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Paperback, Revised) - Penguin Classics
잭 케루악 지음 / Penguin Books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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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특성을 한 마디도 정의한다면 '충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충동이 있어야할 자리에 계획이 자리잡는다면 젊음과 안녕을 한거다. 나이들면서 쌓이는 경험은(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행동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게끔 몰아간다. 결과가 가져다주는 득실을 무게질하는 삶으로 접어든다면 딘 모리아티와 살의 우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딘은 살이 억제하도록 배웠던 충동을 부활시키는 인물이다. 딘을 만나러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혼자 여행을 한다. 파트 원인데 딘과 함께 한 여행 기록인 파트 투 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늘 망설였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펌프질한 딘을 찾아가는 여정은, 딘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존의 익숙한 것들을 툭툭 털고 두 발로 걷는다. 물론 춥고 힘들다. 히치하이크를 하면서 전진과 굶주림 해결에만 집중하는 아주 단순한 삶은, 도시인한테는 비참해 보일지 모르지만 방랑 중독자들한테는 중요하고 그것만 해결되는 행복하다. 히치하이크를 하지 못한 밤새 떨거나 걷기도 하지만 두려움은 없다. 중요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지.  

"..I was beginning to get the bug like Dean. He was a con-man, he was simply a youth tremendously excited with life and though he was a con-man, he was only conning because he was so much to live and to get involved with people who would otherwise pay no attention to him....."

이렇듯 딘 일당과 살의 공통분모는 호보의 삶에 대한 충동이다. 호보들한테 소유권의 개념은 없다. 돈이 있는 사람이 샌드위치와 담배, 맥주를 사고 돈이 없는 사람은 같이 먹으면 된다. 다음에 돈이 생기면 자신도 똑같이 샌드위치와 맥주를 살테니까. 가진 게 없기에 더 쉽게 나누고 집과 집안을 채울 살림살이에 대한 욕망 대신 등을 펴고 하룻밤 누울 곳만 있으면 되니까 저축할 필요도 없다. 차비가 없으면 히치하이크를 하고 히치하이크를 못하면 걸으면 된다. 그들에게 휴식은 간단하다. 심신이 회복되면 그들은 또 길을 나선다. 딘이 카미유랑 가정을 이루고 정착해 잠깐 사는 동안 딘은 파괴된다. 일을 하다 손가락이 부상을 당하고 깁스 잘못해 감염되서 절단하고 골수염에 걸린다. 살기 위해서 방랑자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딘에 대한 절대적 찬사를 보내는 살의 시선은, 살 자신은 딘과 같은 진정한 호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일 거다. 마지막 장에서 오페라를 보러가면서 떠나는 딘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 앉아있는 뉴요커가 살이다.  

아주 음울하고 추적추적한 게 요즘 날씨랑 아주 어울리며 멜랑콜리에 빠지는 걸 자극한다. 호보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경하지만 나 역시 살 같은 도시인이다. 방랑벽은 마약처럼 강한 중독성이 있어서 올해가 가기 전에 길을 떠날 것이지만 설렘이나 흥분이 예전 같지 않다. 그저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와서 똑같이 살기 위해서고, 떠나기 전에는 이러저러한 준비계획을 세워야한다. 숙소와 이동수단을 걱정하면서 최소한이라도 예약하고 떠나야 안심인 여정은 호보의 무소유 정신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오히려 도시인이라면 꼭 갖춰야하는 덕목인 멋진 휴가 개념이기에 떠나는 게 홀가분한 게 아니라 머리가 아프고 고단하다. 난 이렇게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하니...삶에 대한 충동글이나 자꾸 찾아 읽고 있겠지만. 살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정해진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게 나 자신이긴 하지만 나 자신을 바꾸는 게 가능하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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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트의 자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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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영화는 진부해지기 쉽다. 한 인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감독의 시선이 관객한테는 그저 아이같은 천진함처럼 보여지고 감독이 묘사한 인물에 대해서는 정작 심드렁해지기 일쑤다. <낭트의 자코>는 전기 영화란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지만 아주 특별한 전기 영화다.  

아녜스 바르다의 남편인 자크 드미의 유년기를 담은 영화지만 자크 드미에 대한 애정을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남편의 재능에 대한 지나친 찬사가 아니라 어린 자크 드미의 과정을 따뜻하고도 유머있게 재구성한다. 마치 성장영화처럼 다가온다. 2차 세계 대전 무렵, 우리로 치면 단칸방에서 사랑 듬뿍 받으면서 어린 자코는 인형극, 영화, 오페레타를 즐겨본다. 보는 것에서 만드는 단계로 이행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영화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이어지고 열정만큼이나 재능도 있고 무엇보다도 끈기가 있다. 첫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그 끈기에 정말 대단한 소년이란 생각이..^^;  그의 끈기에 마침내, 아버지도 굴복한다. 영화는 자크 드미가 파리 영화학교에 입학하면서 끝이난다.  

유년기의 여러가지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자크 드미의 영화에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영화 클립들이 삽인된다. <쉘부르의 우산>, <당나귀 공주>, <로슈포르의 숙녀들>..등등.  이런 장면들에서감독이 어린 자코를 사랑스런 시선으로 보는 게 느껴지는데 이런 점이 다른 전기영화랑 다르게 만든다. 전기영화가 찬사나 경건한 숭배라면 아녜스 바르다는 그냥 사랑하는 아는 꼬마로 보는 게 더 정감있다. 아마도 부부라서 그런게 아닐까. 어렸을 때 음악을 좋아햇던 자크 드미가 뮤지컬을 만드는 건 예정된 건지도 모른다. 중간중간에 자크 드미의 온화한 인터뷰 장면도 삽입이 되는데 영화적 형식 면에서도 세련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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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4 1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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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4 2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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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1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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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2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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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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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2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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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화 비밀 - 개정판 생각나무 ART 1
모니카 봄 두첸 지음, 김현우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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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미술책이다. 읽어도 읽어도 새로운 게 미술책이다.;; 그림 읽어주는 다른 책을 접하지 않은 사람한테 입문서로 꽤 괜찮은 책이지만 좀 불만스러운 부분은 저자의 목소리가 좀 일관되지 않은 경향이 있다. 폴록 부분 먼저 읽고 흥미로워서 뭉크편을 읽었는데 뭉크에 대한 해설은 좀 피상적이고 변두리 사건을 늘어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내 탓도 있을 게다. 폴록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기에 저자의 관점이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폴록이 한 말을 읽으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잡생각을 좀 해봤다.  

현대미술은, 확실히, 관객을 위한 것은 아니다. 폴록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를 즐겼다고 한다. 관객은 화가가 아니기에 결과물을 감상하는 법을 배우고 당연시한다. 화가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림을 완성했는지가 그림을 감상하는 데 분명히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결과물에서 과정을 즐길걸 강요하는 그림은 좋아할 수 없다. 도박하는 사람이 판돈을 잃든, 몇 배로 불렸든, 무용담이 될 수 있다. 노름꾼은 베팅하는 과정에서 스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노름꾼과 같은 스릴을 느낄 수는 없다. 듣는 사람한테 노름이 흥미로울 때는 결과가 어떤 사건을 가져왔을 때 뿐이다. 그러니 화가가 작업 과정에서 어떤 엑스터시를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감상자는 그 엑스터시를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엑스터시를 짐작해서는 엑스터시에 이를 수 없다.  

대신 이런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다. 현대미술은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게 만든다. 전형화된 기법이 있는 게 아니니까 창작자가 의도를 가지고 작업 과정을 즐겼다면 작품이라고 칭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동조해준다면 더 의미있고.  

문득 디지털 시대에 글을 비교하고 싶어진다. 글이 전문적 훈련을 받은 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라도 구사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했다. 미문이나 비유법보다는 사고를 활자화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게 목적인 세계 중심에 블로그가 있다. 블로그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과 허영을 동시에 불어넣어 주었다. 그림처럼 물감이나 캔버스를 준비해야하는 수고로움도 필요치 않다. 그러나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 그림도 의도가 있다고 작품은 아닌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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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삶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3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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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내게 좋은 느낌이 아니다. 한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개인적 기억에서 파생할 수 밖에 없는데 내가 본 이탈리아는 끔찍까지는 아니어도 번잡하고 치열해서 여행객으로서 한가함을 누리고 싶은 기분을 잡치게 했던 곳이다. 첫 방문 때 너무 좋았던 곳을 다시 더듬어갔던 베네치아에서는 최악의 숙소 전쟁을 치뤘고 카프리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내릴 때 아수라장이었고 로마에서 탔던 모든 버스는 만원이어서 목적지에서 내리기위해 운전기사한테 소리쳐야 했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본 낭만적 피렌체를 기대한다면 더더욱 실망거리로 차 있는 게 이탈리아다. 게다가 유로로 바뀌기 전 화폐인 리라를 한 다발씩 가지고 다녀야했다. 카드가 안 되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관광객들이 현금을 소지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정책으로 나라가 구제하지 못한 가난을 메우는 거라고. 소매치기는 극성이었고 정부가 알면서 묵인한다는 말이 여행객들 사이에는 떠돌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 열흘 남짓한 시간은 심신의 고갈이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내 짧은 체류로 가진 기억 조각들 보다 몇 만 배는 치열한 장면들로 소설은 시작한다. 어디나 쓰레기와 진창, 배설물이 있고 주인공 톰마소와 그 친구들은 한마디로 양아치다. 이들이 양아치로 살아가는 이유는 양아치로 살아가지 않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눈 뜨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도둑질을 하고 밤새 거리를 쏘다니며 술을 마신다. 어울리던 누군가가 안 보이면 감옥에 간 거고 어느 날 출소해서 다시 건달로 살다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인간으로서 품위나 우아함은 커녕 최소한의 존엄마저도 지키기 힘든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홍수가 난다. 판자집들은 폭우에 쓸려간다. 계속되는 사건사고 속에 아프다는 절규조차 사치다. 재난 속에서 톰마소의 선행도 죽음으로 보답을 받는다. 절망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숨찬 재앙의 연속들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나 집을 잃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파졸리니의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그곳엔 그리스도의 도움도, 성모 마리아의 도움도 없었다."란 문장이 파졸리니의 의도를 잘 말 해준다. 마치 무슨 르포를 보고 있는 것 같이 생생하며 빨리 책표지를 덮고 싶었다.  

이탈리아에는 파졸리니와 달리 낙천적 관점의 작가도 많다. 많은 유럽 출신의 화가나 작가들이 비유럽적 정서와 상황에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이방인이 본 이탈이아는 주로 영감의 샘을 자극했지만 파졸리니는 비관적 관점을 취했다. 그가 이탈리아인이어서 그랬을까. 어떤 사람은 즐거움과 고통 중에서 고통에 더 시선을 둔다. 이 또한 개인적 체험과 관련이 있다. 글 속에서 작가의 그림자를 찾는 게 성숙한 독자가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글과 작가의 삶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믿는다. 파졸리니의 삶도 톰마소의 삶처럼 치열하고 개떡같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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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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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게 아마도 3주 전 쯤일거다. 소설을 3주 동안 읽었단 말은, 안타깝게도 흡입력이 없다는 반증이다. 김중혁의 단편집 <펭귄 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 모두 재미있게 읽은데다 씨네21에서 연재하는 칼럼을 재밌게 읽은 터라 장편이 나왔다길래 오호-했다. 단편에서 빛났던 순발력이 장편으로 늘어지니까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이 소설도 단편으로 나왔으면 참 재밌게 읽었을 거 같다.   

김중혁 단편들과 칼럼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고통분모는, 사람이 한 가지에 집중할 때 생길 수 있는 창의성이다. 단편집 중 지도를 읽는 사람, 메뉴얼을 읽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물건들에 영혼을 불어넣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물에 영혼은 불어 넣는 건 지속적 관심이다. 안 필요할 때도 지도를 보고 메뉴얼을 읽는 사람은 세상을 지도 속에서 보고 메뉴얼에서 보는 경지에 이른다. 한 가지에 미칠려면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나, 하는 모범을 보인다.  

김연수와 답글 형식으로 쓴 칼럼에서도 김중혁의 성격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연수와의 나눈 잡담을 옮기면서 소설가를 수직선 위에 배치하는 도표를 함께 그려 놓은 글이 있다. 난 이런 식의 사고에 완전 반하는 편이다. 정리를 잘 못하는 편이라 그래프나 표를 이용하는 글을 보면 완전 부럽다. 김연수가 다음 호에, 지면이나 채우는 쓸데 없는 짓이라고 했지만 난 김연수의 노력이 묻어나는 장황한 문장보다는 별로 시간 들이지 않고 그렸을 도표가 더 인상적이다.  

<좀비들>이 형편없는 건 아니지만 장편으로서 갖는 유기적 호흡이 아쉽다. 지훈을 둘러싼 인물들이 필연으로 나왔다기 보다는 그냥 뚝 떨어진 느낌이다. 게다가 기시감이 많이 든다. LP판에 대한 찬양이나 지훈의 직업이 안테나 감식하는 거며 뚱보130이 역사연표를 외우는 거며..김중혁스러운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을 한다는 게 또는 문화라는 테두리에서 창조자라는 데 참여하는 사람은 참 어려울 거다.  처음에 신기해서 환호하다가도 반복되면 금방 익숙해져서 지겨운 단계에 이르는, 나 같은 관객의 변덕을 이겨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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