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고 10분동안 어마무시한 살상이 벌어진다. 카메라가 이동하면서 프레임 안에는 백 여명 정도되는 조폭이 숨소리와 화면 자락에 보이는 칼에의해 청소(?)된다. 건물의 좁은 통로는 피가 튀기고. 칼을 맞은 사람은 피를 뿜어댄다. 마치 격투기 게임같은 장면이 이어진다. 눈을 질끈 감고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폭력 그자체로 쾌감을 줄 수 있으니 이런 장면을 만들었겠지ㅜ 왜 이런 장면을 오프닝에 배치했는지가 <악녀>의 줄거리다.

제목은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다. 숙희란 여자가 킬러로 살아가는데 자신의 의지나 주관은 몰살당하는 비운의 여자의 일생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킬러로 다시 태어났지만 원수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 조직에 철저히 이용당하고 국정원에 잡혀서 다시 태어나 딸을 지키기 위해 원치않는 킬러로 살아간다. 숙희는 철저하게 모든 사람한테 착취당하는 인물이다. 이런 구시대적 인고하는 여인상에 대한 착취를 액션과 시간을 재구성하는 편집 기술로 가렸다.

여자 원탑 히어로 영화가 계속 나오는데 여자한테 이쁜거는 당연하고(군살없는 몸매에 자신보다 두배는 등치 큰 남자들과 대결해도 일당 백을 할 수 있도록 단련해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문제 해결까지 하라고 강요하는 거 같아 피로감이 몰려온다.

숙희가 국정원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으면서 여자동료들이 숙희를 희롱하는 말이 있다. 반반하게 생겼다, 원판이 이쁘겠지...등등. 국정원 남자직원들은 모니터를 숙희를 감시하면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사람을 죽이고 피칠갑하는 장면만큼 불쾌한 장면들로 가득차있다.  몹시 찝찝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본 이유는 균신 때문인데 비열한 캐릭터고 의외로 조연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버스 안에서 숙희와의 액션신을 보면서 난 왤케 안스러운 마음이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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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스트 인 파리>보고 독특한 코미디를 부부가 만드는데 급흥미가 있어 찾아봤다. 남편 아벨은 벨기에인이고 아내 피오나는 호주에서 태어난 캐나다인. 아, 그런데 이런 코미디라니...세상에 이 보다 더 나쁠 순 없다, 가 이 영화의 주제가 되겠다. 원래 도미니크 아벨은 코미디언이라고 한다. 마임적 개그를 해서 손짓, 몸짓, 표정을 보고 있으면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유투브에 <로스트 인 파리>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를 위해 CGV에 온 동영상이 올라와있다. 영상 처음에 말했듯이, 이들의 유머는 불행한 상황에서 나온다. 불행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웃음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룸바>는 정말 웃어도 될까, 하는 죄책감이 들게 하는 영화다.

2. 라틴 춤 경연대회에 갔다 오다가 자살을 결심한 한 남자가 차에 치려고 길에 서 있는다. 그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꺽었다가 두 사람은 사고가 난다. 남편 돔은 기억상실에 걸리고 피오나는 한쪽 다리를 잃는다. 두 사람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피오나는 병원에서 퇴원 후 목발을 짚고 학생들 앞에 선다. 불편한 다리로 아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서서 자리에 앉기 까지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슬랩스틱으로 이어지는데 과연 웃어야할지...아이들은 물론 웃지않는다. 이 영화가 그래서 굉장히 독특하다. 불행을 희화해서 그런지 웃긴데 웃지 않는...그후 누군가가 나무로 된 의족을 보내오고 피오나는 목발을 버리고 나무 의족을 쓰는데 캠프파이어하다가 의족에 불이 붙고 접을 수 없는 의족을 이리저리 옮기다 집이 홀랑 다 타버린다. 재만 남은 집터에서 밤을 보내는데 폭우가 쏟아지고, 다음날 빵을 사러간 돔은 기억상실증이라 빵을 탐내는 사람한테 폭행을 당하고...피오나는 남편이 죽은 줄 알다가 일년 후 재회하는 이야기다. 밝은 화면과 생략하는 영화 언어를 써서 그렇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거 아닌가.

3. 한국독립영화가 많이 다룬 주제이기도 한데 영화 표현방식에 너무너무 놀라게 된다. 두 배우의 외모에서 풍기는 절대적인 분위기도 한 몫하지만 이들의 연출력은 독특하다. 생략과 비약을 많이 사용한다. 가령 교통사고 장면에서 죽음을 결심한 남자의 비관하는 상반신을 카메라는 담고, 사운드로 차 다른 곳에 부딪친 걸 처리한다. 남자의 프레임 안으로 사고를 알리는 자동차 연기만이 들어온다. 집이 완전 재로 변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불이 여기저기 붙어서 허둥지둥 끄려고 하는 모습을 담고 그 다음 장면에서 날이 밝고 모두 재로 변한 것 위에 두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스펙터클 없이도 슬픔을 전달해서 웃지 못하게 하는 연출법이다.

4.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안 놓는 게 다르덴 형제와 일맥상통하는 벨기에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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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이 영화를 봤냐하면,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어린 시절 속삭이는 말도 멀리서 듣는 소머즈, 필요하면 갑자기 멀리있는 걸 보고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달리는 육백만불의 사나이, 그리고 평소에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위기가 닥치면 빙글빙글 회전해서 옷을 갈아입고 위기에서 사람들을 구출해주는 원더 우먼까지... 냉전 시대에 외화시리즈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 세계에서 절대 선을 행하는 원탑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어렸던 나는 초능력이라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신처럼 초능력을 가진, 어찌보면 가부장적 지배 논리를 훈육하기 위한 시리즈들이었다. 커서 생각하니. 그래서 원탑 영웅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초능력은 더더욱...

2. 그럼에도 <원더 우먼>은 냉큼 보러 갔는데 음...내가 알고 있는 원더 우먼이 아니었다.-.- 아마존에서 흙으로 빚어서 생명을 불어넣어 태어난 줄 아는 신과 인간의 피조물로 헤라클레스 여자 버전쯤? 원더 우먼이 아주 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단점이 더 눈에 들어온다. 먼저 좋게 말하면 세속의 때가 안 묻었고 나쁘게 말하면 물정 모르다. 인간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자신의 믿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절대 선은 절대 악과 비슷한 점이 있다. 방독면을 뚫는 독가스를 만드는 박사 역시 절대 악에 대한 혹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추진력이다. '절대'라는 건 인간계에서는 위험한 일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를 없애겠다는 의지로 원더 우먼은 또 다른 인간(영화 속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징집당했을 어린 독일군)을 죽이는 일을 선이라는 이름으로 행한다.

아마존에서 이탈해서 도시로 나와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옷가게에 가서 벌어지는 짧막한 대화는 젠더 정체성에 대한 유머가 있는데, 나는 이 유머가 썩 좋진 않다. 원더 우먼이 젠더 정체성에 대해 알고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같은 순진함에서 나와서 오히려 남성의 시선처럼 느꼈다.

건장한 여신의 뒤를 따라 올망졸망한 남자들이 뒤를 쭐래쭐래 따라서 최전선으로 향한다. 나는 성별을 떠나 이렇게 초능력을 지닌 원탑 히어로에 의존하는 영화는 인간 세계의 부정성만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썩 통쾌하지 않다. 많은 여자들이 이 장면에서 쾌감을 느끼려나? 문제 해결은 한 사람의 지도로 되는 게 아니라 협의와 협력, 양보와 타협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현대인같으려나...배경은 원시와 1차 세계대전이거늘.

3. 헐리우드 영화답게 권선징악의 결말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대결할 때 소중한 이(인간)를 잃었을 때 원더 우먼은 아레스에 대한 분노로 가득찬다. 분노는 결국 자기 파괴적이다. 파괴적 악에 분노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 악을 없애는 힘을 얻는다. 미국 지배 이념인 바이블의 훈육 논리다. 이렇게 간단한 패러다임으로 헐리우드는, 원더 우먼은 관객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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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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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아빠가 뭘 물었다. 대답을 했는데 못 알아들으셨다. 귀가 잘 안들려서 데시벨을 올려야하는데 다시 말하려니 짜증이 나서 대답 대신 뭐가 그렇게 궁금하냐고 쏘아붙였다. 아빠는 "나도 젊을 때 있었어, 못 알아들었으면 열 번이라도 다시 말해줘야지 왜 짜증을 내. 부모는 자식이 뭘 몰라 물으면 열 번이라도 다시 설명해주는데 자식은 한 번만 더 물어도 짜증을 내"라고 하시면서.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알지...하는 마무리를 하셨다. 순간 아빠한테 엄청 미안했다. 다시 말하는 게 뭐가 힘든 일이라고 짜증을 냈는지 .어릴 때 뿐 아니라 불과 두 달 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 과자, 빵 등 주전부리를 사들고 매일 병원에 오셔서 내 머릿맡에 잠깐씩 앉아있다 가셨는데...

이 소설집을 읽으니까 아빠 생각이 난다. 부제가 가족소설이다. 말 그대로 이기호 작가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썼다. <갈팡질팡하다 이럴 줄 알았다>의 서문을 보면 불안을 씨앗 삼아 글을 쓰는 청년이었는데 이제는 세 아이의 아빠이다. 작가답게 세심하고 때론 소심하다. 문득 이런 사람을 배우자로 두는 아내도 작가 못지않게 세심할 거 같다. 실제로 작가는 아내의 육아 지옥에 물리적으로 많은 도움은 못 줘도 정신적으로는 그 고통을 분담하고 땡땡이 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반성이 깔려있어서 작가의 아내는 그래도 다른 아내들보다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이.

이기호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주변인들이고 희화한다. 희화화가 자칫 타자화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 이기호 작가의 인물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처구니없는 유머 속에 따뜻한 인간애를 전해준다. 사실 어찌보면 상황이나 처지를 180도 바꾸는 일은 현실에서는 많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입장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현실은 희망적이기도 하고 절망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복은 마음에 있다는 말이 나온거고.

"세 아이 모두 학원은 다니고 있지 않지만, 합기도 체육관과 동네 카페 2층에서 한 선생님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자소학' 교실만큼은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다. 아이 친구들 역시 모두 함께하는데, 그러니까 이 동네 아이들은 낮에는 무술을 연마하고 저녁에는 '소학'을 읽는, 겉모습만큼은 무슨 나라를 구할 아이들처럼 보이기도 한다(나라를 구하기 이전에 제발 발이라도 스스로 잘 닦고 잤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246쪽

책장을 덮기 전 에필로그에 쓰여진 말인데 다시 한 번 빵 터졌다. 시선의 힘이다. 소심하지만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가진 작가의 눈으로 보는 일상혈투를 읽은 후 심장이 따뜻해진다. 

오늘 아빠는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셨다. 지금쯤 오랜만에 만난 동생들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계시겠지. 이 책을 읽으니 아빠가 어릴 때 품에 안고 잠을 재워주던 생각이 난다. 아이를 키우는 이들은 거꾸로 아이를 재우던 때가 생각날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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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몹시 고파서 여행 기분을 느껴보려고 파리가 배경인 영화를 봤다. 두 감독이 주인공인 영화인데 색감이 텁텁한 입안을 화하게 해주는 민트처럼, 안구정화를 해준다. 여주인공 피오나는 쨍한 그린 스웨터와 역시 그린 계열의 치마를 입고 빨간 배낭을 메고 파리에 입성한다. 이런 색감마저도 귀엽고 스토리도 귀엽다. 양로원에 가기 싫은 과거 무용수였던 이모나 조카한테 SOS를 보낸다. 피오나는 이모를 지켜주러 파리에 오지만 첫날부터 자신도 못 지키는 소동이 벌어진다. 노숙자 돔은 피오나가 곤경을 겪었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고, 피오나가 물속에 빠지면서 잃어버린 배낭을 건지면서 피오나의 삶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결론은 정말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러브 스토리이다.

러브 스토리는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난다는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지만 그 과정을 묘사하는 방식에 따라 흥행이 갈린다. 이 영화가 러브 스토리를 전개하는 묘사 방식은 동화적이고 슬랩스틱 코미디다. 고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보면 재밌다.

오프닝에서 완전 뿜었고 영화 전개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된다. 이모와 어린 피오나는 남극과 비슷한 눈보라 속에 서 있고 이모는 피오나한테 파리로 간다고 말한다. 피오나는 이렇게 추운 곳에서 살고 있다. 성인이 된 피오나는 작은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자락이 오른쪽에서 들어오며 사무실에 앉아있는 인물들이 모두 팔을 허공으로 들고 흔든다. 이 장면을 본 순간 뭘 말하는지 몰랐다. 잠시 후 동료 한 명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들의 팔이 내려간다. 아...이런 슬랩스틱이라니. 눈보라의 세기를 팔의 움직으로 표현하다니. 너무 웃겼다. 또 하나 재밌는 장면은 피오나와 돔이 서로 각자의 집에서 자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꿈을 꾸는 장면을 한 화면에 배치했고 둘을 분명이 다른 곳에 두었지만 음악에 맞춰 서로의 꿈을 꾸면서 자그마한 춤(?)을 추는데 따로 또같이 느낌을 주는데 엄청 구엽다.

<아멜리에>서 아멜리에가 영화 분위기 전반을 지배했듯이 피오나 고든이 갖는 톡특한 이미지도 영화에서 한 몫한다. 일단 영화보고 여행 욕구는 최대한 좀 눌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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