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후배를 만나 이 영화를 봤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만난 게 아니라 무결의 지디 찬양을 위해 의도적 회동을 했다. 파리 호텔 방에서도 후배가 보내준 지디 동영상을 탐닉했었더랬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화 시작 전에 만나서 지디의 다소곳함과 러블리함에 대해 쏟아냈다. 심지어 후배는 크래용을 자기 전에 이어폰을 통해 들으면 귀속에 겟유크래용이라고, 마치 옆에서 귀에 속삭이는 거 같다는 팁을 주며 내게 이어폰을 착용하고 들어볼 걸 권했다.ㅋ
그러나 우리한테 무한애정을 쏟게 만드는 지디는 자연인으로서가 아니고 가수로서는 더더욱 아니다. 팬심으로 콘서트 동영상을 좀 보려했으나 일단 노래들 대부분이 내 취향이 대부분 아니고 지디의 노래하는 목소리는 큰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게다가 콘서트에서는 노래를, 하는 내 고전적 취향에 위배되게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 많다. 나와 후배가 흠뻑 빠져있는 건 무도에서 보여준 도니&지디 커플에서 설정된 지디의 캐릭터다.
팬심이란 혹은 호감이란 초반에 장점을 하나 발견하면 그 장점을 확대 해석해서 모든 단점까지도 상쇄하는 힘이 있다. 내가 MAMA란 시상식까지 봤다고 부끄럽게 고백하자 후배 역시 봤다고. MNET을 그렇게 오래 시청하기는 머리털나고 처음인데 지디가 아니면 정말 30초 후 채널 돌렸을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지디의 사생 이모팬이 됐나? 아이가 단정하고(물론 도니와 있을 때) 어른을 공경하며 명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건 팩트와 관련없이 애정을 갖게 되면서 믿게 된 복음같은 것이다. 이게 없다면 MAMA를 시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팩트와 관련없는 복음을 만들어 신뢰하기로 우리 자신을 속이게 되었는가? 답은 우리 자신한테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대체로 혼자 무슨 일이든 결정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척하지만 결국은 내가 결론을 내놓고 외부에서 뭐라하든 바꾸지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타인과 겉으로 잘 지내는 척하지만 실은 내면의 소통 부재에 절망하면서도 반복된 패턴으로 체념을 배우면 살아간다. 공부할 때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일 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품위있는 말을 유지해야하는 상황 등이 무의식적으로 힘겨울 수 있다. 하지만 의연함을 요구하는 사회적 포지션이 있기에 유치할 수 있는 취미활동-동영상 파기-를 하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사이비>를 보고 지디 얘기나 실컷 늘어놓는 이유는, 믿음의 시작과 공고함은 바로 자신의 필요에서 오기 때문이다. 지나친 믿음으로 사이비가 생겨나고 의심이란 걸 하지 않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 사이비는, 즉,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처절한 몸짓일 수 있다. <사이비>인 인물들이 맹목적인 믿음을 바치며 사후 천국에서 자리를 못 살까봐 불안해한다. 천국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지금 여기가 불행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을 토닥일 방법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종교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그게 물리적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사람의 심리는 누구나, 잠깐씩은 갖고 있기에 사이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영화는 정말 이보다 더 어두울 수 없었다. 영화 관람 후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다시 지디얘기를 하며 헤어졌다. 집에 와서 나는 이어폰을 꽂고 크래용을 들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