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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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은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르게 된다. 최근 읽은 책 중 3시간이란 최단기간을 기록한 책이 되었다. 새벽 4시, 단숨에 다 읽어버릴까 했지만 마지막 남은 몇페이지의 반전을 아껴두고 싶다는 생각에 힘겹게 눈을 감았다. 아침햇살에 묵직한 눈꺼풀을 올리며 책의 남은 페이지를 마저 읽었다. 그리고 한참을 반전의 뜻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그의 책은 그런 묘한 힘이 있다. 마치 블랙홀처럼 대책없이 빨려간다고 할까. 
 

책을 읽는 행위는 내게 책의 표지와 제목에서 받은 첫인상과 짐작, 선입견을 무참히 깨는 것이다. 줄거리는 대충 알고 읽었지만 역시 붉은 손가락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멋대로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건 분명하다. 아무튼 그런 일련의 생각들을 밀쳐두고 마지막장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 유난히 현대사회 가족의 문제를 사건의 중심에 놓고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조금 뒤틀리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이 시대 가족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한순간 전복되버릴 위기에도 유기적으로 얽히고 서로의 진심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일말의 희망을 남겨둔다는 면에서 단순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드라마적 감동까지 더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요즘 현대사회, 옛날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만들어진 한없이 가벼운 가족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집안일은 나몰라라 부인에게 떠맡긴 채 겉도는 아빠 아키오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오냐오냐하며 키워온 엄마 야에코, 오래된 학교내 집단따돌림으로 삐딱하게 커버린 중3아들 나오미. 큰 일이 생겼다는 야에코의 전화에 회사에서 급히 달려온 아키오는 집정원에서 7살짜리 여자아이의 시체를 보게 된다. 아들 나오미의 짓이라는 사실에 분노하며 경찰에 알리려는 아키오를 부인 야에코가 막아서고, 절대 아들에게 자수시킬 수 없다는 그녀의 간곡함에 아키오는 사체를 근처 공원에 유기한다. 그 뒤 분명히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갈 수 없는 경찰의 압박이 다가올 것임을 아는 아키오는 사람이라면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나는 아키오의 계획에 간담이 서늘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비도덕적인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하고 말이다. 아무리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라지만 인륜을 저버린 그의 계획에 절대악이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무도 평범하고 흔한 중상층 가정의 전형인 아키오의 가족이 그런 험악한 상황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에 섬뜩하게 다가온다. 가족이란 끈끈한 집단의 이기심이 빚어낸 참극 앞에 내 가족과 주변 가족의 모습은 어떨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신문의 사회면을 하루도 빠짐없이 장식하는 우리 시대 가족의 추악한 진실은 가족을 벗어나 사회전체의 문제까지 환기시킨다.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그들의 내면에 일어나고 있는 미세한 균열에 누구보다 가족구성원 서로가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같은 불행은 닥쳐오지 않을 것이다. 


묵직한 주제를 떠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수많은 책 중 가장 맹활약하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의 활약이 돋보인다.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 논리적인 상황판단으로 가가형사는 사건의 전개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한다. 형사로서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심한 배려로 피해자나 가해자를 배려하는 모습은 아, 정말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구나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기존의 추리소설에서 봐왔던 권위적인 형사나 독자를 가지고 노는 탐정들에게는 볼 수 없는 인간미가 뚝뚝 떨어지는 가가형사의 진면목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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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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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외부로부터 격리된 정신병원의 폐쇄병동과 개방병동에서 생활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특별히 다르지 않다. 오히려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나의 무심하고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깨닫게 만든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 달리 적게는 몇 개월부터 많게는 30년의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적이며 따뜻한 시각에서 묘사되었다.  특히 30년이 넘도록 병원에서 생활하며 살아온 주 씨가 병원친구들과 의사의 도움으로 퇴원하게 되는 과정에서는 그만 눈시울이 불거졌다. 사방이 꽉막힌 것 같은 오래된 건물 위로 파란 하늘이 어색하다. 그 하늘을 가로지르며 새 한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책의 표지처럼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비상하려는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이 비쳐든다.


어느 날 갑자기 들려오는 환청에 이끌려 아버지의 목을 조른 주 씨,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으로 통원치료를 받는 시마자키, 아버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난 어머니와 내연남을 살해한 히데마루, 집에 불을 지른 정신박약아 쇼하치와 조카 게이고, 약물중독으로 입원한 조직폭력원 시게무네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과연 무엇때문에 상처입었나 질문하게 만든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작가는 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동정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한다. 그들에 대한 애정과 교류가 캐릭터를 생생하게 하고, 환자가 아니라 한 인간대 인간으로 대면하고자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에 존경을 표하게 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느끼는 외부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냉대, 무관심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서서히 감정이입이 되어간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p.167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퇴원하려는 주씨를 막아서는 여동생 부부의 반박을 통해 대변되고 있었다. 정신병원이란 그런 곳이다. 왜곡된 진실을 마주볼 수 없어 외면해버린 사회의 음지같은 곳.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주 씨는 여동생 부부에게 공포자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30년이라고는 하지만 오래 전에 개방병동으로 와 자유롭게 외출을 하고 시장도 보는 주씨를 막아서는건 병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인간이 된다는 말처럼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사회적 편견과 가족들의 무관심이다.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면에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같다고 말하며 여동생 부부를 설득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대사에서 현실적으로 그들을 포용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누구보다 가족이 그들을 받아들여주었을 때 빠르게 안정감을 되찾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받을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있는 그들 모두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터져버린 나약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극한을 경험할 수 있고 평화로운 일상에서 밀려날 수 있다. 그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았기 때문에 더 괴로운 거라고 한다.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만드는 책이었다.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라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 말하는 히데마루의 편지내용은 그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되는 구원의 메시지처럼 울려퍼지며 내가 마치 환자인 양 뭉클해지고 말았다.

지난번 연극에서 주 씨는 천국 장면을 그렸지. 주 씨. 병원을 억지로 천국이라 생각하려 하는 거라면 그건 잘못일세.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네. 병원에서 죽는 새가 되면 안 돼.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는 날아올라 자기 둥지로 돌아가길 바라네. 그리고 주 씨의 지혜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살아주게. 그게 내 소원이야.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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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
츠지 요시키 지음, 김현숙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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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한 광장시장의 골목, 한 눈에도 시장에서 마주할 것 같지 않는 범상치 않은 외모의 그가 아저씨들 틈바구니에 앉아 빈대떡을 우물거린다. 허기진 상태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아니라, 빈대떡의 재료 하나 하나를 입 안에서 씹고 맛보는 듯 미간의 주름까지 잡아가며 신중하게 먹는 모습이 요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썩 유쾌할 것 같지만은 않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왜 조마조마한걸까? 당연히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한국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아리송한 말로 대답을 회피하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반씩 섞인 감정때문이다. 츠지조그룹교의 교장 츠지 요시키의 대답은 어떤 것이었을까? 굉장히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그럼 그렇지'하는 뿌듯한 마음에 나는 한국음식의 우월함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큼 작가인 츠지 요시키에 대한 감정은 지극히 호의적이었다. 단순히 그런 기대에서 펼쳐들었는데 이 책에는 세계를 주름잡는 6명 요리사들의 성공 노하우와 요리에 대한 철학을 작가가 나름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고 해석하고 있어 그의 요리에 대한 이해와 안목에 또 한 번 놀랐다. 좋은 내용이 많은 책이었다. 요리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진지한 프로의식에 감탄했다. 프랑스 미식문화를 선도하는 유명한 잡지 <미슐랭 가이드>에서 3스타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까다로운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6명의 스타셰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요리가 단순히 우리가 먹기 위해 만드는 생존도구가 아닌,그 시대의 문화와 한 나라의 전통까지 엿볼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리를 앞에 두고 그 요리의 배경에는 어떤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곱씹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에센스를 자신의 근본과 어떻게 접목해서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검토하고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서 수련해야 비로소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   -p.238

 6인의 요리사들이 요리를 배우게 된 과정이나 배경, 미식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밖에 없었던 요리에 대한 열정과 개성, 철학이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3스타라고 운운하며 칭송해도 나에겐 생전 맛을 볼 수나 있을지 알 수 없는 요리들이니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어려운 발음의 요리와 조리법조차 생소하고 디테일한 색감의 요리사진조차 나의 미각을 자극할 수 없었으니 텍스트이상으로는 좀처럼 해석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요리가 아니라 그 요리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다. 주먹만큼 담겨나오는 전체의 일부요리에조차 그들의 땀과 노력이 베어있다는 것까지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참 놀라웠다. 또한 그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요리사들이었지만, 분명한 건 요리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조금씩 발전시켜가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성공비결은 배워야할 점이 많았다. 꼭 미슐랭 가이드에 나와서 미식가들에게 3스타라고 인정받아야하는 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대우받는 요리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끼는 요리를 만들려면 '종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맛 내는 법, 불 조절하는 법, 소스 만드는 법, 농도, 메뉴 구성하는 법, 미각의 강약과 그 흐름, 식사가 끝난 후의 만족감 등 모든 단계에서 뛰어난 기술과 센스를 갖추지 않으면 미식가들에게 결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p.63

6인의 셰프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고 있지만, 그들이 요리를 접하게 된 계기나 요리에 대한 원칙과 신념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대부분 어렸을 때 먹었던 가족의 인상깊은 요리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스럽게 요리와 친해지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요리사가 되지 않았다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은 모두 훌륭한 셰프가 되었다. 둘째, 온고지신 정신. 전통을 받아들이고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요리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셋재는 요리에서 가장 훌륭한 재료는 '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 자기만족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 까다로운 입맛의 고객들에게 행복한 기억과 감동을 주려는 요리사로서의 근본적인 욕구와 마음가짐이다. 

앞으로 요리사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자신의 요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다. 한순간의 번뜩임이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땅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위에 표현하고 싶은 것을 더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요리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p. 260

 이 대목에서는 솔직히 요리사라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사람들은 엄마나 할머니처럼 나에게 애정을 가진 가족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시린 겨울날, 뜨거운 아랫목에서 먹었던 살얼음이 동동 떠있던 식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 후 한 번도 맛볼 수 없는 그리운 맛이 되었다.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로는 부족한 감동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요리라면 그 어떤 미식의 테크놀로지라도 뛰어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면 요리하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던 미셸 브라스의 말처럼 6인의 요리사 모두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니 생소한 요리의 맛이 혀끝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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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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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를 친친감고 새끼손톱만한 꽃망울을 터트리던 강낭콩, 노란 속내를 하늘로 활짝 드러낸 배추, 연푸른 이마를 빼족 내민 무우, 나무기둥을 타고 오르던 뽀얀 머루송이... 그녀의 행복한 만찬을 먹자고 덤비니 20년도 더 지난 아빠의 공터텃밭이 생각난다. 텃밭 머루나무 곁에서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장난감 기타를 메고 있던 남동생의 사진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딸 셋의 홀어머니곁에서 가난한 생활로 근근히 끼니를 연명한 듯 보였지만, 그녀는 산과 들의 모든 풀과 열매, 채소를 재료로 잊지 못할 만찬을 차렸던 추억을 행복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만찬에 초대된 나는 먹는내내 산으로 들로 쑥과 달래를 캐러 다니던 작가의 모습에서 나의 유년을 재생하게 되었다. 

수십가지 먹거리에 얽힌 작가의 기억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떨치고 싶은 지긋지긋함이 아닌 꿈에라도 그리운 맛이었다. 나는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부각, 머위, 초피같은 식물부터 감자, 고구마, 호박같은 흔하디 흔한 채소들이 읽는내내 자라는 풍경과 음식을 상상하게 만들며 허기질 때는 입에 침을 고이게 만든다. 시래기 다발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은 생존과 직결되있었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에 나는 겪어보지 못한 배고픔의 설움에 가슴이 아려오고, 토란탕을 끓이며 어린시절 엄마의 토란탕을 떠올리게 될 때는 작가처럼 엄마의 음식과 닮아가는 나의 음식을 발견한다. 그녀 특유의 구수한 내음과 맛깔스러운 글이 회상을 부채질한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음식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음식들을 떠올린다고 한다. 내가 토란탕을 끓이며 서둘러 세상 떠난 엄마를 야속하리만치 그리워 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명절에 내가 끓여준 토란탕을 끓여보려고 노력하다가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까지 나를 그리워할는지는 모르겠다.   -P.117

그러고보면 내가 시래기 다발을 보고 아름답다 느꼈던 것은 '배곯을 염려'가 덜어진대서 온 감정일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봐도 그것이 내 생존과 직결된 것이 아니라면 나는 거기서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가 없을 것이므로. 그러니, 아름다움은 다른 말로 여유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P.128

주변의 모든 식물들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제 몸을 주고 누군가의 행복한 기억을 지배한다는 건 참 벅찬 일이다. 열매부터 줄기, 잎까지 무농약 친환경에서 제멋대로 자라 더 향긋한 내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식물과 채소들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는 건 그런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공존하면서 더불어 살아갔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가방을 벗어던진 가시내들이 봄이면 캐온 쑥으로 쑥국과 쑥떡, 쑥버무리를 해먹고, 쓴뿌리를 잘근 잘근 씹으면서도 그게 좋아 연신 텃밭 담장아래를 파내게 만든 고들빼기, 늘 잡풀과 헷갈려 산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뽑아제낀 달래. 글을 읽으며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감겨있던 강원도 산골, 나의 일상을 떠올리며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의 그리움과 회한이 겹친다. 그 일상이 특별함이 될거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작가의 선명한 기억의 재구성과 현실적인 사진들이 오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지금도 지천으로 널린 먹거리들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재료의 근본과 성장이 다르니 옛날 엄마가 해주던 손맛도 좀체 살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마 손맛에 가까운 음식들을 찾아다니고 인심을 그리워하며 분위기에 젖고 싶어한다. 순수했던 그 시절, 필요한 것 이상을 만들지 않고 먹을만큼만 자급자족하며 행복해하고 남이 가진 것에 질투하지 않으며 나눌 줄 알았던 사람들에겐 서로에 대한 배려가 넘쳐난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을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될 때 행복한 기억으로 떠올리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 땅에서 나는 먹거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지켜줬으면 좋겠다. 

꿈에 본 것 같이나 귀한 쌀, 날마다 먹는 쌀밥.
그러나 그 쌀밥을 조금이라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나는 눈물이 난다.
쌀밥 한 그릇, 목구멍에 넣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숱한 눈물을 흘려야 했던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한테서 쌀을 빼놓고서 사실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 쌀은 단순히 입 안으로만 들어갔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몸을 이루고 정신을 이룬다. 쌀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이루는 처음과 끝이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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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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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듬어진 잔디밭 위를 훌쩍 뛰어 오른 사뿐한 여자의 발걸음. 초록이 물든 스커트자락이 돋움에 풀썩이며 흔들리고, 그와 함게 잔디밭 저편의 하얀꽃을 피운 나뭇가지도 사정없이 휩쓸린다. 때론 안정적이고 때론 불안하게 기우는 가족이란 울타리를 가뿐하게 타넘은 스물여덟명 언니들의 도발적인 고백이 담긴 책이다. '독립'이란 말로 떳떳하게 타지에서 5년을 살아오며 여자들의 부러움과 남자들의 아니꼬움을 한 몸에 받아온 나에게 이 책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멀쩡한 집놔두고 친구랑 집나와서 삽니다!'... '왜??' 몇 번이나 그 의도를 되물어오는 이들에게 나는 뒷말을 흐리며 어영부영 대답을 회피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설명하지 못한 답답함을 한 방에 떨쳐버릴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기에 경제적으로 독립해산다는 사실에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1부에 나오는 그녀들처럼 끈끈한 혈육의 정이나 가족의 품을 떠나며 눈물흘리고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내겐 오로지 창창한 앞길만 있었고 핑크빛으로 물든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남들이 한번쯤 생각한 반전은 없었다. 나는 현재도 정말 잘 먹고, 잘 놀고, 잘 살고 있다. 가끔 손녀 볼 나이라며 가뭄에 콩나듯 통화하는 엄마가 하소연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엄마를 위해 결혼할 생각은 없으므로 소 귀에 경읽기다. 엄마도 내 확고함을 눈치챘는지 명절에 마주봐도 결혼얘기는 잘 하지 않으신다. 대신 혼자 외롭게 감당해야할 노후를 생각하라며 체념어린 대안들로 과년한 딸년의 마음을 휘젓곤 하신다. 그렇기에 스물여덟명의 신념이 자명한 나의 현실로 다가와 대책없이 솟아나던 마음의 잡초들을 뿌리뽑아 주었다. 

3부로 나뉘어 들려주는 이들의 이야기는 1부에서 가족들 곁에서 힘겹게 홀로서기를 시도하거나 이별을 준비하는 그녀들의 다양한 사연이 실려있다. 2부에서는 비혼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에게 실제로 제기되는 문제들과 그에 맞서 대안을 찾고, 다양한 방식으로 비혼만의 현실적인 난관을 헤쳐가려는 굳은 의지와 노력이 엿보인다. 특히 비혼들이 가장 걱정하는 노후나 사후에 관한 리얼한 고찰과 실천이 담겨있어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준비에 놀라기도 했다. 아무리 혼자를 부르짖어도 인간이기에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공동체 생활이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야기는 크게 공감했다. 3부에서는 비혼이기에 감수해야하는 은근한 비난과 무시에도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쾌활한 인생살이로 좀 더 구체적인 희망의 모습을 비춘다.  

때론 당당하게 비혼을 외치는 언니에게도 한순간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무시무시한 근심이 있다. 내가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건 나이듦으로써 '의존적'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심적으로 나약해져 누구에게 기대고 싶어진다거나 행여 팽팽한 긴장을 풀어버릴까 우려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언니들의 고백에 용기백배해서 나는 내 신념에 불을 지피고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끝까지 부채질해 줄 생각이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대안가족과 무덤까지 따라와 줄 수 있는 든든한 친구를 지원군으로 끊임없이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결혼으로 행복을 찾은 사람에겐 결혼만큼 좋은 제도가 없겠지만, 결혼으로 불행해진 사람에겐 족쇄일 뿐이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한다면 해보고 후회하라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난 후회에 대해 회의적이고 30대 아직도 방황을 끝내지 못한, 어쩌면 방황하다 끝내 길을 잃을 지라도 나를 위해 살고 싶은 행복한 이기주의자다. 여전히 바람에 흔들림을 멈추지 못한 나와 같은 언니의 속마음엔 동병상련의 기쁨을 느꼈다. 집을 뛰쳐 나온 그녀들이 가장 몰매를 많이 맞는 과도기가 30대이다. 준비되지 않은 비혼에겐 10년 뒤의 미래도 불안하지만 나에겐 당장 중요한 30대의 현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절실하다. 비혼자를 향한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 그리고 참견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길 바래본다. 아직도 철들지 않았다며 혀를 쯧쯧 차더라도 한 번 생각해보라.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정말 행복한 지...속보이는 걱정이나 비꼬는 눈초리 대신 용기있는 그녀들의 선택에 쿨하게 박수쳐주자.

30대의 방황은 20대만큼 적나라하거나 당당하지 못한 채로, 모호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30대에 들어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만 가끔 그런 얘기가 나오곤 했다. 30대 중반이 되면 뭔가 안정되어 있을 것 같다는 얘긴 정말 뭘 모르고 하는 소리야. 진정한 질풍노도의 시기는 30대라고.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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