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에서 교토는 두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천년의 고도이기때문에, 우리가 경주에 가면 볼 게 많은 것처럼 교토도 유적과 명소가 많은 까닭이다.
답사기를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그 나라의 역사가 머릿속에 어렴풋이나마 정리가 된다는 것이고, 유물을 통해서 역사의 흐름을 살피니 그 문화의 특징을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학교다닐 때 일본 역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니 도요토미 히데요시니 하는 이름들이 왜 그렇게 헷갈리는지 자주 `도쿠가와 히데요시` 라고 했던 나는 이 나이가 먹어서야 일본이 조금 정리가 되었다 ㅎㅎ
역시 역사란 유물과 유적으로 정리하는 문화사, 생활사로 접근하는게 훨씬 쉽고 재미있다.
유홍준 교수님은 일본 답사기 네 권을 통해서 일본의 대략적인 역사와 문화적 특징들도 소개해 주시고, 한일간의 문화적 교류에 관한 내용도 치우침이 없이 설명하시고, 사심없이 높은 문화적 수준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가하면 아쉬운 점은 또 콕콕 짚어 주신다.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번역되어 읽어 볼 일본의 독자들까지 염두에 두시며 양국이 오해나 편견없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양국이 과거 긴밀한 문화적 교류가 있었기에 일본을 답사하다 보면 일본인들은 내력이 있어서 그 곳을 찾지만 우리에게도 그 곳을 찾을만한 사연이 있어 다른 외국 여행과 달리 우리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된다고 하셨다. 가까이 있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친구처럼 서양의 역사를 읽을 땐 느끼지 못했던 교감이 일본 역사를 읽으면서는 곳곳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중일 모두 동아시아 문화의 주체로 서로 자기 몫을 당당히 하면서도 함께 힘을 모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답사기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쭈욱 훑어보니 일본 문화는 어떤 유행이 있으면 그것을 정형화 해서 하나의 양식으로 널리 퍼뜨린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일본인들이 `유도리`가 없기로 유명하다는데 그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예외가 거의 없다보니 빠르게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진다. 그러니 서양인들이나 다른 문화 사람들이 보기에 일본문화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명징하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禪은 인도에 뿌리를 두고 중국에서 태동한 개념인데 일본이 세계로 퍼뜨렸다. (선의 일본식 발음인 ZEN으로 번역되어 서양에서 젠 스타일이 대유행을 했다)
일본의 선종 사찰에서는 참선의 개념을 명상을 위한 정원과 다실에 녹여내었고 그 고요하고 정갈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있는 형식이 일본 문화의 한가지 전형적인 스타일이 된다. 거기에 일본인 특유의 미적 감각이 더해지니 일본만의 특별한 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찌감치 서구와의 문물교류를 적극 수용하다보니 외국에 이름을 날리는 학자들도 많이 배출되어 일본이 아시아 문화의 종주국처럼 자리잡은 것이다.
내게 건축을 전공하신 작은아버지가 계시는데, 작은아버지 댁의 인테리어는 내겐 로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깔끔하게 다듬어 놓은 정원과 한옥과 양옥의 장점을 잘 버무린 듯한 정갈하고 단아한 실내 구조를 보며 나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답이 나왔다. 바로 서양인들이 젠 스타일이라 부르는 선종 사찰의 다실과 정원, 담벼락 등에서 따온 디자인인 것이다. 특히나 내가 좋아했던 거실 한 쪽 벽면은 `도코노마`라는 형식 그대로였다. 아마도 건축 공부를 하시며 일본 건축에 많은 영향을 받으신 모양이다. 이 책을 미리 읽었더라면 `아~ 이건 일본 다실 구조네요~` 라든가 `정원은 일본의 석정에서 모티브를 따오셨군요~` 라고 아는 척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ㅎㅎ
잘난척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이 책을 한 번 휘익~ 읽었을 뿐인데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뜻이다.
또, 요즘 정리에 관한 책들이 부쩍 많이 나오는데 저자들이 유독 일본인이 많은 이유도 이런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정리를 잘한다. 정원 하나를 만들어도 인공미 90 자연미 10정도의 비율로 만든다. 그에 반해 우리는 꾸미지 않은 듯 꾸민 것을 좋아하여 정원을 만들때도 거의 자연을 그대로 두고 인공적인 배치는 한두개 정도 포인트로 준다. 그래서 인공적인 디자인의 느낌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일본의 정원이나 유적지를 보면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오래 보면 질리는 구석도 있다. 반면 우리는 뭔가 꾸미지 않고 어수선 한 듯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어 그 깊이가 끝이 없다. 일종의 형식을 갖추어 깔끔이 다듬어진 유적지들을 쭈욱 보다가 이런 유전자를 타고나서 지금도 그렇게 `정리하자`고 책들을 많이 내는구나 싶었다.
이렇게 딱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는 탓에 답사를 하면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정원이네요. 솔직히 말해서 일본의 이런 정원을 보면 한편으론 한국인으로서 주눅이 들어요. 우리나라엔 이런 스케일의 정원이 없죠?˝
그런말 하면 교수님 열받으신다 ㅎㅎ.
우리 문화, 우리 역사엔 관심도 없었으면서 남의 문화에 경탄하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지적도 하신다.
그래서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의 정원 `원림`을 소개하시는데, 원림이 무엇인지, 차경정원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리나라 정원의 압권이란다. 교토가기 전에 꼭 그곳부터 답사하라고!
그러고보니 보길도는 아직 가보질 못했는데 이 책에서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답사기를 읽으면 가봐야 할 곳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내 평생에 여기를 다 보고 죽을 수 있을까?` 싶어지는 게 단점이다. 교토만 해도 열번은 더 가보고 싶어졌는데 도쿄도 홋카이도도 오키나와도 규슈도 가고 싶고, 요즘은 또 오로라보러 아이슬란드도 가야겠고, 대만도 배낭여행 다녀와야 하고.... 끝이 없다. 보고싶은 책도 끝이 없고 가고싶은 곳도 끝이 없고... 아... 인간의 욕망은 대체....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다락방님 표현을 빌리자면 아..... 인생.... ㅠㅠ
그러니 교수님 말씀처럼 와유를 배워야지. 아쉬운대로 앉아서라도 세계를 누빌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싶은 대목이 너무 많은데... 도시샤 대학의 윤동주 시비도, 고려미술관의 설립자 정조문 얘기도,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유홍준 교수님 어머님의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써버렸고... 다 쓰기엔 글이 너무 길어지고 나는 뒷심도 부족하다. 게다가 지금 올림픽 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결승전이 열리고 있다. 무려 한일전이다!! 아들래미가 자꾸 말을 시켜서 도무지 집중을 못하겠다. 아쉽지만 이만 끝내야 한다. 말하지 못해 정 아쉬운 것은 다음에 또 튀어나오겠지. 송곳처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