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 아래 잠들다]-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
저 농밀한 짓거리, 탁월한 미감과 수사에 기대어 나도 예쁜 색(色) 하나 탐하고 싶네.
내 발칙한 상상은,
'삼국유사 기이편" 신라 성덕왕때 순정공의 부인 수로부인을 추억하네.
자주빛 바위끝에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날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꺽어 받자오리이다,던
암소 끌고 지나던 노인이 되었음 하네.
천길 아니라 황홀한 만길 절벽에 핀 철쭉꽃 기꺼이 꺽어 바치올,
그런 욕망 하나 자위하듯 지지 누르는
봄밤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