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님께

로쟈님께서 이번에 달아주신 논평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마이 페이퍼>로 답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좀 길게 써볼 생각이었는데, 밀려 있는 다른 일들 때문에 제대로 짬을 내서 글을 쓰기가 어려워서 간단히 몇자 적겠습니다. 로쟈님의 논평은 네 가지 논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différance의 번역에서 <차이>나 <차> 또는 <差移>라는 번역이 내세우는 ‘원칙적인 충실성’의 주장은 현전의 형이상학이 갖는 환상과 유사한 환상에 빠져 있다. 더욱이 이는 <차연>이라는 번역어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을 강변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있다.
    2) <差移>라는 번역은 한글 전용 원칙을 파괴할 우려가 있으며, 더 나아가 différence와 différance의 차이가 e와 a 사이의 차이인 데 비해, <차이>와 <差移>의 차이는 문자 체계 자체의 차이인 만큼, différence와 différance의 차이를 옮기는 데 적합한 방식이 아니다. 
    3) 디페랑스는 단지 글자체만의 차이가 아니라 철자상의 변이를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이나 차 같은 고딕체 번역은 부적절하며, 오히려 <차연>이 더 낫다.
    4) <차연>이 번역어로서 한계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이 때문에 <차연> 대신 차이나 차, 또는 差移라는 번역어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충분한 역주를 통해서 <차연>의 (번역어로서의) 부족함을 지적한 다음, 그대로 <차연>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이 논점들 중에는 제가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일이 이 점들에 관해 논의할 수는 없을 듯해서,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로쟈님 지적을 보고 생각해 보니까, 확실히 제가 문자 체계의 차이라는 문제를 좀 가볍게 여겼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차이>와 <差移>의 차이는 différence와 différance의 차이와는 좀 성격이 다르고, 또 différance라는 신조어의 용법이 함축하고 있는 위반의 함의를 인정한다 해도, 이것이 상이한 문자 체계에 속하는 <差移>라는 역어의 사용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차연>이라는 번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적절한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différance에 관한 역주에서 지적한 내용이 이미 <차연>이라는 역어의 사용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매우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썩 만족스러운 건 아니고 또 아직 생각이 확정된 것도 아니지만―로쟈님의 지적을 일부 수용해서 <差移>라는 역어 대신 <차이(差移)>라는 역어를 사용할까 합니다. 이런 역어를 택한 이유는 제가 보기에는 différance의 번역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음성적인 식별 불가능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며, 또 로쟈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e와 a의 차이를 문자 체계의 차이로 확대하는 비약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로쟈님은 차이나 차 또는 差移 같은 역어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현전의 형이상학의 태도가 갖고 있는 환상과 유사하고 또 도덕적인 우위를 부당하게 참칭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런 역어들을 사용하려는 시도들을 현전의 형이상학과 연결시키는 것은, 데리다 철학에 대한 얼마간 부적절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는 듯합니다. 더욱이 이는 지난 번에 <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다소간 실존주의적으로 제시하신 것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 역어들을 사용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도덕적 우위를 강변하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각각의 경우에 대한 좀더 정확한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겠지요. 제가 그런 의도를 품고 있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지금 여기서 뭐라고 답변드릴 처지가 아닌 듯합니다. 유물론자라면 의도나 의식에 근거해서 (도덕적, 이론적) 결백을 주장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졸지에 이런 도덕적 비난까지 당하게 돼서 상당히 당혹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이 문제는 좀더 시간을 갖고 검토를 해본 뒤에 다시 논의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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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2-29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적 비난까지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이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차이(한자)'로 하시겠다는 데 대해서는 저도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 '차연'을 배제한다면,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헤겔 또는 스피노자> 번역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역능'이란 역어가 제거된 것인데('역능'은 '권능'이란 단어만큼 저에겐 역겨운 단어입니다), 그만한 역량을 데리다 번역에서도 계속 발휘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balmas 2004-03-01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혹스럽긴 합니다만, 어쨌든 문제를 좀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인식은 바깥으로부터의 충격, 불편함에서 시작한다는(맞나? 예전에 [차이와 반복]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좀 가물가물하군요) 들뢰즈의 말이 맞는 것 같군요.^^ 그리고 아직 이 문제는 계속 남아있으니까 좀더 생각해봐야 할 듯합니다. 사실은 [차이]라는 글 및 이 글이 수록된 [철학의 여백]이 번역되어야 좀더 논의가 구체적이고 생산적일 텐데, 언제 이 책이 번역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