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길 5 -아버지의 나라 ]
송 재 학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눈물 보이진 않으시지만 사립문에서 뒷뜰까지 너무나 조용했다
석남꽃은 터져 붉은 잇몸 드러내었다 뒷산 나무 베는 소리 들리고 아버지는 머리칼 깊숙이 손가락 쑤셨다
갈치 반찬이 올라간 점심마저 밀어내시고 아버지는 낫을 갈았다 흰 상여가 입타령도 없이 들 너머 묻혔다 서쪽 하늘의 먹장구름 율리(律里)를 덮고 낫의 푸른 날은 점점 맑아졌다 율리천 물은 곧 말라 갈라진 강바닥과 죽은 고기를 드러낼 것이다 비린 풀냄새가 났다 무더위와 고요 위에 유월 소나기가 숨가쁘게 지나갔다
흙먼지가 피어 올랐다 어머니는 고추밭에 계시는지, 뒷산 벌목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생목더미의 휘파람 소리가 떠돌았다 한낮인데도 세상은 어두워지고, 온몸 젖으며 아버지, 떠나셨다 어머니는 보릿단 지펴 한 그릇의 쌀밥을 지으시고 남은 불로 방을 덮혔다 집안에 연기는 빠져나가질 않았다 뒷산 새울음이 여우비 뚫고 어머니 눈물 근처 여위어 갔다
금방 산으로 따라갔어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으셨다 산모롱이 흰 길로 햇빛이 눈부시고, 아버지의 나라는 저 햇빛 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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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의 '얼음시집'을 뒤적거리면서 받은 지 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한 번도 진지하게 친구의 마음을 더듬어 헤아려 보지 못했구나.
그래,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이제는 너무 지나쳐 온 먼 길 그 아득한 시간의 여울을 거슬러
보고싶다. 문득 목이 메이는....
니도 후제 자식 낳아 키워봐라....
철이 든다는 건, 아니 산다는 건 이렇게 울컥 자주 그리움이 깊어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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