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트리스 - Rest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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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치유에는 역시 사랑이 최고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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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제럴드 에델만 지음, 황희숙 옮김 / 범양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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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방대해서 어떤 식으로 정리할까 꾸물거리다 보니 여러 날이 흘렀다. 아무 것도 기억 못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나중에 조금이라도 기억할 텐데..하면서 처음의 원대한(?) 생각과 다르게 작은 내용이라도 적어둔다.  

에델만을 <세컨드 네이처>로 처음 만났는데 첫 책으로는 좋지 않다. 에델만의 주장이 아주 간략하게 집약한 책이지만(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이 책의 축소판이다) 구체적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신경생물학에 기본을 두고 마음의 발생과정을 추적하는데 저자의 인문학적 지식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흥미롭진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반박하는 인식론과 관념론 철학의 한계는 생물학을 무시하기 탓이라고 한다. 이 말만 들으면 대체 생물학과 철학이 무슨 관계인가 싶지만 바로 그 관계를 탐구하는 글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럼 철학은 왜 생물학에 기반을 두어야하는가.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근거해서 먼저 면역계를 설명한다. 간단히 말하면, 한 개체에 이질 단밸질, 즉 항원을 투여하면 건강한 개체는 항체를 생산한다. 항체 생산은 단백질 분사 사이의 차이를 구별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면역계가 동질 단백질과 이질 단백질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어서 이질 단백질 출현시 항체를 만들만한 자손 세포를 형성한다. 이 과정을 이해하는 게 아주 중요한데 뇌에서 인식이 일어나는 과정 역시 면역계가 항체를 생산하는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경험주의자들이 말하는 선험적prior 정보나 지령instruction은 불필요하다. 뇌는 한 사건을 조각 내서 기억 저장소에 가지고 있다가 이질적 사건이 들어오면 저장소에서 동일한 조각을 꺼내 맞춰보고 이질적 사건에서 동일한 요소와 이질적 요소를 구별해서 기억을 환기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그러니까 모든 기억은 왜곡이며 사람은 보고 싶은 점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점만 기억한다. 생물학에 기대면, 기억에 대한 인간의 불완전성은 마음의 잘못이나 인식의 잘못이 아니라 뇌의 고유한 작동원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점을 무시한 관념론이나 인식론이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행동 패턴이나 경험에 근거한 일반론들은 뇌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화학적 반응을 무시해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과학보다 우선한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18,19세기 철학자들의 환경이 과학으로 알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다. 지금은 과학이 발전해서 과거보다 더 많은 인체의 신비에 대한 열쇠를 풀었기 때문에 철학도 과거 개념에서 전환해서 과학에 기반한 새로운 관점이 나와야한다고 주장한다. 참 통찰력 있으신 분이다.  

그런데 교육은 거꾸로 가는 듯. 통섭은 커녕 말은 통합이지만 학문 간 호환은 커녕 단절만이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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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0월 4주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이제 우리 사회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구조적 모순과 개인의 탐욕이 더해져 이주 노동자들의 하루는 힘겹기만 합니다. 영화에서도 이주 노동자들의 일면이 종종 다루어지곤 하죠. 오늘 <비우티풀>을 봤는데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골랐습니다.  

 

사실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에서도 저런 일이 일어날까,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는데 감독 인터뷰를 보니 실제 흡사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중국인,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들이, 불법 체류란 꼬리표 때문에 착취당하는 이야기가 서브 플롯으로 등장합니다. 지하창고에서 피난민들처럼 바닥에서 잠자고 아침에 주는 빵 먹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실상에 꽤 자세히, 그리고 사실적으로 묘사됩다. 불법 체류자란 신분을 이용해서 고용주들은 임금을 착취하는 불법이 일어나구요. 사고로 집단으로 죽어도 브로커들은 살아남은 더러운 세상입니다.  

 

 

 벨기에 감독 다르덴 형제 작품, <약속>입니다. 이냐리투 감독이 바르셀로나의 상황을 취재했다면 다르덴 형제는 벨기에의 상황을 담았습니다. 장소에 무관하게 벌어지는 상황은 비슷합니다. 건설 현장에 비숙련자들로 투입된 노동자들은 말로 안 통하고 안전 장치도 없이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브로커로 나오는 올리비에 구르메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습니다. 그도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한테도 가업을 그는 물려주려는 걸까요? 어린 아들한테도 그는 세상의 냉정함을 먼저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이는, 다행히도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을 것같은 희망을 줍니다. 동정이 무엇이고 타인의 어려움을 상상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영화도 낙천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아이가, 기특하게도 아버지보다는 정을 지니고 있어서 아이다우면서도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위 두 영화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어두운 면을 알리기는 하지만 제가 이주 노동자들이라면 두 영화를 보다가 뛰쳐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오락 차 극장에 갔더니 낮에 일어난 일을 또 화면으로 보라고 하면 욕 나오지 않을까요. 본전 생각도 날 것이고요. 

육상효 감독의 <방가방가>입니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따뜻한 결말에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현실에서 밀린 임금을 그렇게 얼렁뚱땅 받을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또 경찰 출동에 불법 이주자들이 다 도망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란 뭡니까. 희망을 주고 웃음을 주는 수단이죠. 현실에서는 불가능해도 영화에서만이라도 이주자들의 바람이 관철된다면 잠시라도 므흣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김정태 씨의 찬찬찬 강의와 방가의 욕강의는 정말 명강의였습니다.ㅋ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입니다. <방가방가>와 아주 흡사한 영화죠. <빵과 장미>가 먼저 만들어졌으니 육상효 감독이 아이디어를 차용했겠지만요.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 분개했었습니다. 켄 로치 감독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켄 로치 감독은 노동자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 진지하고 때론 슬프게, 문제의식을 제기해왔는데 이런 동화같은 영화라니, 했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말 못하고 늘 억압당하는 노동자들한테는 정말 장미 꽃다발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아주 나중에 들더라구요. 영화의 본래 목적에 충실한 기분 좋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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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티풀 - Bi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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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함도, 아름다움도 모두 삶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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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티풀 - Bi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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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는 무거워서 일단 심호흡을 하고 봐야한다. 한 현상에 대해 누구나 상반된 견해를 가질 수 있다. 이냐리투 감독의 통찰력은 부질없는 희망을 품기보다는 비극적 상황에서도 일상을 버티는 실존적 자세로 나타난다. 아름다움은 섣부른 낙천주의가 아니라 회의적 실존에 있다고 믿는 사람같다. 

이 영화는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바르셀로나, 하면 이방인은 대부분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낡은 건물들이 만드는 골목과 가우디가 주름 잡는 람블라스 가 언저리에서 사랑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도시 분위기. 이냐리투 감독은 우디 앨런의 바르셀로나와는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를 담는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저런 일이, 할 정도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불법 이주 노동자들의 처참한 근무환경과 죽음 속에서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주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해서 집세를 내고 아이들에게 먹일 빵을 산다. 도시만 두 얼굴을 가진 게 아니라 사람도 두 얼굴을 가졌다. 욱스발은 이주 노동자들 브로커지만 자신의 아이들한테는 책임감을 다 하는 가장이다. 암이 온 몸에 퍼져 죽어가는 중에도 죽음의 두려움 보다는 보호자 없이 남겨질 아이들의 암울한 미래를 더 걱정한다. 욱스발이 처한 상황은 불법 이주 노동자들 처지보다 나은 게 없다. 죽어가면서 아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일 년치 집세를 미리 마련해 놓는 일이다. 그것도 이주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얻었다. 사는 건 뷰티풀하지 않다. 비우티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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