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먹고 싶다]-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치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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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로 하는 동기회 일을 맡고 있는 관계로 어제는 상가집에 갔다.
경산 지나 자인 가서 동곡쪽으로 못뚝에서 우측으로 가면 남산면노재지에서 송내리까지 1.5km, 거기 얕으막한 산을 등짐지고 기와집 몇 채 있었다.
함께 간 동료와 향 꽂고 절 하고 부친을 여윈 상주를 문상 하고 어지럽게 차일이 쳐진 마당 비닐 장판위에 앉아 상을 받았다.
소고기국에 밥 말아 후룩 후루룩 시장기를 달래며 어제 마신 소주를 탓하며 음주 단속을 핑계로 참 많이도 술먹는 걸 사양들 한다.
요즘은 잔뜩 취할 기회도 드물지만 너나없이 술을 꺼려 좀처럼 실수도 안하고 상가에서 밤을 샌다는 건 더더욱 보기 힘든 노릇이 되고 말았다.

동료의 재촉도 있었지만, 맨숭맨숭 뻔한 얼굴로 그렇고 그런 최근 경기 이야기와 허전한 동기들 모임을 화재로 삼다 그것도 시들하여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함께간 동료와 돌아오는 길.
며칠전 하관을 하며 상복 앞자락에 흙을 받아 관위에 뿌리던 친구 아들의 퉁퉁부은 눈을 생각했다. 주르르룩 學生豊川任公之柩 위로 쏟아져 내리던 '인제 가면 언제 오는데...' '당신 몇 밤 자고 올긴데.....' 친구 부인의 울부짖음을 떠올렸다.
나 보다는 몇 배나 더 친하게 지내며 고교시절 함께 산악부 활동을 했던 두 친구의 충혈된 눈과 들썩거리던 어깨를 쉬 지울 수 없었다.

죽기전 부도를 맞고 생수를 팔러 이 후배, 저 선배, 옛 동기들 찾아 다니며 마음에 없는 웃음 흘리며 잠시 비굴해졌을 옛 친구를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도 어쩌다 함께했던 지난 술자리 등산이야기, 대통령배 우승한 이야기, 아들 자랑 이야기,빛나던 청춘 황홀한 고교시절의 추억담에 열을 내던 녀석의 호기를 생각했다.

송내리에서 남산소재지 지나 자인 거쳐 경산 나오면서,
'야, 니 운동해레이~ 임먀, 우리 나이가 인쟈 퍽퍽 쓰러지는 나이데이~
헬스로 다져진 팔 근육을 뽐내 보이던 또 다른 동기의 취기어린 주정으로 불콰해진 얼굴도 떠올렸다.

문득,
산다는 게 조금은 허전하여서
때론 이유없이 실컷 울고싶어서
좋은 친구와 국수를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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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4-1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 잘 읽고 갑니다.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를 먹고 싶다...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잉크냄새 2004-04-2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
이 구절이 너무 아련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