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fférance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데리다 독자들 중에는 이 질문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꽤 많으리라. 먼저 세 사람의 가상적인 대화를 들어보자.

갑돌: différance는 당연히 <차연> 아닌가? différance가 <차이>와 <지연>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까, 이 양자를 모두 표시하기 위해서는 <차연>이라는 번역어가 제일 좋은 것 아니야?

병순: 그것도 일리가 있긴 있는데, 과연 그걸로 충분히 différance의 뜻이 표현될 수 있을까? différance는 <차이>와 <지연>이라는 뜻을 동시에 표현하기도 하지만, 불어에서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différence라는 단어와 음성상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또다른 중대한 의미도 함축하고 있지. 다시 말해 데리다가 différance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근본 목적은 <e>라는 알파벳 모음을 <a>라는 다른 모음으로 대체해서, 두 단어의 차이를 음성상으로는 알 수 없고 기록을 통해서만 식별할 수 있게 하려는 데 있다고 봐야 해. 그래야 이 신조어가 서양의 형이상학이 내포하는 음성중심주의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차연>이라는 번역어는 <차이>라는 단어와 음성상으로 곧바로 구분되잖아? 이 경우 데리다의 원래 의도가 제대로 살아나겠어? 더욱이 <차연>은 일본에서 사용하는 번역어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것에 불과하고.

갑돌: 그러면 이걸 어떻게 번역하자는 거야?

병순: 몇 가지 제안이 있었지. 어떤 사람은 <차이>라고 번역하되, <이>자를 다르다는 뜻의 <異> 대신 “이동하다”, “옮겨가다”는 의미의 <移>자로 쓰자고 제안하지. 곧 <차이>라는 단어와 <差移>라는 단어는 음성상으로는 식별이 안되고 문자상으로만 식별이 가능하니까, 데리다의 원래 의도하고도 잘 부합이 되고, différance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차이>와 <지연>의 의미도 함께 살릴 수 있으니까, <차연>이라는 역어보다는 훨씬 낫다는 거지.

갑돌: 그~래? 그런데 과연 <差移>라는 번역어가 편의성이 있을까? 네 설명대로라면 différance가 나올 때마다 항상 한자어로 된 <差移>라는 번역어를 써야 할 텐데, 이건 너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어색하지 않을까?

병순: 뭐, 그런 약점이 있긴 하지. 그래서 <差移> 대신에 <차이>나 <차> 같은 번역어를 쓰자고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 경우 différance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차이>와 <지연>의 의미를 동시에 표현해 주기는 어렵겠지만, 문자상으로만 식별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차연>이라는 번역어보다 데리다의 의도에 더 부합한다는 거지.

갑돌: 의미론적 함축을 희생하는 대신 기록학적 함축을 중시한다, 이거군. 그런데, 어차피 <차연>이나 <差移>, <차이> 또는 <차>나 différance가 지니고 있는 모든 함의들을 온전히 표현해 주지 못한다면, 그래도 기존에 널리 써왔고, 사람들이 그래도 제일 익숙해져 있는 <차연>이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가뜩이나 데리다를 어려워하고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차연>이라는 번역어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니까.

병순: 네 말도 일리가 있어. 사실 데리다 국역본의 질이 대부분 형편없어서 읽을 만한 게 별로 없지.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데리다를 더 낯설어하고. 그런 마당에 그나마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신감있게> 안다고 생각하는 <차연>이라는 번역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면, 사람들이 더 혼동을 느끼게 되겠지.

그런데, 만약 <차연>이라는 말이 거리감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편의적이라는 장점이 있다면, 이건 <차연>이라는 번역어의 유통기한은 제한되어 있다는 이야기인가? 다시 말해 앞으로 좀더 좋은 번역본들이 많이 나오고, 그래서 사람들이 데리다를 좀더 잘 알게 되고, 그러면 <차연>이라는 번역어는 쓸모가 없어지는 건가?

사람들은 데리다를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한다기보다는 사실은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왜냐하면 국내에도 데리다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 적어도 글줄깨나 읽은 지식인이라면 데리다에 관해 한두 마디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제대로 번역된 책을 찾기가 어려우니 뭐라고 할 말이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지식인으로서 체면을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데리다 철학에 관해 이런저런 상세한 설명을 하기보다는 깎아내리는 방법을 택하지. 데리다도 철학자냐, 데리다는 미국애들이 키운 애다, 데리다는 하이데거 아류에 불과하다, 데리다는 언어유희에만 골몰하는 댄디다, 쓸데없이 말만 어렵게 하지 데리다가 구체적으로 해주는 게 뭐가 있느냐 등등. 이처럼 단도직입적인 판단에는 사실은 두려움이 있는거지. 두려움을 해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무시하는 거고, 관심을 두지 않는 거니까. 따라서 내가 볼 때는 <차연>이라는 번역어를 많은 지식인들이 선호하는 데에는 편의성보다는 오히려 바로 이러한 두려움이 큰 동기로 작용하는 것 같아. 데리다를 어떻게든 좀 쉽고 간편하게 정의하고 싶어하는 거지. 모르는 것은 자꾸 두려움을 주니까.

갑돌: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이게 <차연>이라고 번역하면 안되는 충분한 이유가 될까? <차연>으로 번역했을 때, différance가 지니는 함의들 중 빠져나가는 부분은 différence와 음성상으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점뿐인 것 같은데. 다시 말하면, <차연> 대신 <差移>, <차이> 또는 <차>라는 번역어를 택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이 사라질까? 이렇게 번역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지? 데리다에 대한 두려움과,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이 데리다를 자꾸 한 마디로 폄훼하려고 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데리다가 충분히 소개되고 연구되는 것밖에 없는 거 아냐? 그러기 위해서는 <한시적>일지도 모르지만, <차연> 같은 번역어를 통해 사람들이 갖는 거리감을 없애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을식: 그런데, 데리다가 누구야? 데리다가 누구길래 그렇게 이상한 말을 쓰지? <철학자들은 원래 다 그렇게 비싼밥 먹고 이상한 소리만 하니?> [내 강의를 들은 학생 중 하나가 수업중에 실제로 했던 충격적인 말이었음.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철학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준 아주 값진 기회였음. ]

* 2부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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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1-1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가 아주 궁금하네요.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balmas 2004-02-0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2부에서 끝냈으면 좋겠는데, 과연 이게 2부에서 끝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2부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니까(마치 무협지 소개같네요^^), 한번 기대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