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만으로 음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외부로부터 격리된 정신병원의 폐쇄병동과 개방병동에서 생활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특별히 다르지 않다. 오히려 사소한 일상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나의 무심하고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깨닫게 만든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 달리 적게는 몇 개월부터 많게는 30년의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적이며 따뜻한 시각에서 묘사되었다.  특히 30년이 넘도록 병원에서 생활하며 살아온 주 씨가 병원친구들과 의사의 도움으로 퇴원하게 되는 과정에서는 그만 눈시울이 불거졌다. 사방이 꽉막힌 것 같은 오래된 건물 위로 파란 하늘이 어색하다. 그 하늘을 가로지르며 새 한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책의 표지처럼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비상하려는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이 비쳐든다.


어느 날 갑자기 들려오는 환청에 이끌려 아버지의 목을 조른 주 씨,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으로 통원치료를 받는 시마자키, 아버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난 어머니와 내연남을 살해한 히데마루, 집에 불을 지른 정신박약아 쇼하치와 조카 게이고, 약물중독으로 입원한 조직폭력원 시게무네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과연 무엇때문에 상처입었나 질문하게 만든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작가는 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동정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한다. 그들에 대한 애정과 교류가 캐릭터를 생생하게 하고, 환자가 아니라 한 인간대 인간으로 대면하고자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에 존경을 표하게 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느끼는 외부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냉대, 무관심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서서히 감정이입이 되어간다. 


그런데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p.167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퇴원하려는 주씨를 막아서는 여동생 부부의 반박을 통해 대변되고 있었다. 정신병원이란 그런 곳이다. 왜곡된 진실을 마주볼 수 없어 외면해버린 사회의 음지같은 곳.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주 씨는 여동생 부부에게 공포자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30년이라고는 하지만 오래 전에 개방병동으로 와 자유롭게 외출을 하고 시장도 보는 주씨를 막아서는건 병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인간이 된다는 말처럼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사회적 편견과 가족들의 무관심이다.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면에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같다고 말하며 여동생 부부를 설득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대사에서 현실적으로 그들을 포용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누구보다 가족이 그들을 받아들여주었을 때 빠르게 안정감을 되찾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받을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있는 그들 모두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터져버린 나약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극한을 경험할 수 있고 평화로운 일상에서 밀려날 수 있다. 그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았기 때문에 더 괴로운 거라고 한다.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만드는 책이었다.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라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 말하는 히데마루의 편지내용은 그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되는 구원의 메시지처럼 울려퍼지며 내가 마치 환자인 양 뭉클해지고 말았다.

지난번 연극에서 주 씨는 천국 장면을 그렸지. 주 씨. 병원을 억지로 천국이라 생각하려 하는 거라면 그건 잘못일세.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네. 병원에서 죽는 새가 되면 안 돼.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는 날아올라 자기 둥지로 돌아가길 바라네. 그리고 주 씨의 지혜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살아주게. 그게 내 소원이야.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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