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 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human RED 001
살바도르 달리 지음, 이은진 옮김 / 이마고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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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달리 전이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다. 소품들이 공수돼서 침침한 전시장에 앉아 있었다. 네모 반듯한 전시장에서 달리의 작품들은 왜소해보였고, 때깔도 제 빛을 찾지 못했다. 그 전시회로 달리를 처음 접했다면, 달리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힘들게다. 그런 전시장에서 달리의 정신세계를 찾아보는 건 물론 불가능했다. 입술 소파 모작에서 사진을 찍어대고는 나란히 홈피에 올리는 걸 달리가 봤더라면 소파를 당장 부숴버리지 않았을까.

극도로 내성적이고 분열적이며 편집증이 그의 상상력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인생을 다 살고난 후 쓴 자서전이 아니라 36세에 자서전을 쓰고 자서전 대로 사는 게 더 지성적이라는 그는, 분명히 사차원에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차원이라는 걸 알았고, 사차원에서 끌어낼 수 있는 걸 마음껏 끌어내는 능력이 있다. 게다가 질투나게 글도 잘 쓴다. 자서전이지만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재치와 유머를 뿌리면서 생각을 전개한다. 고통으로 얼룩질 수 있는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민족성 때문일까?

어쨌거나 난 그동안 달리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는 게 없으니 오해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의 오묘한 작품들이 달리의 독특한 정신세계의 일부다. 책 표지에 있는 길게 난 수염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가 말하듯이, 고독의 세계든 또는 광인의 세계든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넘나는 드는 그의 행동과 사고가 그림이란 도구를 만났다. 도구란 필연일까, 우연일까. 달리가 그림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글을 선택했을지도.

다음은 1차 세계대전 후 그가 추구하는 대로 개인만 남은 상황을 쓴 글이다.

"딩동, 딩동.

누구시죠?

예, 역사의 시곕니다.

갈라, 이 시계라는 사람, 지금 뭐라는 거지?

온갖 '주의(主義)'들이 15분간 떠들고 간 다음, 개인들의 시계가 문을 두드렸다. 살바도르, 이젠 당신 시간이오."

그는  글로도 충분히 그림이 몰고 왔던 반향을 일으켰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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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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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한 여성의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해 놓고 가끔씩 가보고 있다. 한 3년 되었으려나. 나보다 한참 아래인데 감수성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음악 취향도 그렇고. 인터넷의 익명성을 고스란히 즐기는(?) 중에 그녀의 홈피에서 본 책이었다. 얼마나 매력적인 제목인가! 그들만의 혁명이 아니라 나의 혁명을 말하는 책이라니..하는 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서가 어딘가에 처박아놓은지 일 년도 넘은 것 같다. 이번에 책장을 장만한고 바닥에 널부러진 책들을 일으켜 세우고 줄을 맞추다 발견했다. 컨디션도 최악, 의욕도 최악인 상태인 요즘..여름에 침대쪽에 난 창을 여는 위치를 십 년 넘게 발쪽으로 두었었다. 올 여름 더위와 몸살로 비실거리다 머리쪽으로 창을 여는 위치를 바꾸었다. 내겐 작은 혁명이었고(왜 진작에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눈 감고 뜰 때 열린 창으로 하늘을 볼 수 있어 천창을 가진 기분이다. 베개 비스듬이 세워놓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시원한 하늘 아래서였을까. 책갈피가 바람에 넘어가듯 술술 넘어갔다.

내용에서 좌파의 상상력을 찾기는 사실 좀 어렵고, 바그너, 쇼스타코비치, 피카소, 등 전쟁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액티비스트로 활동했는가가 신문 특집기사처럼 평이하고 간결하게 엮어져 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냐 찬가>를 읽고 피카소의 출생지 말라가를 갈 생각에 살짝 상기되는 것 정도가 이 책의 유용성이 되겠다.

올라 온 다른 리뷰를 보니 다들 좋게 평하는데 한편으로 난 너무 인색하게 뭐든 바라본다. 난 왜 이 모양인거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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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가우디 살림지식총서 127
손세관 지음 / 살림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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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다녀와서 이 책을 샀을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는다. 부제, 아름다움을 건축한 수도자가 눈에 띈다. 평생을 건축에만 바치면서 수도자처럼 살았던 가우디. 가우디 시대에 가난했던 티는 흔적 없고 독립을 주장할 정도로 재정적 자립도가 높은 부유한 바르셀로나에 화려한 느낌을 더해주는 게 가우디의 자취이다. 눈에 보이는 알록달록한 타일과 곡선에 감탄사 한 마디 내뱉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 곳에 서린 가우디의 혼을 더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가면 어떠려나..모르겠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변하는 건물을 만드려는 집념을 찾을 수 있을까.

위인들의 공통점은 집중이다. 한 곳에 몰입하고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작업을 계속한다. 사소한 환경 속에서도 집중거리를 찾아내는 일이 바로 위인과 범인을 구별해주는 지점이다.

"창조는 인간을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인간은 창조하지 않는다. 단지 발견만을 할 뿐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창조주와 함께 제작에 참여할 수 없다. 따라서 독창성이란 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책과 같다."

캬! 자연은 말을 걸어오는 책이라니!

"현명한 사고는 과학보다 우수하다. ..현명한 사고는 종합적인데 반해 과학은 분석적이다. 분석에 의한 종합은 현명한 사고의 종합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분석적인 것일 뿐 전체는 아니다. 현명한 사고는 종합적이며 생명력이 있다......종합은 공간이다. 인간의 지성은 오로지 평면만을 연구할 뿐이며, 분석적인 사람은 그저 점을 연구할 뿐이다. 과학은 분석인 동시에 종합이다. 분석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나 불완전하다."

핀란드에서 상상력 기르기 교육으로 스토리 텔링을 가르친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앞서가는 이들은 종합적 사고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단 말이겠다. 난 참 분석적 인간인지라 그저 점만 연구할 뿐이라는 말이 가슴을 적시는구나. 핀란드에 가서 청강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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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동물기 1 시튼 동물기 1
어니스트 톰슨 시튼 글, 그림 / 논장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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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리뷰보다는 책에 대한 추억담을 쓰려고 한다. 열 한 두 살 무렵일게다. 40권짜리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독파하고 있었던 시기기도 했다. 그 전까지 그림이 있던 큼지막한 글씨가 담을 수 있던 책들과는 다른, 훨씬 더 굵고 깊은 세계가, 작은 글자들로 이루어진 책에는, 있었다. 이 새로운 세계에 매혹되어 사십 권을 줄기차게 읽어댔다.

그 중 한 권이 시튼의 동물기였다. 파브르의 곤충기가 기억 속에 미미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반면에 시튼의 동물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문득문득 어렴풋하게 떠오르곤 했다. 동물의 구슬픈 삶이 우리의 삶하고 닮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십 여년 전쯤에 시튼 동물기를 몇 군데 서점에 문의해봤지만 아동용으로 출판된 큼지막한 글씨로 된 책 밖에 없었다. (소년소녀 문학전집은 몇 번의 이사로 버려야할 것으로 분류되어 재활용지로 다시 탄생하지 않았을까) 내가 찾는 건 기억이었는데 눈 앞에 있는 건 기억을 돕기는 커녕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찾았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주었다. 그리하여 읽는 걸 보류해두었다.

십 여년이 흐른 지난 달, 검색해보니 시튼 동물기가 4권으로 나와있었다. 늑대 왕 로보와 회색곰 왑이 분리된 권에 속해 있지만 십 여년 전에 실망한 책보다는 내가 책을 찾는 목적에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문해본다. 나는 이런 류의 책을 읽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게 아닐까, 나이와 함께 이루어 온 경험들로 추한 세계를 알아버린 건 아닐까, 하고 절망과 어깨동무를 했다.

꿋꿋하게 버티는 로보와 왑의 생에서 투지와 의지를 발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삶에 없는. 그래서 로보와 왑이 수 십년을 살아있었는지도 모른다. 로보는 죽는다. 왑도 죽었던 것 같다. 로보도 왑도 인간과 싸울 수 없고,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위대한 게 아니라 먹이사슬에서 한없이 작아보이는 롭과 왑은 나이 든 내게는 애처롭지만 당연한 귀결로 다가온다. 디지털 시대에 실사보다 더 실사같은 복제 동물을 접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로보와 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여러모로 유쾌하지 않은 감정 찌꺼기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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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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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제에 대한 논문과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논문이 한 명제에 대해 구체화하는 일이라면 소설은 일반화다. 2차 세계대전 중 드레스덴에 참전했던 기억을 논문이었다면 사건을 훨씬 더 구체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커트 보네거트는 소설가다. 자신이 느꼈던 것을 다른 사람도 느끼게 하는 임무를 맡고있다. 공감..소설가의 의무이면서 특권인데 커트 보네거트는 공감을 끌어낼 줄 안다. 전쟁의 야만성을 표현하는데 읽고 나면 섬뜩하다. 전장에 나와있는 군인들의 지저분한 얼굴을 닦고 면도를 했더니 아이들이 있었다고. 소설이란 장르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다.

프롤로그처럼 시작하는 첫부분을 읽으면서 사뭇 무거웠고 착각했다. 책장을 조금 더 넘기면서 헷갈리기 시작했다. 시간에서 해방되었다는 데 빌리 필그림은 정작 자신을 시간 발작환자로 여긴다. 빌리의 동선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몽타주 기법으로 이어지는 시간여행 때문에 나도 시간 발작증 환자가 되게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서 빌리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니 느긋해지면서 빌리의 말이 귀에 들어온다. 별날 것 없는 일상어로 커트 보네거트는 관조적 색채를 빚어낸다.

"트랄팔마도어에는 전보가 없어요. 하지만 당신 말은 맞았소. 각각의 기호 모둠은 짧고 급한 전문이오. 상황과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 우리 트랄파마도어 인들은 그것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읽지 않고 모두 동시에 읽어요. 그 모든 전문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소. 저자가 모든 것을 동시에 보면 아름답고 놀랍고 깊은 생의 이미지가 드러나도록 신중하게 선택했다는 것만 빼면 말이오. 거기에는 시작도, 중간도, 끝도, 서스펜스도, 교훈도, 원인도, 결과도 없소. 우리 책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점은 수많은 경이로운 순간들의 깊은 속을 일시에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지"(108)

이 소설의 구성을 낯설어 하는 사람에게 해 주는 말이다. 짧은 문장들을 들여다보면 삶의 진리와 깊은 진실이 드러나있다. 커트 보네트가 빌리 필그림을 통해 안내하는 길을 걸으며 공감이라는 작은 행복을 찾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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