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제는 아띨라 마르셀Attila Marcel인데 한국어 제목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훨씬 더 영화 전체 내용과 어울린다. 주인공 폴의 어린 시절 기억을 찾아주는 역할을 맡은 마담의 이름이 프루스트인건 우연이 아니다. 마담 프루스트는 비밀정원에서 여러 가지 신비한 허브를 키우고 그 허브차와 마들렌느를 함께 먹으면 과거의 기억으로 잠시 돌아갈 수 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어도 첫부분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기억은 물질을 통해 매개되며 작은 기억 조각들이 모여 추억이란 이름의 폴더에 저장된다. 프루스트는 과거로 회귀하는 과정을 언어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프루스트의 노력을 실뱅 쇼메는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다고 내용이 프루스트의 작품과 같은 건 아니고 전혀 다르다. 다만 감독이 차용한 건 프루스트가 사용한 방법이다. 난 이 과정을 좀 유머러스하게 봤다. 극중에서 폴의 눈을 슬프고 아름답다고 표현하는데 나는 슬픔보다는 코믹하게 봤다. 허브티를 마시며 마들렌느를 먹자마자 과거로 회귀하는 이미지에 보통 극영화에서 볼 수 없는 순수함 내지는 판타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2.
폴은 두 살 때 부모를 잃었다. 이모들이 금지옥엽으로 피아스트로 키웠지만 폴은 부모를 잃은 무의식의 트라우마로 성인기로 이행하지 못했다. 폴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최면에 걸린듯 무표정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멍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교습소 장면은 폴이 현재가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좁은 공간에 미뉴엣, 왈츠 등등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 가득한데 이들은 의도적으로 마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치 그들이 폴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흥겨운 사람들 속에 놓인 폴의 단절감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난 이 장면들도 웃겼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나만 웃는 거 같아 내 정신세계에 문제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분위기는 우수를 표현하고자했는데 웃긴, 그런데 영화관 관객은 모두 진지하게 보고 있는...뭐 이런 상황이었다.-.-
아무튼 폴은 프루스트 부인의 도움으로 두 살 때 기억 퍼즐을 끼워 맞추는데 성공한다. 허브티와 마들렌느가 과거로 들어가는 입구였다면 제목 아띨라 마르셀의 노래는 과거로 들어가 구체적인 기억을 헤집어내서 맞추는 역할을 한다. 이는 아주 익숙한 방식이다. 우리도 스무살에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스무살 무렵, 그 노래를 들었던 사변적 상황이 펼쳐지면서 단편적 기억이 떠오르니까. 그러니까 아띨라 마르셀의 노래는 폴한테 추억의 노래인 셈이다. 기억은 이미지로 재생되지만 이미지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촉각, 청각, 미각 등 다른 감각을 동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떤 이미지가 머리속에 재생될 때 이미지가 온전한 게 아니라 일그러지게 왜곡되고 순차적인 게 아니라 무작위로 두서없는 부분들을 아주 잘 표현했다.
폴이 부모의 죽음의 죽음을 기억해 낸 후에 그는 어린 시절과 작별을 하고 어른기로 이동할 수 있다. 모든 무의식적 억압은 잊는 게 상책이 아니라 들추어내서 언어를 통해 재생하는 과정을 통해야 진정한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정신분석의 기본에 충실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폴은 해피엔딩을 맞이해서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그 아이한테 유년의 추억을 선사한다. 아기가 폴을 바라볼 때 카메라는 폴을 볼록렌즈로 보는 것처럼 일그러지게 잡아내면서....유년의 추억을 들추어줄 무언가는 각자 다르다.
3.
영화를 본 후, 내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한 물건들은 뭐였더라를 잠시 생각해봤다. 여름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를 보면서 무서워 못 보고 이불을 뒤집어 썼는데 눈에 들어왔던 엄마의 발. 더 커서는 지금은 이렇게 블로그에 영화일기를 남기는데 어린 시절 영화 본 후 기록했던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