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
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姿勢(자
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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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백마장 부근 한 작은 성당에서 자정미사를 드리며, 청평의 겨울
FTC훈련장에서 얼은 몸을 말리던 모닥불 앞에서, 취침시간 마다 트
럼펫 소리 낮게 깔리곤 하던 성환의 참호에서, 동초를 서던 월미도의
밤 조을듯 가물거리곤 하던 현광등 아래에서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그 의지가지없이 외롭던 공병 일등병 시절,
어딘가에 우물이 있을 것이다는 예감 때문에 사막이 아름다울 것이라
던 쌩떽쥐뻬리를 인용하곤 했었다.

지난날 지녔던 아득한 기대 혹은 물기젖은 여정들을 떠올리면 내 모오
든 헤메임의 시간들 그리움 아닌 것이 없었나니....
나도 즐거운 편지를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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