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답사여행의 길잡이 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 돌베개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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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열일곱 살, 수학여행으로 처음 경주에 갔다. 불국사 석가탑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추적추적 내린 비로 회색빛이다. 그리고는 내내 잤던 기억. 내리라고 하면 내렸지만 머리 속에는 경주의 풍광이 아니라 관광버스 안이 더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집단 여행은 처음이었고-초,중등 시절에 잇단 대형사고로 수학여행 금지 시기였다-그 많은 인원(한 반에 60명이 넘는)이 한 곳에서 자고 일어나고 밥 먹는 거 자체도 신기했었다. 게다가 교실에서 보지 못한 친구들의 돌발행동에 얼떨떨했다.  

그 후, 경주에 몇 번 갔는지 셀 수는 없지만, 간헐적이지만 만만한 1박2일 나들이로 익숙한 곳이다. 한 번은 역시 폭우가 와서 헤드라이트를 켜야할 정도였다. 불국사 앞에서 주차를 했는데 라이트를 켜고 들어갔다 나오는 바람에서 애니카 서비스를 부른 적도 있다.-.-;  또 한 번은 심야 고속버스표를 예매해 놓고 술마시다 헐레벅떡 버스 터미널로 갔던 적도 있다. 갈 때마다 이렇게 작고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경주행에 수를 놓고 있지만 정작 코스는 비슷했다.  

다음 주 경주행은 마리와 함께 간다. 동양, 특히 한국에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갖는 이방인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주문한 책이다. 책갈피를 넘기면서 내가 과연 경주에 관해 무얼 알고 있던가..회의가 든다. 보문사에서 일몰 무렵 자전거를 타면 좋고, 토함산 올라가는 길은 안개가 짙어 운전에 주의해야 하고 시내 관광은 도보가 좋고, 감포가는 길은 운치있고 ...이런 거 빼면 아는 게 없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하나라도 더 보고자 하는 욕심에 가이드 책이며 소설, 영화까지 자료 수집해서 가능하면 읽고 보고 가려고 하는데. 정작 우리 것에는 내가 얼마나 백치인지..마리에게 설명을 좀 해주려고 읽고 있는 중인데 내게 더 도움이 되는 책이다. 더불어 앞으로 우리 땅 다른 지역으로 길을 떠날 때 표면에 드러난 풍광만이 아니라 흙과 공기에 배여있는 넋을 알기에 더할나위 없는 안내자를 만난 것 같다.  

그동안 왜 우리는 론리 플래닛이나 디키 시리즈가 없나 하고 투덜거렸는데 내가 모르고 투덜거렸다. 서울판도 있던데 기회닿으면 서울을 걸어서 답사해야지, 하는 마음만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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