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엔 형제의 말을 통해 유추해보면 코엔 형제를 비롯한 많은 감독들이 어떤 작은 모티브에서 시작해서 영화 한 편을 구상하고 완성한다. 이 영화는 책을 읽다가 영감을 받았으며 60년대 초 밥 딜런이 유명해지기 전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씨네큐브 영화 소개 리플릿에 "코엔 형제가 포크락의 기원을 추적해간다"고 이상하게 적어놨다. 코엔 형제랑 좀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그 말이 꼭 틀린 건 아닌데 포크락의 기원 추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코엔 형제스럽지 않다 했는데 영화를 보면 그들만의 색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2. 영화 첫장면에서 르윈 데이비스의 기획사 사장과 할머니 비서의 대화가 있다. 돈이 절박한 르윈 데이비스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두 사람의 대화는 탁구 단식처럼 오고 간다. "우편물이 왔어? 우편물이 왔다니까요. 그러니까 우편물이 왔냐구? 우편물이 왔다고 했잖아요."(정확하진 않지만) 이런식의 대화인데 그 특유의 톤은 코엔 형제의 특허다. 나이들어 가는 귀 먹은 두 노인의 대화로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일상에서 쳐내는 유머에 히죽히죽.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알아듣지 못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웃음이 파생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웃음 속에는 타인과의 소통 부재를 희화한다. 희극 버전의 카프카가 떠오르는데, 만약 코엔 형제가 이 말을 듣는다면 아니라고 부인할 것이다. 그들은 영화에 어떤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걸 싫어라하는데 보는 이들한테는 어떤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게 충동질하는 면이 있다.

 

또 인상적인 장면은, 운전하는 장면이다. 서너 번 나오는 거 같다. 특히 눈이 오는 야간 운전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의 위치는 헤드라이트와 같아서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는 건 아스팔트와 헤드라이트 위쪽 위치는 어두운데 눈이 어둠 속에서 나와서 차를 향해 달려오다 맥없이 갈라진다. 이런 장면이 참 좋은데 카메라가 달려가는 속도감과 뒤로 이어지는 어둠이 르윈 데이비스의 현재 상황을 이미지화했다고도 할 수 있다.

 

3. 영화는 한 무명 뮤지션의 고군분투기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승(!)에 안 찬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정말 60년대 출신처럼 노래해서 영화 본 후 좀 찾아봤더니 다들 노래를 하는 배우들이었다! 르윈 데이비스 역을 연기한 오스카 아이삭은 실제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코엔 형제는 알맞은 배우가 없다면 이 영화를 찍지 않을 거라고 했고. 오디션을 본 지 한 달 쯤 후, 코엔 형제한테 전화를 받고 영화 출연을 확정했단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오스카 아이삭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

 

4. 르윈 데이비스가 무명이기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담는다. 성공하기 까지의 과정을 담는 게 아니다. 추운 겨울에 가을 재킷으로 버티며 매일 밤 누구네 집 카우치를 빌릴지 고민한다. 짐이라고는 달랑 기타 하나와 작은 가방 하나. 한 때 선원이었다가 음악을 하는데 음악을 하기 전에 굶어죽을 수도 있기에 음악을 포기하려는 과정을 담는다. 어떤 동정이나 연민을 당연히 밀어내고 르윈 데이비스 표정도 겨울 날씨만큼 서늘하게 표현된다. 시카고에 있는 유명 클럽에 어렵게 도착해서 오디션을 보지만 듀엣이나 트리오를 하라는 조언을 듣는 게 전부. 더 떨어질 곳이 없는 극한 절망의 순간에 사람은 르윈 데이비스처럼 냉정해지기도 한다. 다시 선원으로 돌아가는 것도 돈이 없어서 못 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신을 푸대접한 주인이 운영하는 클럽에서 다시 노래하는 것 뿐. 이 때 목소리는 정말 소울이 승천한 거 같다.

 

5. 금요일 저녁에 간신히 표 구해서 봤는데 코엔 형제가 이렇게 인기있는 지 몰랐다.

 

6. OST를 어디서 구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후배를 만나 이 영화를 봤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만난 게 아니라 무결의 지디 찬양을 위해 의도적 회동을 했다. 파리 호텔 방에서도 후배가 보내준 지디 동영상을 탐닉했었더랬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화 시작 전에 만나서 지디의 다소곳함과 러블리함에 대해 쏟아냈다. 심지어 후배는 크래용을 자기 전에 이어폰을 통해 들으면 귀속에 겟유크래용이라고, 마치 옆에서 귀에 속삭이는 거 같다는 팁을 주며 내게 이어폰을 착용하고 들어볼 걸 권했다.ㅋ

 

그러나 우리한테 무한애정을 쏟게 만드는 지디는 자연인으로서가 아니고 가수로서는 더더욱 아니다. 팬심으로 콘서트 동영상을 좀 보려했으나 일단 노래들 대부분이 내 취향이 대부분 아니고 지디의 노래하는 목소리는 큰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게다가 콘서트에서는 노래를, 하는 내 고전적 취향에 위배되게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 많다.  나와 후배가 흠뻑 빠져있는 건 무도에서 보여준 도니&지디 커플에서 설정된 지디의 캐릭터다.

 

팬심이란 혹은 호감이란 초반에 장점을 하나 발견하면 그 장점을 확대 해석해서 모든 단점까지도 상쇄하는 힘이 있다. 내가 MAMA란 시상식까지 봤다고 부끄럽게 고백하자 후배 역시 봤다고. MNET을 그렇게 오래 시청하기는 머리털나고 처음인데 지디가 아니면 정말 30초 후 채널 돌렸을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지디의 사생 이모팬이 됐나? 아이가 단정하고(물론 도니와 있을 때) 어른을 공경하며 명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건 팩트와 관련없이 애정을 갖게 되면서 믿게 된 복음같은 것이다. 이게 없다면 MAMA를 시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팩트와 관련없는 복음을 만들어 신뢰하기로 우리 자신을 속이게 되었는가? 답은 우리 자신한테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대체로 혼자 무슨 일이든 결정하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척하지만 결국은 내가 결론을 내놓고 외부에서 뭐라하든 바꾸지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타인과 겉으로 잘 지내는 척하지만 실은 내면의 소통 부재에 절망하면서도 반복된 패턴으로 체념을 배우면 살아간다. 공부할 때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일 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품위있는 말을 유지해야하는 상황 등이 무의식적으로 힘겨울 수 있다. 하지만 의연함을 요구하는 사회적 포지션이 있기에 유치할 수 있는 취미활동-동영상 파기-를 하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사이비>를 보고 지디 얘기나 실컷 늘어놓는 이유는, 믿음의 시작과 공고함은 바로 자신의 필요에서 오기 때문이다. 지나친 믿음으로 사이비가 생겨나고 의심이란 걸 하지 않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 사이비는, 즉,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처절한 몸짓일 수 있다. <사이비>인 인물들이 맹목적인 믿음을 바치며 사후 천국에서 자리를 못 살까봐 불안해한다. 천국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지금 여기가 불행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을 토닥일 방법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종교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그게 물리적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사람의 심리는 누구나, 잠깐씩은 갖고 있기에 사이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영화는 정말 이보다 더 어두울 수 없었다. 영화 관람 후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다시 지디얘기를 하며 헤어졌다. 집에 와서 나는 이어폰을 꽂고 크래용을 들어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Random House Guide to Good Writing (Mass Market Paperback)
Mitchell Ivers / Ballantine Books / 199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글쓰기 작법서다. 지난 달, 강남역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했다. 그 날 만난 친구한테 책값(4,200원)을 말하며 글을 안 써도 아깝지 않은 책값이란 농담을 했다. 그런데 올해가 가기 전에 뭔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백만 년 만에 갖게 하는 훌륭한 책이다. 부자들이 부자가 되는 법, 같은 책을 읽지 않듯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런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 작법서를 읽는 이는, 글을 쓰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떤 동기부여를 받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실용적 도움을 받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두 경우 모두를 아우른다고 하겠다. 다만 실용적 부분에서 어법 파트에서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 문법과 연결사 사용 주의사항이 나온다. 한국말로 글을 쓰는데는 괴리가 있어서 별 하나를 뺐다.

 

작법서를 읽다보면 하나의 기본 원칙이 있다. 읽는 이를 염두에 두고 써라, 란 말이다. 내가 끄적이는 게 영화 보고, 책 읽고, 여행 후기나 쓰는 게 전부라 무슨 필요가 있나 싶다. 그러다가도 공개 포스팅 자체가 이미 익명의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는데 나는 너무 사적이면서도 익명의 누군가를 고려하는 모호한 생각으로 끄적이는 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즉 어떤 정보성 글도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아주 내밀한 기록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쩌면 비주류 블로거로서의 정체성의 한계인지도 모른다고 비약해 본다.

 

사실 읽다보면 다른 책에서 한 번은 봤음직한 말이 반복되지만 책을 읽을 때 가장 큰 효과는 망각을 기억으로 소환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러니까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쓰기에의 의지에 대한 불씨를 살려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구체적 실전은 제시할 수 없어도 기초반에서 배우는 정도의 스토리텔링의 기본을 언급하고 있다. 소설이건, 에세이건, 보고서건 그 장르에 상관없이 좋은 글에 관해 이이렇게 이야기한다.

 

"A well-construncted essay has three elements in common with a traditionally well-constructed short story: a begining, a middle, and an end. The begining is the thesis, the idea that is being put forth. The middle is argument, the body of essay, in which the thesis is defended against its antithesis. The ending is the conclusion, which restates the thesis as it has been expanded by the arguments put forth in the body."(p.43)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실천하기 무지 어려운 지침이다. 또 하나 이 책의 실용적인 면은 챕터가 끝나면 해 볼 과제를 내준다. 물론 해봐야 의미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우주란 공간은 실제로는 추상적인데 이미지와 학습 덕분에 우주가 친근(?)한 것도 사실이다. 음악도 나오고 수다도 떨면서 밑도 끝도 없는 광활한 공간에서 유영하는 모습은 잠깐, 몽환적이었다. 바다 속에서 스쿠버 다이빙할 때 느낌같기도 하고. 대지를 중심으로 아래와 위는 닮은 모습이 아닌가. 무거운 장비 속에 갇혀 있지만 중력 부재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물을 보면서 평화롭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산드라 블록의 생존기를 보면서 곧 가슴을 졸였다. 먼 과거 딥다이빙을 하다 조류를 만나 제주도 바다 한가데서 표류했던 개인적 경험과 3D안경을 쓰고 경험하는 시각적 생생함이 더해져 우주에 산드라 블록과 같이 있는 기분을 느꼈다.

 

2. 곧 중력 부재로 일어나는 참사는 중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이 일어난다.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고 두 발로 서는 걸 의문시해 본 적도 없다. 중력이 있으니까. 중력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재난이라기 보다는 호기심이 생기는 다른 상황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이 영화를 보니까 중력의 위력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작은 불씨도 공중에 떠다녀서 큰 화재가 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우주 쓰레기에 대해 읽었던 게 떠오른다. 이 영화 속 재난은 실제로 우주 쓰레기 탓이다. 궤도를 벗어난 위성은 무수하고 인간은 우주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수한 실패가 동반되는 시도를 한다. 우주정거장의 잔해, 소유즈의 잔해, 잘 못 쏘아 올린 위성들은 무중력 상태에서 엄청난 속도로 우주를 떠돈다. 그러다 어떤 부딪칠 물체가 있다면 부딪쳐서 작은 파편이 되거나 또 다른 커다란 파편을 재생산한다. 우주는 무중력을 제공하고 인간의 탐구에 대한 욕망은 인간한테 다시 돌아온다.

 

우주인을 죽일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이다. 우주 쓰레기도 그렇고 우주선이든, 소유즈든 인간이 생리적으로 살아있게 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은 유한하다. 연료는 떨어질 수 있고 복잡한 작동 기계들은 결정적 순간에 고장나거나 오작동 될 수 있다. 기계는 인간의 판단력이 없으면 고철 쓰레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인간을 살릴 수 있는 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3. 생각보다 줄거리가 단촐해서 깜짝 놀랐다. 초반에 조지 클루니가 우주 미아가 돼서 후반에는 다시 만나겠거니 했는데 끝까지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혼자 우주를 빠져 나오는 이야기다. 우주에 단 한 명의 생존자를 남기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스톤 박사의 지구에서의 삶을 미루어짐작해 보면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은 혼자라고 느끼는 인물에 대한 시선이 있다. 저녁8시면 뭘 했던 시간이냐고 조지 클루니가 묻자 스톤 박사는 운전하면서 멘트가 없는 라디오를 듣는다고 했다. 스톤 박사는 지구에도 비슷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쓸쓸하지만 다른 이한테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는 삶. 최후의 순간에 지구에서 삶에 희망없었던 걸 기억해내고 우주에서 죽음을 택하려는 찰라가 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지구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건 잘못 잡힌 주파수로 들은 아기 소리다.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에 그 소리의 진원지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아무도 없는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을 추진하는 힘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희망이다. 지구로 귀환해도 스톤 박사의 개인적 삶은 우주에서와 같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들으려 귀를 기울이고 손을 뻗으면 어디에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중력의 법칙만큼 명확히. 마지막에 바다에 착륙해서 구조대를 곧 보내겠다는 신호를 받지만 영화는 끝내 구조대를 보내지 않는다. 헤엄쳐서 해변으로 나와 자신의 힘으로 두 발로 서려고 노력하는 장면으로 끝이난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 즉 진화론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지구에 도착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이 생존을 위해 역할을 한 이후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온다는 구조대가 안 오는 걸 탓하면 안 된다. 구조대가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살아남았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째 진행방식이 마이클 무어같다 했는데 크래딧 올라가는데 프로듀서가 마이클 무어다. 재밌게는 봤는데 논지가 좀 약하다. 영웅을 이루는 요소가 뭔지를 찾아 다니는데 가장 중요한 영웅의 개념을 정의하지 않은 채로 진행된다. 평화를 사랑하는 모계사회 보노보로 거슬러올라가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영웅을 찾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명명한 영웅을 찾기도 한다. 전쟁에서 훈장을 받은 할아버지, 뉴욕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한 시민, 재산의 98%를 기부한 의사 등등을 찾아다니는 걸로 봐서 감독이 생각하는 영웅은 이타적 인간인 거 같다. 영웅이란 정의 자체가 모호하니까 아침방송 같기도 하고.

 

진화론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남한테 베풀때 뇌 활성 화학물질이 나오는 사람과 안 나오는 사람이 7:3정도란다. 마약같은 각성 물질이 쾌락중추를 흥분시키는 것처럼 베풀 때 뇌가 활성화되는 사람도 많다는 것. 반면에 이기주의가 영웅이라는 주장을 하는 단체도 있다. 타인을 돌보느라 자신이 가진 것을 돌보지 않는다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기주의자인 듯.-.-;

악을 연구하다보면 악한 행동은 절대로 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속한 집단이나 사회가 무언의 암시를 준다고 한다고 한다. 끄덕끄덕.

 

감독이 인터뷰하는 사람들은 영웅보다는 이타성을 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영웅에 대한 어떤 구체적 정의를 가지고 있나보네. 이건 다 구시대적 교육 탓인데. 결론은 이타성을 지닌 모든 사람은 영웅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