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어제 낮에 기자가 전화를 해서 [교수신문]에 실린 기사에 관해 몇 가지 묻길래 2-3분 정도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사를 봤더니 대략 논점은 전달한 것 같은데, 초점을 "일급 필자들"의 오역에 맞추고 있더군요. [교수신문] 기사(아래 [동문선 출판사에 관한 두 개의 기사]에 실려 있습니다)에서 지적한 것처럼 제 논점은 오역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체계를 고치고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 있는데, 이 기사만 읽으면 제가 마치 "일급 필자들"의 오역을 고발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건 좀 동의하기 어려운 발상입니다.
이름 있는 필자나 역자들일수록 번역에 좀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건 당연한 개인적 윤리이겠지요. 그리고 <특히> 김성도 교수의 번역본들은 알아볼 수 없는 오역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이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그가 그런 오역으로 <번역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 지식계의 대표적인 코메디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욱이 저는 제가 오역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 책들에 관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건 누구누구가 오역을 했고, 어느어느 출판사에서 오역본을 냈더라는 게 아니지요. 오역은 누구나 범하기 쉬운 일이고, 또 국내 출판사들 중 오역에서 자유로운 출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민음사 같은 국내의 대표적인(물론 <규모>면에서) 단행본 출판사에서도 여러권의 오역본들을 냈다가 그 중 일부(특히 들뢰즈의 저작)는 재번역 중에 있고, 문학과 지성사 같은 전통있는 인문학 전문 출판사의 책들 중에도 심한 오역을 범하고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역을 범했을 경우, 책임을 지고 재번역을 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오역인 줄 알면서도 그대로 묵혀 두거나 개역하는 시늉만 한 채 값만 올려받는 출판사들에 비해서는 정직한 태도지요. 하지만 이처럼 개역본을 낸다 해도 독자들 개개인이 이미 입은 피해는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제가 아는 한 오역본 구입한 독자에게는 개역본을 무료로 준다고 말한 출판사는 본 적이 없습니다), 오역의 가능성은 항상 상존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저런 오역본의 개정본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역본이 출간되기 전에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거지요. 다시 말해 한 개인에게는 오역이 피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적절한 출판 체계를 갖춘다면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지는 오역을 걸러내고 바로잡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좁은 의미의 출판방식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의 지식체계를 어떻게 개조하고 지적 역량을 어떻게 축적해나갈 것인가 하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조선일보를 읽는 사람들이 이런 저의 생각을 고작 "일급 필자들"의 오역을 겨냥하는 고발로 읽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시각] 다시 불거진 '오역' 논란 |
"1급 필자들 글도 誤譯투성이"…'벼락치기 번역' 언제까지?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오역(誤譯)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진태원(서울대 강사)씨가 최근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예스24’ 독자 서평에 자크 데리다의 ‘불량배들’(휴머니스트)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의 오역으로 점철돼 있다”고 비판하고 이를 ‘교수신문’이 보도하자 번역자 이경신(박사 과정)씨가 반박문을 올렸다. “데리다 특유의 문체를 살리려는 시도였으므로 ‘모든 페이지가 오역’이라는 말은 잘못됐다”고 반박했지만 “번역 기간이 짧은 데 따른 부주의에서 (일부 오역이) 기인했다”고 했다.
진씨는 이 책에서 오역의 예를 10개나 들었다. 예를 들어 79페이지 “저는 아랍-이슬람적이라는 종종 악용되는 결합의 특징을 아랍적, 그리고 차례로 이슬람적이라고 말합니다”는 “아랍-이슬람적이라는 식으로 자주 악용되곤 하는 붙임표를 쓰지 않기 위해 저는 차례차례 아랍 그리고 이슬람이라고 말합니다”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씨의 초점은 ‘불량배들’의 오역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라마톨로지’(김성도 역) ‘마르크스의 유령들’(양운덕 역)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이진경 등 역) 등 국내 인문학계의 ‘일급 필자’들이 번역한 책에 대해서도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등 오역이 많다”며 “난해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서를 서둘러 번역해서 내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번역이 있는 한 오역은 피할 수 없는 멍에일까. 한 유명 출판사가 펴낸 미국여행기는 ‘주유소’란 뜻으로 쓰인 ‘스테이션(station)’을 ‘역(驛)’이라고 썼고, 이름난 관광지인 ‘사우전드 아일랜드’를 ‘1000개의 섬’이라고 직역하기도 했다. 영미문학연구회는 최근 기존 영미 고전 번역본들이 오역 투성이란 연구를 내놨고, 이름난 작가의 ‘삼국지’ 번역에도 오역이 많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오역(誤譯)’의 근본 원인으로는 번역자에게 시간을 너무 짧게 주는 출판계의 고질적인 관행이 지적된다. 또 번역이 학술 업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연구자들에게 ‘과외의 일’쯤으로 치부되는 것도 문제다. 김지원 한국번역학회장(세종대 교수)은 “번역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른 전문가나 외국인과 토론해야 하지만, 국내 학자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드러내길 싫어한다”고 말했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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