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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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은 하루빨리 좀더 많은 작품이 번역,소개되어야 할 사람 중 하나다. 이는 단순히 그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문필가, 철학자, 문예이론가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가 아마도 20세기 전반기의 사상가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의 현재와 장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고, 빛을 비춰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놀라운 이미지 이론과 매체 이론이 그렇고,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신학과 유물론, 또는 신학적 유물론이 특히 그렇다.
   이 분야의 글로는 말년에 씌어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보통 [역사철학테제]라고 번역되지만―와 초기의 단편 한 두개만이 국내에 소개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파리 아케이드](“Passagen Werk”)를 비롯한 이 분야의 글들은, 좀더 체계적으로 소개된다면, 벤야민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사상적 지형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고 그릴 수 있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반성완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지난 20여년 동안 국내에서 가장 널리 읽힌 벤야민 번역본이다. 벤야민이라는 이름이 아직 생소했던 시기에, 더욱이 군사독재의 엄혹한 탄압이 짓누르고 있던 시기에, 난해한 벤야민의 글들을 짜임새 있게 묶어서 소개한 공로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벤야민을 번역해본 사람이라면, 그 일이 얼마나 힘겹고 생색이 안 나는 일인지 알 것이다. 벤야민을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문장들을 틈새 없이 조밀하게 이어주는 깊은 논리전개를 따라잡아야 하고,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본문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지만 벤야민이 매우 친숙하게 사용하는 개념들, 이론들, 이데올로기들의 유래를 추적해서 밝혀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번득이는 통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고 잘 붙잡아두었다가 옮겨 담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이 이 번역본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소시켜 주지는 않는다. 이 책의 역자가, 20세기 독일 지성계의 귀중한 유산을 번역, 소개하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온 반성완 교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 번역본이 지닌 문제점이 무엇인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번역가의 과제] 앞부분에 해당하는 320쪽의 논의를 보자. 번역문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떤 상대적 개념들은, 그것들이 처음부터 인간들에게만 관련되지 않는 경우에만 그 자체의 가장 좋은 의미를 보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삶이나 아니면 잊을 수 없는 순간―비록 우리가 그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고 하더라도―이라는 말을 운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그러한 삶이나 순간이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요구를 할 경우,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이 말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해당되지 않는 요구를 내포하고 있을 따름이며, 나아가서는 동시에 인간에게도 해당될 수도 있는 어떤 영역 즉 신에 대한 기억에 대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 개념들]은 원문이 'Relationsbegriffe'이니까 [관계 개념들], 또는 [관계적 개념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건 매우 사소한 문제다(하지만 321쪽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문제다). 맞줄 사이의 [우리]도 'alle Menschen'의 번역이니까 [모든 인간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역시 사소한 문제다. 그러나 [인간에게 해당되지 않는 요구]를 [인간이 부응할 수 없는 요구]로 고쳐야 하고, [인간에게도 해당될 수도 있는 어떤 영역 즉 신에 대한 기억]을 [그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어떤 영역, 즉 신의 기억]으로 고쳐야 한다는 건 중대한 문제다. 번역문만으로는 벤야민의 논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뒤에 나오는 “언어적 형상의 번역성 여부는, 그것이 비록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번역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계속 논의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도 [비록 '어떤' 언어적 형상물들이 인간에게는 번역될 수 없다 하더라도, 이 형상물들의 번역 가능성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수정되어야, 앞의 논의와 일관성있게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321쪽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문은 그것이 번역될 수 있음으로 해서 번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원전의 번역 가능성 덕분에 원전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와 같이 주어를 바꿔 번역해야 역시 논의의 문맥이 이해될 수 있다. 이것들은 이 번역본이 지닌 문제점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시간이 있고 지면이 허락한다면 이런 문제점은 수도 없이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는 벤야민 전공자가 여럿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벤야민 저작의 번역이 이처럼 더딘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제 제대로 번역된 벤야민 저작들을 읽고 싶다는 게 단지 나의 바램만은 아닐 것이다. 무거운 짐을 떠안기는 것 같아 딱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아니면 이 일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벤야민 전공자들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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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9-10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카페에서 알게된 바에 따르면, 그 주인장이 [모스크바 일기장]의 번역 초고를 완성한 상태고, 조만간 출판될 예정이랍니다. 주인장이 올린 몇편을 보니, 아직 초고라 그런지 어색한 문장이 좀 있더군요. 기대 반 의구심 반입니다.

balmas 2004-09-10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벤야민 저작들이 출간되는 건 반가운 일인데, 번역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군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앞으로 종종 들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