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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ngs of Saturn (Paperback)
Winfried Georg Sebald / New Directions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알랭 드 보통이 지식인 서재에서 추천한 책이다. 시월에 주문한 책인데 참 오래 읽었다. 아무래도 영문이라 손에 집어들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책장을 펴면, 마법처럼 저자가 이끄는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요약하면 과거 역사, 주로 슬픈 역사의 재구성이다. 처음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줄 모른 채 Norfolk란 낯선 곳을,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갑자기 렘브란트, 플로베르, 아편전쟁, 아일랜드 내전, 콩고 내전, 마지막에 샤또브리앙 회고록 등등 많은 슬픔의 역사가 등장한다. 노포크란 곳이 어떤 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눈에 담는 풍경은, 늘 황량하고 해질녁이나 사람이 모두 돌아간 아무도 없는 해변, 빛 바랜 건물들이다. 전반적으로 요즘 서울 하늘처럼 음울하다. 쓸쓸한 풍경에서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사기를 돌리듯 활자들을 펼쳐 놓는다. 그는 왜 쓸쓸한 과거를 들여다보나?
"(......) And yet, what would we be without memory? We would not be capable of ordering even the simplest thouhts, the most sensitive heart would lose the ability to show affection, our existence would be a mere never-ending chain of meaningless moments, and there would not be the faintest trace of a past. How wretched this life of ours is!-so full of false conceits, so futile, that it is little more than the shadow of the chimeras loosed by memory."(255)
읽기 쉬운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콩고 내전이나 아일랜드 내전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식이 단편적으로라도 있으면 좀 수월했을 것이다. 또 하나 나를 괴롭힌 건, 지명이다. 많은 지명과 고유명사들이 나오는데 지명과 사건의 상관관계를 짐작하는 거의 불가능해서 어떤 에피소드들은 그냥 흐르는 물처럼 눈으로만 읽을 수 밖에.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알고 있는 아편 전쟁의 진짜 원인이 사소한 오해였으며 아편 전쟁 후 등장하는 Dowager 황후의 이야기이다. 절대 권력을 위해 아들과 손자 둘 다 먼저 보내고 암살의 위협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둔 물질 세계에 갇혀 우두커니 사물을 응시하는 우수를, 작가는 그려낸다. 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건물 그림 복원에 평생을 바친 이름 없는 남자의 우직함과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일반적 시선, 그리고 학자인 그의 출현으로 미친 남자가 갑자기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는 변덕스런 세상의 시선도, 작가는 쓸쓸한 관점으로 담아낸다. 특히 산책 부분은 시 같기도 해서 천천히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정서에, 혼자 여행할 때 맛 볼 수 있는 달콤한 고독을 선사 받곤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왜 픽션인가, 의문이 들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인물들의 회한과 슬픔을 묘사하기 위해 옷을 묘사할 때, 현대 잡지가 그 시대에 유행했던 옷이라고 서술한 것을 따랐다고 한다.
토성을 둘러 싼 링들은 얼음 결정체와 한 때 토성의 위성들의 파편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 때 위성이었던 파편, 즉 과거의 파편을 처리하는 유일한 길이, 작가는 글쓰기라며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힌다. 그리하여 제목도 <토성의 링들>.
덧. 글쓰기 방식이 알랭 드 보통과 아주 흡사하시다. 차이는, 알랭 드 보통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면 이 작가는 아주 서정적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