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아브르 - Le Havr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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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과 비슷한 소재를 다루지만 그 시선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한 소년이 영국으로 밀입국하다가 르 아브르에서 잡히지만 탈출한다. 르 아브르 소시민들은 밀입국 따위는 모른다. 소년은 어린이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밖에는. 구두 닦이 할아버지의 일상은 아주 단조롭다. 구두를 닦을 손님을 기다리다 점심 샌드위치를 먹고 저녁이 되면 동네 카페에 들러 와인 한 두 잔 마시며 소소한 잡담을 카페 주인과 나눈다. 헤진 외투를 입고 동네 식료품점과 빵집에 외상 천지지만 할아버지는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을 차려주는 아내(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젊다)랑 행복하다. 자의든 타의든, 무소유를 실천하시는 부부처럼 세간도 단촐하다.

 

할아버지는 소년의 밀입국한 이유가 영국에 있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는 소년을 런던으로 밀입국 시키는 걸 돕는다. 동네 사람들도 기꺼이 동참한다. 경찰이 걸림돌이기는 하지만 르 아브르 경찰은, 경찰 이전에 르 아브르 마을 사람이다. 경찰은 소년이 영국으로 밀입국하는 걸 돕고 승진을 포기한다. 아주 훈훈한 결말이다. 관객 중 어떤 이는, 이 영화 아니면 이 영화를 보는 날, 무슨 일이 있어도 웃기로 작정하고 온 것처럼 별 장면 아닌데도 크게 웃곤 했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떤 이의 웃음 소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의미 심장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는 웃을 작정을 했고 웃음을 줄 어떤 매개체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영화는 촉매 역할을 했다.

 

현실이라면 소년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경찰 손에 넘겨져서 본국으로 추방당하거나 물 속에서 얼어죽어 항구에서 시체로 떠올랐을 것이다. 소년은 엄마를 만나기는 커녕 세상의 혹독함만을 간직한 채 눈을 감았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다면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면 기사 같았을 것이다. 영화는 전혀 사실을 묘사하지 않았지만 사실을 담았다. 로맨티시트인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자신만의 로맨티시즘으로 숨겨진 사실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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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소년 - The Kid with A Bik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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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소년>은 다르덴 형제가 만든 영화들의 변주다. 클로즈업과 함께 인물이 내쉬는 거친 숨소리가 음악 대신 깔린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인물이 달리면 카메라도 같이 달린다. 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카메라와 공간이 공모를 해서 공간 속에 위치한 인물의 쇼트들로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감독들이다. 아날로그식 영화처럼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덴 형제처럼 인물의 심리적 긴장감을 잘 잡아내는 건 다른 감독들이 흉내낼 수 없다. 자칫하면 답답하기만 할 수 있는데 영화 내내 두 발로 달리거나 자전거 타고 질주하는 소년의 속도감을, 카메라가 따라가면서 관객도 같이 달리고 있으며 공감으로 이끄는 신비로운 힘을 발휘한다. 우리나라 독립영화들을 보면 지나치게 무겁고 카메라는 정적이어서 보고 나면, 한숨이 쉬어진다. 다르덴 형제는 전형적인 한국 독립영화의 대안으로, 좀 삼았으면 좋겠다. 무거운 사회적 문제 제기를 해도 영화적 문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다르덴 형제의 관심은, 늘 사회적 문제다.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 속에 녹아 있는 어린 아이의 미래, 자기의 아이를 팔아 먹을 정도로 도덕성도 잃어버린 참담한 88만원 세대, 꿈을 이루기에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현실이 다르덴 형제 영화의 화두다. <자전거 탄 소년>도 이런 사회 고발적 시선의 연장선상에 있다. <약속>에 어린 소년으로 출연했던 제레미 레니에르가 이제는 성년이 돼서 아들을 버린 아버지로 나온다. 영화와 현실이 교묘한 접점을 이룬다.

 

시릴은 아버지(제레미 레니에르)를 찾아 헤매고 신뢰를 되찾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우선이다. 시릴은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는 동네 건달을 위해 강도 짓까지 하지만 강도 짓이 실패로 돌아가자 시릴을 욕한다. 시릴의 미래를 위해서는 잘 됐지만 한편으로 시릴은 어른의 이기심에 더 깊은 상처를 받는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시한 폭탄같았던 시릴은, 어른의 이기적 세계를 일찍 겪는다. 그래도 사만다라는 위탁모는 마지막 보루다. 사만다가 아이를 끝까지 보호하려는 의지는, 가차없는 부성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세상에 어머니같은 모성이 있어서 아이는, 모든 것에 불구하고 성장한다, 같다. 아이의 미래가 여전히 위태로워보이지만 절대적 믿음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어른이 있는 한, 아이는 성장이란 외줄타기를 끝마칠 수 있을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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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류은희.조현천 옮김 / 현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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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내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온다. 쇤브룬 궁 정원에서 누릴 수 있는 양 옆 가로수가 아치를 만들고 저녁이면 공원에서 왈츠가 울려퍼진다. 송이 꽃을 파는 이도 성장을 해서 팔에 가득 안고 있는 꽃이 팔 꽃이 아니라, 꽃 파는 이가 애인에게 선물 할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어울린다. 오스트리아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이렇게 말한다면,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닥쳐, 너는 그저 이미지에 홀려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속아 넘어가는 아둔함만을 소유했다고, 조롱할 것이다.

 

부모님과 형의 부고장을 받고 장례가 치뤄지는 삼일 간의 심경을 500페이지에 걸쳐 적고 있다. 화자 무라우는 볼프스엑이 고향인데 식구들이 본거지로 삼는 고향, 특히 식구들이 추구하는 물질적 성향을 추악한 것으로, 거침없이 묘사한다. 어머니, 아버지 욕으로 책을 시작해서 볼프스엑에 영향력 있는 가문인 자신의 집안을 천박하다고 묘사한다. 자신의 집안을 지배하는 물질성을 공격하면서 무라우는 세상을 물질계 대 비물질계, 즉 정신계로 보고 물질계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가치에 대한 동경과 열망에 대해 무라우는 혐오와 경멸을 서슴지 않고 표현한다. 기존 질서와 기득권에 대한 반항인데 모든 물질적인 것을 소멸로 수렴한다. 소멸은, 발화의 일종인,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500페이지 전부 경멸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이루어져있고 비트겐슈타인의 친구가 아닐까, 하는 문장도 종종 보인다.

 

"그들이 시류에 부응하는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고, 이런 믿음에서 행동하며 종종 그들 시대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다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소수나 소수의 그룹도 다수보다 더 시류에 부응할 수 있고 종종 다수보다 훨씬 더 시대에 부응한다. 대개 항상 그러하며, 개별적인 인간도 다수보다 더 시대에 부응할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시대에 가장 부응하는 인물이 될 때가 많다. 불행은 언제나 오직 다수에 의해 야기된 것이며, 오늘도 울;는 불행을-만약 이런 것이 있다면-다수의 탓으로 돌린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소수 혹은 개인은 다수에 비해 훨씬 더 시류에 부응하며 행동한다는 이유에서 다수의 압력을 받는다. 시류에 부응한 생각은 언제나 시대에 부적절한 생각이다. 시대에 적절한 생각은, 실제로 시대에 적절한 생각인 경우라면, 언제나 당대를 앞지른다고, 하고 나는 생각했다. 따라서 시대에 적절한 것은 으레 시대에 부적절한 것이다.....시대에 적절한 사람이다 함은 생각에서 앞질러 간다는 뜻이지 시대에 부응하여 행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시대에 부응하여 행동한다는 것은 시대에 적절치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82)

 

이 소설은 1986년에 발표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가 발표되었다. 두 소설은 공통점이 있다. 두 작가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문체가, 요즘 같이 추운 계절에 읽으면 체감 온도를 5도 쯤은 거뜬히 내릴 수 있는 서늘한 독기를 품고 있다. 독일 문학과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뭐랄까, 독일 문학이 패배자의 분위기와 자조가 느껴진다면 두 작가의 작품은, 이 보다 더 할 수 없이 냉랭하고 냉소적이다. 냉소 속에는 이미 기득권만이 볼 수 있는, 은밀한 구석이 있다. 기득권층에 소속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수성이 드러난다고나 할까. 달랑 두 작가의 대표작두 권만 읽고 오스트리아 문학을 단정할 수 없겠지만 80년대는 한국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도 찬바람 부는 시절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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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ngs of Saturn (Paperback)
Winfried Georg Sebald / New Directions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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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지식인 서재에서 추천한 책이다. 시월에 주문한 책인데 참 오래 읽었다. 아무래도 영문이라 손에 집어들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책장을 펴면, 마법처럼 저자가 이끄는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요약하면 과거 역사, 주로 슬픈 역사의 재구성이다. 처음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줄 모른 채 Norfolk란 낯선 곳을,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갑자기 렘브란트, 플로베르, 아편전쟁, 아일랜드 내전, 콩고 내전, 마지막에 샤또브리앙 회고록 등등 많은 슬픔의 역사가 등장한다. 노포크란 곳이 어떤 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눈에 담는 풍경은, 늘 황량하고 해질녁이나 사람이 모두 돌아간 아무도 없는 해변, 빛 바랜 건물들이다. 전반적으로 요즘 서울 하늘처럼 음울하다. 쓸쓸한 풍경에서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사기를 돌리듯 활자들을 펼쳐 놓는다. 그는 왜 쓸쓸한 과거를 들여다보나?

 

"(......) And yet, what would we be without memory? We would not be capable of ordering even the simplest thouhts, the most sensitive heart would lose the ability to show affection, our existence would be a mere never-ending chain of meaningless moments, and there would not be the faintest trace of a past. How wretched this life of ours is!-so full of false conceits, so futile, that it is little more than the shadow of the chimeras loosed by memory."(255)

 

읽기 쉬운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콩고 내전이나 아일랜드 내전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식이 단편적으로라도 있으면 좀 수월했을 것이다. 또 하나 나를 괴롭힌 건, 지명이다. 많은 지명과 고유명사들이 나오는데 지명과 사건의 상관관계를 짐작하는 거의 불가능해서 어떤 에피소드들은 그냥 흐르는 물처럼 눈으로만 읽을 수 밖에.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알고 있는 아편 전쟁의 진짜 원인이 사소한 오해였으며 아편 전쟁 후 등장하는 Dowager 황후의 이야기이다. 절대 권력을 위해 아들과 손자 둘 다 먼저 보내고 암살의 위협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둔 물질 세계에 갇혀 우두커니 사물을 응시하는 우수를, 작가는 그려낸다. 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건물 그림 복원에 평생을 바친 이름 없는 남자의 우직함과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일반적 시선, 그리고 학자인 그의 출현으로 미친 남자가 갑자기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는 변덕스런 세상의 시선도, 작가는 쓸쓸한 관점으로 담아낸다. 특히 산책 부분은 시 같기도 해서 천천히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정서에, 혼자 여행할 때 맛 볼 수 있는 달콤한 고독을 선사 받곤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왜 픽션인가, 의문이 들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인물들의 회한과 슬픔을 묘사하기 위해 옷을 묘사할 때, 현대 잡지가 그 시대에 유행했던 옷이라고 서술한 것을 따랐다고 한다.

 

토성을 둘러 싼 링들은 얼음 결정체와 한 때 토성의 위성들의 파편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 때 위성이었던 파편, 즉 과거의 파편을 처리하는 유일한 길이, 작가는 글쓰기라며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힌다. 그리하여 제목도 <토성의 링들>.

 

덧. 글쓰기 방식이 알랭 드 보통과 아주 흡사하시다. 차이는, 알랭 드 보통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면 이 작가는 아주 서정적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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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0 - 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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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거짓과 영화적 진실에 관한 화두를 던져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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