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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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김영희가 생각났다. 하긴 뭐, 한국인여자 독일인 남자의 결합인데다 거주지역도 독일 뮌헨이라는 점에서 동일하고, 여자가 연상이라는 점, 남자가 공학도 (김영희의 남편 토마스는 수학도였던가?)라는 점도 비슷해서 여러모로 연상작용을 일으킬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글쓴이 두 사람의 직업탓인가 (임혜지는 건축학자, 김영희는 예술가) 김영희의 책이 감성쪽을 건드린다면 임혜지의 책은 이성쪽을 건드린다. 게다가 이 책은 놀랄만큼 유머러스 하다! 

우리 큰놈은 천기저귀로 키웠다. 큰놈이 9개월쯤이었나 남편의 친구들과 가족동반 1박 2일로 여행을 가면서도 짐가방에 천기저귀를 꾸역꾸역 넣어가서 사람들을 기함하게 만들었던 전력이 있다. 다들 오호, 네가 그 말로만 듣던 에코맘이구나, 알뜰하구나 했는데. 글쎄. 솔직히 나는 아이를 위해 이기적인 엄마였을 뿐 별로 에코적이지도 알뜰하지도 못했다고 고백한다. 천기저귀가 아이에게 좋다길래 천기저귀를 썼을 뿐, 지구 환경은 내 생각 밖의 일이었다. 천기저귀가 종이 기저귀에 비해 쌌다는 생각도 안든다.  

아이를 낳아 집에 데려와 한달이 지났을 때 수도 검침원이 벨을 눌렀다. 수도 사용량이 한달 사이 두배로 뛰었는데 어디 누수가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아이를 낳아서 천기저귀를 쓸 뿐이다, 했다. 큰놈이 기저귀를 떼고 한달이 지나자 수도 검침원이 또 벨을 눌렀다. 수도 사용량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새로 이사오셨냐 하더라. 아니다, 천기저귀를 더이상 쓰지 않을 뿐이다, 했다. 

한장에 3000원 가까이 하는 일본제 빨랫비누(아는 엄마들은 안다, 샤본다마 라고.)와 역시 그 브랜드의 표백제로 아이 기저귀와 내복을 폭폭 삶아(한번 삶을때 한시간씩 삶으니 남편은 옷을 고는 거냐 묻더라.) 뜨거운물로 세탁기를 돌렸다. 그걸로도 성에 안차서 헹굼 추가를 두번씩 꼭꼭 했다. 기저귀는 6개월이 안되어 너덜너덜해지고, 내복 시보리는 죄다 늘어나서 둘째는 입지도 못하게 되었다. 가스비는 묻지 마시기를. 

첫째라고 그 요란 난리 법썩을 떨고 애를 키우고 났더니 제정신이 좀 들었다. 한달에 세탁 비누값만 몇만원을 쓰고 수도요금이며 가스요금이며, 종이기저귀의 해악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를 칭송하고 시어머니가 날 알뜰하다고 예뻐 할때마다 나는 은밀히 얼굴을 붉혔다. 종이기저귀 사용하는 것의 두배 이상의 비용이 들었고, 환경에 끼친 해악은 아마, 열배쯤은 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놈은 진짜 우리 가정 경제와 지구 환경을 위해 종이기저귀를 사용하기로 했다. 큰놈 키울땐 종이 기저귀 쓰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오죽하면 여행갈때까지도 천기저귀를 챙겨갔을까. 시댁 친정 내려갈땐 당연히 천기저귀 싸짊어 지고 다녔다.) 종이 기저귀도 애는 잘만 크더라.  

그런 생각을 할 때 이 책을 읽었다.  

9리터로 샤워를 한다는 남자. 9리터면 도대체 어느정도의 물인가 궁금해서 대충 계량해봤더니 2리터들이 생수병 네개반. 헉. 세수한번 하면 땡이겠다.  

작가는 평범한 한 사람 한사람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역설하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나 하나가 끼치는 해악이 지구 환경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 정말 지구야 미안해, 다.  

세상은 앞에서 활약하는 주연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배경을 이루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주연이 아님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이 '배경'의 위력을 항상 생각하며 '좋은 배경'이 되겠다는 뜻으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씨를 뿌리며 사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기로했다. 티끌인 나에게 태산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p.71 

생각해보면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소비를 많이 하는지. 책의 과소비에 대해서만큼은 반성 못하겠지만, 반성을 안한다고 해서 과소비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음식에 관해서도 그 외 기타 등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꼭 필요해서 사는 것의 몇배를 소비한다. 과소비를 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더 많은 시간의 노동을 해야 하고. 이 악순환.  

새해에는 모든 것에 대해 알뜰해져야 하겠다. 나의 시간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뜰하게, 의미없이 소비하는 시간들을 줄여야겠다. 물론 이 책에서는 노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을 하지만. 무의미하게 흘려버리는 시간이 노는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올해의 목표는 알뜰함이다. 

올 초에 이 책을 읽게되어 참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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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1-04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해겨울~ 이랑 다섯째 아이 읽어야 하는데 아시마님이 또 지름신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두께랑 글씨체 보고 각오좀 하고 있어요. 다 읽고 사야겠지요? 저좀 말려주세요.

아시마 2010-01-05 00:01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데요, 책 지름신은 그 어떤 지름신보다 강력하셔서 말려지지가 않아요. 그냥 신의 이끄심에 따라가심이 지당하셔요. 호호호호호호.

덕수맘 2010-01-0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저두 옷욕심은 특별하게 없는데 책 욕심은 어떡해 잘 안되네요..ㅋㅋ

아시마 2010-01-05 23:0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옷은 10자 장롱 세칸중 한칸 반이면 충분한데 책장은, 이미 방 하나를 책장으로 둘러놓고, 벌써 책이 또 넘치네요. -_-;;; 책장 또 사면 안된다고 충무공이 애원하고 갔는데 말이죠. 아. 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