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때리다 2008-01-24  

발마스님 질문이 있는데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저 말고도 여럿 있을 것 같은데요....

대문자 "역사"의 진보 같은 것이 없다면,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진보" 정치라는 것이 가능한가요???????

 
 
자꾸때리다 2008-01-2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리고 제가 철학교수님들을 만나뵌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데요. 누군가를 "~~주의자"라고 부르는 경우 중에서요, 예컨데 "성균관대 박종현 교수는 플라톤주의자다" "이기상 교수는 하이데거주의자다" 등등 이라고 부를 때, 그렇다면 그 분들이 정말 플라톤처럼 이 세계 너머의 참 본질의 세계가 있다고 믿거나, "존재의 빛" 같은 게 있다고 믿으시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전에 젊은 플라톤 전공자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언어 없는 사유가 있다라고 주장하시고 (예컨데 "저기 사람이 하나 있다" 같은...) 형이상학적 본질도 있다고 믿으시길래 적잖이 당황한 적이 있어서요...

balmas 2008-01-25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Grimaud님, 대문자 역사의 진보가 없다면, 바로 "모든 것은 우연이다"라는 말이 성립이 되는 건가요? ^^; 우연은 늘 필연의 틈새, 필연들의 연쇄 고리가 서로 마주치고 엇갈리는 곳에서 나타나는 게 우연인데, 필연 없이 어떻게 우연만 따로 있겠습니까? 진보 정치가 가능할지 묻기 전에 우선 과연 "모든 것은 우연이다" 이런 명제가 진짜 성립할 수 있는 말인지 먼저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

그건 저도 모르죠. 그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아닌지 ... 플라톤주의 같은 경우는 특히 쓰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뜻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지칭하는 사람이 "플라톤주의"라는 말로 무엇을 뜻하는지 먼저 따져봐야 할 겁니다.

자꾸때리다 2008-01-25 14:53   좋아요 0 | URL
"대문자 역사"가 없다면 "이렇게 될꺼야"라는 필연은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되어야만 해!"라는 필연은 불가능하지 않나요...? 또 움베르트 에코가 ‘세계 내의 모든 질서는 신의 것이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로 객관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말도 세계의 우연성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요?...도덕 법칙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학 법칙 역시 우연적이라면...

자꾸때리다 2008-01-2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정말 철학 교수님들 중에 세계 너머의 세계의 존재를 믿는 분도 있으신가요? 종교인 빼고...

balmas 2008-01-26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움베르토 에코가 그런 말을 했나요? 저는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혹시 어떤 책의 어떤 부분인지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이렇게 될꺼야"라고 한다면, 그건 필연과는 좀 다르고, 오히려 "개연"이나 "추측"에 가까운 거 아닌가요? Grimaud님은 필연과 우연을 말하면서, 단어들을 좀 정확하지 않게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필연과 우연이라는 범주가 존재론적 범주라면, 개연 같은 건 인식론에 속하는 범주일 테고, 당위 같은 건 윤리적 범주겠죠. 그런데 Grimaud님은 이 세 가지 측면을 한데 섞어서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군요. 우선 필연과 우연이 어떤 범주인지 좀 정확히 경계 설정을 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문자 역사와 진보 사이에 왜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해야 하는 건지, 그것부터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한다면, 그 때 그 필연의 성격은 어떤 건지, 가령 존재론적인 필연성인지
아니면 당위적인 성격의 것인지, 또는 인식론적인 법칙에 해당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겠죠.

저로서는 왜 양자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선 스스로 그 관계를 명료하게 밝혀야겠죠.

철학 교수들 중에 "세계 너머의 세계의 존재"를 믿는 분이 계신지 안 계신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믿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요? "세계 너머의 세계의 존재"를 이야기하는데 종교인을 빼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당연히 그 분들을 포함해서 생각해야겠죠.그렇다면 그런 분들이 당연히 계시겠죠.

그런데 사실 "세계 너머의 세계"라는 표현 자체는 사실 좀 애매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첫번째 세계는 "감각적 세계"나 "현상 세계", 또는 "대상들의 세계"를 가리킬 수도 있고(이 경우 두번째 세계는 "비감각적 세계"나 "본질 세계", 또는 "주체적 세계"를 가리키겠죠), 아니면 "현세로서의 세계"를 뜻할 수도 있고(이 경우에는 "내세", "죽음 이후의 세계"), 또는 "지구로서의 세계"를 뜻할 수도 있겠죠(이 경우 두번째 세계는 "외계인 또는 외계 생명체의 세계"가 되나요? ^^). Grimaud님이 뜻하는 게 두번째 "현세로서의 세계"를 넘어선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믿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다른 경우라면 상당히 많을 수 있죠.

자꾸때리다 2008-01-26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종교인들 중에서는 그런 분들이 당연히 많겠죠. 그저 저는 이성적 추론을 중요시 하는 철학자들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나 해서요... 특히 자기가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기시는 분들의 경우도요... 저는 세계 너머의 세계를 단순히 현상계 너머의 본체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세계를 뜻했네요...

제가 말한 "이렇게 될꺼야"는 자연적인 필연성을 뜻한 것이었어요. 물론 그런 자연적 필연성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지, 인식가능한지는 인식론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요. 제가 의미한 것은 그런 자연적인 필연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초월적 수준의 형이상학적 당위, 예컨데 소크라테스가 자신은 언제나 자신의 행위의 이유를 찾으려 했다고 할 때 그런 "근거"들, 신의 명령이나 이데아들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의미한 것이었네요...

balmas 2008-01-26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자연적인 세계"라는 말도 여전히 애매하긴 하죠. 님이 말하는 "본체계"도 초자연적인 세계의 일종일 테고, 내세의 세계도 그렇고, 비감각적 세계나 본질 세계도 마찬가지고, 또 주체적인 세계(이런 투박한 표현을 계속 쓴다면)도 그렇겠죠.

형이상학적인 당위의 필연성이라 ... 그런데 그리모님은 그게 진보와 어떤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자꾸때리다 2008-01-2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칸트의 본체계에는 신과 같은 존재자의 세계도 포함되긴 하네요. 다만 저는 인식론적인 한계 너머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차원이 다른 세계를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만 저는 형이상학적 당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약 선과 악에 대한 초 역사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가치-도덕 판단 역시 역사적인 우연성을 띄게 되어서 결국 상대화 되어버리지 않는가라는 고민이 있어서요... 제가 진보적인 가치라고 소중히 여기는 것도 다른 입장에 선 사람에게는 "너만의 생각일 뿐" 이라는 비아냥을 받게 되지 않을런지...

balmas 2008-01-26 0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리모님 생각을 좀더 정확히 알겠네요. 그리모님 이야기는 결국 상대주의, 특히 가치와 관련된 상대주의에 관한 문제겠군요. 그렇다면 그런 고민을 해볼 수 있겠죠.

이 문제는 그리모님이 앞으로 스스로 좀더 공부를 해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간단히 한 가지 점만 지적해둘게요. 우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라는 게 과연 일의적인 개념인지,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개념들인지, 아니면 상이한 다른 해석의 여지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인지 생각해볼 수 있겠죠. 제가 보기에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라는 말 자체는 "추상적"인 관념들입니다. 다시 말해 무수히 많은 상이한 규정들을 추상하고 있고 따라서 무수히 많은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뜻이죠. 따라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에 관해 좀더 의미있는 논의를 하려면 그것들을 어떤 규정들, 어떤 입장들과 관련시켜서 생각해보는 게 좋죠. 가령 절대주의의 경우에는 플라톤식의 절대주의(정말 그렇다고 가정한다면)도 있을 수 있고 칸트식의 절대주의 내지 하버마스식의 완화된 절대주의도 있겠고, 아니면 레비나스식의 절대주의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상대주의의 경우에도 로티식의 상대주의도 있을 것이고, 푸코식의 상대주의나 니체식의 상대주의, 또는 리오타르식의 상대주의나 레비스트로스식의 상대주의도 있겠죠.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그리모님이 처음에 제기한 문제는 너무 큰 문제, 다시 말하면 너무 추상적인 문제라는 게 쉽게 드러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사실 거의 모든 철학자들의 사상이나 입장과 관련되는 문제거든요.

그래서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 주제에 관한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문제의식을 좀더 구체적이고 좀더 정확히 가다듬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더 고민의 내용도 뚜렷해지고 좀더 깊어질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농담삼아 한 마디 하자면 "너만의 생각일 뿐"이라는 건 비아냥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엄청난 칭찬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존재한 다른 모든 철학자들과 다른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다는 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