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 어느 푸른 저녁에 대한 시작 메모에서 기형도는 비트겐슈타인의 유명 한 문장을 인용해요. 그러니까,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어진 부분과 씌어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은 이 두번째 부분이다. (...)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에 이어 기형도는 말해요. "그러나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그렇죠. 말할 수 ‘있는‘ 것을 ‘잘‘ 말하는 것이 산문의 영역이고, 말할 수 ‘없는‘ 것에 언어를 접근시키는 하염없는 시도들이 시를 쓰는 거겠죠.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