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김재진

문득 눈앞의 세월 다 지워지고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수첩 속에 빽빽하던 이름들 하나같이
소나기 맞은 글씨처럼 자욱으로 번질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갈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세파에 치어 각양각색인
남루 또한 지나간 상처 마냥 눈물겹고
서있는 사람들이 한 그루 나무처럼
이유없이 그냥 아름다울 때 있다
가파른 세월이야 지나면 그뿐,
코끝을 감고 도는
한 자락 커피 향에 두 눈을 감고
비 맞는 나무처럼 가슴 적시는
무심한 몸놀림이 아름다울 때 있다


*내 모든 그리움을 모아 불러보고 싶은
세월따라 바람따라 먼 먼 기억의 강물소리 같은
당최 안 잊히는 사람
내 오랜 무심함의 아픈 회초리 때늦은 후회로
천둥처럼 가슴을 치는
한 그루 늙고 병든 나무로 버티고 서서 너무 오래된 이름
당신!

아버님의 꿈은 만년 권투선수였다
때론 마도로스가 되어
항구의 일번지 마도로스 부기부기 LP판 턴테이블이 돌아가고....

쨉 쨉 라이트 훅 길게 뻗고 어퍼컷 치면서
꽃 다 진 키큰 나무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비틀비틀 절뚝거리며 세월은 그렇게 꿈처럼 아름답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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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7-2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얼마나 세월이 더 흘러야 세월이 그렇게 꿈처럼 아름답게 흘러갔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김재진님의 나무 님의 서재에서 보니 더 반갑네요.

두심이 2004-07-2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잖아요. 이시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문득 나서, 휴가떠나신 부모님들께 안부전화 드리려고 해요. 길을 잃고 헤맬때 늘 제 등불이 되어주신 분들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