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님의 질문에 답변하다가 생각이 나서 책 한 권을 소개하렵니다.

책의  제목은 {생각하는 나의 발견-방법서설}이고 저자는 김은주 씨입니다.

이 책은 아이세움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나의 고전읽기"에서 6번째로 출간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대한 입문서입니다.

 

최근 불어닥친 논술의 열풍 덕에 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퉈 논술 교재 시리즈를 많이 출간하고 있던데,

"나의 고전읽기"도 그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제가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읽어보지 못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방법서설}에 관한 이 책만큼은 데카르트만이 아니라  철학 일반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국내에는 이 책 이외에도 데카르트에 관한 해설서나 입문서들이 제법 소개되어 있습니다. 에드윈 커리

(원래는 에드윈 컬리(Edwin Curley)라고 읽는 게 좀더 정확하겠지만, 번역자가 "커리"로 번역했기 때문에

이렇게 적겠습니다)의 {데카르트와 회의주의}(고려원, 1993)나  안쏘니 케니의 {데카르트의 철학}

(서광사, 1991)  같이  상당히 전문적인 연구서에서부터 케빈 오도넬의 {30분에 읽는 데카르트}나 톰 소렐의

{데카르트}처럼 쉬운 입문서들에 이르기까지 참고할 만한 해설서들이 꽤 있습니다. 이 책들은 나름대로의

장점들을 갖고 있고, 특히 커리나 케니의 책들은 영미권에서는 꽤 유명한 연구서들입니다.

 

하지만 이 책들은 모두 외국의 독자들을 상대로 씌어진 책들인 데다가, 대개 데카르트 철학의 기본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 가운데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의 독자들, 특히 고등학생이나 대학 학부생들을 비롯하여, 전공자는  아니지만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내기에는 어려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쉽게 이야기하려다가 보면

데카르트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을 빠뜨리거나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점에 비춰보면, 이 책은 데카르트 철학에 대한 매우 좋은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데카르트의 철학에 대해 매우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방법서설}을

소개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지만, 데카르트의 생애에 대한 소개에서 시작해서

{성찰}이나 {철학원리] 같은 데카르트의 만년의 저작들에 이르기까지 데카르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충실하고 균형있게 잘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데카르트 저작의 원문을 여러 번 인용하면서

알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방법서설}을 읽어보려는 분들에게는 더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내용들을 전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지닌 또다른

장점입니다. 가령 데카르트 시대의 학문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인용하는 구절이나 {방법서설}이 지닌 "자서전"으로서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황순원의 {소나기}나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같은 텍스트를 비교하고 있는 대목, 또 데카르트의 학문의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사무소 직원을 비유하고 있는 대목 등에서 이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필자가

이 책의 잠재적인 독자들인 고등학생들이나 대학 학부생 또는 일반 교양 독자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좀처럼 쉽게 양립하기 어려운 이 두 가지 장점들이 성공적으로 어울린 덕분에, 이 책은 청소년 독자들이나

교양대중에게 {방법서설}만이 아니라 데카르트의 철학 전반, 아니 더 나아가 근대 철학 전반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몇 편의 독자서평들이 이 점을 실제로 입증해줍니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근대철학에 관심은 있었는데, 철학자들의 책을 직접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논술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나 청소년 독자들에게도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은 고등학생보다는 대학

학부생이나 일반 교양 독자들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책의 내용을 고려해봤을 때

고등학생을 위한 논술교재 보다는 대학 학부생을 위한 교양철학 강의교재로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을 본격적인 데카르트 연구서로 보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어렵겠지만, 그런 류의 책들이 하기

 힘든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적지 않다고 봅니다.

한 권씩 구입해서 읽어보시죠. :-)    

 

덧붙임:

이 책은 사실 저와 절친한 후배가 쓴 책입니다. 지금 프랑스 리용에서 스피노자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지요. 작년 11월 리용에 도착했더니, 이 책의 원고를 거의 다 마무리했다면서 저에게 한번 읽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책이 나오면 소개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이렇게 페이퍼를 씁니다.

잘 아는 후배의 책에 대해 추천을 글을 쓴다는 게 다소 꺼림칙하긴 하지만, 이 책이 잘 나간다고 해서

저에게 동전 한닢 돌아오지 않을 텐데 (후배가 야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ㅎㅎ) 주저할 이유가 뭐

있겠느냐는 생각에서 페이퍼를 써봤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후배 부부가 공동으로  번역한 알렉상드르 마트롱의 유명한 스피노자 연구서인

{스피노자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도 덧붙여둡니다.

아마도 이 책이 외국어로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일 텐데, 이 책이 번역된다면 국내의 스피노자

연구에 하나의 전기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대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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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10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영풍문고서 봤어요. 아이세움에서 꾸준히 교양 고전서들이 나오더라구요. 관심갖고 있습니다.

Chopin 2007-04-1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balmas 2007-04-1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전 다른 책들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다른 것들도 이 책 정도의 수준을 유지한다면, 교양서로서 꽤 괜찮겠더군요.
쇼팽님/ ㅎㅎ

포월 2007-04-1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트롱의 책이 출간되는군요. ^^ 기대됩니다.

자꾸때리다 2007-04-10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니의 책을 읽기전에 이 책을 함 봐야겠군요!
근데 케니의 번역서는 상태가 좋은지 걱정이네요.

rtour 2007-04-10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트롱의 책이 ^^ 그참 이렇게 정보가 느려서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두 분이 상당히 수고 하셨겠네요. 그 두꺼운 책을 번역하다니.. 원래 공부는 빚지면서 하는 거지만, '정말' 빚지면서 공부하는 기분이네요. 마슈레의 책을 번역한 발마스님께도 그렇고.

rtour 2007-04-1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dler 의 책도 국내 출판사에서 판권을 사서, 번역을 맡긴 것 같긴 하던데. 어느 분이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다 좋은 일입니다. :-)

해적오리 2007-04-10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에 문외한이라서 뭔가 입문서가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괜찮을 것 같네요. 전 대학때 뭐했는지 모르겠어요..^^;;

balmas 2007-04-1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월님/ ㅎㅎ 예 기대하세요.
므라빈스키님/ 예, 한번 읽어보세요. 케니의 책은 번역이 괜찮습니다.
rtour님/ ㅎㅎ 본인들이 이야기를 안하면 모를 수밖에 없지요. 마트롱이 직접
한국어판 서문까지 따로 써준다니 더 뜻깊은 번역본이 될 듯합니다. Nadler 책은
아마 스피노자 전기 말씀이시죠?
해적님/ ㅎㅎㅎ 예,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거예요. 데카르트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