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이는 미식의 테크놀로지
츠지 요시키 지음, 김현숙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왁자지껄한 광장시장의 골목, 한 눈에도 시장에서 마주할 것 같지 않는 범상치 않은 외모의 그가 아저씨들 틈바구니에 앉아 빈대떡을 우물거린다. 허기진 상태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아니라, 빈대떡의 재료 하나 하나를 입 안에서 씹고 맛보는 듯 미간의 주름까지 잡아가며 신중하게 먹는 모습이 요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썩 유쾌할 것 같지만은 않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왜 조마조마한걸까? 당연히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한국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아리송한 말로 대답을 회피하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반씩 섞인 감정때문이다. 츠지조그룹교의 교장 츠지 요시키의 대답은 어떤 것이었을까? 굉장히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그럼 그렇지'하는 뿌듯한 마음에 나는 한국음식의 우월함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큼 작가인 츠지 요시키에 대한 감정은 지극히 호의적이었다. 단순히 그런 기대에서 펼쳐들었는데 이 책에는 세계를 주름잡는 6명 요리사들의 성공 노하우와 요리에 대한 철학을 작가가 나름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고 해석하고 있어 그의 요리에 대한 이해와 안목에 또 한 번 놀랐다. 좋은 내용이 많은 책이었다. 요리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진지한 프로의식에 감탄했다. 프랑스 미식문화를 선도하는 유명한 잡지 <미슐랭 가이드>에서 3스타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까다로운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6명의 스타셰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요리가 단순히 우리가 먹기 위해 만드는 생존도구가 아닌,그 시대의 문화와 한 나라의 전통까지 엿볼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리를 앞에 두고 그 요리의 배경에는 어떤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곱씹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에센스를 자신의 근본과 어떻게 접목해서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검토하고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서 수련해야 비로소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   -p.238

 6인의 요리사들이 요리를 배우게 된 과정이나 배경, 미식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밖에 없었던 요리에 대한 열정과 개성, 철학이 굉장히 흥미롭게 그려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3스타라고 운운하며 칭송해도 나에겐 생전 맛을 볼 수나 있을지 알 수 없는 요리들이니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어려운 발음의 요리와 조리법조차 생소하고 디테일한 색감의 요리사진조차 나의 미각을 자극할 수 없었으니 텍스트이상으로는 좀처럼 해석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요리가 아니라 그 요리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다. 주먹만큼 담겨나오는 전체의 일부요리에조차 그들의 땀과 노력이 베어있다는 것까지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참 놀라웠다. 또한 그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요리사들이었지만, 분명한 건 요리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조금씩 발전시켜가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성공비결은 배워야할 점이 많았다. 꼭 미슐랭 가이드에 나와서 미식가들에게 3스타라고 인정받아야하는 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대우받는 요리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끼는 요리를 만들려면 '종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맛 내는 법, 불 조절하는 법, 소스 만드는 법, 농도, 메뉴 구성하는 법, 미각의 강약과 그 흐름, 식사가 끝난 후의 만족감 등 모든 단계에서 뛰어난 기술과 센스를 갖추지 않으면 미식가들에게 결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p.63

6인의 셰프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고 있지만, 그들이 요리를 접하게 된 계기나 요리에 대한 원칙과 신념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대부분 어렸을 때 먹었던 가족의 인상깊은 요리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스럽게 요리와 친해지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요리사가 되지 않았다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은 모두 훌륭한 셰프가 되었다. 둘째, 온고지신 정신. 전통을 받아들이고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요리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셋재는 요리에서 가장 훌륭한 재료는 '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 자기만족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 까다로운 입맛의 고객들에게 행복한 기억과 감동을 주려는 요리사로서의 근본적인 욕구와 마음가짐이다. 

앞으로 요리사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자신의 요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다. 한순간의 번뜩임이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땅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위에 표현하고 싶은 것을 더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요리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p. 260

 이 대목에서는 솔직히 요리사라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사람들은 엄마나 할머니처럼 나에게 애정을 가진 가족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시린 겨울날, 뜨거운 아랫목에서 먹었던 살얼음이 동동 떠있던 식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 후 한 번도 맛볼 수 없는 그리운 맛이 되었다.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로는 부족한 감동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기 위해 그들은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요리라면 그 어떤 미식의 테크놀로지라도 뛰어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면 요리하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던 미셸 브라스의 말처럼 6인의 요리사 모두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니 생소한 요리의 맛이 혀끝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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