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는 다른 것의 죽음을 살고
또 다른 것의 삶을 죽는다"
그렇군요. 요령부득의 비문(非文)을, 소개해 주신 詩를, 또한 먼저 가신 분들을 생각하다 보니 비로소 요해할 듯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분들의 생애를 자양분으로 애오라지, 이만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자식들도 우리 죽음을 살겠지요만.
<종일 본가> <종일 구들목 지키기>
생각하면 그 모두 , 눈물겨운 정경입니다. 왕년에 '한 주먹'하셨던 어른이 구들목 지킴이셨다니 더더욱....
...................
봄이 오고 있습니다.
까짓,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허공에다 케이오펀치나 한 번 먹여봅시다들.
- 심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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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열]님이 [2004-03-08 03:24]일 등록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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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일기장]-이동순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 본가(終日 本家)'
'종일 본가'가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 본가'가
전체의 팔 할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를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보며
일기장의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히 헤아려보는 것이다

*
당신의 꿈은 만년 권투선수였다.
이루지 못한 슬픈 꿈있어 권투경기 중계만 있으면
TV앞에 그리도 열광하셨던가.
전국대회 2등까지 해봤다만 내는 밀어주는 사람이 없어 끝까지 몬했따.
니는 공부만 잘하몬 내 빤스를 팔아서라도 미국꺼정 보내주꾸마, 하시던 말씀이
가슴을 친다.
중풍으로 자리보전한 지 석 삼 년
당신의 말년도 그러하셨으리
하릴없이 친구도 없이 허구한 날 '종일 구들목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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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학교]-반칠환

솔뫼골 산지기 외딴 집 내 나이 여섯 살,누가 펼쳐놨으까.
저만치 봇도랑 너머 논두렁 밭두렁이 줄 잘 그어놓은 공책이
잖구. 물 댄 올벼논께부터 읽어볼까.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
기. 개구리 선생이 시작하면 질세라, 까치는 까꺄 두꺼비는
꺼껴 장닭은 꼬꾜 구렁이는 꾸뀨 장끼는 끄끼. 나는 두 팔 내
저으며 깔깔.

셈을 해볼까? 나팔꽃은 외 잎, 움트는 호박 떡잎은 두 잎,
토끼풀은 세 잎, 달맞이꽃은 네 잎, 외양간 보다 더 높은 아카
시아 잎사귀는 무량대수. 호주머닐 뒤져보니 울쿤 풋복상이
다섯 개 있었는데 두 개 먹고 나니 시 개 남았네?

아무도 음악 시간이라 말하지 않아. 다만 귀를 열어놓았을
때야. 딱딱딱 나무 쪼는 딱따구리나, 통통통 양철 루핑 두드
리는 빗방울은 타악기야. 필릴리, 호드기와 보리피리는 관악
기고, 성아 필통뚜껑에 고무줄 뚱기는 나는 현악기 연주자지.

여우비가 왔다. 앞산에 걸린 무지개 팔레트에 마음을 흠뻑
담궜다가 눈을 옮기면, 봐 철쭉은 분홍, 채송화는 빨강, 새순
은 파랗지? 이것 저것 그리다 지쳐 눈을 감으면 세상은 온통
까망.

노랑나비 한 마리 너울너울 날아가거든 고양이처럼 뛰어
보렴, 산개구리 한 마리 잡으려거든 검줄이처럼 얄이 나서 달
려보렴. 살구를 따려거든 원숭이처럼 매달려보렴. 대낭구 검
을 휘둘러보자, 후두둑 단칼에 망초꽃이 지는구나.

망초꽃 베다 해 떨어졌다. 식구들 둘러앉아 애호박 숭숭 썰
어 넣은 칼국수 한 그릇씩 비우고 평상에 누우면, 하나 둘 초
저녁별이 돋는구나. 얘, 별자리 공부할까? 누나 무릎을 베고
어디, 어디? 오리온 자리 대신, 전갈 자리 대신 누나 손가락
만 보다가 별이 돋는 걸 다 못 보고 나 잠이 든다.

.........................................................................................
오늘은,
저요 저요 선상님 저요!
키 큰 플라타너스잎 줄레줄레 햇빛따라 손 흔드는 시오리길 타박타박
"유년의 학교"에 가고 싶다.
너무 자주 부러지던 몽당연필 침 꾹꾹 눌러 괴발개발 철수야, 어머니,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받아쓰기 하고 싶다.
꾸불텅꾸불텅 에움길 삐뚤빼뚤 산모롱이 돌아
불끈 가로질러 맨 책보, 양은 도시락 젖가락 장단에 맞춰 어여 가자 어여 가보자.
내 기억의 운동장에는 여적지 코찔찔이 복남이, 배뽈록이 대진이, 기계총 먹은 명수 가슴에 손수건 하나씩 달고 앞으로 나란히, 차려엇, 열중 쉬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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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아래 잠들다]-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
저 농밀한 짓거리, 탁월한 미감과 수사에 기대어 나도 예쁜 색(色) 하나 탐하고 싶네.
내 발칙한 상상은,
'삼국유사 기이편" 신라 성덕왕때 순정공의 부인 수로부인을 추억하네.
자주빛 바위끝에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날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꺽어 받자오리이다,던
암소 끌고 지나던 노인이 되었음 하네.
천길 아니라 황홀한 만길 절벽에 핀 철쭉꽃 기꺼이 꺽어 바치올,
그런 욕망 하나 자위하듯 지지 누르는
봄밤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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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장터'는 토속적인 언어로 민중들(떠돌이 장꾼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낸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때는 그토록 번성했던 '목계장터"는 사라지고 방물장수로 표상된 끝없는 유랑의 이미지가 절절하게 가슴에 남던 시입니다.
시 속에 나오는" 朴박家가粉분"은 1916년부터 1937년 까지 이 땅 여인네들에게 인기리에 팔리던 최초의 근대적(공산품 등록 1호)인 화장품 이름이기도 합니다.
제가 "朴박家가粉분"을 상호로 정한 것도 이왕이면 우리 민중의 삶과 애환을 함께한 역사성(?)에 주목한 이유도 있답니다.
좋은 시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심강우]님이  등록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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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구름인 듯 바람인 듯 ....
표표히 떠도는 잘돌뱅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신경림 시인이 1976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너도나도 권세(權勢)와 치부(致富) 그도 아니면 박사를 앙망하는 이즈음,
<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의 신세가
차라리 호사스레 여겨지는 건 무슨 까닭인지요.
'영원은 인간들의 세월을 양식으로 삼는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간짓대 같은 세월을 휘청휘청 사는 주제에 영원을 사는 양
양양해 하는 우리들에게
<들꽃과 잔돌> 의 의미를 아느냐고 넌지시 물어보는 시(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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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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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인 듯 바람인 듯 ....
표표히 떠도는 잘돌뱅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신경림 시인이 1976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너도나도 권세(權勢)와 치부(致富) 그도 아니면 박사를 앙망하는 이즈음,
<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의 신세가
차라리 호사스레 여겨지는 건 무슨 까닭인지요.
'영원은 인간들의 세월을 양식으로 삼는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간짓대 같은 세월을 휘청휘청 사는 주제에 영원을 사는 양
양양해 하는 우리들에게
<들꽃과 잔돌> 의 의미를 아느냐고 넌지시 물어보는 시(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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