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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교양 (반양장)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5년 12월
평점 :
사실 이 책은 일종의 트집을 잡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올해 대박난 그를 보며 배가 아파서 그러는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럴지도...)
언제부턴가 팟캐스트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방송이 있어서 한번 들어보았는데, 뭐 그리 나쁘지는 않아서 (좋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심심할 때면 가끔씩 들었다. 듣다보니 은근 재밌기도 하고 가끔은 `아니 이런것도 몰라?` 할 정도로 소박한 네 진행자가 나도 모르는 심오한 얘기들을 막 털어놓는 매력에 빠져서 거의 매회 듣던 즈음 책이 나왔다.
<지대넓얕>
뭘 또 책까지 썼어? 했는데 연일 베스트셀러를 달렸다. 65만 독자가 열광했단다. 헐... 65만 이라면 전국의 수험생 숫자...
페북에서도 그들의 팬이 늘어갔고 자기들끼리 공부하는 소모임도 꾸려져갔다.
대단하네? 생각했지만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아니 오히려 인문학에 목마른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어서 거기에 적절히 불을 지른 채사장이 새삼 대단해보였다.
채사장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룰 험담하는 말들도 들려왔다. 얇지만 하지 전혀 넓지 않다는 둥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둥...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어려운 말만 하는 당신들은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이나 해 보았나요? 이땅의 젊은이들이 이 정도라도 관심을 가지는게 대단한 것 아닌가요? 깊이도 없는 사람들이 안다고 떠드는게 불편한건 아닌가요? 다시 자기들만의 학문이 되어야 속이 시원한가요?
말하다보니 또 살짝 격해졌지만 뭐 그렇게까지 열혈팬은 아니고 그저 관심있는 에피소드가 올라오면 들어보는 정도였는데 어느날 채사장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물론 첫 책이 대박났으니 옆에서 다음 책을 내놓으라고 얼마나 부추겼을까만 뭘 또? 싶었다.
그래서 까칠한 마음으로 예약구매를 눌렀다.(...혹시 열성팬 아님?)
책이 도착하고 첫 장을 펴자마자 조금 실망. 그럼그렇지. 이게 뭐야.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도 아니고. 사회 교과서는 참고자료라도 많지. 이건 그림이나 도표 하나 없이 엉성한 메모뿐.... 게다가 이해를 돕겠다고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쓴 에피소드는 좀 오그라든다. 아... 우리 채사장... 또 욕먹겠는걸. (아니 내가 왜 채사장 걱정을...다시 강조하지만 절대 팬은 아닙니다.)
프롤로그에 보면 이 책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되어있다. (팟캐스트 방송 중에 <티벳 사자의 서> 방송을 아주 재밌게 들어서 한번 읽어 볼까 싶었었는데) 채사장은 죽은 사람을 위한 안내서도 있는데, 산 사람에 대한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공부를 하다 보면 처음에 그 도식을 단순화하고 구조화 해서 이해하는 게 전체를 파악하는데 아주 도움이 된다. 특히 학교다닐때 사회과목은 맹목적으로 암기하는 걸로만 생각해서 벼락치기 공부하며 지겨워 죽을뻔하다가 고3때가 되어서야 전체적인 틀을 잡아주신 선생님을 만나서 한순간에 눈을 뜬 사람처럼 신세계를 맛보았던 경험이 있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어, 채사장이 사회선생님을 하면 잘하겠네` 싶었다. 이를테면 그런 선생님의 마음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사회의 현안을 합리적이고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세상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는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이라는 상반되는 개념을 기준으로 삼아 세계를 구조화 했다. 그리고 현실의 다양한 분야들이 이 구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밝혀나간다.
[세금]이야기로 시작해서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의 예측까지 그 두가지의 기준으로 설명해나가기때문에 독자들은 그를 따라가면 우리가 신문에서 늘 보던 개념들이나 현실 문제들에 대해 어느정도는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기준을 한정하고 간단히 도식화 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특히나 내가 잘 아는 부분에서는 좀 유치하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구조를 토대로 살을 붙여 나가면서 공부한다면 전체를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처음엔 의혹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지만(미안하지만 충동적으로 구매버튼을 누른 나를 원망하면서 얼른 읽고 좋은 값에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읽다보니 우리 애들에게 읽어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궁금한 것도 많은 아이들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기본 역할을 해 줄 것 같다. 채사장이 마치 학원 강사처럼 쉽게 설명하고 그때 그때 요약 정리도 해주며 심지어 계속 반복해준다. 적어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때 남들 하는대로 따라서 휩쓸리지 않고 내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 시달려 책읽고 공부하기 버거운 사람들, 입시에 몰두해 진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 취업과 노동에 숨가쁜 사람들을 위한 단순하고 친절한 가이드북을 쓰겠다는 채사장의 의도는 어느정도 성공적인 듯 하다. (잘했어, 채사장^^)
세금을 계산하는 방법을 모르고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부지런하게 노동하고 성실하게 납세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나의 세금이나 타인의 세금에 대해서 대다수가 무관심한 가운데 세금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된다는 데 있다. (34)
하지만 노동자에 의한 혁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그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견해에 회의를 느꼈다. 노동자가 피해의 당사자인 건 사실이지만, 그들은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끝내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착취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강력한 의지로 자본가에게 맞서야 하는데, 노동자들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에 대한 답변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베블런의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그는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난한 이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변한다." (132)
현실의 구체적인 쟁점들은 하나하나가 치열하게 논쟁되고 있으며 복잡하기 때문에, 개인이 이를 이해하고 자기 나름의 해결방안을 도출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 써야하는 바쁜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회적 쟁점에 자연스럽게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 (159)
그래서 최근의 노동시장 유연화가 문제가 된다. 임금노동자가 그나마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만족스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리스크의 회피 때문이다. 성취와 보람 그리고 수익으로부터 배제되는 대신 안정을 선택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박탈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라고 할 수 있다.(182)
현재 한국의 교육 평가는 등급제로, 총 아홉개의 등급으로 구분된다. 이때 구준의 기준은 학생수다. 최고 등급인 1등급과 최저등급인 9등급은 각각 전체 학생 대비 4%의 학생들이고, 중간인 5등급은 가장 많은 인원으로, 전체의 대략 20%에 해당한다. 즉, 수능과 내신에서 평균 5등급응 받았다면 전체 인원 중에서 중간에 위치한 것이고, 이것은 이 학생이 해당 평가에서 매우 평균적이고 평범한 점수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학생은 칭찬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5등급을 받은 학생이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208)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1000대 1에 육박하고 매년 공기업과 대기업의 취업경쟁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공정하게 시험이 치러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결과를 정당하다고 믿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러한 경쟁률을 발생시킨 사회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평가 결과에 따른 우선적인 책임은 사회에 있다. 중간 성적에 속한 학생들이 칭찬받고, 중간 정도 노력하는 사람이 취업할 수 있고, 중위 소득에 속하는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 이루어진 경쟁이라고 할 때에만, 우리는 그 결과의 책임을 비로소 개인에게 물을 수 있다. (212)
나의 세계관과 타인의 세계관이 다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소통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소통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소통의 시작은 내가 타인의 세계관을 논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시 말해서 타인이 나와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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