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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동물기 1 ㅣ 시튼 동물기 1
어니스트 톰슨 시튼 글, 그림 / 논장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대한 리뷰보다는 책에 대한 추억담을 쓰려고 한다. 열 한 두 살 무렵일게다. 40권짜리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독파하고 있었던 시기기도 했다. 그 전까지 그림이 있던 큼지막한 글씨가 담을 수 있던 책들과는 다른, 훨씬 더 굵고 깊은 세계가, 작은 글자들로 이루어진 책에는, 있었다. 이 새로운 세계에 매혹되어 사십 권을 줄기차게 읽어댔다.
그 중 한 권이 시튼의 동물기였다. 파브르의 곤충기가 기억 속에 미미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반면에 시튼의 동물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문득문득 어렴풋하게 떠오르곤 했다. 동물의 구슬픈 삶이 우리의 삶하고 닮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십 여년 전쯤에 시튼 동물기를 몇 군데 서점에 문의해봤지만 아동용으로 출판된 큼지막한 글씨로 된 책 밖에 없었다. (소년소녀 문학전집은 몇 번의 이사로 버려야할 것으로 분류되어 재활용지로 다시 탄생하지 않았을까) 내가 찾는 건 기억이었는데 눈 앞에 있는 건 기억을 돕기는 커녕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찾았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주었다. 그리하여 읽는 걸 보류해두었다.
십 여년이 흐른 지난 달, 검색해보니 시튼 동물기가 4권으로 나와있었다. 늑대 왕 로보와 회색곰 왑이 분리된 권에 속해 있지만 십 여년 전에 실망한 책보다는 내가 책을 찾는 목적에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문해본다. 나는 이런 류의 책을 읽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게 아닐까, 나이와 함께 이루어 온 경험들로 추한 세계를 알아버린 건 아닐까, 하고 절망과 어깨동무를 했다.
꿋꿋하게 버티는 로보와 왑의 생에서 투지와 의지를 발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삶에 없는. 그래서 로보와 왑이 수 십년을 살아있었는지도 모른다. 로보는 죽는다. 왑도 죽었던 것 같다. 로보도 왑도 인간과 싸울 수 없고,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위대한 게 아니라 먹이사슬에서 한없이 작아보이는 롭과 왑은 나이 든 내게는 애처롭지만 당연한 귀결로 다가온다. 디지털 시대에 실사보다 더 실사같은 복제 동물을 접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로보와 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여러모로 유쾌하지 않은 감정 찌꺼기만 남는다.