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라(修羅) ] -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어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안다'는 말에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 지 아느냐..
'글쎄요.' , ' ~인 것 같아요.' 이런 모호한 표현들도 문제라지만,
아마도 그 뒤로 저는 '안다'는 말을 삼가게 된 것 같습니다.
'무열님 심정 알 것 같아요.' ,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왜 필요할까요? 저는 알 것 같지도, 이해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직은 반쪽이란 단어가 너무도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을요.
언젠가는 제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되도록 더디 온다면 좋으련만..
실은 요즘 엄마가 편찮으십니다.
밥 하기 귀찮아 바깥 밥 먹자거나, 대충 시켜 먹자거나..
그런 말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는데 요며칠은 전에 없던 말씀들을 하시네요.
엄마 대신 일어나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저는 벌써 귀찮고 짜증스러집니다.
아침에 올린 국 점심, 저녁 데우기도 하고,
국거리로 손질한 콩나물 반쯤 덜어 콩나물로 도배 된 한 끼를 차리기도 합니다.
제 나이가 벌써 스물여섯.
꼬박 스무일곱해를 엄마는 어찌 하셨을까요?
맛깔나게는 아니어도 엄마 좋아하는 반찬을 해야겠는데,
오이소박이, 장아찌.. 아무리 곱씹어도 왜 더는 생각이 나질 않을까요?
우리 엄마도 좋아하는 반찬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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