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학교]-반칠환
솔뫼골 산지기 외딴 집 내 나이 여섯 살,누가 펼쳐놨으까.
저만치 봇도랑 너머 논두렁 밭두렁이 줄 잘 그어놓은 공책이
잖구. 물 댄 올벼논께부터 읽어볼까.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
기. 개구리 선생이 시작하면 질세라, 까치는 까꺄 두꺼비는
꺼껴 장닭은 꼬꾜 구렁이는 꾸뀨 장끼는 끄끼. 나는 두 팔 내
저으며 깔깔.
셈을 해볼까? 나팔꽃은 외 잎, 움트는 호박 떡잎은 두 잎,
토끼풀은 세 잎, 달맞이꽃은 네 잎, 외양간 보다 더 높은 아카
시아 잎사귀는 무량대수. 호주머닐 뒤져보니 울쿤 풋복상이
다섯 개 있었는데 두 개 먹고 나니 시 개 남았네?
아무도 음악 시간이라 말하지 않아. 다만 귀를 열어놓았을
때야. 딱딱딱 나무 쪼는 딱따구리나, 통통통 양철 루핑 두드
리는 빗방울은 타악기야. 필릴리, 호드기와 보리피리는 관악
기고, 성아 필통뚜껑에 고무줄 뚱기는 나는 현악기 연주자지.
여우비가 왔다. 앞산에 걸린 무지개 팔레트에 마음을 흠뻑
담궜다가 눈을 옮기면, 봐 철쭉은 분홍, 채송화는 빨강, 새순
은 파랗지? 이것 저것 그리다 지쳐 눈을 감으면 세상은 온통
까망.
노랑나비 한 마리 너울너울 날아가거든 고양이처럼 뛰어
보렴, 산개구리 한 마리 잡으려거든 검줄이처럼 얄이 나서 달
려보렴. 살구를 따려거든 원숭이처럼 매달려보렴. 대낭구 검
을 휘둘러보자, 후두둑 단칼에 망초꽃이 지는구나.
망초꽃 베다 해 떨어졌다. 식구들 둘러앉아 애호박 숭숭 썰
어 넣은 칼국수 한 그릇씩 비우고 평상에 누우면, 하나 둘 초
저녁별이 돋는구나. 얘, 별자리 공부할까? 누나 무릎을 베고
어디, 어디? 오리온 자리 대신, 전갈 자리 대신 누나 손가락
만 보다가 별이 돋는 걸 다 못 보고 나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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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요 저요 선상님 저요!
키 큰 플라타너스잎 줄레줄레 햇빛따라 손 흔드는 시오리길 타박타박
"유년의 학교"에 가고 싶다.
너무 자주 부러지던 몽당연필 침 꾹꾹 눌러 괴발개발 철수야, 어머니,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받아쓰기 하고 싶다.
꾸불텅꾸불텅 에움길 삐뚤빼뚤 산모롱이 돌아
불끈 가로질러 맨 책보, 양은 도시락 젖가락 장단에 맞춰 어여 가자 어여 가보자.
내 기억의 운동장에는 여적지 코찔찔이 복남이, 배뽈록이 대진이, 기계총 먹은 명수 가슴에 손수건 하나씩 달고 앞으로 나란히, 차려엇, 열중 쉬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