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天(귀천)]-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어제는 호사로웠다.
벼르고 별러 코리아나 화장미술관 들렀다가, 인사동 '고도사' 주최 "옛 사람 솜씨전" "옛 가구 민속품전" 찾아 우리 옛 보자기와 소반의 꽃이라고 불림직한 해주 소반 맘껏 보고 피어리스 후배 최철수 지점장 점심도 자아알 얻어 먹었다.
좁다란 골목길 돌아 천상시인 천상병의 미망인 목순옥여사의 歸天 찻집에 들러 모과향 그윽한 분위기에도 맘껏 취할 수 있었다.

'통문관' 지나 '통인가게' 거쳐 양의숙씨 "예나르"도 들리고 '미술자료공사'에서는 언감생심 '조선고적도보' 옛 도자기 그림에 물끄러미 넋놓기도 하다가...새삼 옥션경매장 조선시대 청화백자 화장도구도 만나고 '민예사랑'에서는 비치개,첩지,칠보비녀,버선본집이나 수저집의 자수, 혹은 비취나 옥 가락지에 마음 홀리곤 했었다.

초면의 민속품 가게 '나락실'에서는 한 시간여 우리 고가구나 민속품에 관한 정담의 여행속으로 박수치듯 빠져들다가 좋은 동무 삼아도 좋을 듯한 여주인의 향기에도 스미듯 젖어 들다가, 전라도 돌장승 한 구가 주는 말없는 감동에 왼몸 징징 달아샀다가...

돌아오는 길.
굳이 피어리스 사옥이 있던 충정로 뒷길
아바이순대집 찾아가 순대국 안주 삼아 최지점장과 백세주 나누고
서둘러 총총 서울발 저녁 8시 열차에 몸을 실은,
참 오래 벼르기만 하던 소풍....
어제는 호사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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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동마을 가서]-박진형

몇달째시한구절떠오르지않는다
천덕꾸러기사는일에허우적거린다
터덜터덜구름이내마음끌고가고
푸르른시간에등떠밀려온저문귤동마을
태산목그늘아래서마흔중얼거린다
茶山(다산)은불혹에얼음낀강진에위리안치되어
가슴에고인피찍어수백권서책엮었다
눈속에빳빳이고개쳐든춘란이
그리움은상처가운데뿌리내려야한다고
나직히일러준다눈발치는세상한귀퉁이
마흔으로넘어가는노젓는소리에
붉게붉게노을속탄다

*
"다산신계'에 그런 글이 있다.
신유년(1801년) 겨울에 강진에 도착하여 동문밖 주막집에 우거하고, 을축년(1805) 겨울에는 보은산방(寶恩山房)에 기식하였고, 병인년(1806) 가을에는 학래(鶴來, 李晴)의 집에 이사가 있다가, 무진년(1808) 봄에 다산에서 살았으니 유배지에 있었던 것이 18년인데, 읍내에서 8년을 살고 다산에서 11년째 살았다고 한다.

처음 유배온 죄인(?)을 모두가 꺼려 피했으나 술집이자 밥집 오두막 노파가 방 한 칸을 내주어 겨우 몸 거할 곳 마련할 수 있었다 한다.
귤동마을 지나 다산초당 가는 길, 유배지의 다산 정약용을 돌봐주었다는 윤단의 묘앞 반나마 코 떨어져 나가 익숙한 친근미로 경쾌한 눈맛을 주던 전라도 동자석은 당시의 정황을 알까.

다산초당에는 다산이 머물며 손수 쓰고 각(刻)하였다는 정석(丁石)이라는 글씨를 새긴 바위가 있다. 또한 보정산방(寶丁山房) 이라고 정약용을 보배롭게 모시는 산방이라는 뜻으로 쓴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보는 순간 먼 전라도 귤동마을까지 달려간 보상은 충분한 것이었다.

내 마흔도 넘어
세상잡사에 발목 빠트리고 허우적거리다가
사는 일 시들할 때
다산초당 뒤 천일각에 서서 비로소 보았다.
강진만 구강포 바특히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잘못살아 왔던가.
무슨 그리움 이리도 깊어 먼, 먼 유배의 땅까지 치달려 온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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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체국]-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 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 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홀로 어쩌자는 마련도 없이
달랑 베낭 하나 메고
화순 운주사 거쳐 목포 지나 보길도까지 떠헤메어
어슬렁 어슬렁 여기가 세상의 끝이랴 싶던 그때가 언제던가.
민박집 촉수 낮은 전등 아래
몇 날 며칠
썼단 지우고 다시 고쳐 쓰며 밤새도록 버려지던 헛된 편지질이여!
왼밤 기우뚱 섬 하나 지울듯 지울듯 파도는 쳐쌓는데
하릴없이 잠을 뒤척이며 대체 산다는 건 뭐냐, 목숨의 조건은 그 무어냐,
마냥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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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
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姿勢(자
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
부평 백마장 부근 한 작은 성당에서 자정미사를 드리며, 청평의 겨울
FTC훈련장에서 얼은 몸을 말리던 모닥불 앞에서, 취침시간 마다 트
럼펫 소리 낮게 깔리곤 하던 성환의 참호에서, 동초를 서던 월미도의
밤 조을듯 가물거리곤 하던 현광등 아래에서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그 의지가지없이 외롭던 공병 일등병 시절,
어딘가에 우물이 있을 것이다는 예감 때문에 사막이 아름다울 것이라
던 쌩떽쥐뻬리를 인용하곤 했었다.

지난날 지녔던 아득한 기대 혹은 물기젖은 여정들을 떠올리면 내 모오
든 헤메임의 시간들 그리움 아닌 것이 없었나니....
나도 즐거운 편지를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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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길 5 -아버지의 나라 ]
송 재 학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눈물 보이진 않으시지만 사립문에서 뒷뜰까지 너무나 조용했다
석남꽃은 터져 붉은 잇몸 드러내었다 뒷산 나무 베는 소리 들리고 아버지는 머리칼 깊숙이 손가락 쑤셨다
갈치 반찬이 올라간 점심마저 밀어내시고 아버지는 낫을 갈았다 흰 상여가 입타령도 없이 들 너머 묻혔다 서쪽 하늘의 먹장구름 율리(律里)를 덮고 낫의 푸른 날은 점점 맑아졌다 율리천 물은 곧 말라 갈라진 강바닥과 죽은 고기를 드러낼 것이다 비린 풀냄새가 났다 무더위와 고요 위에 유월 소나기가 숨가쁘게 지나갔다
흙먼지가 피어 올랐다 어머니는 고추밭에 계시는지, 뒷산 벌목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생목더미의 휘파람 소리가 떠돌았다 한낮인데도 세상은 어두워지고, 온몸 젖으며 아버지, 떠나셨다 어머니는 보릿단 지펴 한 그릇의 쌀밥을 지으시고 남은 불로 방을 덮혔다 집안에 연기는 빠져나가질 않았다 뒷산 새울음이 여우비 뚫고 어머니 눈물 근처 여위어 갔다
금방 산으로 따라갔어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으셨다 산모롱이 흰 길로 햇빛이 눈부시고, 아버지의 나라는 저 햇빛 속인가


.......................................................................................................................................
*옛 친구의 '얼음시집'을 뒤적거리면서 받은 지 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한 번도 진지하게 친구의 마음을 더듬어 헤아려 보지 못했구나.
그래,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이제는 너무 지나쳐 온 먼 길 그 아득한 시간의 여울을 거슬러
보고싶다. 문득 목이 메이는....
니도 후제 자식 낳아 키워봐라....
철이 든다는 건, 아니 산다는 건 이렇게 울컥 자주 그리움이 깊어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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