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힘든 사람들은 대체로 신문을 열심히 보고 뉴스를 열심히 보는 거 같다. 신문이나 뉴스는 사실을 보도한다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뉴스는 장르 영화에 포함시켜야 할 거 같다. 스펙터클은 실제며 전달방식은 선정적이어서 수 백억 제작비를 쏟은 블록버스터처럼 사건을 대상화해서 전달한다. 독자나 시청자는 자신도 모르게 선정성에 길들여져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사를 클릭하는 부지런함을 보인다. 그런데 이 부지런함은 상황의 본질을 보는 시각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하여 언론이 이끄는대로 공분을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일을 반복하게 되고, 이런 사고 패턴이 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책을 읽지 않는다면 뉴스를 보지 말고 다큐를 보는데 시간을 할애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한국다큐를 보기를 꺼린다. 답도 없는 문제의식 제기에 몰입하다보면 답답하고 극장을 나서면 우울이 하늘을 뒤덮기 때문이다. 그 우울을 사실 남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은 욕구가 크다.

 

그래도 < 논픽션 다이어리>는 많은 사람이 꼭 봤으면 좋겠다. 답도 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문제 제기하고 상황을 직시하는 힘 조차 없다면 실행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사소한 행동이라고 바꿀 수 있는 힘은 바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 힘에 있다.

 

이 다큐는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지존파 살인사건(1994년)과 삼풍백화점 붕괴사건(1995년)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오래 전 일이라 지존파 사건은 기억이 희미한데 이 다큐는 선명하게 지존파 사건을 환기시킨다. 이들은 울분으로 부자를 죽이려고 했으나 정작 희생자들은 일반 서민들이었다. 사회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비가시적 폭력에 대항해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일반인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감독은 이 사건을 다루면서 언론의 태도와 소외된 청년들이 잡혔을 때 정부, 사법부, 언론과 시민이 공모한 집단 폭력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모두 사형을 선고 받았고 같은 날 형을 집행당했다. 언론은 여론의 공분을 자극하는 식으로 보도를 하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여론의 뜻에 따라 빠르게 사법처리를 하라고 지시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경우, 지존파가 살해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시민이었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물론 이 경우는 미필적고의다. 하지만 감독은 의문을 제기한다. 건물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사람들 탓에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 관리감독직에 있던 사람들은 가벼운 벌금형을 받았다. 사람을 죽인 건 같은데 누구는 사형이고 누구는 벌금형인가. 또 한 사람을 예로 든다. 바로 전두환. 전두환의 경우는 쿠데타를 일으켜 지존파보다 더 한 살인죄를 저질렀다. 1심에서는 사형선고를 받고 항소해서 무기징역에 그리고는 특별사면까지 이어져 오늘날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일이다. 영화를 보러 왜 극장엘 가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매일 매일 보는 뉴스가 스크린보다 더 스펙터클한데. 얼마 전에도 아직도 믿고 싶지 않는 세월호 참사도 일어나고. 그 사후 처리에 대해 우리는 어떤 기대를 갖는가. 세월호 참사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같은 마무리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요즘들어 법은 무형의 폭력이란 생각이 커지고 있다. 법을 만든 이들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 법을 잘모르고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따라야한다고 교육받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 법이 원하면 처벌을 받는다. 법치주의가 원래 이런 거였나. 사회질서는 대체 누구를 위한 사회질서인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여전히 존재하고 지배계급의 질서를 정연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게 법이란 말인가.

 

정치권만큼이나 혐오스러운 게 언론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언론은 법과 마찬가지로 사회 정의나 질서와는 무관하다. 언론은 사회질서를 혼란이 불러올 불안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대중은 불안과 공분을 반복한다. 대통령은 호통만치고. 호통치는 대통령과 정부, 선정적인 언론, 공분하는 우리 모두는 구조적 폭력의 공모자들이다. 이 삼박자가 계속 맞으면 비극적인 일은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 삼박자에 쿵작하고 손뼉 안 치려면 이 다큐를 일단 보는 걸로. 결론이 어이없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행동은 먼저 인식하는 일이다. 인식하는 일은 의외로 쉽다. 언론에 등을 돌리고 옳은 보도를 하는 정보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멀티플렉스에서 블록버스터들만 상영하고는 몇 백만 최단기록 같은 기사에 현혹되지 말고. 영화가 재밌어서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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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프닝을 보는 순간 왕가위표 영화라고 외치게 된다. 왕가위표란 딱지는 감독한테 찬사일 수도 있지만 진부하다는 의미도 들어있을 수 있다. 그의 영화들을 보고 한 때 설레고 열광했기에 이미지를 다루는 익숙한 방법을 보면서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무언가에 열광 후에는 그 무언가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데 열광 후의 일련의 과정들은 열정을 식게도 만든다. 사람관계만이 아니라 열광하는 모든 대상은 이런 비운을 감내해야하는 듯. 게다가 나도 나이가 들지만 감독이 나이가 드는 게 더 문제인 듯. 이십대를 자극했던 감수성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얕은 세계관을 드러낼 때는 참을 수가 없어진다. 이 영화는 간신히 참을 수 있다. 왕가위 감독이 '한 때' 잘 다루었던 살짝 미끄러지는 미묘한 감정들을 부활시킨다. 근데 깊이가 없네...ㅠ 감독이 너무 해피하게 지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추측을.

 

2.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무술 씬들이다. 감독의 장기인 느린 이미지들로 구성되고 전체 동작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손이나 발이 움직인 후에 남는 잔상을 길게 크게 카메라에 담는다. 보통 무술씬이나 액션 씬들이 속도감을 사용한다. 왕감독은 느린 호흡으로 이미지를 잡아내면서 싸움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으로 무술 후의 잔영들을 끌어올린다. 가격을 받을 때 인물의 표정이나 눈빛을,  왕감독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설레고 슬프게 잡아낼 수 있을까.

 

왕조위는 꽃중년으로 여전히 살아있다. 왕조위가 송혜교를 바라보는 눈빛은 정말이지 최고..ㅠㅠ

그런데 진부한 내레이션과 인물들에 대한 설명은 대서사시를 표방하는 시나리오인데도 스케일이 작아보인다. 이런 점이 매우 아쉬운 점이다.

 

3.

중국무림사에서 감동을 발견했다. 아무리 무술로 상대와 겨뤄서 승리를 목표로하지만 무림계에서도 법이 있다. 지면 깨끗하게 항복하는 것. 이런 미덕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패배를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일은 정말 신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무협영화에서 옹호하는 폭력의 정당성에 대해 언제나 반대해왔다. 하지만 가시적, 비가시적 폭력을 보는 게 일상적으로 보다 보니 폭력에는 어떤 규칙도 법도 없고 개인의 이익만이 존재하는 걸 봐 왔다. 폭력에 비폭력으로 저항했던 간디가 왜 위인 반열에 올르게 되었는지 차츰 알아가고 있는 중이고. 어제 영화를 보니 무림계는 패배에 대한 규율이 엄격하다. 무림은 힘의 논리지만 무술에서 이기려면 힘과 기술만이 아닌 성찰적 사고까지 요구하는 통합적 세계를 추구한다. 무협 세계의 매력을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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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8 2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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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0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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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2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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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1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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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제는 아띨라 마르셀Attila Marcel인데 한국어 제목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훨씬 더 영화 전체 내용과 어울린다. 주인공 폴의 어린 시절 기억을 찾아주는 역할을 맡은 마담의 이름이 프루스트인건 우연이 아니다. 마담 프루스트는 비밀정원에서 여러 가지 신비한 허브를 키우고 그 허브차와 마들렌느를 함께 먹으면 과거의 기억으로 잠시 돌아갈 수 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어도 첫부분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기억은 물질을 통해 매개되며 작은 기억 조각들이 모여 추억이란 이름의 폴더에 저장된다. 프루스트는 과거로 회귀하는 과정을 언어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프루스트의 노력을 실뱅 쇼메는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다고 내용이 프루스트의 작품과 같은 건 아니고 전혀 다르다. 다만 감독이 차용한 건 프루스트가 사용한 방법이다. 난 이 과정을 좀 유머러스하게 봤다. 극중에서 폴의 눈을 슬프고 아름답다고 표현하는데 나는 슬픔보다는 코믹하게 봤다. 허브티를 마시며 마들렌느를 먹자마자 과거로 회귀하는 이미지에 보통 극영화에서 볼 수 없는 순수함 내지는 판타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2.

폴은 두 살 때 부모를 잃었다. 이모들이 금지옥엽으로 피아스트로 키웠지만 폴은 부모를 잃은 무의식의 트라우마로 성인기로 이행하지 못했다. 폴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최면에 걸린듯 무표정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멍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교습소 장면은 폴이 현재가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좁은 공간에 미뉴엣, 왈츠 등등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 가득한데 이들은 의도적으로 마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치 그들이 폴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흥겨운 사람들 속에 놓인 폴의 단절감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난 이 장면들도 웃겼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나만 웃는 거 같아 내 정신세계에 문제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분위기는 우수를 표현하고자했는데 웃긴, 그런데 영화관 관객은 모두 진지하게 보고 있는...뭐 이런 상황이었다.-.-

 

아무튼 폴은 프루스트 부인의 도움으로 두 살 때 기억 퍼즐을 끼워 맞추는데 성공한다. 허브티와 마들렌느가 과거로 들어가는 입구였다면 제목 아띨라 마르셀의 노래는 과거로 들어가 구체적인 기억을 헤집어내서 맞추는 역할을 한다. 이는 아주 익숙한 방식이다. 우리도 스무살에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스무살 무렵, 그 노래를 들었던 사변적 상황이 펼쳐지면서 단편적 기억이 떠오르니까. 그러니까 아띨라 마르셀의 노래는 폴한테 추억의 노래인 셈이다. 기억은 이미지로 재생되지만 이미지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촉각, 청각, 미각 등 다른 감각을 동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떤 이미지가 머리속에 재생될 때 이미지가 온전한 게 아니라 일그러지게 왜곡되고 순차적인 게 아니라 무작위로 두서없는 부분들을 아주 잘 표현했다.

 

폴이 부모의 죽음의 죽음을 기억해 낸 후에 그는 어린 시절과 작별을 하고 어른기로 이동할 수 있다. 모든 무의식적 억압은 잊는 게 상책이 아니라 들추어내서 언어를 통해 재생하는 과정을 통해야 진정한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정신분석의 기본에 충실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폴은 해피엔딩을 맞이해서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그 아이한테 유년의 추억을 선사한다. 아기가 폴을 바라볼 때 카메라는 폴을 볼록렌즈로 보는 것처럼 일그러지게 잡아내면서....유년의 추억을 들추어줄 무언가는 각자 다르다.

 

3.

영화를 본 후, 내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한 물건들은 뭐였더라를 잠시 생각해봤다. 여름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를 보면서 무서워 못 보고 이불을 뒤집어 썼는데 눈에 들어왔던 엄마의 발. 더 커서는 지금은 이렇게 블로그에 영화일기를 남기는데 어린 시절 영화 본 후 기록했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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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8-0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무의식적 억압은 잊는 게 상책이 아니라 들추어내서 언어를 통해 재생하는 과정을 통해야 진정한 치유가 될 수 있다........."


상처를 더이상 입 밖에 내지 않게 하는 문화, 속에서 이 글은, 이 영화는 중요한 걸 배우게 할 것 같아요..
.넙치님... 더위에 ..잘 지내시는 거지요? ..^^

넙치 2014-08-04 14:42   좋아요 0 | URL
치유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영화에요.^^

요즘 서울 날씨는 죽을 맛이에요. 습하고 덥고...이런 상태가 얼마 안 있어서 없어질 거란 희망이 없다면 못 견디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괴로워요.

새벽숲길님은 어찌 지내시는지요? 요즘은 새벽숲길님 글을 통 볼 수 없지만 글을 안 쓰는 일상이 더 지낼만하다고 미루어짐작해 본답니다.^^
 

 

 

 

 

 

 

 

 

 

 

전편인 <진화의 시작>보다는 진부하지만 그래도 꽤 흥미롭게 봤다. 폭력의 탄생과 재순환, 정당화의 관점에서. 반격의 서막이란 말로 알 수 있듯이 다음 편은 유인원이 점령한 세계가 나올 것이다. 같은 감독이 만들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음 편도 보지않을까.

 

진화의 시작에서 인간의 치매를 막는 약을 개발해서 유인원한테 실험 중이었다. 약의 부작용으로 유인원들이 지능을 얻게 되었고 유인원들이 실험실을 탈출하는 이야기였다. <반격의 서막>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유인원에게 있는 바이러스에 옮은 인간이 거의 죽고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사람들만이 살아있다. 인간의 삶은, 요즘 기준으로 비참해졌다. 반면에 실험실에서 착취당했던 유인원들은 숲으로 돌아가서 사는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다. 살아있는 인간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유인원들이 태평성대 속에 살고 있던 어느 날, 사람들을 마주친다. 전기를 얻기 위해 발전소로 향했던 일행들이다. 언제나 문제의 발단은 발전 혹은 진보라는 테두리 내에서 일어난다.

 

본격적인 유인원과 인간의 대립이 시작된다. 유인원 내부와 인간 내부 각각에서 두 파가 대립을 한다. 유인원과 인간의 공존을 믿는 무리와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니면 내 생존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그룹이다. 다수 대 소수의 대립이 시작된다. 두 집단의 공존을 희망적으로 보는 이는 유인원 리더 시저와 인간 말콤이 있다. 두 이상주의자들(?)은 상대의 공격이 아니라 자기 편의 공격을 받는다. 시저는 전쟁을 해야한다는 드레퓌스의 습격을 받는다. 드레퓌스는 일종의 음모와 힘으로 유인원의 새 리더가 된다. 다수결 원칙은 합리적인 의견수렴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단점이 많다. 51% 대 49%여도 나머지가 51의 의견에 따라야하는 허점이 있다. 많은 평범한 유인원들이 전쟁에 반대하지만 드레퓌스를 따라 싸우러 나서야 한다. 즉 이 유인원들은 폭력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처하게 된다.

 

유인원의 이야기를 보면서 며칠 전 끝난 보궐선거를 연상할 수 밖에 없다. 세월호란 국란을 겪고도 절반은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지젝에 따르면, 폭력에는 세가지가 있다.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주관적 폭력,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상징적 폭력, 그리고 우리의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파국적인 결과인 구조적 폭력. 유권자 대부분은  구조적 폭력의 힘 없는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새누리의 압승이란 선거 결과를 보면 구조적 폭력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구조적 폭력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폭력은 재생산되고 희생자는 계속 희생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리더나 영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평화주의자였던 시저는 마침내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전쟁을 선포한다. 유인원들은 물론 시저를 따를 것이다. 전쟁을 원하지 않던 이들이 전쟁이란 폭력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이 영화 감독은 유인원 편이어서 아마도 유인원의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유인원이 약자라고 생각하기에 억압당하고 착취당했던 약자가 승리한다는 판타지를, 오락영화가 가져야할 미덕이니까. 그러나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다. 유권자는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이면서 모르는 채 가해자가 되면서 영화 속 유인원보다 늘 더 고통스러운 위치에서 가끔 비명만 지를 뿐이다.

 

덧. 사실 이 영화는 몹시 인간 중심, 그러니까 지배자 중심의 영화다. 유인원이 유인원들끼리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말이 되나. 게다가 시저가 인간과의 공존을 믿는 이유는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다. 어릴 때 자신을 돌봐줬던 과학자에 대한 좋은 기억이다. 과학자한테 말을 배우던 동영상을 보고 시저는 향수를 느낀다. 이런 개인 기억에 기반을 둔 가치관에 따라 표를 던지는 게 유권자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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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cal.jinbo.net/xe/?mid=page_ZhRN88
요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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