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 Revolutionary Roa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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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에이프릴과 프랭크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가 하는 모든 말에 관심이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낯선 것들은 익숙한 것으로 변했다. 불꽃처럼 뜨거웠던 사랑은 희미한 열을 지닌 재로 변했고 일상은 반복된다. 무슨 일이든 처음에 아무리 대단한 일이라도 매일 하면 일상으로 전락한다. 그러니 집안 일, 매일 같은 시각 열차나 버스를 타고 출근길 대열에 끼어 사무실에 도착해 대수롭지 않은 서류작업은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울렁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사도 해보고 집이 아닌 다른 곳을 기웃거린다. 익숙한 것들에서 달아나기 위해서다. 그러면 살아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조금 더 강도 높은 장소를 택한다. 미국을 떠나 파리로 갈 계획이다. 계획만으로도 그들은 잃었던 관심을 다시 되찾고 일상은 다시 탄력을 받는다. 느닷없는 고액연봉 제의에 프랭크는 꼭 파리가 아니어도 된다고 말한다. 에이프릴에게 파리는 돈벌이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프랭크는 고액 연봉이라면 미국에서도 충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꿈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파리행에 동의했던 때, 두 사람은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변수가 생기자 두 사람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걸 깨닫는다. 다르게 살기를 갈망하지만 그 '다르게'가 같지 않다. 각자 다르게 살기를 갈망하는 두 사람은 궤도를 이탈하고 만다. 에이프릴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죽음으로 다르게 삶을 끝냈다. 에이프릴이 없는 삶은, 확실히 프랭크에게는 다른 삶이다.  그들이 이전과 다른 삶에 만족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공허감은 매복하고 있을 것이고 호시탐탐 나올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지난 주까지 헐레벌떡 시간을 보내면서 내내 이건 아니야하고 고개를 저었다. 이번 주 여유를 좀 갖고 살만하다고 느끼자 허전함이 옆구리를 쿡 찌르는 이런 시간의 순환이 평생 지속되겠지. 그리고 그 순환주기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내 삶의 과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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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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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까지도 오래 걸렸고 책장을 넘기는데도 오래 걸렸다. 여러 동물종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많은 케이스 스터디로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동물종 스터디에서 끌어내서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인간종은 "유전자 기계로 조립되었지만 밈meme기계로 교화되었다." 인간이 다른 종과 다른 점은 문화라는 풀 속에서 고찰할 수 있다. 문화 전달은 유전자 전달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전달하기 위해 수 많은 사례들을 연구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저께 한 지인이 교제중인 사람을 만났다. 이 커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기 시작한 건 4개월쯤 됐다. 이들을 커플로 만든 건 '하나님god'이라는 기독교 문화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지인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상대방을 긍휼히 여겨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 지난 해 가을쯤부더 시작되었다. 이 커플은 도킨스가 열렬히 지지하는 다윈주의 세계를 부정하는 세계에 있다. 기독교 세계는 신의 섭리와 계시가 유전자마자도 지배할 수 있는 세계다. 이 커플은 자신들의 만남을 일종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다윈주의 세계에서 신의 계시나 암묵적 신호 따위는 없다. 두 사람은 밈 풀 속에 있는 많은 요소들 중 신을 선택한 공통점이 있다. 그럼 왜 신인가? 두 사람 모두 신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게 개체 생존과 진화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된 데 대한 다윈주의식 설명이다.  

신의 섭리든 다윈주의적 이기적 진화든,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지금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데 있다.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신의 뜻을 따르든 개체의 자기 복제라는 다윈주의를 따르든 인간종은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으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적어도 노력한다는 점에서 다른 종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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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답사여행의 길잡이 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 돌베개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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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수학여행으로 처음 경주에 갔다. 불국사 석가탑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추적추적 내린 비로 회색빛이다. 그리고는 내내 잤던 기억. 내리라고 하면 내렸지만 머리 속에는 경주의 풍광이 아니라 관광버스 안이 더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집단 여행은 처음이었고-초,중등 시절에 잇단 대형사고로 수학여행 금지 시기였다-그 많은 인원(한 반에 60명이 넘는)이 한 곳에서 자고 일어나고 밥 먹는 거 자체도 신기했었다. 게다가 교실에서 보지 못한 친구들의 돌발행동에 얼떨떨했다.  

그 후, 경주에 몇 번 갔는지 셀 수는 없지만, 간헐적이지만 만만한 1박2일 나들이로 익숙한 곳이다. 한 번은 역시 폭우가 와서 헤드라이트를 켜야할 정도였다. 불국사 앞에서 주차를 했는데 라이트를 켜고 들어갔다 나오는 바람에서 애니카 서비스를 부른 적도 있다.-.-;  또 한 번은 심야 고속버스표를 예매해 놓고 술마시다 헐레벅떡 버스 터미널로 갔던 적도 있다. 갈 때마다 이렇게 작고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경주행에 수를 놓고 있지만 정작 코스는 비슷했다.  

다음 주 경주행은 마리와 함께 간다. 동양, 특히 한국에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갖는 이방인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주문한 책이다. 책갈피를 넘기면서 내가 과연 경주에 관해 무얼 알고 있던가..회의가 든다. 보문사에서 일몰 무렵 자전거를 타면 좋고, 토함산 올라가는 길은 안개가 짙어 운전에 주의해야 하고 시내 관광은 도보가 좋고, 감포가는 길은 운치있고 ...이런 거 빼면 아는 게 없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하나라도 더 보고자 하는 욕심에 가이드 책이며 소설, 영화까지 자료 수집해서 가능하면 읽고 보고 가려고 하는데. 정작 우리 것에는 내가 얼마나 백치인지..마리에게 설명을 좀 해주려고 읽고 있는 중인데 내게 더 도움이 되는 책이다. 더불어 앞으로 우리 땅 다른 지역으로 길을 떠날 때 표면에 드러난 풍광만이 아니라 흙과 공기에 배여있는 넋을 알기에 더할나위 없는 안내자를 만난 것 같다.  

그동안 왜 우리는 론리 플래닛이나 디키 시리즈가 없나 하고 투덜거렸는데 내가 모르고 투덜거렸다. 서울판도 있던데 기회닿으면 서울을 걸어서 답사해야지, 하는 마음만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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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를 리뷰해주세요.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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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ㅠ.ㅠ 비혼 여성이란 사회적 공동체 기준으로 보면 기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구체적인 기호는 호칭을 통해 나타난다. '아줌마, 어머님, 사모님' 병원이나 은행을 가면 이들은 얼굴은 보지도 않고 생년월일로 어머님나 사모님으로 부른다. 즉 내 나이라면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아내라는 걸 당연시한다. 이럴 때 굳이 저 결혼 안 했어요, 하고 밝히기 머쓱해서 가만히 듣고 있지만 기분은 아주 엿같아진다. 고객님이란 좋은 말을 두고 왜 어머님이나 사모님을 그들은 사용하는지...또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원 신입생 환영회 때, 한 교수님은 나이를 듣고 결혼 여부를 물었다. 안했다고 하자 "한 번도?"하고 다시 물었다. 순간 너무 억울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랑 한 번 결혼해 보는 건데..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했다.  

이렇게 혼자 산다는 건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일상적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위축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평소에 혼자라는 걸 괴로워하거나 매력이 없다고 여기진 않는다.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온통 혼자는 정상이 아니라고 각인시킨다.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호의적이지만-참 괜찮은데 왜 결혼을 안(못) 하는 거야, 라고 칭찬한다- 그 기저에는 룰을 벗어난 데 대한 안타까움이 배여있다. 불특정 다수가 행하는 폭력보다는 강도가 낮지만 그 근본은 같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면 마음의 동요가 찾아오는 게 사실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집에서나 직장에서 성차별을 크게 겪지 않았지만 나이든 비혼 남성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당한 취급을 받는 건 여성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왜 혼자되나"를 말하지 않는다. 이미 혼자인 상태를 받아들이고 즐기라는 반복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나처럼 혼자인 걸 당연시 받아들이는 사람보다는 혼자인 걸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글이다. 남친이나 남편이 자신에게 소홀할 때 자존감을이 추락하는 여성들 또는 결혼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아이들과 남편에게만 헌신하는 여성에게 목소리를 찾는 데 죄의식 따위는 필요없다고 이야기 한다.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성 또는 내 엄마처럼 가정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여성을 위한 글이다. 다시 말하면, 나처럼 이미 혼자인 것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여성을 위한 글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자의적(?)이라고 생각하는 비혼여성은 또 한 번 배제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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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영도 동문선 문예신서 342
롤랑 바르트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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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의욕적으로 서가를 둘러보다 바르트를 꺼냈다. 대충 훑어보고, 바르트의 다른 책들과 가지런히 세워두었던 글쓰기의 영도. 

1. 번역에 관한 투덜거림 

바르트의 번역서 중 최악인 거 같다. 이 번역서를 읽고 바르트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불문 원서를 읽기에는 너무 게으르다. 돌이켜보건대, 바르트의 원서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않다! 고로 바르트 문체의 난해함을 알 수 없으니 가독성 문제를 번역자에게 전적으로 떠넘기는 건 염치없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번역자의 오류에 대해 좀 말하자면, 번역투가 문제가 아니라 긴 문장의 호흡을 끊는데 미숙하거나 게으른데서 나온다.  

   
  랭보나 초현실주의자들의 종국적 실서증-바로 이로인해 그들은 망각으로 떨어진다-문학의 그 전복적인 자침이 가르치는 것은 어떤 작가들의 경우 문학적 신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활로인 언어가 결국은 그것이 달아나고자 했던 것을 재구성한다는 것이고, 혁명적 상태로 스스로를 유지하는 글쓰기는 없다는 것이며 형태의 모든 침묵은 완전한 무언을 통해서만 기만으로 벗어난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이게 과연 우리말인가? 조금만 더 교정을 보고 호흡을 가다듬는데 부지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만년 만에 의욕적 독서를 통해 돌아봐야 하는 사항 

인간의 공유물이고 반사작용인 랑그langue와 랑그의 밀도과 결을 갖는 파롤parole의 차이인데 여기서 생겨나는 게 문체style이다. "작가의 문학적 의도와 육신적 구조 사이에 놓인 방정식"으로 간주한다.  

고전주의적 글쓰기가 정치적 글쓰기와 비슷한 기저를 지니고 있고, 소설에서 글쓰기를 19세기 사실주의에서 분석한다. 객관성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된 단순 과거가 소설적 시제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인용부호 안에서만 가능한 글쓰기로 전락한다. 이를 뛰어넘은 글쓰기로 까뮈의 문체를 든다. 어찌보면 까뮈가 사용한 복합 과거는, 단순 과거가 지닌 허구적 특성을 극복하고 객관성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담론은 프랑스 언어 사용자가 아니라면, 사실 단순 과거만큼 객관적이고 허구적 담론에 불과할 뿐이다. 바르트의 장점이자 한계가 바로 해당 언어의 고유성에 있다. 즉 그가 비판했던 사실주의적 글쓰기가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고전에는-바르트의 글을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면!-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다. 고전주의부터 글쓰기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중립적 글쓰기를 강조한다. 영도의 이르는 글쓰기는 "작가가 처한 새로운 상황의 양태(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가 보여주고자 했던)이고 침묵이 존재하는 방식(시적 감정을 중요시하는)이다." 요거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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