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낯선 이국땅에서 비명에 돌아가신 고 김선일 씨에게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김선일 씨의 죽음에 어제 모든 국민이 깊은 슬픔에 빠졌고,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개인적, 국가적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모든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가운데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재차 테러응징론을 내세우면서 파병을 관철시킬 뜻을 분명히 천명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분노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선일 씨가 피랍된 지난 5월 31일 이후 20여일이 지나도록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한(또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고의로 피랍 사실을 은폐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데다가, 이라크 테러집단의 철군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강경한 파병방침을 공표함으로써, 결국 김선일 씨 피살의 직접적 계기를 제공했던 노무현 정부, 그처럼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노무현 정부가, 제 2, 제 3의 피랍과 피살, 심지어 대규모 테러까지 불러올 수 있는 대규모 파병을 기어이 관철하겠다고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번 파병은 미국내에서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동맹국으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부시를 곤경으로부터 구해내고, 그의 대이라크 전략에 큰 힘을 실어줌으로써, 올해 말에 있을 미국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한반도 전체를 부시의 손아귀에 내맡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 파병 결정으로 인해 노무현 정부는 지난 탄핵 정국을 통해 획득했던(또는 국민들이 그들에게 보냈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했습니다. 이번 파병 결정으로 노무현 정부는 남은 집권기간 동안(만약 이 기간이 보장된다면) 반쪽짜리 정부로, 역대 군부독재정권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반쪽짜리 정부로 남게 될 것입니다. 수구반동세력과 민주주의 세력 양자의 틈바구니에 끼어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한 채, 대부분의 기간을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수구반동세력의 선동에 휘둘려 놀아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를 지지했던, 노무현 정부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던 대중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번 파병 결정에 이처럼 침묵으로 일관하게 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나마 지난 50년만의 정권 교체 이후 쌓아왔던 민주적 역량을 상실한 채 다시 반동적 과거로 회귀하고 말 것입니다. 스스로 주장했던 반외세 자주와 평화,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이번 파병 결정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가치들을 보호하고 견지해내라고 여러분들이 뽑아주고 탄핵으로부터 지켜준, 노무현 정부 자신이 이 가치들을 팽개치고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하면서도, 그래서 결국 자신들이 피땀흘려 지켜낸 가치들을 자기 스스로 포기하면서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무엇을 원했는지 기억하고 계신다면, 여러분이 평화롭고 안전한 조국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노무현 정부와의 동일시를 끊어내십시오. 여러분은 노무현 씨 자신을 위해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게 아닙니다. 노무현 씨가 여러분이 원하는 평화와 개혁,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굳게 지켜줄 것으로 믿고 노무현 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탄핵으로부터 그를 보호한 것입니다. 이제 그 스스로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 그를 탄핵의 나락으로부터 구해준 여러분들 자신이 그에게 부여한 임무, 여러분들의 고귀한 이상을 지키고 발전시키라고 부여한 임무를 배반하고 있는데, 짓밟고 있는데, 왜 이를 가만히 보고만 계십니까?

  이는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학생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탄핵 당할 뻔했잖아요. 그런데 국민이 살려줬으면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그만두든지.> 24일 촛불집회에 왔다가 발언 신청을 한 고교생 3명의 목소리다.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시민단체 역할과 활동’이라는 사회발표 숙제를 하기 위해 촛불집회 현장을 찾게 됐다는 학생들은 <참여정부의 소신 없는 외교정책이 김씨의 사망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1학년 임고은, 전지은, 정은지(이상 17)양 등은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노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대통령이 미국 눈치만 보지 말고 줏대 있게 행동했으면 김씨는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양은 <노 대통령이 하루빨리 김씨 석방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부시 대통령과 똑같은 말만 하는 것을 보고 무척 황당했다>며 대통령의 국민 담화 내용을 비판했다. 전 양은 <김씨의 죽음에 대해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며 <김씨의 죽음과 관련,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6월 24일자 기사 중에서)
 
  노무현 씨를 지키려고 하지 마시고, 노무현 씨와 여러분의 고귀한 이상을 혼동하지 마시고, 노무현 씨의 배반으로부터 여러분의 이상을 지키십시오. 저 망나니 부시가 오늘 노무현 씨에게 감사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역사적인 반테러 투쟁에 동참해준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말입니다. 이 역사적인 반테러 투쟁에, 이 야만적인 이라크 학살 전쟁에 참여하여, 끝내 망나니 부시에게 감사의 표창장이라도 받아야 하는 걸까요? 그런데 과연 부시가 표창장을 주기는 줄까요? 이 역사적인 투쟁의 업적을 배경으로 재선에 성공할지도 모를 부시가, 이라크의 침략전쟁이 끝난 뒤, 과연 노무현 씨의 은공을 잊지 않고 북한에 대한 지원과 원조에 나서게 될까요? 70이 다된 제 어머니,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전형적인 냉전 사고를 갖고 있고 한나라당 당원이기도 한 제 어머니가 오늘 9시 뉴스에 부시가 한국민들에게 감사의 서한을 보냈다는 말을 듣고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지랄하네 미친 놈. 괜히 전쟁은 일으켜서 애꿏은 사람들만 죽게 해놓고 ... 저 놈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될 텐데 ...”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무지한 노인이 훤히 알고 있는 일을 여러분이 모르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조지 부시만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망나니 조갑제가 노무현 씨를 극찬하고, 『조선일보』는 “테러에 결코 굴복 안한다”는 노무현 씨의 담화문을 1면 머릿기사 제목으로 달았습니다. 여러분이 계속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매달리는 순간, 여러분이 계속 노무현이라는 허상과의 동일시에 빠져 있는 순간, 여러분은 국내의 수구반동세력 및 미제국주의의 야만적 전쟁과 객관적 동맹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노무현 씨가 스스로 이 동맹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노무현이라는 허상과 계속 동일시를 유지함으로써, 이 동맹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길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계속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얽매여 스스로 노무현 정권을 반쪽짜리 정권으로 만들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몇십년 후퇴시키든가, 아니면 그 동안 쌓아올린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이제 여러분 스스로가, 노무현이라는 허상 없이 지켜내든가, 길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파병철회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해서 여러분들의 가치, 여러분들의 꿈과 이상을 지켜내십시오. 촛불집회는 노무현 씨를 위한 성전이 아니라 여러분의 광장입니다. 여러분이 함께 꿈과 이상을 이야기하면서 지켜낸 민주주의의 광장입니다. 다시 그 광장으로 돌아오십시오. 거기로 나와서 여러분의 꿈과 이상을 지켜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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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5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프라이즈"를 비롯한 몇 군데 올려봤더니 씨도 안먹히더군요.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현재 나타나고 있는 도착적 반응들이 심각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노무현과의 동일시 정도도 생각보다 강고한 듯합니다.

balmas 2004-06-25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걱정스러운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스스로 배반하고 잠식해버렸다는 의미에서 이제 반쪽짜리 정권이 될 게 뻔한 노무현 정부가 과연 대내외적인 수구반동세력의 광기로부터, 한반도와 국민들은 고사하고 자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당수의 대중들(노사모 대중들이겠지요)이 노무현 씨와의 감정적 동일시에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감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비합리적 행태를 보일수록 이들의 동일시는 더 고착되겠지요). 더욱이 김선일 씨의 죽음에 대한 비이성적 반응들(테러응징론)이 생각보다 심각한데, 이런 반응들은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외교에서 생겨난 굴욕감이 도착적으로 퇴행된 형태로 보입니다. 만약 수구반동세력과 노무현 정부, 그리고 이 비이성적인 대중적 반응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한데 결합한다면 ...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이것의 가시화된 형태가 실은 테러응징론이겠지요).

MANN 2004-06-25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징과 보복을 위해 파병하자는 국민들이 생겨나고,
정부도 파병강행입장이고 언론도 덩달아 기름 뿌리고 있고...
응징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불안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서 파병은 정말, 꼭, 막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superfrog 2004-06-25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많은 분들 보실 수 있도록 퍼갔습니다..

가을산 2004-06-2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의 우려가 제가 있는 지역의 NGO들 간에서, 그리고 한 단체 안의 개개인 시각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은 단체나 개인들은 노무현에 대한 실망보다는 '노무현 흔들기'가 가져올 결과를 더 우려하는 듯합니다. 이른바 '누구든 그 입장에 있으면 그리 했을거다', '노무현을 흔들어서 결국은 누구에게 득이 되겠는가?' 하는 논리입니다.

노무현의 평가와 기대에 대한 견해 차이가 모임마다, 회식마다, 오갑니다. 심한 경우는 설전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보적이라 자임하는 단체의 임원들까지두요. --;;

결과적으로, 김선일씨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파병 반대의 촛불은 초라하기만 합니다.

조선인 2004-06-2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신랑 노사모입니다. 탄핵반대집회에 우리 가족 참 열심히 다녔죠. 지금 신랑과 난 얘기합니다. 이번엔 우리 손으로 탄핵시켜야 하나 하고...

balmas 2004-06-2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답하긴 합니다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이 있겠지요. 또 반드시 그래야 하구요. 노무현과 동일시하는 저 상상적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데 ...

수수께끼 2004-06-2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문제는 과거 유신반대와 같은 개인적인 사고를 가지고 참여를 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은 바로 논리적 사고의 결여라는 교육이 가져오는 비극적인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나아짐에 따라 점점 더 나태해지고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갖지 못한 대중은 당연히 부화뇌동의 파동속에서 군중심리에 이끌려 주관과 줏대가 없는 조건반사적 행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모르기에 스스로가 옳은 길을 택한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서만은 아무리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도 밖으로 표현을 안하는 스타일입니다만, 과거 독재정권보다도 못한 국가 경영 능력을 보니 정말로 한심함을 느끼며, 아울러 맹목적 추종세력의 무지함에 안타까움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기대는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기대 때문에 지지라는 기반이 형성이 되지만, 기대를 져버리는 행위는 단 한 단어로 귀결을 시킬 수 있는데 그 단어란 바로 "배신"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배신을 당한것을 모르고(혹은 알면서도) 지금까지의 여러 실정을 노무현은 저질러도 되거나 또는 한번에 그치는 실수로 인정해 주는 관용을 스스로 대단하게 베푸는 관용으로 착각하는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게 되는 현상을 우리 사회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고리를....그런 착각에서 헤어 날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줄지.....지금의 상황에서는 바른말을 한다해도 돌맹이 찜질을 당하는 집단성이 우세한 판이라 ....제 자신이 강아지가 아니기에 X에 다가가지 않으며 다만 피해가고 싶습니다.
제 친구 중 내과병원을 크게 운영하던 녀석이 우리 나라를 떠날 때 "나쁜 놈"이라고 욕을 했었는데....그 녀석의 옹졸한 답변에 분개를 했었는데....이제는 그 친구가 우리 나라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가슴 답답했던 순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군요..... 가슴 속 깊은곳에서 답답함이 폐병쟁이 십년만큼 고여 울컥~ 올라오고 있습니다....제발...토사질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balmas 2004-06-26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조심하셔야죠, 수수께끼님.^^
수수께끼님처럼 귀한 분이 그만한 일로 몸과 마음을 상하시면 안되지요.
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렵긴 하지만,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번 탄핵정국 때 많은 분들이 너무 많은 힘을 쏟아서, 지금은 좀 지친 듯합니다만, 사리분별은 정확히 하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여기 알라딘 서재 주인장 분들만 해도 모두 한결같이 사태를 정확히 판별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만큼 우리나라 시민들의 민주주의 역량이 커졌고, 이 역량은 비록 수구반동세력이 정권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희망을 갖고 힘을 한데 모은다면, 오늘의 난국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수수께끼님도 당연히 지혜와 힘을 보태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