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십 수 년이 지나고도 까마득하게 세월을 잊고 살고도
지난 날 홀로 뒤척이던, 잠이 먼 그 밤의 빗소리 잘도 들린다.
돌아서면 잊으리라
이빨 앙다물고 축축하게 젖어오는 가슴을 다치던,
그 날과 그 시간의 물소리 바람소리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불러볼 그 이름 그 목소리 그날의 풍경 하나 애써 기억나지 않는다.
세월이 가면
안부없이 세월이 가고 나면
이 곳에 길이 있었던가 우리 어떤 노래를 불렀던가
희미한 흔적처럼 그 모든 추억의 이름을 덮고 어디서 먼 강물소리 들릴 지 모른다.
문득 길을 가다 우연히 흘러 나오는 음악을 듣다 옛날 영화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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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7-15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글 올리셨네요.
전 시보다도 오히려 님의 글에서 더 목이 메어 버리곤 합니다.^^

프레이야 2004-07-25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가분아저씨, 무더운 날씨에 건강한 생활 하고 계시겠죠.
이 시와 님의 글, 모두 좋아서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