 내란죄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과 비교하면 훨씬 약소한(?) 잘못을 범했다고 할 수 있는 박근혜에 대하여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과반 세력이 단절을 시도한 바 있고, 또 대부분은 박근혜의 잘못에 대해 사죄를 한 바 있다. 하지만 탄핵 정국 내내 국민의힘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 아래,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윤석열을 방어하고 옹호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공화주의적 헌정의 핵심 세력 중 하나(국민의힘이 대표하는 보수 우익)가 공화정의 질서 자체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 했던 윤석열 일당과 단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적극 옹호하고 방어하려 했다는 사실, 따라서 공화정의 파괴에 동조하고 협력했다는 사실은, 한국 공화정 내에 극우파 내지 파시즘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 그것도 그 핵심 요소 중 하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더 나아가 한덕수, 최상목의 행태에서 보듯이, 행정부 자체가 윤석열 내란 세력에 자발적인 볼모가 되어 내란 세력에 대한 수사 및 탄핵 심판에 대해 수동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저항을 한 것이다. 이것 역시 지난 8년 전의 탄핵 정국과 뚜렷이 대비가 되는 모습이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은, 이후의 행태가 보여주듯 그 스스로 냉전 극우 세력의 일원이었음에도 박근혜의 수사 및 탄핵 심판에 대해 저항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심각한 범죄 행위이자 반헌법적 행위와 연루되어 있는 윤석열 일당에 대하여 권한대행을 비롯한 행정부가 수동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행정부 자체가 스스로 내란의 동조 세력이라는 점, 따라서 극우파 내지 파시즘의 일원이라는 점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셋째,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른바 ‘아스팔트 극우’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옹호 세력이 12.3 쿠데타 및 극우 정치 세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17년 탄핵 정국에서 우익 대중은 박근혜와 일찌감치 단절을 한 바 있고, 그 덕분에 탄핵 심판 및 사법 처리가 어렵지 않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정권을 상실하고 난 이후 흔히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극우 대중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그 주요 변곡점을 이룬 것이 2019년의 이른바 ‘조국 사태’였다. 조국 사태를 경과하면서 태극기 부대는 촛불 시위대와 대등한 규모의 대중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 대중 운동 및 그 이념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뉴라이트 세력이 정부의 주요 기관에 진출하게 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뉴라이트가 윤석열 정부에서 역사 및 언론ㆍ미디어와 관련된 주요 기관장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등을 비롯 무려 25개의 역사 기관에 뉴라이트 출신 기관장들이 포진해 있다.[윤정인, 「뉴라이트, 윤 정부 ‘전면’에 ... 역사 기관 25개 요직 장악」, 경향신문 2024년 8월 13일.] 이것은 윤석열 정권과 뉴라이트의 관계가 아주 조직적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뉴라이트가 역사 기관들을 장악한 것 역시 의도적인 것이다. 2025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기념하는 해다. 1905년의 을사늑약 120주년, 1945년 해방 80주년, 1965년 한일협정 60주년이 대표적인 것이고, 또한 뉴라이트에게는 무엇보다 뉴라이트의 국부라고 할 만한 이승만 출생 150주년(1875년 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이 건재했다면, 뉴라이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들이 중첩되어 있는 2025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역사 다시 쓰기 작업을 진행했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뉴라이트 역사학의 수준이 보잘 것 없다는 이유로 뉴라이트의 한국 근현대사 다시 쓰기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파시즘의 이데올로기가 일관성이 없고 지적으로 허약하다는 이유로 파시즘을 무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뉴라이트 식 역사쓰기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학문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프로파간다로서 대중의 상상계와 욕망을 자극하고 지배하기 때문이다. 아도르노가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프로파간다는 “군중을 휘어잡는 데 효과적”이며, 그것은 “무엇보다 대중심리학적 기술”이고, “이 기술의 기저에는 권위주의적 인격의 모델”[테오도어 W. 아도르노, 신극우주의의 양상, 이경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40~41쪽.]이 존재한다. 뉴라이트가 국부로서의 이승만(과 박정희)에 몰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무튼 이 세 가지 측면을 미뤄볼 때, 냉전 극우 세력은 이제는 지나간 한국 현대사의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놀랍게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탄핵 정국에 대한 고찰과 평가, 대응은 이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친위쿠데타와 서부지방법원 침탈 같은 사건이 가능했던 근원적인 이유는, 우리나라 헌정이 기원에서부터 극우 과두제 세력의 지배 아래 놓였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 아니라 우리 헌정의 기원부터 존재했다. 이 극우 과두제 세력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핵심 기득권 세력으로, 1987년 민주화 및 1997년 헌정사 최초의 정권 교체에 뒤이어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의 연속 집권을 경험한 뒤 엄청난 위기감 속에서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한 민주당 중심의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반격을 시도해왔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적 결속력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뉴라이트였다. 따라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극우 세력은 소멸하지 않으며 자동적으로 약화되지도 않을 것이다. 극우 세력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구성적 요소 중 하나이며, 이것은 유럽이나 미국 또는 중남미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번성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도 마찬가지이지만, 극우파 운동을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한국의 정치공동체, 따라서 물질적 헌정의 두 가지 과두적 지배 요소의 표현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물질적 헌정’(material constitution)이라는 개념은 이탈리아 법학자였던 코스타티노 모르타티(Costatino Mortati)가 1940년대에 처음 제안했던 것으로, 최근에는 서구 및 중남미 진보 법학계와 정치학계에서 헌법을 그 역사적ㆍ사회적인 관계와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사고하기 위해 널리 쓰이는 개념이다. 물질적 헌정에 관한 개괄로는 Marco Goldoni and Michael A. Wilkinson, “The Material Constitution”, The Modern Law Review vol. 81, no. 4, 2018; Idem, “Introduction: The Return of the Material Constitution”, in Idem eds., The Cambridge Handbook on the Material Constitu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 Guillaume Grégoire and Xavier Miny, “Introduction. La ‘Constitution economique’ : Approche contextuelle et perspectives interdisciplinaires” in The Idea of Economic Constitution in Europe: Genealogy and Overview, Brill, 2022 등을 참조하고, 이를 개헌 문제와 관련하여 사고하려는 시도로는, 진태원, 「해방 80년,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하여: 최대주의 개헌을 시도하자」, 계간 파란 36호, 2025년 봄호 참조.] 그중 하나는 분단과 한국전쟁 시기에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던 민간인 학살을 중심으로 한 국가폭력의 주도 세력, 이른바 ‘분단체제’를 구성하고 지속하는 세력이며,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적 지배 세력이다. 극우 세력은 기원에서는 국가폭력과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지배관계의 핵심을 이루는 신자유주의와도 결부되어 있다. 이 두 가지 과두적 지배 요소는 오늘날 한국의 물질적 헌정 및 그것에 기반을 둔 지배 체제와 불평등 및 차별 구조의 핵심을 이룬다.
하지만 여기서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이 양자가 반드시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파시즘이 단순히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있거나 그것을 일관되게 대표하지 않듯이, 국가폭력에 뿌리를 둔 냉전 극우 세력은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적 지배 세력과 동일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의 이해관계를 단순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12.3 쿠데타는 신자유주의적인 지배 세력의 이해관계에 거스르는 돌발적인 폭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른바 ‘AI 혁명’을 둘러싼 거대 기업들 간의 치열한 혁신 경쟁이 벌어지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범세계적인 패권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 그야말로 뜬금없이 발생한 12.3 쿠데타는 경제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정치적ㆍ안보적 측면에서도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도발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주요 지배 세력인 신자유주의 세력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치적 면모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이재명 씨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재명 씨가 제시하는 대선 공약은 다분히 신자유주의적인 특성을 지닌 것들이다. ‘AI 혁명’을 둘러싼 경쟁에서 한국의 국민 자본가 세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갈수록 심화되는 제조업 공동화(=>이 부분 한자 표기를 특별히 이렇게 해야하는지 필자 확인필요.) 현상에 대응하여 상법 개정과 같은 “금융 선진화” 입법들을 적극 추진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셋째, 그렇다면, 이는 이재명 씨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의 물질적 헌정을 지배하는 과두제 세력의 진정한 핵심이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또는 오랫동안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과두제 세력이었던 냉전 극우 세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배 세력이 부상하고,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인 세력과 더 잘 부합하는 과두제 지배 세력의 판도가 새롭게 짜이고 있는 것인가? 이는 한 마디로 답변할 수 없는 문제다. 한편으로 본다면 윤석열의 12.3 쿠데타는 한국의 물질적 헌정에서 점점 더 세력이 약화되어온 냉전 극우 세력에게 치명상을 안겨주고 민주당에게는 더 많은 지배력을 부여한, 따라서 민주당에게는 망외의 소득이라고 할 만한 무모한 도발이었다. 2017년 탄핵에 편승하여 집권한 지 불과 5년 만에 허망하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던 역사적 과오를 단숨에 만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민주당이야말로 당분간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할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민주당은 그렇게 강력한 세력이라고 할 수 없다. 이번 쿠데타로 새삼 드러난 것처럼, 단지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군대와 검찰을 중심으로 한 공안 권력에서, 그리고 행정부의 관료 집단에서, 또한 언론과 학계 및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한국전쟁기 국가폭력에 뿌리를 둔 냉전 극우 세력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는 민주당이 한국의 물질적 헌정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이 냉전 극우 세력과 타협해야 한다는 점을 함축한다. 어느 모로 보나 민주당이 혁명적인 세력이 아닌 한에서,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만한 의지도 없는 한에서 이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당의 정치적 정당성의 기반을 잠식하게 되는 항구적인 요인이 되리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더욱이 이는 민주당이 아니라고 해도, 예컨대 정의당과 같은 진보 정당이 혹시 집권 정당이 된다고 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국제 금융시장을 무시할 수 있는 정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의 고질적인 재정 적자를 축소하여 경상수지를 개선하고 제조업을 부흥하겠다는 의지 아래 대대적인 보편 관세 및 상호 관세안을 발표하여 전 세계적으로 거센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앞으로 이 파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계 최강의 국가인 미국 정부조차 국제 금융시장의 흐름을 마냥 거슬러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기세등등하게 4월 2일을 ‘해방의 날’이라고 선포하면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인 보편 관세 및 상호 관세안을 발표했으나, 주식시장 및 무엇보다 채권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직면하여 며칠 못 가서 ‘90일 간 관세 유예’로 후퇴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정부 정책은 국제 금융시장에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만 실행 가능하게 된다. 한국 같은 나라의 경우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이것은 한국에서 아무리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그 정책 결정 및 집행의 범위는 국제금융시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신자유주의적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른바 ‘분단 체제’ 상태에 있는 한국의 경우는 태생부터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대국과 분리할 수 없게 결부되어 왔고, 여전히 미국의 동아시아 및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동맹으로 남아 있는 한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이 또 다른 근본 한계 지점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극우 냉전 세력의 존립 기반으로 작용해왔으며,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12.3 탄핵정국이 제기하는 공화주의의 쟁점은, 내ㆍ외적인 조건들이 조장하는 과두제 지배의 경향 속에서 어떻게 최대한의 민주주의적 헌정을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12.3 쿠데타의 의미는 소급적으로 규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 국가폭력에 기원을 둔 극우 과두제 세력과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적 과두제 세력을 어떻게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이재명 씨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이 이러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이재명 씨와 민주당은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지배 세력, 다른 한편으로는 냉전 극우 세력과 결합하고 타협함으로써 스스로 새로운 과두제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는 대신, 마키아벨리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귀족들”에 맞서 “민중”과 연합하는 공화정을 수립할 수 있을까? 앞으로 사태의 전개과정이 스스로 입증하겠지만, 그렇게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할 텐데, 그 과제를 이재명 씨와 민주당에게 전적으로 일임하는 한에서 그것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쟁점
사실 이는 지난 40여 년 동안 유럽 좌파 세력의 근본적인 고민이자 한계이기도 했다. 1981년 집권한 프랑스의 미테랑 사회당 정부는 처음에는 기세 좋게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시도했으나 1년 만에 국제 금융 시장의 반격으로 인해 국유화 정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서유럽의 사회당 및 사회민주당 정부는 낸시 프레이저가 다른 맥락에서 사용했던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진보적 신자유주의”[낸시 프레이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김성준 옮김, 책세상, 2021.] 노선을 채택했는데, 이는 두 가지의 파국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첫째, 이는 1995년에 영국의 사회학자인 콜린 크라우치와 프랑스의 철학자인 자크 랑시에르가 각자 독자적인 방식으로 “포스트민주주의”라고 부른 것을 산출하게 되었다.[콜린 크라우치, 포스트민주주의, 이한 옮김, 미지북스, 2008; 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옮김, 도서출판 길, 2015.] 이는 크라우치의 표현을 빌린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빈부 격차는 커지고 있다. 세금의 재분배 기능은 줄어들었다. 정치가는 한 줌도 안 되는 기업가들의 관심사에만 주로 반응하고, 기업가의 특수 이익이 공공 정책으로 둔갑한다. 가난한 사람은 점차 정치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게 됐고 심지어 투표도 하지 않게 됐다. 이로써 그들은 민주주의 이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차지해야 했던 위치, 즉 정치 참여가 배제된 위치로 자발적으로 돌아가고 있다.”[콜린 크라우치, 포스트민주주의, 앞의 책, 37~38쪽.] 요컨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복지 자본주의, 또는 케인스주의적 타협이 2차 오일쇼크를 계기로 신자유주의로 전환하면서 사회민주주의 역시 위축되고 그 대신 포스트민주주의, 더 과감하게 표현한다면, 과두제 민주주의가 근본적인 정치적 질서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는 당연히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주요 정당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그 대신 극우 정당들이 약진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199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유럽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이민자 문제였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대량 실업이 만성화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이주노동자들 및 이민자들을 경쟁자로, 더 나아가 적대자로 간주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1945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유럽 경제는, 프랑스 사회학에서 “영광의 30년”이라고 부른 고도성장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제적 성장이 복지국가의 물질적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경제 침체가 닥치고 대량 실업이 일어나면서 예전에는 동료 노동자로 간주되던 이들이 이제 “외국인”으로 인지되고, 더욱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이 첨예화됨에 따라 점점 줄어드는 복지 예산을 둘러싼 경쟁자이자 부당 수혜자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에티엔 발리바르가 말하듯 대중들, 특히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하층 계급의 대중들은 국가와 필사적인 정치적 무의식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정치에서 공백에 대한 집합적 불안은 파멸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파시즘에 근접해 가고 있다. 자신들이 무기력하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무기력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은 국가에 대해 그들이 항상 “좋은 쪽”에 있고, 희생자, 전형적인 불쌍한 사람들 ⎯ 나는 “열등 인간”이라는 말까지 쓰려 했었다 ⎯ 은 자신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라는 점이 확실히 보장될 수 있도록 ... 요구한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다음과 같은 종류의 질문을 제기한다. 국가는 누구를 우선시하는가? 곧 국가는 누구 편인가? 그리고 국가의 결정들은 누가 내리고, 누가 국가로부터 정확히 우선이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는가? 누가 선택된 이들이고 누가 버려진 이들인가?”[에티엔 발리바르, 정치체에 대한 권리,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1, 145~46쪽. 강조는 발리바르.]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 오늘날에는 “국민결집”(RN))이 1980년대부터 내세웠던 “국민 우선”이라는 구호가 커다란 정치적 반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외국인과 구별되는 국민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 또는 국민의 특권을 요구하던 프랑스 하층 계급들의 정치적 무의식을 정확하게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오늘날 유럽의 주요 극우정당들은 인종주의(피부색에 근거한 인종주의가 아닌 “차이론적” 인종주의[차이론적 인종주의란, 한 마디로 말하면, 각각의 민족들(ethnies)은 독자적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유럽에 들어와 있는 상이한 민족 출신의 비유럽 인구들은 각자 자신의 원래 출신지로 돌아가서 그들 나름대로의 국가와 사회를 이루라는 요구를 핵심으로 하는 인종주의를 가리킨다. 이점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로는, 에티엔 발리바르, 「국민 우선에서 정치의 발명으로」, 정치체에 대한 권리, 위의 책 참조.]) 및 배타적 국민주의(nationalism)에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두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 제도의 주변에 머물던 유럽의 극우 정당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정치권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 형제당’(FdI)이 총리를 배출하고 프랑스의 ‘국민결집’은 잠재적인 집권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나 ‘영국 개혁당’(reform UK)은 각각 자국 내에서 제2당의 지위에까지 올라섰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극우운동이 유럽의 정치를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미국의 트럼프 정부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정부,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정부, 그리고 한국의 윤석열 정부 등을 더하면, 2010년대 이래 전 세계적으로 극우 정치의 물결이 확산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극우 정치의 공통점은,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사회경제적으로는 각종 규제철폐, 법인세 및 소득세 감소 등과 같이 상층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하층 계급의 권리 및 사회적 인프라 비용을 축소하는 방향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문화적ㆍ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보면, 인종주의 및 국민주의에 입각하여 외국인 혐오 및 사회적 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말한다면, 오늘날 진보 정치 및 민주주의 정치가 추구해야 할 핵심 과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래 점차 심화되어온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과제 및 각종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온 사회적 소수자들 내지 을들의 평등한 권리를 보호하고 확장하는 과제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는 12.3 쿠데타 이후 탄핵 정국에서도 역시 확인되는 과제다. 2017년 탄핵 정국과 비교하여 이번 탄핵 정국의 주요 차이점 중 하나는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줄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탄핵은 “우리의 승리”로 간주되었지만, 사실 그때의 “우리”는 여러 소수자들을 배제한 가운데 성립한 “우리”였다.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했겠지만, 그 당시의 촛불 무대에서 소수자들이 발언권을 얻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발언권을 얻는다고 해도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그것이 비정규노동자이든 여성이든 성소수자이든 장애인이든 간에)을 드러내려고 하면 곧바로 야유를 받거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것을 강요받았다. 일단 탄핵을 하고, 일단 민주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저런 소수자들의 과제는 나중에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해결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씨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미 “차별금지법”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 바 있으며, 결국 집권 5년 동안 이 문제에 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반면 이번 탄핵 정국에서는, 이른바 “남태령 대첩”이나 한강진의 “키세스 시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시위 현장에서 소수자들이 적극적으로 발언을 했으며, 소수자들 서로가 서로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중단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비롯한 노동3권에 대한 존중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 주거권의 보장 등과 같은 포괄적인 사회경제적 개혁에 대한 요구를 제시한 바 있다.[탄핵 광장에 참여한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이들의 목소리 중 일부는 황해문화 126호, 2025년 봄호에 수록된 51명의 시민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첫째, 민주주의적 공화정을 건설하려는 공화주의적 과제가 동시에 사회주의적인 과제를 제기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나는 의도적으로 ‘사회주의적’이라는 말에 강조 표시를 했는데, 그것은 과거 냉전 시기 세계를 양분했던 사회주의 체제를 재건설하자는,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은 주장을 제기하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오랜 분단 체제 하에서 금기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온 사회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사고하고 우리 시대의 실질적인 정치적ㆍ사회적 쟁점으로 재구성해보려는 뜻을 담고 있다. 요컨대 내가 사회주의라는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그것도 더 나쁜 대안, 곧 사회적 불평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및 혐오들이 누적되어 산출하는 새로운 신분제 사회라는 대안이 아니라[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권의 책들이 나와 있다. 특히 케빈 베일스, 일회용 사람들: 글로벌 경제 시대의 새로운 노예제, 편동원 옮김, 이소, 2003; 김혜진, 비정규사회, 후마니타스, 2015; 대니얼 마코비치, 엘리트 세습, 서정아 옮김, 세종서적, 2020; 세드릭 뒤랑, 기술 봉건주의, 주명철 옮김, 여문책, 2025 등을 참조.], 좀 더 평등하고 좀 더 자유로운 공화국을 위한 사회적 토대, 자본주의적 사회화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화 양식이다. 혹시 ‘사회주의적’이라는 표현이 정 불편하다면 그것을 ‘사회적’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지만, 용어 사용과 무관하게 사회주의의 문제는 20세기 역사(우리에게는 일제 강점기와 분단 체제의 역사)를 딛고 21세기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전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사실 사회주의는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지칭하기 위한 배타적인 명칭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가 산출하는 구조적인 모순, 특히 계급적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인간학적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을 지칭하는 명칭이었으며,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불평등한 사회화 및 인간학적 소외에 대한 대안적 사회화 및 주체화를 위한 명칭이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사회에서 실현되었던 복지국가 내지 사회국가는 사회주의 운동의 중요한 한 가지 흐름이었으며, 비유럽 지역에서 식민지 해방 이후 탈식민주의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발전의 길을 추구했던 여러 나라들 역시 또 하나의 사회주의 운동의 경향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전 세계는 평화와 번영을 내세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거의 단일화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복지국가이든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이든 간에 신자유주의에 어긋나는 노선은 모두 배제되거나 약화 및 해체의 경로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냉전 이후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생태계 파괴, 전쟁과 폭력의 일반화,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의 확산, 극우 정치의 부상 등과 같은 숱한 모순과 문제점들을 산출했는데, 최근 영미 사회과학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복합위기’ 내지 ‘다중위기’(polycrisis)라는 개념은 이를 집약적으로 표현해준다.[나는 복합위기나 다중위기 같은 용어보다는 ‘다중재난’이 우리 시대의 다층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들을 지칭하기에 더 적합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이점에 관한 간략한 논의로는, 진태원, 「해방 80년,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하여: 최대주의 개헌을 시도하자」, 앞의 글 참조.] 그리고 트럼프 집권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포스트 신자유주의적인 또는 포스트 브레턴우즈적인 세계 경제 질서 및 안보 체제를 둘러싼 패권 경쟁은 이러한 다중위기 내지 다중재난이 더욱 가중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정세에서 새로운 사회화 양식 및 국제주의에 대한 장기적이고 진보적인 전망을 갖추지 못한 채 그때그때의 상황 변화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게 되면, 예컨대 우리는 미국을 택할 것인가 중국을 택할 것인가, 트럼프가 추구하는 새로운 보호무역체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불모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은 평등과 더 많은 자유를 위한 민주적 공화정을 구축하려는 시도 역시 퇴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음을 함축한다.
이율배반의 문제
이제 공화주의적 과제를 조건 짓는 두 번째 쟁점, 곧 아나키즘이라는 쟁점을 간략하게 언급하면서 결론을 대신하여 공화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아나키즘 사이의 이율배반에 관한 내 생각을 밝혀보겠다.
먼저 내가 이율배반이라는 개념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히 제시해보겠다. 주지하다시피 이율배반(antinomy) 개념은 칸트에 의해 철학적 논증의 영역에 도입된 바 있지만, 현대 철학에서 이 개념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전유한 사람은 자크 데리다였다. 특히 그는 환대에 대하여에서 한편으로는 칸트를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그와 구별되는 독특한 의미를 이율배반 개념에 부여한 바 있다.[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이보경 옮김, 필로소픽, 2023.]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이율배반 개념 역시 데리다를 주요한 준거로 삼고 있으며, 또한 발리바르나 랑시에르의 용법에도 준거하고 있다. 이런 의미의 이율배반은 첫째, 칸트적인 용법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주장이나 요구가 서로 배타적이거나 대립적인 관계에 있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둘째, 이 개념은 칸트적인 용법과 달리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거나 서로 대립하는 이러한 관계에서 양자는 또한 서로가 서로에 대해 깊이 의존하고 있고, 하나가 없이 다른 것이 성립하거나 존립할 수 없는 또 다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데리다는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 사이에, 또는 정의와 법 사이에서 바로 이러한 의미의 이율배반 관계가 나타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랑시에르나 발리바르의 경우에는 제도적인 정치와 해방의 정치 또는 헌정과 봉기 사이에서도 이러한 의미의 이율배반 관계가 성립함을 보여준 바 있다. 랑시에르는 그의 대표작 중 한 권인 불화: 정치와 철학에서 제도적인 정치로서의 ‘치안’과 해방의 정치로서 ‘정치’ 사이에서 이율배반의 관계를 발견한다.
정치가 치안의 논리와 전적으로 이질적인 논리를 작동시킨다 해도 정치는 항상 치안과 결부돼 있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양자가 결부돼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는 자체에 고유한 대상들이나 질문들을 갖고 있지 않다. 정치의 유일한 원리인 평등은 정치에 고유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만 본다면 정치적인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정치가 평등에 대해 하는 모든 것은, 평등에 대해 소송 사건들이라는 형태로 현재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계쟁이라는 형태 아래 치안 질서의 중심에 평등의 입증을 기입해 넣는 것이다.... 정치는 도처에서 치안과 마주친다. 이러한 마주침을 이질적인 것들의 마주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앞의 책, 65~66쪽.]
또한 발리바르는 제도화된 정치적 질서로서의 모든 헌정의 중심에는 아나키즘적인 봉기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모든 헌정은 자기의 중심에 존재하는 이 아나키즘적인 봉기의 요소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그것에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지닌 제도를 범람하는, 심지어 제도 자체를 파괴하는 힘과 거리를 두거나 그것을 억제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아나키즘적인 이 봉기적 요소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이기 때문에, 이 요소를 억제할 때 헌정은 탈민주화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이러한 탈민주화를 딛고 새로운 민주화의 과정을 개시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한 가운데 이러한 봉기적 요소를 헌정 내부에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발리바르가 제기하는 핵심 논점이다.[Étienne Balibar, “L'antinomie de la citoyenneté”, in La proposition de l'égaliberté, PUF, 2010.]
이율배반 개념의 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볼 때, 기이하게도 12.3 쿠데타 이후 탄핵 정국에 관한 분석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지만, 내 생각에 아나키즘이라는 쟁점은 이번 탄핵 정국의 핵심 요소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내가 기이하다고 말한 이유는, 탄핵 정국에 대한 논의에서 거의 빠짐없이 “남태령 대첩”이나 “키세스 시위” 등이 언급되고 더욱이 높이 평가되면서도 정작 그 투쟁의 근본 특성을 이루는 아나키즘은 거론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이 심지어 사회운동가들에게도 너무 낯설기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가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을 엄밀히 이해한다면, 이번 탄핵 정국에서 나타난 사회적 소수자들 사이의 연대 투쟁만큼 아나키즘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내가 이해하는 아나키즘의 핵심 의미는 바로 “아르케 없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아나키즘anarchism의 어원 자체가 an + arche, 곧 “아르케 없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나키즘의 핵심을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이점에 관해서는 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개의 테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13; 불화: 정치와 철학, 앞의 책 및 Catherine Malabou, Au voleur! Anarchisme et philosophie, PUF, 2022 참조.] 이 경우 “아르케 없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과두제적인 지배와 복종, 위계적 질서 없는 삶이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렇게 본다면 아나키즘은, 생태주의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인권운동에 가장 부합하는 사상적 이념이다. 공생, 돌봄, 자율, 연대 등이 바로 아나키즘을 지탱하는 기본 이념들이며, 이는 곧 “남태령 대첩”을 비롯한 을들의 연대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아나키즘 운동은 깊은 트라우마를 경험했으며, 오늘날 스스로 아나키즘을 표방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빈곤하고 모욕당하고 배제되고 차별받는 이들이 전개하는 투쟁들, 예컨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이나 성소수자들의 투쟁, 재난 참사를 경험한 유가족들의 투쟁, 이주노노동자들의 투쟁, 농민들의 투쟁이나 밀양 탈송전탑 탈핵 투쟁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역시 이러한 트라우마를 경험해왔다. 그 트라우마의 핵심은 그들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그들의 투쟁을 인정하지 않고, 그 투쟁의 가치와 중요성을 공감하지 않았다는 점, 따라서 그들만이 외롭게 자신들만의 투쟁을 전개해왔다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아나키즘의 역사적이고 현재적인 투쟁에 관한 감동적인 증언으로는, 엠마 골드만, 레드 엠마 1~2권, 임유진 옮김, 북튜브, 2024 및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가장 느린 정의, 전혜은ㆍ제이 옮김, 오월의봄, 2024 참조.]
그런데 남태령 대첩을 비롯한 이번 탄핵 정국의 여러 집회와 시위에서 그동안 서로 외롭게 투쟁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이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의 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아르케 없는 삶, 과두제적인 지배와 복종, 위계적 질서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을들이 스스로 입증한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계기였으며, 광장의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를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 덕분에 오래 지속된 탄핵 정국이 동력을 상실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으며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는 이러한 아나키즘적인 연대 투쟁, 서로가 서로의 투쟁의 증인이 되는 상호 증언의 연대가 민주주의적 헌정의 핵심 토대를 이룬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재명 씨나 민주당은 극우화된 국민의힘을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보수ㆍ중도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정책들을 제시하면서도, “남태령 대첩”을 비롯한 여러 투쟁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책은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어차피 ‘집토끼’라고 여기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들은, 일단 비상시국이 지나간 이후에는 스스로 결집하여 사회적 세력으로서 영향을 미칠 만한 능력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들이 민주당에 맞서 독자적인 정치 노선을 채택하면, 내란세력을 도와준다고 비판함으로써 견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재명 씨나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는 공화주의와 아나키즘이 맺는 이율배반적 관계의 한 측면을 잘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실 양자 사이의 관계는 마냥 조화롭거나 상보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현대사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뚜렷하게 드러난 바 있다. 왜냐하면 1987년의 민주화이든, 1997년 헌정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이든, 2017년의 이른바 ‘촛불혁명’이든 항상 제기되었던 질문, 특히 진보 운동 쪽에서 제기되었던 질문은 왜 열망과 실망의 순환이 계속 되풀이되는가 하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광장에서 뜨겁게 민주화의 열망이 전개되었고 그 결과 호헌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쟁취가 이루어지고, 최초로 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고, 최초로 국정농단 및 직무유기를 범한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졌음에도, 광장의 열망은 좀처럼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실망과 좌절을 낳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재명 씨나 민주당의 태도는 어찌 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되풀이되어온 관행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이러한 태도는 실망스러운 것이며, 그것은 결국 이번 탄핵 정국에서 제기되는 공화주의의 과제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광장에서는 서로가 동지이고 친구이고 같은 국민일 수 있지만, 제도권 정치의 일정이 시작되면, 그때는 서로가 경쟁하는 적수이자 심지어 서로를 배제해야 하는 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또는 공화주의와 아나키즘, 헌정과 봉기 사이에는 이율배반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율배반 관계에는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봉기 없이는 헌정이 없고, 따라서 아나키즘적인 민주주의 없이는 민주 공화정이 존재할 수 없고, 역으로 민주화된 공화정, 민주화된 헌정 질서 없는 아나키즘은 자체에 내재한 모순들로 인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러한 이중적인 이율배반 관계는 공화정과 아나키즘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공화정과 사회주의 사이에도,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에서도 또한 성립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씨가 이러한 이율배반의 교훈을 유념하고 있을까? 상호증언의 연대를 통해 아나키즘적인 연대와 돌봄, 공생의 모범을 보여준 소수자들 역시 이러한 이율배반의 교훈을 깨닫고 있을까? 그들이 깨닫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이것만이 12.3 친위쿠데타가 아직 얻지 못한 이름을 부여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