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저택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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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미미여사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독이다. 몸의 독, 마음의 독, 인생의 독이 된다. 그렇다면 가짜 해결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낫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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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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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by 마쓰이에 마사시

 

읽은 날 : 2025.8.21.

 

소설의 첫 장면은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를 떠올리게 했다. 물길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시신을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마쓰이에 마사시라니. 스릴러라도 쓰시려나 싶다가도 띠지의 광고문구가 걸렸다. ‘섬세한 연애소설이란다. . 그렇군.

 

30대 중반의 미혼여성 무요 게이코는 동거하던 남자와 헤어지고 도쿄에서의 생활을 정리한 뒤, 아니 이 부분은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명확히 설명하자면, 남자와 헤어졌기 때문에 도쿄 생활을 정리했다기 보다는 도쿄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그다지 뜨겁지도 않던 동거남과 결별을 택한 쪽에 가깝다.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았는가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아니고. 마쓰이에 마사시 인물 특유의 무덤덤함이라고 해야하나, 과하게 섬세하기에 오히려 대범하게 구는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도쿄를 떠나기로 한 게이코가 선택한 곳은 홋카이도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중학교 시절 3년간 홋카이도의 에다루 라는 곳에 살았었고, 그것을 한줄기 연고로 삼아 사회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또다시 에다루 옆 소도시 안치나이를 찾아 그곳 이주민(더 정확히는 이주 정착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끝내 기억이라는 연고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홋카이도의 안치나이 마을로 이주에 성공했다.

 

30대 중반, 지지부진한 연애는 끝났고, 적당히 모인 돈도 있고, 내가 아는 이도, 나를 아는 이도 없는 전혀 낯선 곳에 가서 조용히 살 수 있는 배짱이 생길만한 나이도 되었고. 형태가 정해져 있고 그날 그날 끝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던 게이코는 안치나이 마을 우체국의 비정규 배달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도쿄에서의 월급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집값을 포함한 모든 물가가 대체로 도쿄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한 곳인지라, 처음엔 5년을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겠다 예상했다가 거기에 2년 정도를 더 붙여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산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아는 자의 선택이다.

 

이런 그녀에게, 일 조차도 손에 잡힐 듯 형태가 정해져 있고 시작과 끝이 선명한 것을 하고 싶어 했던 그녀의 앞에 테라토미노 가즈히코가 등장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밑도 끝도 없이 “‘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 여기에서 프랜시스와 살고 있”(p.39) 다고 설명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을 듣는다고 하고, 누가 들어도 여자의 이름일 수밖에 없는 프랜시스와 살고 있는 이 남자의 접근은 대범하고 당돌하다. 20대에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던 밀고 당기기의 과정이 산뜻하게 생략되어 버린 시작을 성급한 정열의 탓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저돌적으로 덤비는 가즈히코를, 게이코는 다소 두려워하면서도 순순히 그 손을 잡는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정확히는 이 사람이 포함된 내일을 꿈꾸고 계산하지 않기에 밀고 당기는 탐색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감정만을 남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연애일 수 있겠다.

 

우리 집 전기는 여기에서 만든 걸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갓 태어난 새 전력.”

왜 가즈히코가 그렇게 우쭐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디오라는 것은 전기의 순도에 따라서 음질이 완전히 달라지거든.”

전기에도 순도라든가 불순이라든가, 그런 게 있는 거야?”

물론이지. 벽의 콘센트는 전용 콘센트를 쓰는 게 좋고, 집 안에서도 고급 전기를 쓰지 않으면 안 돼.”

고급?”

다른 방을 돌아서 즉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나 에어컨에 뺏긴 뒤의 하급 전기로는 음이 탁해지거든. 그러니까 까다로운 사람은 벽의 콘센트 같은 것을 쓰지 않고, 전봇대에서 직접 전기를 끌어오기도 해. 웃기는 소리 같지만 내가 직접 귀로 듣고 확인 한 거니까 사실이야.”

(p.79)

 

이것이 소설적 허용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막 귀인 나로서는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어떤 경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전기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고급 전기의 이야기는 이 둘의 연애담과 닮아있다.

 

가즈히코와 연애를 하던 초반, 게이코는 다시 한 번 오필리아의 악몽을 꾼다. ‘가라앉는오필리아와 끝내 가라앉아 그 생을 다하는 프랜시스. 그리고 불순물이 섞여들며 변질되어가는 그들의 연애는 계속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마쓰이에 마사시의 두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한국에 소개되기로는 네 번째 소설이지만, 집필 순서로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집필한 후 쓴 두 번째. 그래서 두 소설의 인물이나 분위기는 여러모로 많이 닮아있다. 이건 김춘미라는 번역가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입혀지는 이유일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불순물을 모두 제거한, 아름다움.

 

2025.9.3.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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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테일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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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테일by 스티븐 킹

 

읽은 날 : 2025.8.20.

 

2020-2022년은 정말 이상한 해였다. 중국 발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모든 일상이 멈췄다. TV를 켜면 오늘 발생 확진자 몇 명의 뉴스가 뜨고, 등교와 출근이 멈추고, 하얀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병원에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길게 늘어섰던 줄, 봉쇄되었다고 소문난 중국의 도시와, 그 도시의 입출구를 지키고 서 있던 군인, SNS를 통해 중계되던 참상과 괴담들. 방역복을 구하지 못해 쓰레기 비닐을 뒤집어 쓰고 진료를 보던 미국(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로 부유한 나라, 그 미국)의료진의 사진과 뉴욕 거리에 줄줄이 늘어놓았던 바디백들. 냉동탑차에 가득차 있다는 시신의 소문. 이태리 신문의 1면을 빼곡이 채웠던 사망자의 명단들.

 

그 와중에 대한민국은 그나마 이 코로나 19라는 낯선 전염병을 잘 콘트롤 했다. 몇몇의 영웅이 탄생했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거하게 끌어올랐다. 그 틈새를 뚫고 개신교는 여전히 지랄염병(이건 지랄염병이라는 표현 이외에는 쓸 말이 없다. 이런 때 쓰라고 지랄염병이라는 단어가 나왔나 싶기도 했다)을 떨었다. 그들이 믿는 신은 얼마나 무능하기에 그들이 다니는 교회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했다. RNA 백신이라는 것에 대하여, 바이러스와 세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전 국민이 공부를 하던 때이기도 했다. 바이러스가 과연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대하여, 인류가 바이러스에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하여, 정보가 곧 생명체가 되는 현상을 실시간 목도하며 세상은 실시간으로 변화해 나갔다. 아직은 한참이나 멀었으리라 했던 온라인 수업이 급히 도입되었고, 재택근무도 빠르게 정착되었다. 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학원에서는 대면 수업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흔했다.

 

20217, 충무공이 덜컥, 밀접 접촉자 판정을 받았다. 졸지에 한 집에 같이 살던 나와 중학생 딸아이 둘도 자가 격리 2주 판정을 받았다. 한창 코로나 변이 델타가 위용을 부리던 시기였다. 구청에서 자가 격리 키트가 왔다. 햇반과 3분 카레, 소독제 등등이 들어있던 박스가 네 개. 남편과 둘이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고 계단을 걸어내려가 보건소로 갔다. 기나긴 줄의 끝에 붙어서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그렇게, 자가격리 13일만에 충무공은 증상이 발현되어 생활치료시설로(그나마 증상이 경미하단 이유로) 구급차를 타고 갔고, 집엔 방역복을 입은 소독요원이 들이닥쳐 남편이 있던 방에 소독제를 들이 붓다시피 뿌리고 갔다. 그리고 남은 나와 아이들은 추가로 다시 14일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전의 13일을 포함하면 한 달에 가까운 격리였다. 성동구청에서는 자가격리 키트를 또 보내주었다. 이번엔 시리얼도 들었던가. 격리 20일이 다 되어갈 때쯤 낯선 전화도 받았다. 성동구청 직원이란다, 니가 자가격리를 충실히 하고 있는지 보러왔으니 현관문을 열고 얼굴을 보이란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직원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개만 내밀고, 우리 셋도 현관문을 빼꼼히 열어 얼굴만 보였다. 이후 유해진 격리 지침들을 생각해 보면(격리 일수가 10, 7일로 줄었고, 증상이 나와도 경미한 경우 가정 요양이 가능해졌다. 어떻게 아느냐면, 이후에 큰놈이 학교에서 또다른 변이 코로나 오미크론에 걸려왔고, 이어 충무공 회사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등등) , 그러고 어떻게 버텼나 싶게. 코로나는 그야말로 전 지구적 사태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한 단어였다. 4인 이상 모임금지. 크리스마스와 명절이 사라진 몇 해였다.

 

14세기,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쓰여졌다. 피렌체 공화국에서 발생한 흑사병을 피해 교외로 피신한 10명의 남녀가 열흘간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형태의 소설이다.

 

그리고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은 이 전지구적인 사태를 맞아 집에 들어앉아 혼자 소설을 썼다. 질병이 만연한 나라를 구하러 가는 찰리 왕자의 이야기를. 카뮈가 페스트를 쓰고, 다니엘 디포가 전염병 연대기를 쓴 것처럼. 코로나 시기에 쓰여진 페어리 테일이 질병으로 몰락해 가는 나라를 구하러 가는 페어리 테일인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소설은 스티븐 킹의 이야기답게 박진감 넘치고 섬세한 묘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말로 딱 스티븐 킹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결국, 인간이 어쩌해 볼 수 없는 사태를 구원하는 것은 이야기인 것이다. 찰리 왕자는 우물 속 동화의 세계를 구했고, 스티븐 킹은 코로나 속 인류를 구했다. 그 이야기의 힘으로.

 

2025.8.21.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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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21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초반에 확진 판정 받아 고생하셨어요. 저는 거의 끝날무렵이어서 상대적으로 좀 편하게 격리했었는데요. 이 책이 코로나시절에 질병으로 몰락해가는 나라를 구하러 가는 왕자 얘기라니 설정은 좀 유치한데 스티븐 킹이니까요
당연히 재밌을거같아요

아시마 2025-08-21 19:11   좋아요 1 | URL
그 유치한 설정마저 이겨내는게 스티븐 킹이죠. 재미있습니다. 이 작가 이세계 탐험물을 곧잘 쓰잖아요? <리시 이야기>의 ‘부야문’ 도 떠오르고.

초창기 감염이라(전 감염 안됐습니다만 ㅎㅎ) 자가 격리 지원금도 꽤 쎘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4인가족기준 14일 상한으로 140쯤 받았어요. 이듬해 오미크론에 큰놈이 걸려왔을 땐 100만 주고 그 뒤론 안주더라고요. ㅎㅎㅎ 저 제 주변에선 코로나로 나랏돈 젤 많이 받은 여자. ㅎㅎㅎ
 
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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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와 김춘미의 만남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요. 제가 일본문학 번역가를 처음으로 인지하고 이름을 확인하게 한 사람과 작가가 김춘미와 마쓰이에 마사시죠.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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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 x김춘미 가
비채에서 8/18 출간예정이란 알람이 떴어요!!! 제목은
<가라앉은 프랜시스>래요!!!

김춘미 샘 번역의 마쓰이에 마사시(aka.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를 좋아하신다면 기대하시라!!!

Ps. 출판사 님하, 저 분명 두편 넘겼다 들었습니다만?????

Ps2. 출판사에서 올린 작가 파일을 보니 <거품> 이라는 낯선 제목뒤에 (비채근간) 이라 꼬리표 단 거 보니 곧 나오는 건가요???

일해라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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